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맥(脈)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거친 숨결 18. 공의를 물처럼,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라.

희년행동 2024. 8. 7. 12:34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거친 숨결

 

18. 공의를 물처럼,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라.

아모스 2:6-8, 5:21-25, 8:4-8

 

본문읽기1.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배신(악행) 때문에. 아모스 2:6-8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악행들 때문에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리라.

 

은을 받고 의인을,

신발 한 켤레 이익을 위해 가난한 사람을,

이스라엘이 그들을 팔았기 때문이다.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땅의 먼지에 처박아 짓밟는 자들.

그들이 겸손한 사람들의 길을 굽어지게 하고

그들이 아들과 아비가 함께 한 젊은 여인에게 다니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든 제단 옆에서

저당 잡은 옷들 위에 몸을 쭉 뻗어 누우며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집에서

벌금으로 빼앗은 포도주를 마시기 때문이다.

 

본문읽기2. 공의를 물처럼, 정의를 강처럼 흐르게 하라. 아모스 5:21-25

 

아하, 야훼의 날을 열망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이 야훼 날이 무엇이냐?

그날은 어둠이지 빚이 아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사자 앞에서 달아나다가 곰을 마주치는 것과 같다.

또한 집에 들어가서 자기 손으로 벽을 짚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

야훼의 날은 빛이 아니므로 어둡지 않겠느냐?

그날에 밝은 빛이 없으므로 깜깜하지 않겠느냐?

 

내가 너희 축제들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내가 너희의 성회들을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너희가 나에게 번제들과 소제들을 올려도

내가 기쁘게 받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살진 가축 화목제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네 노래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 앞에서 그쳐라.

네 비파들의 연주를 내가 듣지 않을 것이다.

 

오롯이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라.

정의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너희가 내게 광야 사십년 동안 희생 제물들과 소제를 바쳤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너희의 왕 싴쿠트와 너희의 우상들 키윤이나 높이 모셔라.

너희가 너희를 위해 만든 너희의 하나님, 별 우상을 높이 모셔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메섹 너머 더 멀리 사로잡혀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본문읽기3.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자들아. 아모스 8:4-8

 

너희는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자들아.

땅에 매여 사는 사람들

겸손한 사람들을 끝장내려는 자들아.

 

말하기를.

언제나 새달 초하루가 지나서, 우리가 곡물을 팔수 있을까?

언제나 안식일이 지나서, 우리가 곡물창고 문을 열수 있을까?

에파를 작게 하고 쉐켈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일 수 있을까?

은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사고.

신발 한 켤레의 값으로 가난한 사람을 사며.

우리가 쓰레기 곡물을 팔수 있을까?

 

야훼께서 야곱의 교만을 두고 맹세하신다.

 

참으로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일 때문에 그 땅이 날뛰지 않겠느냐?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통곡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처럼 솟아올라 뛰놀다가 흠뻑 젖어서

이집트의 강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본문이해하기

 

아모스는 누구인가?

 

아모스는 기원전 800-750년 무렵 남쪽 유다왕국 드고아에서 살았다. 그는 남유다왕국 사람으로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 시대에 옛 야훼성소 벧엘에서 예언활동을 시작했다. 아모스의 고향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시골마을이었다. 드고아는 유대광야와 유대산지가 맞닿는 경계지역에 위치했다. 주변계곡에는 농사지을만한 농지도 있었는데 올리브나무 재배로 유명한 곳이었다. 또한 유대광야 경계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목축하기에도 적당한 지역이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아마스 עמס 짐을 지다 또는 나르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한마디로 누군가를 대신해서 짐을 짊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모스는 예언활동을 시작하면서 자기직업을 양치기였고 돌무화과를 가꾸는 농부였다고 말한다. 또 아모스는 자신을 예언자도 예언자의 아들도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아모스는 맨 처음 문서예언자로써 자기시대상황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판단력을 가진 앞선 예언자였다. 또 아모스는 예언자로써의 자기소명을 진솔하게 밝혔다. 따라서 아모스 이후 호세아와 이사야, 예레미야 등 많은 예언자들이 스스로 예언자소명을 밝히는 등 문서예언자 계보를 만들어 나갔다.

