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맥(脈)

희년신앙 행동서사 12.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 내 인생은 나의 것

희년행동 2022. 11. 20. 15:33

희년신앙 행동서사

 

12. ‘희년신앙 행동계약아나키즘 - 내 인생은 나의 것

사사기 9:1-20

 

 

본문읽기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으로 자기 어머니의 형제들에게 갔다. 아비멜렉이 외삼촌들과 그의 외할아버지 집안 온 일가친척들을 향하여 이렇게 선동했다.

 

당신들은 세겜의 모든 주민들의 귀에 대고 말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무엇이 좋겠습니까?

여룹바알의 모든 아들들 곧 칠십 명이 여러분을 지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한사람이 여러분을 지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여러분의 뼈와 살을 나눈 혈육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비멜렉의 외삼촌들이 그를 위하여 세겜의 모든 주민들의 귀에 대고 모든 것들을 이야기 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을 향하여 기울었다. 왜냐하면 외삼촌들이 아비멜렉은 우리의 형제다라고 선동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비멜렉에게 바알브리트 신전으로부터 은덩이 칠십 개를 꺼내 주었다. 아비멜렉이 그 돈으로 건달들과 불량배들을 모았다. 그들이 아비멜렉의 뒤를 쫓아갔다.

아비멜렉은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집에 쳐들어갔다. 그는 그의 형제들인 여룹바알의 아들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탐은 살아남았다. 왜냐하면 그가 가만히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겜의 모든 주민들과 밀로의 온 가문이 함께 모였다. 그들이 가서 세겜에 있는 돌기둥 곁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다.

그 소식들이 요탐에게 알려졌다. 요탐이 가서 그리심산 꼭대기에 섰다. 그는 목청껏 소리쳐서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에게 들어라, 세겜 주민들아.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서 들으실 것이다.

 

참으로 나무들이 찾아 갔다

그들 위에 왕을 기름 부어서 세우려고.

그들이 올리브나무에게 말했다,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올리브나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기름을 포기하란 말인가?

나로 인해 신들과 사람들이 영화롭게 된다네.

그러니 내가 가야겠는가, 나무들 위에서 흔들리려고.

 

나무들이 무화과나무에게 말했다.

당신이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달콤한 맛을 포기하란 말인가?

내가 좋은 열매 맺는 것을 포기 하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가겠는가, 나무들 위에서 흔들리려고.

 

나무들이 포도나무에게 말했다.

당신이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포도주를 포기하란 말인가?

내가 신들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포기하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가겠는가, 나무들 위에서 흔들리려고.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 말했다.

당신이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가시나무가 그 나무들에게 대답했다.

만일 참으로 너희가 나에게 기름을 부으려 한다면, 너희 위에 왕으로.

너희는 와서 나의 그늘 안에 숨어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불이 가시로부터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삼킬 것이다.

 

이제 그렇다면, 너희가 진실하고 떳떳하게 행동했더냐?

그래서 너희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느냐?

너희가 여룹바알과 그의 집에게 행한 짓이 선하냐?

그의 손의 업적만큼 너희가 그에게 보답했느냐?

참으로 내 아버지가 너희를 위해 싸웠다. 맨 앞에서 자기목숨을 내던져, 미디안의 손으로부터 너희를 건져냈다. 그러나 오늘 너희는 내 아버지 집에 맞서 일어나 그의 아들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리고 너희는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을 단지 너희의 형제라는 것 때문에 세겜 주민들 위에 왕으로 세웠다.

그렇다면 이 날, 너희가 여룹바알과 그의 집에게 행한 짓이 진실하고 떳떳하더냐?

너희는 아비멜렉으로 인해 기뻐하라.

그도 또한 너희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으로부터 불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 불이 세겜 주민들과 밀로의 집을 삼킬 것이다.

또한 세겜 주민들과 밀로의 집으로부터 불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 불이 아비멜렉을 삼킬 것이다.”

 

 

본문 이해하기

 

사사기, 히브리 지파동맹의 역사

 

히브리 성서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히브리 선조들의 이야기는 역사실증주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21세기 성서독자들은 창세기12장에서 36장까지 히브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역사실증주의로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흥미롭다.

