죽음보다 더 무서운 '빚진 죄인의 삶'
새로운 출발 : 빚진 죄인, 죗값을 다 치렀다.
IMF 외환위기, 무너진 평생직장
IMF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은 퇴직자들의 무덤이다’라는 경고가 무뎌질 무렵 나철주(가명)씨는 나름 번듯한 직장을 때려 쳤다. 그리고 스스로 퇴직자들의 무덤이라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나철주씨는 IMF 외환위기 구조조정 한파 속에서도 굳세게 살아남아 매일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행복을 누려왔다. 그러나 이제 곧 대학에 진학하는 첫째아들을 포함해서 2남 1녀 자녀들의 교육뒷바라지도 하면서 든든하게 노후를 준비하고 싶었다. 지금은 또박또박 월급을 받고 있지만 언제 구조조정이 될지 모르는 월급쟁이보다 자기사업을 위한 모험을 할 때라고 여겼다. 물론 월급쟁이로 사는 것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 속에서 월급쟁이 소득으로는 풍족한 미래를 꿈꿀 겨를이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 사업장을 가지고 미래의 풍족한 삶을 다져보고 싶었다.
사실, 나철주씨는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구조조정 해고 걱정 없이 또박또박 월급 받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지만 혼자 벌어서 다섯 식구가 먹고 살만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대출 없이도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매달 받는 월급이 쥐꼬리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IMF 구조조정 한파에서 살아남은 직장생활도 평온한 행복이라기보다는 당장의 안도감에 지나지 않았다.
자영업, 퇴직자들의 무덤
때마침 IMF 외환위기 이후 서민경제가 살아나고 나홀로 창업 위험을 줄여줄 만한 유명 프렌차이즈 회사들이 늘어났다. 편의점, 제과점, 치킨가게, 화장품 전문점까지 눈에 띠게 성장하는 프렌차이즈 기업들이 가맹점주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나철주씨는 IMF 구조조정 한파를 넘어서 오랜 세월 직장생활을 해왔으나 나홀로 창업을 위한 기술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라도 별 탈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 창업을 선택했다. 또 어차피 처음부터 사람을 써서 장사를 할 생각이었기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가맹점포 두 개 정도를 한꺼번에 열기로 했다.
마침내 2006년 봄 나철주씨는 직장생활을 정리하며 받은 퇴직금과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창업자금을 마련하고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순풍에 돛을 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럭저럭 영업실적이 괜찮았다. 실제로 그 무렵 우리나라경제는 IMF 외환위기의 고통과 절망을 말끔히 씻어내고 있었다. 나철주 씨는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옳았고 앞으로의 결과도 달콤하고 풍성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조금 더 열심을 내고 부지런을 떨면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릴 거라고 믿었다. 이제야말로 서민경제 평론가들의 입말에 오르내리는 ‘자영업은 퇴직자들의 무덤이다’라는 명제를 고쳐 써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았다. 나철주씨는 본사가 가까운 곳에 경쟁가맹점을 허가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철주씨는 본사에 항의서를 보내고 개점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했지만 본사는 막무가내 나철주씨 영업권 안에 경쟁가맹점을 허가했다. 나철주씨는 본사의 횡포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1호 치킨 가맹점 매출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고 손익을 따지기도 어려웠다.
한편 늘 그렇듯이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했다. 2008년에 이르러 미국 월가 발 세계금융위기가 몰아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헤쳐 나와 새로운 경제성장에 들어섰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맨 밑바닥 서민경제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제성장의 신호탄이라고 호들갑을 떨던 아파트 부동산 가격이 무너지고 주식버블도 꺼져 내렸다. 이렇듯이 세계금융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에 공식처럼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다.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기름 값이 올라가며 수출이 줄어든다. 짓눌린 내수경제 속에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지고 집값도 떨어지며 서민 자영업경제가 쪼그라든다. IMF 외환위기 이후 온갖 불로소득의 온상으로써 ‘21세기 금융시스템’이 우리사회⸳경제 모든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부터 나철주씨의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 영업실적도 크게 쪼그라들었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나라경제 전체가 거덜 나는 위기를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자영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위기상황은 매우 크고 깊었다. 사업을 접어야하나 계속해야 하나 속앓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나철주씨는 자신의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 영업권내에서 가맹점을 열었던 경쟁점주가 영업을 접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취업시장 상황에서는 어려운 때일수록 누군가 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이 나타나 경쟁가맹점을 헐값에 인수하려 할 것이 뻔했다. 