실제로 아모스 이전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은 대부분 초월적인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성서는 이들을 나비 נָבִיא 선견자 또는 선지자라고 부른다. 나비들은 황홀경 속에서 미래를 보거나 영감을 받아 예언하는 사람들이었다. 엘리야도 나비전통 이어받은 북이스라엘 예언자로서 야훼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엘리야는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속에서 북이스라엘의 사회종교정치경제 전 분야에서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맨 처음 문서예언자로서 대부분의 예언들이 시어(詩語)로 기록되었다. 그는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미래를 예언했다. 아모스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대표하는 예언자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버금가는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자기시대를 읽고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럼으로써 아모스는 남쪽 유다왕국출신으로써 부와 권력에 아부하며 풀뿌리 사람들을 굽은 길로 이끌어가는 북이스라엘 궁정예언자들을 당당하게 꾸짖을 수 있었다.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사회종교정치경제 죄악들을 날카롭고 매섭게 비판할 수 있었다.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이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배신하는 악행들을 낱낱이 고발할 수 있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이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외면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경제 양극화와 불평등을 거침없이 까발렸다. 그로인해 가난한 사람과 힘없는 사람과 겸손한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사회정치경제의 구조적인 고통과 고난을 낱낱이 고발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돈으로 호려서 채무노예로 팔아넘기는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죄악들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꼬집었다. 겸손한 사람들을 신발 한 켤레 값으로 사서 비싼 값으로 되팔아 불로소득 대박을 만들어내는 부자들의 사회경제 악행을 규탄했다.

그러므로 이제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배신행동과 악행을 야훼께서 징벌하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모스는 야훼하나님의 징벌로써 아시리아제국의 침략전쟁을 꼭 짚어서 예언했다.

 

아모스는 남유다왕국 사람으로서 왜,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을 해야만 했을까?

 

아모스는 왜 자기가 살고 있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향하여 예언하지 않았을까? 아모스는 문서예언자로서 북이스라엘을 향한 편협한 신앙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을까?

필자 나름대로의 이해와 판단은 이렇다. 남쪽 유다왕국은 오래전부터 다윗왕조신학에 따른 절대왕권과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이데올로기에 찌들어 왔다. 야훼 하나님께서 히브리 지파동맹과 더불어 맺으신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이 발붙일 자리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유대 땅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은 참으로 뜬금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아모스는 유다왕국에서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예언할 수 있는 틈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유다왕국전통에 따른 기름부음(메시야)의 절대왕권과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이데올로기 속에서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은 완전히 맥이 끊겼다. 야훼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 꿈은 오래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다. 옛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으로써 행동법규들은 남유다왕국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오롯이 유대왕국에서는 다윗왕조신학 메시야 절대왕권과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이데올로기만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

그나마 북이스라엘서 겨우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이 실낱같은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의 처절한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증언하다

 

기원전 12백 년대 사사시대부터 기원전 8백 년대 아모스시대까지 가나안과 시리아지역에서 이집트 파라오제국의 패권이 쇠퇴했다. 그러나 아직 비옥한 초승달지역에서 강력한 제국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다윗왕조 솔로몬왕국이 가나안과 시리아 지역에서 소제국주의 지역패권을 누렸다. 이후 가나안과 시리아지역에서는 북이스라엘 등 소제국주의 왕국들의 세력다툼이 치열했다. 아모스시대에는 남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이 다 같이 영토를 늘리고 경제번영을 누렸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는 암몬과 모압 그리고 시리아까지 영토를 넓혔다. 북쪽으로는 오론테스강까지 남쪽으로는 사해까지 솔로몬왕국이 지배했던 영토를 대부분 차지했다. 여로보암2세 때 북이스라엘의 귀족들과 부자들의 엄청난 부를 쌓고 권력을 누렸다. 소제국주의 패권국가로서 가나안 땅의 상업발전을 주도하고 풍성한 예술과 문화를 향유했다.