그렇다면 야곱 또는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뿌리일까? 실제로,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히브리 해방노예 공동체가 히브리 지파동맹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히브리 성서는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사사기라는 책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와 관련하여 맨 처음 히브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문서화한 주체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다윗왕조 솔로몬왕국에서 맨 처음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히브리 선조들의 역사를 모으고 문서화했을 것이다. 그런 이후 시대상황에 따라 한 땀 한 땀 이스라엘 민족사로 재구성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다윗왕조는 소제국주의 국가형태를 갖추면서 옛 히브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발굴하여 재구성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왕조의 뿌리가 히브리 옛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왔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왕국은 히브리 선조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야기로부터 다윗왕조 혈통과 뿌리를 찾으려고 했다. 오롯이 다윗왕조야말로 히브리 지파동맹의 전통을 이은 계승자라고 증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바벨론포로시대의 유대왕국후손들은 다윗왕조신화 회생을 꿈꾸었다. 그러는 가운데 이스라엘 열두지파 민족이상향으로써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전통 계승이 더욱 절절해졌다. 이를 위해 히브리 성서 마지막 편집자들로 알려진 제사장(P)문서 편집자들은 옛 히브리조상들의 역사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세밀한 편집 작업을 펼쳤다. 따라서 성서학자들은 옛 히브리 선조들의 역사이야기 편집과정이 페르시아제국을 지나 예루살렘귀환시대 이후로까지 이어졌다고 이해한다.

이렇듯이 히브리 성서 속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서사는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 그리고 가나안 땅 노느매기 동맹을 거쳐 사사시대로 이어졌다. 나아가 사무엘상하 시대 곧 사울왕정과 다윗왕정에까지 끈끈하게 이어져 왔다. 그 이후로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오래도록 북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서사가 이어져 왔다.

이점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지파들은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잇는 사회경제종교정치 밑바탕 공동체이다. 또 한편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역사는 다윗왕조신화에 따른 남유다왕국 정체성과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정체성을 가르는 핵심주제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 지파들은 공동체 생계가족이거나 씨족으로써 혈연관계가 밑바탕이었다. 그렇더라도 히브리 지파동맹의 결속이 꼭 혈통 또는 혈족만은 아니었다. 희년신앙 행동계약에 따른 사회종교정치경제 정체성 공유 그리고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에 따른 실천행동이 중요했다. 히브리 지파동맹 안에서 사회종교정치경제 등 함께 살아가는 삶의 조건들이 서로 맞아 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 때 히브리와 함께 휩쓸려 나온 수많은 연합종족들과도 연계되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 지파동맹은 히브리 옛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온 순수 혈통 또는 혈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서로 다른 풀뿌리 사람들과 또 다른 히브리 공동체 생계가족들이 섞여 있었다. 출애굽기12장 본문은 이때 수많은 연합종족도 그들과 함께 올라갔다라고 증언한다.

 

이스라엘 열두지파 유대민족 이상향

 

유대인들은 히브리 지파동맹을 유대인들의 옛 조상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이라는 민족 이상향(理想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민족이상향은 일부 예언자들의 예언 속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심지어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예수의 열두제자라는 숫자로도 이어졌다. 복음서 등 신약성서에서도 예수와 바울 그리고 바나바 등 많은 사람들이 으레 자기 출신지파를 밝힌다.

이렇듯이 이스라엘 열두지파 민족이상향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왕국만 남았을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남북왕조가 모두 멸망하고 히브리 지파동맹이 완전히 해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유대인들의 신앙과 삶의 자리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히브리 성서 안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실체는 성서주변세계 제국주의와 노예세상을 거부하는 대항행동 또는 대안세상 연대였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 주변 소왕국들의 노예세상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훗날 다윗왕조신학 체제가 뿌리를 내리는 상황에서도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다윗왕조의 온갖 억압과 박해 속에서도 히브리 지파동맹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러한 히브리 지파동맹의 역사는 히브리 성서 사사기에서 그 실체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다. 히브리 성서 사사기는 히브리 지파동맹 지도자들을 히브리 재판관이라고 불렀다. 우리말 성서는 사사(士師)라는 어려운 한자말로 번역했다. 사사는 평소에 히브리 지파동맹 안에서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외부세력으로부터 약탈과 침략을 받았을 때에는 함께 힘을 모아 단결하도록 지파동맹을 이끌었다. 나아가 히브리 지파동맹 민병대를 조직하고 싸움을 지휘했다. 평온할 때에는 히브리 지파들마다 자치권을 행사했다. 심지어 사울 왕까지도 히브리 지파동맹 사사의 역할을 넘어서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히브리 지파마다 가나안 노느매기 땅들을 직접 관리경작하면서 생활경제 분야에서 다른 지파들에게 종속되지 않았다. 가나안 노느매기 땅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독립과 결속을 지속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야훼 하나님과 함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맺은 주체로써 계약조건들에 따르는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히브리 지파동맹은 다윗왕조 솔로몬 왕국시대에 이르러 유명무실해졌다. 다윗왕조는 용병중심의 상비군으로 전투부대를 재편함으로써 히브리 지파동맹 민병대를 소외시켰다. 정치와 행정체제도 중앙집권화 되었고 관료화 되었다. 그러면서 히브리 지파동맹 자치정치가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다윗왕조 소제국주의 지배체제 아래서 히브리 지파동맹 자치권은 완전히 묵살되었었다. 다윗왕조는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사회종교정치경제 중앙집권화를 튼튼하게 완결했다. 그러면서도 히브리 지파들마다 촘촘하게 관료체제를 세웠다. 그럼으로써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회종교정치경제 기능을 완전히 해체했다.

