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하나님나라 3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 그 것은 바로 민중의 나라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3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 그 것은 바로 민중의 나라다.
마가복음 1:14-15
읽기
요한이 체포된 후에
예수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갈릴리로 갔다.
예수가 말하기를..
이미 때가 채워졌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소!
여러분! 회개하시오.
여러분! 복음을 신앙하시오.
낱말 풀이
* 파라도테나이 παραδοθῆναι 요한이 체포된 후에(부정사 과거수동태)
- 파라디도미 παραδίδωμι 넘겨주다
* 케류스손 κηρύσσων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며(현재분사)
- 케류스소 κηρύσσω 선포하다
* 페펠레오타이 호 카이로스 Πεπλήωται ὁ καιρός 이미 때가 채워졌다(현재완료 수동태)
- 플레로오 πληρόω 가득(충만)하게하다 -
- 카이로스 καιρός 때, 일반적인 시간이 아닌 ‘정해진 때, 알맞은 때’
* 헤 바실레이아 투 테우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하나님의 나라
- 유대관습에서는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노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 하늘의 나라’
* 엥기켄 ἤγγικεν 하나님나라가 이미 가까이 왔다(현재완료)
- 엥기조 ἐγγίζω 가까이 왔다
* 메타노에이테 μετανοεῖτε 여러분, 회개하시오
- 메타노에오 μετανοέω 회개하다, 메타 μετά 뒤 + 노에오 νοέω 성찰하다, 돌아보다
- 메타노이아 μεταάνοια 회개(명사)
* 피스튜에테 πιστεύετε 여러분, (복음을) 신앙(信仰)하시오(명령형)
- 피스튜오 πιστεύω 신앙하다 또는 믿다 >의 .
- ‘내가 신앙 한다 πιστεύω’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또는 어떤 대상에게) 내가 설복당하는 것
- 페이토 πείθω 설복시키다
- 피스토오 πιστόω 신앙하게 하다 또는 믿게하다
- 피스토스 πίστος 신실한(형용사)
- 피스티스 πίστις 신앙 또는 신뢰(명사)
- 信仰(신앙) - 신뢰하고 우러름
본문풀이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 그 것은 바로 민중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테우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는 문자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통치’(바실레이 βασιλεία 왕권)이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창조세계의 임금님이시다.(시47:2,93:1) 하나님은 임금으로서 우주와 인류역사를 주관하신다. 특별히 히브리들의 역사를 다스려 오셨다. 물론 이것은 시대에 따라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하나님은 그 옛날 이집트제국 파라오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셨다. 나아가 그 히브리들을 통하여 이 땅위에서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평등사회를 건설하려고 하셨다. 따라서 때가 차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드러내 놓고 공공연하게 당신의 생명평화세상을 여실 것이다. 그리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온 누리에 미치는 것으로써 온 누리에 들어나게 될 것이다.(시103:19-22) 이것은 고대로부터 파라오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의 열망이었고 특별히 예수시대 유대민중들이 학수고대해 왔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는 본문에서 ‘이미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공공연하신 다스림이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힐 듯이 사람들의 삶의 마당에 침투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영의 사람으로서 예수의 자의식속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있었다. 예수는 자신의 선포와 실천행동을 통해 은연중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머잖아 그 궁극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하게 실현 될 것을 기대했다.(마12:28,눅11:20)
그런데 여기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종교․사회공동체의 기득권집단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먼저,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유대종교․사회공동체의 기득권집단들이 바라던 소제국주의적이고 정치적인 다윗왕조의 회복이 아니다. 사실, 유대종교․사회공동체의 기득권집단들은 다윗왕조혈통의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그들은 과거왕조시대로부터 자신들의 종교․사회기득권을 보장해 주었던 다윗왕조가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며, 새롭고 완전한 제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사9:2-7,11:1-10)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종교․사회공동체 기득권집단들의 소제국주의가 결코 아니다. 도리어 시대의 민중의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연대와 참여이다. 따라서 그것은 시대의 민중의 삶의 마당에서 실천적으로 경험하며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것은 결코 다윗왕조의 소제국주의 통치이데올로기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직접통치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저버리고 왕조를 건설하고 소제국주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셨다.