나철주씨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따져보았다. 이미 많은 돈을 투자해서 시작한 사업이라서 경기가 조금 어렵다고 곧바로 철수할 상황도 아니었다. 여기서 사업을 접으면 큰 손해를 보고 빚더미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철주씨는 어려울 때 도리어 도전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사업가 정신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더구나 자기 영업권내에 들어온 가시 같은 경쟁가맹점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철주씨는 경쟁가맹점주를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쟁점주가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아주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철주씨 자신도 오랜 불교신자로서 경쟁점주와 함께 이런 저런 불교신앙생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쟁점주는 떠돌이 불자들의 철새 신앙행태를 나무라면서 오랫동안 함께 기도하고 정성껏 시주하는 불교신앙공동체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그렇게 경쟁점주와 이야기가 잘 풀리고 나철주씨는 경쟁점주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경쟁가맹점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경쟁가맹점 인수금액가운데 상당금액을 먼저 지급하고 일부금액은 나중에 지불하는 안을 제안했다. 경쟁점주도 흔쾌히 승낙을 했다. 나철주씨는 경쟁가맹점을 인수하기 위해 저축은행에서 아파트 후순위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거래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았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 사업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너무 많은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곳곳에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들이 넘쳐났다. 나철주씨의 치킨가게는 점점 더 매출이 줄어서 처음 시작할 때보다 절반가까이 줄어 붙었다. 재료비 등 한 달 매출 절반가까이를 본사에 올려 보내고 나면 가맹점주인 나철주씨에게 떨어지는 몫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까지 부담스러운 가운데 매월 건물주에게 내야하는 월세는 거의 착취에 가까웠다. 처음 몇 해는 그럭저럭 장사가 잘돼서 대폭 월세를 올려주어야 했고 영업이 잘 안돼서 제때 월세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건물주의 벼락같은 월세독촉이 떨어졌다.
실제로 나철주씨의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은 큰 상권을 끼고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으나 동네 작은 골목상권으로 밀려나 있지도 않았다. 주변에 학교도 있고 지하철도 있는 제법 규모 있는 상권에 터를 잡았는데 가게 크기도 넉넉했다. 그런데 주변에 온갖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말 그대로 치킨게임이라고 할 만큼 피나는 생존경쟁에 내몰렸다. 그런 가운데 본사가 시시때때로 요구하는 온갖 할인행사에 대응하다보면 팔수록 손해가 나기도 했다. 피나는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더 좋은 재료와 더 좋은 기름을 써서 더 좋은 맛을 내야하는 상황이다 보니 할인행사는 할인을 한 만큼 손해로 돌아왔다.
나철주씨는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 사업을 시작한 후 흘러간 5년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마음에 흡족할 만큼 수익을 거둔 때가 별로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대출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갈 힘이 없었다. 더해서 거래은행 신용대출과 카드빚 등 빚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보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인수한 경쟁가맹점 인수대금 일부도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았다. 그렇게 2011년 여름 무렵에 이르러 살고 있던 아파트가 경매로 날아가고 다 변제하지 못한 저축은행 대출금 일부는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았다. 카드빚과 신용대출금도 고스란히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았다. 경쟁가맹점 인수대금 일부는 개인채무로 남겨졌다. 모두 줄잡아 1억 원 가까이가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겨졌다. 나철주씨는 5년여 만에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 사업을 접었다.
빚진 죄인 - 도덕적해이자
나철주씨는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사업을 접으면서 살던 집도 날리고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나앉았다. 어느 덧 50중반 나이에 들어선 나철주씨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특별하게 배운 기술이나 재능이 없는 터라 건축일용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 빚 독촉은 쉼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추심협박 전화와 문자폭탄이 이어졌다. 문 앞에는 법적조치를 경고하는 빚 독촉 우편물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무엇보다도 다 갚지 못한 경쟁가맹점포 인수대금을 빨리 내놓으라는 경쟁점주의 독촉전화를 받는 날에는 ‘빚진 죄인 고통과 수모’를 스스로 되새겨야만 했다. 실제로 경쟁점주는 법원에 지급명령 소송을 제기했으나 채무자인 나철주씨에게 ‘빚진 죄인 속앓이’만 더할 뿐이었다.