 

희년신앙 행동계약아나키즘을 꿈꾸다.

 

아나키즘(Anarchism)이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아나키즘의 의미는 고대 헬라어 아나르코스 ναρχος에서 유래한다. 이 헬라어 낱말은 없음 또는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조건불변사 안 ν 없음 + 아르콘 ρχων 지배자(또는 άρχός)’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독점 권력자 또는 지배자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상 또는 운동이다. 이점에서 21세기 이르러 아나키즘이 저항해야 할 실체는 전체주의 또는 국가주의와 권위주의 나아가 선()민족주의이지 않을까?

실제로 아나키즘은 문자의미 그대로 독점 권력을 거부하고 그 어떤 지배체제도 부정한다. 절차 민주주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위임통치기구인 정부와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절차 민주주의는 그저 전체주의와 전제주의 또는 국가주의 독점권력 지배체제를 극복했을 뿐이다. 아나키즘은 절차 민주주의를 넘어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온전한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꿈꾼다.

무엇보다도 21세기 맘몬자본세상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 임금채무 노예의 삶을 사는 풀뿌리 사람들의 절차 민주주의는 온전한 해방과 자유가 아니다. 신실한 정의와 평등도 아니다. 더욱이 생명평화세상은 아직 멀다. 그러므로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세상은 아직 미완성이다.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에 잇대어 처음처럼 그대로 21세기 예수신앙인들의 삶의 마당에 놓여 있다.

이제 독자들은 필자가 이야기 하는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은 절차민주주의를 넘어서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치유하는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삶의 정치 곧 생활정치를 지지한다. 특별히 한반도의 지정학위치와 혹독했던 군사독재경험 속에서 국가와 정부를 하늘질서로 등치하는 정치관념은 깨끗이 지워져야할 폐해다. 나아가 21세기 지구촌제국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월가금융 지배체제에 종속된 지구촌 풀뿌리 사람들의 신식민지(新植民地) 국제질서 또는 국제규범 인식도 깨끗이 지워져야 할 폐해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은 자신에게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는 근대국가명제는 도리어 21세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근대 유럽사회보다 민주주의가 훨씬 더 높은 수준에 다다른 21세기 지구촌 정치상황에서 그 뜻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19876월 대한민국 풀뿌리 시민들은 민주항쟁을 통해서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절차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 절차 민주주의는 참으로 허약했다. 독점재벌맘몬권력 지배체제의 기득권세력과 마름관료 적폐를 전혀 청산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선거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부들마다 내놓는 국가정책들은 독점재벌맘몬권력체제 기득권세력들의 사익을 보장할 뿐이었다. 정부들마다 국가공권력을 사적권력으로 뒤집기 하는 독점재벌맘몬권력 지배체제의 내부자세력으로 내달렸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절차 민주주의의 밑바탕인 국회도 자기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국회는 독점재벌맘몬권력 지배체제의 여의도 출장소일 뿐이다. 여의도 국회의원들은 아예 독점재벌맘몬권력체제의 내부자들로 자리매김했다. 사적국가 친위세력으로써 독점재벌맘몬권력 지배체제 사익에 이바지하는 푸들강아지 역할에 만족할 뿐이었다.

따라서 독점재벌맘몬권력 지배체제에게 강탈당한 사이비 공권력은 대한민국 주권자인 풀뿌리 시민들을 주권자로 대우하지 않았다. 주권자이기는커녕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대우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개돼지 취급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회는 전혀 풀뿌리 시민주권의 발판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21세기 지구촌 의회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가 풀뿌리 시민주권을 배신하는 정치현상은 절차 민주주의를 떠받들어온 지구촌 국가들에서 똑같이 겪어온 문제다. 왜냐하면 지구촌 나라들마다 의회 민주주의 정치는 언제 어디서든 돈과 권력과 정치를 하나로 묶어내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의 내부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독점재벌맘몬권력 지배체제에서는 야 정치와 정책이데올로기가 서로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듯이 보여 지기위해 서로서로 역할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속내는 똑같다. 21세기 지구촌 금융노예세상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는 풀뿌리 시민주권 생활정치가 두고두고 끝까지 투쟁해야 할 만큼 무지막지하다.