그러보니 북이스라엘의 귀족들과 부자들의 교만은 하늘까지 뻗쳤다.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은 시나브로 잊혀 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귀족들과 부자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죄악은 점점 더 커지고 깊어졌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들을 고리대금으로 호려서 채무노예로 팔아넘기는 노예장사에 혈안이 되었다. 겸손한 사람들 곧 사회정치경제 공의와 정의를 지키려는 이들의 삶의 위기를 비틀어 굽어지게 만들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 시대의 귀족들과 부자들은 대놓고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는 죄악들을 멈추지 않았다.

 

아모스의 예언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주변 노예세상 왕국들을 향한 야훼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예언했다. 야훼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내용으로써 소제국주의 침략전쟁과 그로인한 피흘림과 죽음과 파멸을 경고했다.

그러나 아모스 예언의 핵심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는 죄악을 향한 야훼의 심판과 질벌 예언이었다.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는 죄악들로 인한 야훼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경고했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을 향해 희년신앙 행동계약 배신과 그들의 죄악들을 폭로하고 따졌다. 그러면서 유일한 해결책으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에 따른 회개와 부흥을 제안했다.

 

오롯이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라.

정의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아모스는 야훼 하나님께 주신 예언자로서 진실한 마음을 담아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에 따른 회개와 부흥을 요구했다. 남유다왕국은 그렇다고 쳐도 북이스라엘의 풀뿌리 사람들마저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시나브로 무시하는 생활태도에 대해 경고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에게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에 따른 진실한 회개와 부흥을 요구했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이 야훼하나님의 행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이루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모스에게는 희년신앙 행동계약에 따른 회개와 부흥이야말로 오롯이 야훼하나님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의 뜻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옛 야훼성소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의 예언을 북이스라엘의 패망을 예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아마샤는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예언한다고 여로보암2세에 보고했다. 아마샤는 옛 야훼성소 벧엘에서 아모스를 쫓아냈다.

실제로 아모스는 야훼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 북이스라엘의 풀뿌리 사람들에게 전해야할 예언들을 제대로 다 예언하지 못했다. 그래서 야훼께로부터 받은 예언들을 글로 남겼다. 아모스가 글론 남긴 예언들은 북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남유다왕국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냈다.

이와 관련하여 아마도 아모스는 야훼 하나님께 받은 예언을 기록한 최초의 문서예언자였을 것이다. 아모스의 예언은 시어(詩語)로써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다. 성서학자들은 아모스 이후 많은 예언자들이 야훼 하나님께 받은 계시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북이스라엘 예언자 호세아도 아모스 예언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아모스의 예언이 남유다왕국 왕궁예언자 이사야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성서학자들은 이사야의 처음 예언에서 아모스의 예언을 따라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남유다왕국예언자 이사야 역시 아모스의 예언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문읽기1(아모스 2:6-8)풀이 :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배신(악행)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아모스 예언의 특징은 시어(詩語). 아모스는 남유다왕국 사람으로서 예루살렘 남쪽 드고아라는 마을에 살았다. 그러면서 명절 때마다 북이스라엘 접경지역 벧엘성소로 올라가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언을 했다. 아모스는 제법 긴 연설을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짧은 예언을 선포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의 기대와 입맛에 맞게 북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징벌을 선포하는 예언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의 악행을 고발하는 예언을 아주 많이 했다. 따라서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을 향한 심판과 징벌을 예언하는 가운데 북이스라엘 왕궁예언들에게 쫓겨나곤 했다.

왜냐하면 예언자 아모스의 눈에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의 죄악들이야말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는 행위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은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들을 지켜나가기 보다는 거꾸로 배신하는 행동들을 일삼았다. 그러한 행위들은 히브리들의 하나님 야훼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세상을 무너뜨리는 배신이며 큰 죄악이었다.

