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성서는 참 사람됨의 올곧은 신앙으로써 ‘저항신앙 진실’만을 증언한다.
오롯이, 성서는 참 사람됨의 올곧은 신앙으로써 ‘저항신앙 진실’만을 증언한다.
20C 한반도 이 땅과 이 땅 붙박이 사람들은 동북아시아 지정학적 위기와 갈등 속에서 고난과 절망의 백년세월을 보내왔다. 이제 21C 이 땅과 이 땅에 매여 사는 사람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상황들과 시간들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해방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위한 국민주권 공동체의 존망이 지구촌 제국주의 전쟁광들의 망언망동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다.
이제, 20C 혹독한 제국주의 세월과 군사독재 속에서 그나마, 이 땅의 민초들이 피땀으로 일구어온 모든 사회․경제․공동체적 가치와 업적들이 깡그리 무너진 지금. 21C 대한민국 사회는 돌이킬 수조차 없을 만큼 깊고 큰 사회․경제․공동체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가와 민족 차원에서도 그렇고, 사회․공동체 차원에서도 그렇다. 나아가 개별 집단들 차원에서도 그럴 뿐만 아니라,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 사람의 개인차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21C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의 자리는 돌이킬 수조차 없을 만큼, 위기와 절망의 그늘이 깊고 크다.
물론, 이 땅의 1% 독점재벌․대기업․특권․기득권세력들은 살판이 났을 수도 있다. 그들은 지난 20C 내내 누려보지 못했던 맘몬․자본 사적국가 시장독점 무한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또한 지구촌 제국주의와 독점재벌․대기업 사적국가에 충성하는 ‘소수의 마름 관료들과 마름 엘리트 정치․종교․언론인들도 ’불의하고 사악한 시대의 운 때를 즐거워 할 것‘이다. 오직 소수의 특권․기득권 부류들만의 희희낙락 사익추구와 사적권력이 난무한다. 어쩌다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의 자리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을까?
실제로, 21C 들어 우리는 여러 차례 절차적 민주주의 선거를 치르고도 여전히 지구촌 제국주의와 맘몬․자본 지배체제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국민주권을 깡그리 무시당하고 있다. 독점재벌․대기업․특권․기득권세력들의 사적국가 권력과 시장 독점권력 횡포로 인해 모든 서민들이 죽을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국정운영 권력을 사적권력으로만 인식하는 여의도 정치모리배들과 공권력을 시장에 내다바치려는 환관관료 무리들의 맘몬․자본 지배체제에 대한 충성경쟁이 21C 이 땅에 판치고 있다. 이 무리들은 한결같이 사익을 위해 뭉치고,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무소불위로 행동한다. 이 무리들의 반생명, 반평화, 반인권 패륜 행태로 인한 지금의 우리사회 상황에 대해서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무엇보다도 21C 지금 이 땅에는 지구촌 제국주의와 맘몬․자본 지배체제를 거스르고 국민주권을 받들어 위기와 절망의 사회․경제 상황을 씻어낼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 이러한 사실이 21C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종교․문화․교육․언론․정치 등 모든 부분의 엘린트 주도세력들의 삶의 행태로 보아, 그들에게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경계조차 없다. 이제야말로, 이 땅의 붙박이 민중들의 국민주권행사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이 땅의 붙박이 주민인 우리 스스로 국민주권을 결단하고 행동하며 전파해야한다. 우리 스스로의 생각과 경험, 이성과 감성, 더하여 신앙과 역사를 통한 깨달음 조언 등, 우리의 모든 삶의 요소를 총동원하여 국민주권을 실천행동 해야 할 때이다.
이와 관련하여 요즈음에 나는 ‘시대의 언어로 성서를 읽고자’ 노력한다. 내 나름의 신앙과 역사로 성서 본문을 읽고 시대의 언어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할 때, 역사실증주의로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성서의 역사는 ‘한 처음’부터이다. 성서 속에서, 인류가 수렵과 채취를 시대를 지나 농경시대로 접어든 이후까지 모든 인류사를 다 읽어내고 상상할 수 있다. 역사 실증주의와 역사과학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듯이, 성서역사의 빛을 따라 성서를 읽다보면, 한 무리의 제국주의 약탈권력과 제국주의 종교들이 서로 뒤엉킨 지배체제 내부자집단을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의 생명은총, 자연과 생의 속절없음과 절절함 등을 신화화, 종교화, 자본화, 권력화 한다. 성서는 ‘그들 무리들이 민중의 삶을 약탈하고 채무노예화 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증언한다. 대표적으로는 이집트 노예제국 파라오 지배체제 건설의 과정들인데,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증언되어 있다.