 

21세기 지구촌 제국주의

 

오래도록 지구촌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풀뿌리 시민주권(國民主權)이었다. 그 땅의 풀뿌리 시민이 곧 국가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구세주 메시아를 열망하지 않는다. 풀뿌리 시민주권자가 스스로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결정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다. 그래서 21세기 민주주의의 요체(要諦)데모 Demo + 크라시 Cracy 시민정치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풀뿌리 생활정치를 통하든 또는 의회정치를 통하든 반드시 데모스 δμος + 크라토스 κράτος = 시민권력을 실현해야 한다.

이제 마침내 2024년 지구촌제국 미국에서 21세기 지구촌 메시아를 대망하는 대선 판의 승자가 결정되었다. 그 승리의 주인공은 21세기 친절한 파시즘으로써 트럼피즘(Trumpism)2.0이다. 그러나 21세기 지구촌 민주주의 선거정치에서 시대의 메시아를 대망하는 것은 오랜 노예근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제국 미국의 대선 판에서는 오롯이 기독교 정치메시아를 대망한다. 지금도 여전히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와 월가금융경제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Ideologues)지배체제가 미국사회를 좌지우지 한다. 뒤에 숨거나 앞에 나서거나 지구촌제국 미국의 대선 판에는 언제나 제국주주의 친절한 파시즘이 날뛴다.

이제 필자는 21세기 지구촌제국 미국에서는 참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한 예로, 미국연방 상하원의원수가 535명인데 이들을 상대하는 로비스트만 5만여 명이 넘는다. 21세기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제멋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나라는 지구촌 유사제국(類似帝國)들 가운데 오롯이 미국뿐이다. 지구촌제국 미국이 제멋대로 전쟁국가라는 뚜렷한 근거는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간추려서 단순하게 하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지구촌제국 미국의 지배체제 내부자들은 지구촌 어떤 전쟁에서도 직접 피를 흘리지 않는다.

두 번째, 지구촌제국 미국의 지배체제는 어떤 경우라도 미국영토 안에서 전쟁을 억제 할 수다고 자신한다.

세 번째, 지구촌제국 미국의 지배체제는 지구촌 모든 전쟁에서 예외 없이 천문학적 사익을 챙긴다.

네 번째, 지구촌제국 미국의 지재체제는 달러기축통화 지위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전쟁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지구촌제국 미국의 풀뿌리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전쟁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의 민주주의 시민주권정치 행동의지와 힘을 잃었다.

 

아마도 멀거나 혹은 또는 가까운 미래의 상활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지구촌제국 미국도 쇠락의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인류문명사 속에서 거대한 제국들의 탄생과 소멸이 다 그랬다. 모든 제국들이 사회변혁을 통한 지배체제 개혁이 아니라 지배체제 쇠락의 길을 걸어갔다. 21세기 지구촌제국 미국의 미래도 마찬가지일거다.

 

지구촌 전쟁과 죽임과 폭력을 통하여 제국의 권력을 누려온 미국의 군산복합체.

지구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여 부와 권력을 쌓아온 미국 월가의 카지노금융자본.

유라시아 심장지대니 또는 동아시아 갈등구조니 입 방아질이나 하면서 지구촌 전쟁 체스놀이나 일삼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그들.”

 

21세기 지구촌제국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월가금융자본과 제국주의이데올로그 지배체제는 끝판 쇠락의 길을 밟고 있다. 지구촌제국 미국은 지구촌 곳곳에서 매일 매일 대리전쟁을 도발한다. 또한 미국 국내에서는 중무장 경찰국가를 완성해가고 있다. 기업국가맘몬숭배바벨탑을 하늘 끝까지 쌓아 올렸다. 지구촌제국 미국의 크고 작은 선거들은 절차민주주의 통과의례로써 우민화(愚民化)축제로 전락했다.

지구촌제국 미국에서 풀뿌리 시민주권 실현가능성을 찾는 것은 무망(無望)한 일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로마제국 등 인류역사 속에서 유명했던 제국들이 다 그렇게 쇠락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내일의 지구촌제국을 꿈꾸는 중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본문풀이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 내 인생은 나의 것

 

사사 기드온

 

히브리 지파동맹의 역사는 기원전 13세기 중반부터 시작된다. 이 무렵 가나안 땅에서는 제국주의 세력들이 힘을 쓰지 못했다. 일찍이 아나톨리아와 레반트에서 위력을 떨쳤던 히타이트(Hittites)제국이 몰락했다. 뒤이어 제국주의 세력을 키우던 아시리아제국도 파라오 노예제국도 가나안땅에서 지배력을 잃었다.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가나안땅에서 터잡아온 파라오 노예제국 봉건왕국체제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은 유대 산악지대와 갈릴리와 중앙고원지대 그리고 요르단 동쪽과 서쪽지역에 흩어져서 독립적으로 살았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노예제국들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가나안 노느매기 땅에서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써내려갔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함으로써 자율동맹 체제를 굳건하게 유지했다. 무엇보다도 히브리 지파동맹이 느슨한 자율정치 속에서도 연대와 결속을 다질 수 있었던 힘은 희년신앙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사들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가나안 노느매기 땅에서 최초의 사사 오트니엘에 이어 에훗,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등 카리스마 넘치는 사사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히브리 지파동맹 사사들은 주변왕국들과 도적떼들의 안보위협 속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결속력 연대를 굳건하게 이끌었다.