(삿8:23,삼하8장) 하물며 예수의 하나님나라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의 시작’이라면 이를 다윗왕조 소제국주의 통치이데올로기와 연관 짓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이점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결코 영토와 경계가 아니다. 통치기구로써의 국가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어서 가는 저세상나라(천당)가 결코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대인 예수신앙공동체들은 자신들의 관습에 따라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의 나라’(헤 바실레이 톤 우라논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라고 불렀다.(마태복음) 그렇더라도 유대인 예수신앙공동체들의 ‘하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심이 지나쳐 에둘러 ‘하늘의 나라라’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두 번째,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세례요한의 경우에서처럼, 특별히 유대 묵시론자들이 기대한 바대로 ‘의인들에 대한 보상이거나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또한 묵시론자들의 신비체험 속에서처럼 우주적 쇼로 나타나는 ‘지구의 종말’도 아니다. 나아가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종교․사회공동체의 기득권집단들의 요구처럼 ‘배타적이고 독점적이며 우주적인 권리와 보상과 기득권’도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삶과 예수의 신앙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의 선포와 예수의 말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 아빠의 사랑과 은총’이다. 그것은 곧 가난하고 굶주리며 목마른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는 세상,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위해 박해받는 사람들의 새 세상으로써 ‘민중의 나라’이다.(마5:3-12) 그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포로에게 해방이 선포되고, 눈먼 사람이 다시 보게 되고,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되는 ‘하나님의 희년세상’이다.(눅4:18)
이렇듯이 하나님은 시대의 죄인들을 심판하고 멸망시키시기보다 그들의 구원을 바라신다. 특별히 하나님은 버림받은 이들과 억압당하는 이들의 해방과 구원을 열망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의 사람으로서 갈릴리 민중의 아들인 나사렛사람 예수야말로 민중의 친구일 수박에 없다. 하나님의 영의 사람이 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의가 도래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 민중들에게로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시대와 때에 따라 아주 작고 은밀하게 ‘두 세 사람만으로도 족한 나라’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때를 쫓아, 화산맥 같이 분출하는 민중의 열망과 의지와 봉기를 통하여, 전 지구촌사회의 민족과 문화와 역사를 넘어, 수천수만 수억의 ‘민중네트워크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 나의 삶의 마당에서 시작되는 나라이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선포되는 나라이다. 나아가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보상을 바랄 바 전혀 없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나라로써,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의 나라이다. 보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져올 수도, 상속할 수도, 매매할 수도, 억지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저 겸손히 영접할 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러기에 누구도 차별을 요청할 수 없는 만인의 나라, 민중의 나라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21세기 한국 민중 바랄 바 유일한 희망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시대와 역사와 문화를 넘어 21세기 한국 민중의 희망의 나라이며, 또한 예수의 하나님 아빠는 전지구촌 민중들의 희망의 빛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고대 구약성서시대와 신약성서시대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있는 신앙진실이었는데, 서구교회 제국주의신학이 이 신앙진실을 심각하게 왜곡시켜 왔다. 구약성서는 창조신앙을 통해서 죽음의 세계를 몰아내고 생명의 세계를 여시는 야훼 하나님을 인류에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히브리들의 평등공동체신앙을 통하여 약탈과 전쟁과 착취의 제국주의 노예들을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증언한다. 나아가 시대마다 고통 받는 민중들이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생명평화세상 도래를 염원하는 요구와 희망들을 소개한다.(하나님이 희망 사8:7/야경꾼이 아침을 고대하듯이 하나님을 고대함 시119:81 등등)
하지만 오롯이 시대의 민중의 유일무이한 희망일지라도 탐욕이 끼이면 희망은 언제든 우상이 된다. 그것은 이천여년 기독교회사 속에서 로마제국종교로 전락한, 식민제국주의종교로 타락한 서구기독교회의 정복신앙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굳이 심판이 있다면 제국의의 종교로, 억압과 착취의 종교로 타락한 정복신앙범죄와 그 종말일 터인데, 그러한 제국주의정복신앙은 머잖아 스스로 망해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욥22:16) 나아가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그 행사가 허망하다’(시1:3-4)는 시인의 노래처럼, 제국주의정복신앙은 인류사에서 그 과정뿐만 아니라 그 찬란한 업적자체가 심판이다. 결국 그것은 오만과 허영으로 스스로를 좀먹어 꺼풀만 남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꺼풀마저 이 시대의 하나님의 나라, 21세기 지구촌 민중의 나라 도래와 함께 불타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