2014년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나철주씨는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상담을 한 후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런데 금융권 빚만 모아서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했기 때문에 개인 빚이었던 경쟁가맹점 인수금은 따로 갚아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철주씨는 건설 일용노동을 하면서 수천 만 원 금융권 빚을 갚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경쟁가맹점 인수대금을 따로 갚는 일에는 아예 손을 놓게 되었고 ‘빚진 죄인 수치심’만 더 커졌다. 그렇게 나철주씨는 개인워크아웃 변제를 2년 조금 넘게 이어가다가 중도에 포기 하고 말았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나철주씨의 자녀들은 각자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 나섰다. 작은 아들은 나철주씨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고등학교 졸업 후 일찍 군대를 다녀왔다. 제대 후에는 전문대학에서 제과기술을 배웠고 졸업하면서 곧바로 제과회사에 취업해서 빵을 만들었다. 그렇게 3년여가 흘러 작은 아들은 갑자기 가방하나 싸 짊어지고 빵 공부를 하겠다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큰아들은 나이가 들어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는데 아버지처럼 되지는 않겠다며 억척스런 맞벌이부부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신혼부부 특별 분양 아파트에 당첨되어 30대 초반에 작지만 자기 집을 장만했다. 막내인 딸도 알바 등 온갖 고생을 하며 대학을 졸업했고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다. 사실 나철주씨는 1남 2녀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한다고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각자도생, 스스로의 노력과 고생을 통해서 성장했고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 가고 있다. 부모로써 그저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빚진 죄인, 추상같은 사회‧경제 이데올로기 앞에 서다.
어느덧 나철주씨는 예순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더 이상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빚을 갚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2021년 10월 나철주씨는 법원에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하게 되었다. 법원의 개인파산절차는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파산관재인의 서류검토도 잘 끝나고 채권자집회 기일이 잡혔다. 그런데 채권자집회를 코앞에 두고 채권자인 경쟁가맹점주가 법원에 이의제기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채권자집회 날 나철주씨는 채권자인 경쟁가맹점주와 같은 법정에 나란히 앉아 감정 섞은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채무자 나철주는 독실한 불자로서 다니는 절에 많은 시주를 하면서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또한 작은 아들을 프랑스에 유학 보내고 많은 학비를 지원하면서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큰아들이 결혼할 때 많은 결혼비용을 지출했고, 최근에는 큰아들 부부가 아파트를 마련할 때 많은 돈을 지원했습니다. 그러고도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채권자인 경쟁가맹점주는 나철주씨의 치킨 프렌차이즈 가맹점사업이 속절없이 망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철주씨의 자녀들의 상황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판사 앞에서 감정 섞은 하소연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나철주씨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빚진 죄인 자격지심’으로 온몸을 떨어야만 했다. 채권자인 경쟁가맹점주의 이의제기 진술을 다 듣고 난 판사가 이렇게 말했다.
“법정에서는 감정으로 판정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사적으로 푸세요. 다만 채권자의 이의제기가 있었으니 가까운 시일에 다시 채권집회 날짜를 잡아 통보하겠습니다.”
나철주씨는 법정을 나와서 오랜만에 경쟁가맹점주였던 채권자와 함께 소주잔을 나누었다.‘빚진 죄인 - 도덕적해이자 - 사기꾼’이라는 채권자의 감정 섞은 이의제기가 속마음에서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채권자의 어려운 생활경제 상황이 묻어난 이의제기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파산관재인의 요구에 따라 채권자의 감정 섞은 이의제기에 대해 조목조목 답변서를 작성해 보냈다. 그러면서 한편 채권자인 경쟁가맹점주가 내 답변서를 보고 또다시 두 번 세 번 감정 섞은 이의제기를 해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개인파산면책 법적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빚진 죄인 나철주씨의 마음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하다.
빚진 죄인, 죗값을 다 치렀다.
인류종교⸳문명사 속에서 ‘빚진 죄인’은 아주 오랜 사회⸳경제 이데올로기이다. 빚진 죄인은 고대 문명세계로부터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에 이르기까지 옳고 바르며 마땅한 것이다. 채권자는 언제라도 어디서든 ‘빚진 죄인’의 삶을 발가벗겨서 채무노예로 내몰고 채찍질해댈 권리가 있다. 그것이 옳고 바르고 마땅한 채권자의 권리이다.