그 사사들 가운데 기드온은 히브리 지파동맹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사였다. 기드온은 히브리 지파동맹 민병부대 3백여 명으로 메뚜기처럼 많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약탈부대를 무찔렀다. 실제로 미디안과 아멜렉 사람들은 사막부족으로써 온갖 약탈전쟁에 익숙한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히브리 지파동맹 민병대는 전쟁보다는 농사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사사 기드온은 히브리 지파동맹 결사대를 이끌고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약탈부대와 벌인 대항전쟁에서 믿기 어려운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따라서 사사 기드온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서는 필자가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아멜렉은 어떤 무리였을까?

 

아멜렉은 유다남부 네게브지역과 그 너머 광야에 거주하는 여러 유목부족들을 싸잡아 일컫는 용어다. 이들의 주요한 생존방식은 약탈이었다. 아멜렉은 평소 여러 부족으로 흩어져 살지만 주변의 떠돌이 부족들을 습격하고 약탈할 때는 나름대로 연합체를 이루곤 했다. 그러다가 때로는 여러 부족이 한꺼번에 연합해서 주변의 제법 큰 종족을 대상으로 약탈전쟁을 벌였다.

따라서 가까스로 야훼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세상을 이루어가는 히브리들에게 떼강도 아말렉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이었다. 아멜렉은 히브리 지파동맹이 이루어가려는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가장 큰 훼방꾼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히브리 지파동맹은 아멜렉의 약탈전쟁에 맞서서 오합지졸에 다름 아니었다. 쓸 만한 전쟁무기도 없이 그저 맨손이나 다름없었고 전투경험도 없는 농투성이들이었다. 하지만 아멜렉은 날이면 날마다 약탈전쟁을 손에 익힌 떼강도들 이었다. 그야말로 히브리 지파동맹은 야훼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속수무책 아말렉에게 약탈당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히브리 성서는 곳곳에 떼강도들의 약탈전쟁에 맞서는 히브리 지파동맹의 대항전쟁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어떤 때는 떼강도의 약탈전쟁에서 작은 승리를 얻기도 하지만, 대체로 히브리 지파동맹이 참패를 당하기 일쑤였다.(신명기25). 그러나 사사기6장에서 기드온은 아멜렉과 미디안 연합약탈부대에 맞서서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서 사무엘상 15장에 따르면 사울왕도 아멜렉의 약탈전쟁에 맞서 대항전쟁을 벌였다. 또 사무엘상 30장에서 아멜렉은 시글락에 있던 다윗의 용병부대캠프를 습격하기도 했다. 물론, 다윗도 시글락에 용병부대캠프를 세우고 주변에 거주하는 작은 부족들을 약탈하며 세력을 키웠다.

이렇듯이 인류문명사 안에서 모든 크고 작은 전쟁들은 대부분 부와 권력을 쟁취하려는 약탈 전쟁이었다. 히브리 성서 시대에 이르러는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제국 등 수많은 제국주주의 약탈정복전쟁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신약성서시대에 이르러 지중해세계 로마제국의 약탈정복전쟁은 그야말로 공포와 전율이었다.

성서 바깥에서도 아시아의 징기스칸, 중국황제나라들, 오스만터키 등 제국주의 약탈정복전쟁이 끝이지 않았다. 이어서 유럽근대제국주의 지구촌 약탈정복전쟁은 그야말로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을 말살하는 집단살육 전쟁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20세기 전반에 벌어진 12차 세계대전도 지구촌 약탈정복전쟁 역사의 큰 획을 긋는 광기의 말살전쟁이었다.

이 세계전쟁들을 통해서 무소불위 지구촌제국 미국의 세계지배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벌어진 한국전쟁, 월남전쟁, 중동전쟁들은 지구촌제국주의 밑바탕을 튼튼히 하고 그 위세를 한껏 떨치는 광기의 말살(抹殺)전쟁들이었다.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전쟁 등에서 지구촌제국 미국은 주요 당사자이거나 이해관계자였다. 한마디로 지구촌제국 미국의 약탈정복전쟁 이미지는 옛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지구촌 풀뿌리 사람들에게 공포와 전율이다.

 

야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이오.”