이때 본문이 사용하는 피쉬에 פִּשְׁעֵי 악행들이라는 히브리어 낱말은 파솨아라는 동사로부터 온 것이다. 이 동사는 배신하다 또는 변절하다라 뜻이다. 이점에서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은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통치행위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윗왕조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고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다윗왕조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배신행위 때문에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왕국과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리어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이야말로 더 거리낌 없이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는 죄악들을 저질렀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은 차디크 צַדִיק 의인이라는 히브리어 낱말을 사용하는 데 문맥으로 보아 정직한 사람 또는 공정한 사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의롭게 대접받아야 하고 자기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귀족과 부자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으로 호려서 채무노예로 팔아먹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신발 한 켤레 이익을 위해 노예로 팔려야만 했다. 그러나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에서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또 본문은 아부르 עֲבוּר 소득, 이라는 히브리어 낱말을 사용한다. 이 낱말은 아바르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는데 흘러넘치다라는 문자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신발을 벗겨서 그들의 소득 또는 몫을 빼앗았다. 신발 한 켤레 이익이라도 더 흘러넘치게 하려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신발을 벗겼다.

그러나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발을 신기라고 명령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일용할 소득과 몫을 보장하라고 명령한다. 아모스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는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죄악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이때 본문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에비욘 אֶבְיֹון이라는 히브리어 낱말을 사용한다. 이 낱말은 아바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는데 바라다, 욕망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란 바라는 것 또는 자기욕구를 잃었거나 빼앗긴 사람이다. 더해서 본문은 힘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달림 דַּלִּים이라는 히브리어 낱말을 사용한다. 이 낱말은 달랄이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는데 약하다라는 문자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힘없는 사람들이란 속절없이 신발 한 켤레의 자기소득 또는 몫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아니, 빼앗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북이스라엘 지배계층은 쇼아핌 שּׁׄאֲפים 이들의 머리를 먼지구덩이 땅바닥에 처박아 짓밟아으스러뜨렸다.

또 한편 북이스라엘의 지배계층은 아나빔 עֲנָוִים 겸손한 사람들을 굽어지게 했다. 이때 겸손한 사람이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한 자기 고집과 교만한 마음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겸손한 사람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들을 따라 자기 삶을 살고 자기 길을 갔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은 아무거리낌 없이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땅바닥 먼지구덩이에 처박아 짓밟고 으스러뜨린다. 그들은 겸손한 사람들의 정의로운 삶의 길을 강제로 또 폭력으로 잡아 비틀어 구부러지게 하는 일에 온힘 쏟는다. 이때 본문은 나타 נטה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하는데 강제로 구부리다라는 뜻이다.

또 본문은 아들과 아비가 함께 -한나아라 אֶל־הַֽנַּעֲרָה 한 젊은 여자에게다닌다고 증언한다. 아들과 아비가 함께 이방인들의 바알신전 풍요다산 축제에 들락거렸다는 비난이다. 가나안땅 바알종교는 바알신전 안에 젊은 창녀들을 두고 풍요다산 축제를 벌이곤 했다. 바알신전 풍요다산축제야말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유혹이었다. 따라서 야훼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이 쉠 카데쉬 שֵׁם קָדְשִׂי (야훼)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고 비난한다.

여기서 야훼의 거룩한 이름이란,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언어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 지파동맹과 함께 맺으신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야훼의 거룩한 이름이 곧 희년신앙 행동계약의 보증이다. 야훼의 이름은 깨끗하고 순수해서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영원히 지키시고 변치 않으신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함으로써 야훼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야훼하나님과 히브리 지파동맹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더럽혔다.

또 본문은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이 그들의 제단 옆에서 저당 잡은 옷들 위에 몸을 쭉 뻗어 눕는다고 비난한다. 이때 본문은 하발 חָבַל 저당 잡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하는데 넓게는 망하게 하다 또는 몹쓸 짓을 하다라는 의미다.

또 본문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집에서 벌금으로 빼앗은 포도주를 마신다고 비난한다. 이때 본문은 아나스 עָנַשׁ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벌금을 매기다 또는 세금이나 군()세를 부과하다라는 뜻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매겨서 채무노예로 삼는 행위는 성서주변 노예제국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에서 노예제도는 야훼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세상을 배신하는 가장 큰 죄악이다.

