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 이야기/희년경제연구소

21세기 빚꾸러기들은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입니다

희년행동 2022. 7. 13. 21:13

21세기 빚꾸러기들은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입니다

 

IMF이후 우리사회는 완전한 신자유주의 금융자본경제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실제로 IMF이후, 제일은행은 뉴 브리지 캐피탈이라는 정체불명의 투기금융자본에 넘어갔다가 5년 만에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습니다. 한미은행은 아예 간판을 내린 뒤, 투기자본인 칼라일 펀드에 인수되었다가 200411시티뱅크로 넘어갔습니다. 외환은행도 미국계 투기금융자본인 론스타에 팔렸습니다. 이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면서 찬문학적인 이익을 챙겼습니다.

한편 규모의 대형화라는 구실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되어 “KB'”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KB는 한때 국제투기자본들의 지분이 85%로 늘어나기도 했었습니다. 하나금융지주도 외국투기자본 지분이 81%로 높아졌습니다. 신한금융지주도 외국투기자본의 지분이 65%나 됩니다. 나머지 우리은행지주도 외국인 지분이 50%가까이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 은행들은 국제투기자본들에게 의결권을 넘어 간지 오래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대부분의 은행들은 우리나라 은행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외국자본을 유치해야 첨단금융기법을 도입할 수 있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든 한국금융기관들에서 금융의 선진화는커녕 국제투기금융자본들에게 막대한 국부만 유출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자유주의 시장사회의 핵심권력인 국제투기금융자본이 우리사회의 독점지배 권력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한 고용의 확대와 분배의 정의를 지키려는 은행이나 소박한 산업자본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고용과 성장을 도외시 한 채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금융자본형태로 변모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부당국도 지주회사제도,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등 정책을 통하여 금융자본경제를 열어가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재벌들의 금융시장 참여가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재벌들은 첨단금융기법을 구사하면서 그룹의 형태를 금융 자본적 성격이 강한 지주회사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내외 투기금융자본들이 한국의 은행들을 점령함으로써 은행들의 영업행태도 공공성 및 공익성은 저버린 채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기업대출은 외면하고 주택담보 위주의 가계대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고객관리도 일부 부유층에게는 귀족대접을 하지만 830만 금융소외계층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IMF이후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투기금융자본들에게 고리의 이자놀음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준 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은행들은 철저하게 투기금융자본들의 이익만을 따져 가계대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개인들의 집과 소득을 담보로 잡고 고리채 놀음을 벌여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기에 바쁩니다. 또한 기업들의 돈줄을 쥐고 그들의 생존을 담보로 삼아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투기주주자본들에게 과도한 배당금을 지급하느라 투자와 연구개발은 외면한 채 비정규직 늘리기와 하청업체 쥐어짜기에 혈안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맘몬(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우리사회의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은 심각한 생존의 위기를 격고 있습니다. 온갖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들입니다.

이점에서 한국교회는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들인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을 향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자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맘몬(자본)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는 예수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음에 대한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오래전에 맘몬(자본)세상이 되어버린 우리사회에서,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이 한국교회의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맘몬(자본)세상에서 교회의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위한 신앙태도는 무엇일까? 우리사회의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의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향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난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강도 만난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예수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부적 본성입니다. 나아가 예수의 제자도를 실천해야만 하는 교회의 마땅한 신앙태도입니다. 왜냐하면 강도만난사람의 고통과 절망이 그 시대의 죄악의 실체를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삶의 자리와 우리사회의 불의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우리시대의 강도만난사람인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을 보고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을 신자유주의 시장사회의 무한경쟁 무한독점 무한소비구조의 희생자로 인식하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들을 도덕적해이자라고 경쟁사회의 낙오자이며 실패자라고 왕따 시킵니다. 그들을 신자유주의 시장사회 걸림돌이며 암초라고 정죄합니다. 심지어 종교인들조차도 그들을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사회가 철저하게 맘몬(자본)세상의 가치기준과 편견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IMF이후 완전한 신자유주의 금융자본경제체제로 전환된 우리의 사회상황에서 그들은 신자유주의 투기금융자본들의 약탈적 대출로 인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고, 그들을 투기금융자본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출발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사람처럼 불쌍히 여기는 신앙의 눈으로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을 바라 볼 때, 한국교회는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절망을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편 선한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강도만난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고 치료합니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교회지도자들은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들인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을 보고 피하거나 외면합니다. 우리시대의 교회지도자들이 우리시대의 강도인 맘몬(자본)의 권력아래서 자신들의 이익을 쟁취하고 지키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시대의 강도만난사람인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을 돌보는 것이 맘몬(자본)세상에서 자신에게 하등의 이익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도만난사람을 보고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고 치료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정의와 윤리와 사랑의 발로입니다. 그것은 결코 돈이나 이익으로 환원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롯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다움의 구현인 것입니다.

또 한편 선한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강도만난사람을 주막으로 데려가서 보살펴 줍니다. 이점에서 한국교회는 우리시대의 강도만난사람인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의 삶의 상처와 절망을 싸매고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마당에 연대하고 참여하는 삶의 공동체관계를 맺어야합니다. 교회는 어떠한 경우든 서로의 이익을 쟁취하려고 경쟁하는 시장일 수 없습니다. 도리어 교회는 서로의 삶에 연대하고 참여함으로써, 서로의 삶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들인 400만 투기금융자본 피해자들과 삶의 관계를 맺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함께 나누어지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태도야말로 한국교회가 우리시대의 하나님의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