 

아멜렉과 미디안 연합약탈부대가 히브리 지파동맹을 약탈하려고 가나안땅으로 몰려왔을 때 히브리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두려움은 너무도 컸다. 더불어 아멜렉과 미디안 연합약탈부대와 대항전쟁에서 얻은 놀라운 승리의 기쁨도 한없이 컸다. 이 모든 위기와 두려움과 승리의 여운이 오래도록 히브리 지파동맹 안에서 맴돌았다. 그 여운은 너무도 크고 깊었다. 그래서 히브리 지파동맹이 사사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사기823절에서 기드온은 단칼에 이 요청을 거부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겠소.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오.

야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이오.”

 

사사 기드온의 답변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회종교정치경제 기능과 정체성을 또렷하게 증언한다. 히브리들은 야훼하나님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을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히브리들은 야훼하나님의 다스리심만 인정한다.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께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임금이시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회종교정치경제 기능과 정체성은 야훼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서 지파자치를 보장하는 해방과 자유, 정의평등, 생명평화세상이다.

그러나 기드온이 죽고 나서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아비멜렉이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사를 넘어 왕을 꿈꿨다. 아비멜렉은 경쟁자인 자기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쳐 죽이고 자기고향 세겜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스스로 히브리 지파동맹의 왕이 되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에서 쳐 죽였으나 숨어버린 막내아들 요담은 죽이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리심 산에서 숨어살던 요담에게 그 일을 알렸다.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목소리를 높여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비난했다. 실제로 아비멜렉의 결말은 비참했다. 한 평범한 여인이 이층에서 맷돌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졌다. 그 맷돌위짝에 맞은 아비멜렉의 두개골이 깨졌다. 아비멜렉은 결국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21세기 예수신앙인들이나 성서독자들은 사사기를 읽고 해석하면서 또렷하게 확인했을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사들이 활동했던 시대에서만, 히브리 지파동맹이 안정과 평화를 유지했다.”

예를 들면 옷니엘이 사사로 활동했던 40년 동안(사사기 3:11), 에훗이 사사로 활동하던 80년 동안(사사기 3:30) 히브리 지파동맹이 평온을 누렸다. 또 사사 드보라 때에 40(사사기 5:31) 그리고 기드온이 살아있었던 40년 동안 히브리 지파동맹이 태평하였다. 이처럼 힘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사들이 활동하는 시기에 히브리 지파동맹은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평화시대 이후 또 다른 약탈전쟁에 휩쓸렸다. 그때 마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다시 사회종교정치경제 혼란과 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러한 약탈 전쟁이야말로 사사시대 히브리 지파동맹의 한계와 희망과 정체성이 교차하는 절절한 희년신앙 행동서사 현장이었다.

 

풍요다산 바알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

 

히브리 지파동맹은 아직 스스로의 평화와 안전의 밑바탕을 든든하게 세우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히브리 지파동맹 안에서도 시나브로 풍요다산 바알숭배가 널리 퍼져서 자리를 잡았다. 또 부와 권력과 정치에 대한 독점욕망이 싹터서 드러나지 않게 자라나고 있었다. 히브리 지파동맹 안에서 풍요다산과 부와 권력욕망에 빠져드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세력을 가진 자들이 저마다의 자기욕망에 몰두하게 되었다.

일찍이 파라오 노예세상 종살이에서 해방된 히브리들은 가나안땅의 풍요다산 바알신앙으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당했다. 오랜 세월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아오면서 독점사익과 부와 권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떤 히브리들은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헐뜯는 권력 야심가들의 선전선동에 넘어가 왕정체제로 마음이 기울었다. 팍팍한 삶의 안전과 부를 가져다 줄 독점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왕정을 열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사사기드온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본문사건 상황에서 여실히 증언된다. 사사 기드온의 가문도 일찍부터 바알신앙을 숭배해왔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므낫세지파 아비에셀 사람으로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에서 등을 돌렸다. 버젓이 집안에 바알신당을 차리고 온 가문이 함께 바알숭배에 열을 올렸다. 기드온은 아예 히브리들의 하나님 야훼에 대한 아무런 신앙인식도 없었다.

따라서 기드온은 야훼하나님을 만나서 여러 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야훼 하나님의 존재를 실험해야만 했다. 그렇게 겨우 겨우 억지를 써서 야훼 하나님의 실체를 깨달은 후에라야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사로 부름을 받았다.

이렇듯이 기드온은 히브리 지파동맹 사사로 부름을 받은 후에야 집안의 바알신당을 폐쇄했다. 기드온은 집안에 모셔진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때려 부수면서 예룹바알 יְרֻבַּעַ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예룹바알의 문자의미는 바알이 그를 위해 싸운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장난삼아 바알이 그와 다투다라고 이해했다.