이렇듯이 아모스는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으로써 빛탕감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를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경제 약자들을 돕고 보살피라는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을 너무도 잘 이해했다. 아모스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억압하고 착취하며 노예로 삼는 것은 야훼하나님을 모욕하는 죄악이라고 경고한다.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이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고 사회경제 약자들의 삶을 망가트려서 채무노예로 삼는 죄악을 고발한다.

 

본문읽기2(아모스 5:21-25)풀이 : 오롯이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라.

                                                     정의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욤 예흐바 יֹום יְהוָה 야훼의 날은 무엇인가? 히브리 지파동맹 또는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위기의 때에 야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해방과 구원을 베푸시는 날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원수들이 야훼하나님 앞에서 패망하는 날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을 약탈하고 멸망시키려는 제국주의 노예세상 지배체제가 패망하는 날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이 만들어가는 야훼의 해방과 구원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약탈전쟁세력들이 도리어 파멸당하는 날이다.(사사기 5) 그러므로 온 히브리 지파동맹이 야훼의 날을 미트아빔 מִתְאַוִּים 열망한다. 여기서 본문은 아바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하는데 갈망하다, 사모하다라는 뜻이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에게 야훼의 날이 얼마나 큰 희망이며 자랑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모스는 야훼의 날을 열망하는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에게 그날은 어둠이지 빚이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사자를 피해 도망치다가 곰을 만나거나 안전한 집에 들어가서 벽을 짚다가 독사에 물리는 꼴이라고 조롱한다. 그날은 밝은 빛이 없음으로 깜깜하지 않겠는냐라고 비난한다. 이때 본문은 아펠 אָפֵל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데 이미 해가져서 아무런 빚도 기대할 수 없는 깜깜함을 말한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뿐만 아니라 그 땅 풀뿌리 사람들조차 이미 오래전부터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롯이 풍요다산 바알종교를 숭배하며 번영과 향락만을 쫓을 뿐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명절잔치와 종교축제들을 사네 שָׂנֵא 미워하신다. 뿐만 아니라 전혀 제물냄새를 맡으려 코를 벌렁거리지도 않으신다. 야훼의 성소에로 몰려와서 아무리 많은 번제물과 소제를 올려도 야훼께서 라차 רָצַה 기뻐하지않으신다.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이 아무리 많은 화목제물을 바치더라도 야훼를 만족시킬 못할 것이다. 그들이 야훼성소에서 부르는 노래들조차 시끄러운 소리 일뿐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비파연주를 야훼께서 듣지 않으신다. 오롯이 히브리 지파동맹이 야훼 하나님과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들을 지켜야만 야훼를 기쁘게 할 수 있다.

아모스는 야훼성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서서 바알을 숭배하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중신앙 인격을 비난한다. 야훼 하나님과 옛 히브리 지파동맹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거침없이 배신하는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죄악을 고발한다. 그들은 밤낮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노예로 팔아먹는 악행만 저지를 뿐이다. 아모스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배신하고 아시리아제국 노예세상에서 흘러들어온 우상들을 섬기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는다.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다메섹 너머 더 멀리 사로잡혀가게 하리라라는 야훼 하나님의 징벌을 선포한다.

 

본문일기3(아모스 8:4-8)풀이,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자들아.

 

본문읽기3.에서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귀족들과 부자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배신행위들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다. ‘겸손한 사람들과 땅에 매여 사람들을 끝장내려고 한다. 한마디로 겸손한 자들과 아니예-아레츠 עֲנִיֵּי־אָרֶץ 땅에 매여 사는 사람들(곧 소작농들)’을 끝장낸다는 말은 그들을 채무노예화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서 소개하는 새달 초하루와 안식일은 부자들의 땅에 매여 사는 농노들이나 소작농에게는 천금 같은 쉼의 날이다. 실제로 안식일의 진실은 종교절기로써가 아니라 쉼이 있는 노동세상을 위해 야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복 주신 날이다. 주인의 생활경제 그늘 또는 그 땅에 매여 사는 노예와 농노 또 소작농들에게 내리는 하늘숨구멍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에게는 새달 초하루와 안식일 등 종교절기는 그들의 돈벌이와 부의 쌓음을 방해할 뿐이다. 귀족들과 부자들에게는 단 하루라도 돈벌이가 끊기고 부의 쌓음이 멈추는 일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돈벌이와 쌓음의 밑바탕은 부피를 속이고 저울추의 무게를 속이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시대 상거래의 주요물품인 곡물거래는 에파로 곡물을 되어서 넘기고 쉐켈이라는 무게단위로 은을 달아서 값을 치렀다. 나아가 귀족들과 부자들은 쓰레기 곡물속여 팔아서 부당이득을 만들어 냈다. 이때 본문은 나팔 נָפַל 떨어지다 또는 쓰러지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한다. 귀족들과 부자들은 제대로 여물기전에 떨어지거나 줄기가 쓰러져 덜 여문 쓰레기 곡물을 속여 팔아서 불로소득을 취했다.