그래서일까? 개인파산면책 상담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빚꾸러기들은 한결같이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빚진 죄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의 완도 실종가족 사건처럼, 언론들도 ‘빚진 죄인들의 자살사건’보도로 화면(또는 지면)을 가득 채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완도 실종가족의 가장은 빚꾸러기로 밝혀졌고 자신뿐만 아니라 생때같은 어린 자식과 배우자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이렇듯이 ‘빚진 죄인’이라는 사회․경제 이데올로기는 고대로부터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지배체제에 이르기까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옥죄어왔다. 빚꾸러기들은 속절없이 채권자들의 채무노예가 되어 가족이 해체되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노숙자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살대열로 내몰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구 근대자본주의는 인류종교⸳문명사에서 유래가 없는 ‘가짜 사람 - 법인(法人)제도’를 만들어 냈다. 오랜 인류종교⸳문명사의 ‘빚진 죄인 사회․경제 이데올로기’를 거슬러 ‘갚을 수 없는 빚은 안 갚아도 된다’라는 자본주의 최고의 기술을 발명해 냈다. 서구 근대자본주의는 가짜 사람↔법인을 통하여 ‘자본탐욕을 무한대로 키우고 모든 손해와 책임을 사회․경제 공동체로 온전히 떠넘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므로 이제 ‘가짜 사람 - 법인’이 기업을 일으키고 운영하면서 채무를 지고 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 그냥 파산처리하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가짜사람 - 법인(또는 기업)의 파산을 당연하게 여긴다. 속절없이 망해버린 가짜사람 - 법인(또는 기업)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나 피와 살덩이를 가진 진짜사람으로서 빚꾸러기들의 삶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진짜사람인 빚꾸러기들을 향한 ‘빚진 죄인 - 도덕적 해이자’ 손가락질은 옳고 바르며 마땅하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망할 수도 있다. 망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과 배우자까지 혹독한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가족이 해체되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독한 맘먹고 생목숨을 끊는다면, 그 빚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3-4대까지 상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사람인 빚꾸러기들에게 내리는 이런 혹독한 삶의 처벌이 옳고 바르며 마땅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진짜사람인 빚꾸러기의 생활경제 활동에서나 가짜사람인 법인(또는 기업)들의 경제활동에서나 똑같은 사회⸳경제 위기가 몰아치곤 한다. 실제로 진짜사람인 빚꾸러기들이 가짜사람인 법인(또는 기업)들보다 코로나19 등 사회⸳경제 위기를 버텨내기가 더욱 힘들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등 사회⸳경제위기를 만나면 속절없이 파탄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 속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사회⸳경제위기에 따른 파산은 가짜사람이나 진짜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이거나 진짜사람인 빚꾸러기 개인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사회⸳경제위기 속에서 가짜사람 - 법인(또는 기업)파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처럼 진짜사람인 빚꾸러기들의 개인파산 역시 ‘사회공동체 책임의 문제’이다.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치여 절망과 고통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진짜사람인 빚꾸러기들에게 ‘공권력과 사법권을 동원하여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는 행태’야말로 가장 비열하고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성서는 ‘빚 - 옵페일레마 ὀφείλημα - 죄’라는 신앙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할 때 ‘빚 - 옵페일레마 – 죄’라는 낱말의 문자적 의미는 ‘책임과 의무’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독교성서는 ‘빚 - 옵페일레마 – 죄’와 관련한 ‘책임과 의무’를 채무자에게서가 아니라 채권자에게 묻는다. ‘빚 – 옵페일레마 – 죄’의 실체가 다른 이들로부터 빌려온 ‘크레마 - 쓰임과 필요’를 되돌려 주지 않고 나만을 위하여 ‘크레마타 - 독점하고 쌓아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고대 성서주변세계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으로써 민중정의는 ‘빚지지 않는 삶’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생활경제 안에서 다른 이들로부터 자기 쓰임과 필요를 ‘크라오 - 빌려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쓰임과 필요들 가운데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안타포디도미 - ἀνταποδίδομι - 되돌려 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노동을 통하여, 달란트를 통하여, 나눔과 섬김을 통하여 다른 이들로부터 빌려온 크레마 - 쓰임과 필요를 ‘안타포디도미 - 되돌려주며’ 살아간다. 특별히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가르치신 주기도문’안에서 매일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당신께서도 우리에게서, 우리의 죄(빚)들을 탕감하소서. 실제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탕감했던 것처럼.”
이렇듯이 ‘21C 금융시스템’ 속에서 종교는 무엇일까? 교회는 무엇이야 할까? 이제야말로 교회는 성서가 증언하는 ‘희년신앙 실천행동’이 필요할 때이다. 21C 금융자본경제 – 빚 세상 경제에서 ‘희년신앙의 뜻과 가치’는 더욱 더 새롭다. 우리시대에 이르러 ‘돈과 자본에 대한 우리의 독점과 쌓음의 탐욕’은 이웃들의 쓰임과 필요를 약탈하는 행위이기기 때문이다. 또한 이웃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죄악을 쌓는 행위이기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오롯이 우리시대 예수신앙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희년신앙 실천행동에 나서야만 한다. 21C 금융자본경제 체제 속에서 ‘빚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하나님나라 대안 경제 세움 ↔ 확장 ↔ 누림’에 대해 증언해야 한다. 예수께서 ‘용서하지 못하는 종의 비유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하여 요청하시는 ‘완전한 빚 탕감 ↔ 희년신앙 실천행동’에 발 벗고 나서야한다. ‘네가 가진 재물(자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예수의 요청에 응답해야만 한다. ‘부자청년처럼 될 것인지 삭개오처럼 행동할 것인지’ 신앙결단을 해야만 한다. 이제 그 결단의 하나로 ‘희년빚탕감상담소 & 희년경제연구소’ 문을 활짝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