기드온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사로써 야훼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었다. 기드온은 아멜렉과 미디안 연합약탈부대와 전투에서 여러 차례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여전히 기드온은 과거 바알숭배 폐습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또다시 금으로 된 우상(아마도 바알신상)을 만들어 오브라 자기집안에 차려놓은 바알신당에 모셔놓고 숭배했다(사사기 8:27)

물론, 기드온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40년 동안 왕처럼 독점정치권력을 누렸다. 그런 가운데 많은 아내를 얻어서 낳은 아들만도 칠십 명에 이르렀다. 기드온이 죽은 후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들은 저마다 기드온의 독점정치권력을 이어 받으려 했던 것 같다.

본문읽기는 이러한 상황을 여실하게 증언한다.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세겜 출신 기드온의 첩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의 이름 아베멜렉 אַבִימֶלֶךְ내 아버지가 왕이다는 뜻이다.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들이 제각각 왕처럼 행세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아비메렉은 세겜에 있는 외가를 찾아가서 이렇게 선동한다.

 

당신들은 세겜의 모든 주민들의 귀에 대고 말하세요. 여러분에게 무엇이 좋겠습니까? 예룹바알의 모든 아들들 곧 칠십 명이 여러분을 지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한 사람이 여러분을 지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여러분의 뼈와 살을 나눈 혈육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겜에 뿌리내린 아비멜렉의 외가역시 바알신앙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가나안땅 토박이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바알 브리트 בַּעַל בְּרִית 언약의 바알신전에서 은덩이 70개를 꺼내 아비멜렉에게 쿠데타 자금으로 주었다.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건달들과 불량배들을 모았다. 아비멜렉은 그들을 거느리고 오브라에 있는 자기 아버지 집으로 쳐들어갔다. 아비멜렉은 왕 같은 사내들 곧 그의 형제들이며 예룹바알의 아들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몰살시켰다. 그런 후에 그는 세겜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었다.

 

요담의 우화

 

본문읽기는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탐은 살아남았다고 보도한다. 왜냐하면 그가 가만히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증언한다. 이러한 본문보도는 무엇을 증언하는 것일까?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이 여룹바알의 아들로써 왕 같은 사내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요담은 오브라에 있는 여룹바알의 집에서 함께 살지 않았다. 그리심 산 산골에서 소박하고 한적하게 네흐바 נֶחְבָּא 스스로 숨어살았다. 그럼으로써 아비멜렉이 벌인 형제살해 쿠데타 참극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 쿠데타 참극사건을 그리심 산속에서 살고 있던 요담에게 전달했다. 요담은 그 소식을 듣고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 그 유명한 요담의 우화를 소리쳐 외쳤다.

 

너희는 나에게 들어라, 세겜 주민들아.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서 들으실 것이다.

참으로 나무들이 찾아 갔다

그들 위에 왕을 기름 부어서 세우려고.

그들이 올리브나무에게 말했다,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올리브나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기름을 포기하란 말인가?

나로 인해 신들과 사람들이 영화롭게 된다네.

그러니 내가 가야겠는가, 나무들 위에서 흔들리려고.

나무들이 무화과나무에게 말했다.

당신이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달콤한 맛을 포기하란 말인가?

내가 좋은 열매 맺는 것을 포기 하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가겠는가, 나무들 위에서 흔들리려고.

나무들이 포도나무에게 말했다.

당신이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포도주를 포기하란 말인가?

내가 신들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포기하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가겠는가, 나무들 위에서 흔들리려고.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 말했다.

당신이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시오.

가시나무가 그 나무들에게 대답했다.

만일 참으로 너희가 나에게 기름을 부으려 한다면, 너희 위에 왕으로.

너희는 와서 나의 그늘 안에 숨어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불이 가시로부터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삼킬 것이다.”

 

요담의 우화는 히브리 지파동맹이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배신하고 풍요다산 바알종교를 숭배했을 때 닥칠 위험을 경고한다.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꿈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독점정치권력 지배체제 왕정을 열망하는 히브리들에게 들이닥칠 삶의 유혹과 그 위험을 절절하게 증언한다. 풀뿌리 사람들이 소제국주의 독점정치와 독점 권력자 왕을 구원자로 내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꾸짖는다.

왜냐하면 오롯이 왕은 풀뿌리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제국주의 독점정치권력 지배체제는 폭력과 전쟁과 죽임을 통하여 풀뿌리 사람들의 굴복만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제국주의 독점정치권력 지배체제에 굴복함으로써 주어지는 삶의 안정 속에는 정의와 평등이 없다. 해방과 자유와 구원도 없다. 그런 세상은 결코 생명평화세상이 아니다. 오롯이 억압과 착취와 폭력이 난무하는 반 평화 그리고 반 생명세상 일 뿐이다.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

 

이제 필자는 요담의 우화를 읽고 해석하면서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신앙은유를 증언하려고 한다. 여기서 아나키즘의 사전(辭典)의미는 개인의 인격과 삶과 자유를 지배하려는 모든 정치조직이나 권력 그리고 사회정치권위를 부정하는 사상이다. 개인의 고유한 인격과 자유, 평등과 정의 그리고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고 운동이다.