물론 성서는 대부분 그 시대의 권력계층 내부자들의 손으로 기록되었다. 그들은 성서의 진실을 바꾸고 왜곡하며 제멋대로 재해석 하곤 하였다. 그렇더라도 성서가 문서 이전 시대마다의 민중들의 삶과 신앙역사라는 진실은 너무도 또렷하다. 성서는 수 천 년에 거쳐 수많은 시대와 사람들의 삶과 신앙과 역사를 담았다. 성서는 수많은 시대의 기록자들의 손을 거쳐서 지금까지 이르러 왔다. 그러는 가운데 성서는 시대의 제국주의와 맘몬․자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렇듯이 히브리 성서 출애굽기는 이집트 노예제국 파라오 지배체제를 뒤집어엎는 야훼신앙 전개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 노예들이 어떻게, 노예제국 파라오의 지배체제에 저항하고 탈출하며 투쟁했는지? 성서는 히브리 노예들의 야훼신앙을 통하여 인류역사 속에서의 저항신앙, 해방신앙, 정의와 평등신앙, 생명평화신앙 등 ‘참 사람됨의 신앙영성’을 여실히 증언한다.
그러므로 애당초, 민중의 삶을 약탈하고 굶주림을 만들며 가난하게 하는 것이 시대의 제국주의와 지배체제 종교권력의 생태적 기능과 작용이라면, 그래서 모든 민중들을 채무노예화 하고 통제하며 지배하는 것이 권력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인류사 안에서 종교와 교육과 문화와 언론과 법 등 모두가 시대의 지배체제의 내부자라면, 참 사람됨의 올곧은 신앙은 오직 ‘저항신앙’뿐이다. 나는 ‘성서가 여실히 참 사람됨의 올곧은 신앙으로써 저항신앙 진실을 증언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항, 또는 저항신앙이 사람됨의 전부이다. 저항이 생명의 한 처음이다. 저항이 생명의 자궁이고 탯줄이며 탄생이다. 성서가 이를 여실히 증언한다. 한 처음에, ‘생명 없음’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생명 없음’을 무찌르심으로써 저항의 바람, 영의 바람, 생명바람이 되셨다. 찬란한 태초의 역사, 천지창조의 역사를 이루셨다.
그러나 이제 21C에 이르러,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종교와 국가권력은 공공연하게 지구촌 제국주의와 맘몬․자본 지배체제의 내부자임을 천명한다. 지구촌 제국주의와 독점재벌․대기업과 관료들과 종교․사회특권․기득권세력들이 한 통속으로 시대의 지배체제가 되었다. 국가, 종교, 정치, 교육, 언론, 문화 등 온 사회가 맘몬․자본 지배체제 돈 저울대에 올라 스스로 몸값을 매긴다. 국가, 공권력이 자본에게 팔린다. 정치도 자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값을 쳐달라고 조른다. 종교와 언론도 맘몬․자본을 무소불위 하나님으로 떠받들며 자기 몫을 주장한다.
이제 다시, 야훼 하나님의 해방신앙, 정의평등신앙, 생명평화신앙, 저항신앙을 간구할 때이다. 저항이 모든 살아있음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살아있기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사람은 마땅히 저항신앙으로 일상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돈벌이도 저항신앙으로 해야 한다. 교육, 문화, 종교생활도 저항신앙이 핵심이다. 선거도 정치도 저항신앙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저항신앙 선택과 찬성은 뒤로 미루어 둘 수 있다. 그러나 반인권, 반생명, 반평화 등 우리시대 지구촌 제국주의와 맘몬․자본 지배체제의 사회공동체 죄악들에 대한 저항신앙 실천행동은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다. 우리의 사람됨의 저항신앙이 뒤로 밀리는 때부터 우리의 생은 낡아지고, 좀 먹고, 닳아 없어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