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빚탕감 상담소/빚탕감 이야기

개인파산면책은 사회․경제 기술(技術)이다.

희년행동 2022. 7. 13. 17:44

개인파산면책은 사회경제 기술(技術)이다.

IMF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자본들은 기업금융보다 소매금융(개인과 가계금융)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금융시장에 몰려든 투기자본들이 다른 어떤 투자처보다 가계금융을 고수익의 투자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 투기자본들은 기업대출보다 훨씬 이익이 많고 안정적인 가계대출에 주력하면서 고리의 이자 따먹기 놀음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한국의 투기금융자본들은 서민들의 생활경제기반에 보다 깊숙이 뿌리 내리는 영업행태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생애주기에 따른 온갖 욕구와 삶의 불안을 자극하고 부추깁니다. 나아가 복지혜택이라는 이름의 기업연금, 보험 등 온갖 금융수요들을 창출해 냅니다. 또한 그에 따르는 개인과 가계의 욕구와 불안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금융상품들을 개발하고, 그것들을 함께 묶어서 이익을 극대화 하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정부도 투기금융자본들과 발맞춰 국가기금들을 동원하여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등 그들과 뒷배 맞추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서민가계의 금융거래관행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서민들도 은행을 토대로 한 저축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험, 주식, 펀드 등 투기적 요소가 강한 금융상품들에 투자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금융자본은 왜, 서민들의 생활경제기반에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을까? 서민들의 생활경제기반에 개입해서 가계대출을 늘리는 것이 기업대출에 비해 많은 이익이 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계대출은 기업대출보다 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에도 유리합니다. 또한 기업대출은 잘못되면 대규모부실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으나 가계대출은 그럴 염려가 매우 적습니다. 나아가 정부마저 신용카드사용 장려, 예금무이자정책, 부동산부양정책, 주식시장부양정책 등 투기금융자본들의 서민생활경제기반 침투의 토양을 만들어주고 있음에야 다른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러한 한국의 투기금융자본경제 상황에서,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신용불량자’(현재는 금융채무불이행자)라는 제도를 법제화습니다. 이로써, 정부는 한국금융기관들의 취약한 대출관리능력을 보완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활하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 해왔습니다.

이점에서, 한국금융기관들의 대출 관리 능력은 거의 빵점에 가깝습니다. 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현재의 상환능력이 얼마큼인지, 미래에 어떤 수입이 가능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영업능력입니다. 또한 대출을 통하여 안게 되는 위험부담이 어떤 것이지, 대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금융기관들의 판단이며 그들의 책임입니다. 한마디로 금융기관이 대출의 위험부담을 지는 것은 필요불가분한 것이고,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성은 일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자본경제에서는 기업을 일으키고 운영하면서 채무를 지게 되고 되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 파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개인들의 생활경제활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서민들일수록 경제위기와 사회적 역경을 버텨내기가 힘듭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날과 같은 사회경제위기를 만나면 속절없이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투기금융자본경제의 사회경제위기에 따른 파산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이거나 개인차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의 사회경제위기 속에서 기업파산이 사회적문제로 대두되는 것처럼, 개인파산 역시 사회적 책임의 문제인 것입니다.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치여 절망과 고통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개인채무자에게 공권력과 사법권을 동원하여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는 행태야말로 가장 비열하고 비도덕적인 행위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1898년 세계최초로 개인파산면책을 보장하는 파산법을 제정했습니다. 그 후, 1978년 새로운 파산법(Bankruptcy Code)’을 제정함으로써 개인의 과중채무를 사회경제적 기술로 수렴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세로부터 산업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와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국가수립 초기부터 채무자구제가 시급한 사회적 요청이었습니다. 이에 관한 입법도 여러 번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채무자의 면책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빚은 갚아야 한다는 자본주의경제의 상식을 파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남북전쟁과 몇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빚더미에 치여 자본주의경제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기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개인채무자들을 위한 파산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개인파산면책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경제의 종주국인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일본으로, 마침내 한국에서도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파산면책은 전지구촌에서 개인책임성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기술임을 인정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