이러한 뜻과 의미는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이 꿈꾸는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과 똑 닮았다. 곧 파라오 노예제국을 탈출한 히브리들이 가나안 노느매기 땅에서 꿈꾸던 해방과 구원세상이다. 요담의 우화는 이러한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꿈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야말로 풀뿌리 사람들을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으로 이끄는 참 길임을 증언한다.

이제 요담의 우화의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요담의 우화에서 왕이 되기를 거부하는 나무들은 어떤 나무들일까?

하나같이 자신의 사회경제책임과 달란트와 노동 가치를 정확하게 깨달아 마음에 새긴다. 올리브나무는 자기의 기름이 사회와 이웃들에게 주는 이로움으로 만족한다. 올리브 나무에게는 제국주주의 독점정치권력 욕망이 없다. 마찬가지로 무화과나무도 자신의 달콤한 열매를 자랑스러워한다. 무화과나무는 자신이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포도나무 역시도 자신의 포도주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전혀 다르다. 가시나무는 사회와 이웃을 위해 내어놓을 만한 선한 것들 - 토브 טוׄב가 전혀 없다. 오직 교만하고 염치도 없는 탐욕과 권력욕망으로 가득 찬 야심가와 같다. 부와 권력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독점정치권력 그 자체만을 열망한다. 마치 인류문명사 속 제국주의 지배체제 정치모리배들의 전형(典型)과 같다.

만약, 가시나무에게 독점정치권력을 쥐어 준다면 가시나무는 무한폭력과 억압을 휘두를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을 통하여 풀뿌리 사람들에게 굴복만을 요구할 것이다. 소제국주의 독점정치권력 탐욕의 가시로부터 불이 쏟아져 나와 레바논의 아름다운 백향목을 불태울 것이다.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아름답고 올곧은 생각과 사상들을 모두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이처럼 요담의 가시나무 우화는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이어가려는 히브리 지파동맹의 독점정치권력욕망 곧 왕정을 향한 저항의지를 드러낸다. 이집트 파라오 노예세상으로부터 탈출한 히브리들은 소제국주의 독점정치권력욕망으로써 왕정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왕정에 대한 저항의지도 드높았다.

그러므로 히브리 성서 사사기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스트 동맹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세우고 누리며 지켜나가기를 꿈꾼다. 야훼 하나님과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통하여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하는 자유인들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은 요담의 우화에서처럼 소제국주의 왕정체제를 향한 대항행동으로써 희년신앙 행동계약 대안세상을 열망한다.

이렇듯이 요담의 우화는 시대의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그 땅 풀뿌리 사람들에게 폭력과 죽임의 독점정치권력을 휘둘러온 역사를 증언한다. 소제국주의 왕정체제가 그 땅 풀뿌리사람들의 인격과 삶과 생명생태계를 파괴하고 말살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다. 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erite”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이 유명한 명제는 옛 히브리들의 삶의 자리에서나 21세기 시대상황에서나 똑같이 진실하다. 본문읽기에서 아비멜렉은 무자비한 형제살육 쿠데타를 일으키고 히브리 지파동맹의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런데 아비멜렉의 형제살육 쿠데타의 밑바탕은 히브리들의 풍요다산 바알신앙숭배다. 부와 권력에 대한 독점욕망과 소제국주의 독점정치권력 욕망때문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이 해방과 구원세상의 꿈,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도리어 배신했기 때문이다.

이제 21세기 시대상황에서 예수신앙인들은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아나키즘,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노래 할 때다. 필자는 이 노래를 ‘21세기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로 새롭게 되새김 질 하기를 제안한다. 왜냐하면 예수가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으로 새롭게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선포하고 스스로 행동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누구라도 헷갈리지 않을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길을 놓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는 단순하게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의 리코딩이 아니다. 21세기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는 맘몬자본세상 속에서 예수신앙인들의 신앙행동 표지다. 맘몬자본세상의 독점정치권력 지배체제를 향한 대항행동으로써 대안세상이다.

어쩌다 한두 번 발끈 성내거나 씩씩대는 우연하고 개인적인 돌출행동이 아니다. 시대의 예수신앙인들의 소통과 공감과 연대를 통한 사회경제 공동체신앙 깨달음이고 신앙의지이며 행동이다. 21세기 예수신앙인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로써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실천하는 대항행동 삶이다. 이제 21세기 예수신앙들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야말로 우리시대에 다시 잇는 희년신앙 행동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