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주변 고대 문명세계에 나타난 ‘빚진 죄인 사회집단 신념체계’
성서주변 고대 문명세계에 나타난 ‘빚진 죄인 사회집단 신념체계’
성서주변세계 메소포타미아 고대종교‧문명사에 나타나는 ‘빚진 죄인 사회집단 신념체계’의 밑바탕을 살펴보자. 메소포타미아지역은 기원전 3천5백년 무렵부터 수메르문명을 꽃피웠고 바빌로니아 문명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유목민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뀌었다. 다양한 민족들 또는 종족들에서 신전제사장 지배체제가 든든하게 뿌리내렸다. 한편 힘 있는 민족이 흩어져 있는 작은 종족들을 차례차례 정복하면서 하나의 강력한 노예제국 지배체제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렇듯이 메소포타미아 고대종교‧문명사 속에서 ‘신전제사장 전제주의(專制主義) 또는 노예제국 지배체제’를 튼튼하게 세우기 위한 창조신화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창조신화는 고대 성서주변세계에 널리 알려져 뿌리내렸다. 그러면서 창조신화 내용들이 더 풍성해지기도 하고 새로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히브리 성서 천지창조 이야기 줄거리를 바벨론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찾는다. 에누마 엘리쉬는 메소포타미아 고대도시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토판문서로 발견되었다. 이 토판문서는 고대 바빌론제국 수호신이었던 마르둑의 창조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토판문서는 셈족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고대 수메르문명 창조신화로부터 이어져왔다. 그 핵심 내용은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다. 이제 필자는 거칠게나마 ‘바벨론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 이야기 줄거리를 살펴보려고 한다.
맨 처음부터 있었던 신 ‘압수(민물)와 티아마트(바닷물)’ 사이에서 여러 세대에 거쳐 수많은 신들이 생겨났다. 그들로 인해 신들의 세계가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신들의 세계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신들의 전쟁은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다. 첫 번째 전쟁에서 모든 신들의 아버지 ‘압수’가 살해되었다. 두 번째 전쟁에서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티아마트’마저 죽임을 당했다.
신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마지막 승자는 바빌론제국 수호신 ‘마르둑’이었다.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시체를 갈라서 반쪽으로 하늘을 만들고, 하늘 위에 있는 물과 하늘 아래 있는 물을 나누었다. 다른 반쪽으로는 바다와 강과 지하수를 나누었다. 또한 두개골을 빻아서 하늘의 별들을 만들었다. 머리카락으로 대지를 만들고 유방으로 높은 산들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마르둑은 ‘지혜의 신 에아’에게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를 지시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맨 처음 인간을 만들어 그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사람을 만들어 그에게 하급 신들의 모든 강제노동을 떠넘기고 하급 신들이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도록 하겠다.”
지혜의 신 에아는 티아마트 군대 사령관 ‘킹구’를 죽여서 그 피로 살덩이를 반죽했다. 그리고 그 반죽으로 ‘노동하는 노예인간’을 만들었다. 또한 온갖 동물들을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이제껏 고급 신들을 위해서 온갖 강제노동에 허덕이던 하급 신들을 그들의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실제로 하급 신들은 산과 들과 광산에서 온갖 험한 노동을 도맡음으로써 고급 신들의 평온한 삶을 받들어야만 했다. 하급 신들은 힘겨운 노동의 짐을 지고 진흙이 섟인 밥을 먹으며 먼지로 더러워진 물을 마셨다. 이렇듯이 고통스러운 강제노동에 지친 하급 신들은 때때로 폭동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강제노동은 오롯이 노동하는 인간노예들의 몫으로 넘겨졌다. 노동하는 노예인간이 하급 신들을 대신하여 산과 들과 광산에서 험한 강제노동을 도맡아야만 했다. 이제, 노동하는 노예인간은 하급 신들을 대신하여 어둠 속에서 일하고 진흙 섟인 밥을 먹으며 먼지로 더러워진 물을 마셔야만 한다.
이렇듯이 성서주변 고대 문명세계에서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신화’는 빚진 죄인 사회‧종교‧경제 이데올로기의 밑바탕이었다.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신화야말로 고대 지중해세계에서 노예제국주의 지배체제를 튼튼하게 세워냈다. 노예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역할을 해왔다. 인류종교‧문명사 속에서 ‘빚진 죄인’이라는 아주 오랜 사회‧종교‧경제 이데올로기를 뿌리내리게 했다. 나아가 빚진 죄인 사회집단 신념체계야말로 ‘옳고 바르며 마땅하다’고 증언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