더 나아가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돈으로 사고파는 노예시장을 독점해서 불로소득을 만들어 냈다. 신발 한 켤레 값으로 가난한 사람을 사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되파는 노예장사를 통해서 불로소득 대박을 터트렸다.

이렇듯이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이 모든 흉악무도한 삶의 태도는 옛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대놓고 배신하는 행위였다.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을 깡그리 부정하고 거부하는 반신앙반인륜 행동이었다. 이제 야훼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반신앙반인륜 죄악들을 두고 이렇게맹세하신다.

 

참으로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반신앙반인륜 죄악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모스가 예언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던 것 같다(아모스 1:1) 스가랴서 14:5에서도 유다왕국 웃시야왕 때에 무시무시한 지진이 일어났다고 보고한다. 지진 때문에 산이 갈라져서 골짜기가 생겼다. 아모스는 본문에서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의 악행 때문에 땅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날뜀으로써 그 땅을 독점한 귀족들과 부자들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일 때문에 그 땅이 날뛰지않겠느냐?”

 

이때 본문은 라가즈 רָגַּז라는 히브리 동사를 사용하는데 떨다, 불안하다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아모스는 큰 지진을 만났을 때 땅의 떨림과 두려움과 불안함의 경험들을 비유로 가져다 썼다. 그러나 실제 현실세계에서는 당장 눈앞으로 몰아닥칠 아시리아제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대한 경고.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가져오는 피흘림과 죽임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그 모질고 사나운 불안과 떨림을 예언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통곡하지 않겠느냐?”

 

이때 본문은 아발 אָבַל 통곡하다, 애통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동사를 사용한다. 큰 지진이 끝나고 참담한 상황 속에서 통곡하며 울부짖듯이 북이스라엘 온 땅이 아시리아제국의 약탈전쟁 참화로 인해 애통하며 통곡하게 될 것이다. 북이스라엘 주민들이 모두 포로로 사로잡혀 먼 나라 낮선 땅 니느웨로 끌려갈 것이다. 마치 이집트 나일강의 홍수처럼 아시리아제국의 침략전쟁이 몰아닥쳐 북이스라엘 귀족들과 부자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휩쓸어갈 것이다. 북이스라엘 온 땅이 전쟁과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이집트의 강물처럼 내려않을 을 것이다.

 

21세기 지구촌과 대한민국 사회정치경제위기의 실체

 

21세기 한반도 위기의 밑바탕은 남북 분단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서 남한사회의 정치경제 분야의 극단적인 분열과 양극화와 불평등이 위기의 깊이와 크기를 더한다. 더불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21세기 지구촌제국주의 패권경쟁위기는 발끝에 떨어진 불이다.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21세기 지구촌전체에 미치는 생존위기는 지구촌 기후위기 또는 생명생태계위기. 필자는 이 모든 지구촌 위기들의 밑바탕은 21세기 지구촌 신자유주의와 금융화(financiali-zation)라고 이해한다.

이와 관련하여 20세기중반 대한민국 군사개발 독재시대에 수많은 풀뿌리 사람들이 자기 고향 땅을 떠났다. 이후 20세기말 지구촌 신자유주의는 모든 지구촌사람들을 자기사회정치경제 공동체관계로부터 떼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21세기 지구촌 금융화는 모든 지구촌사람들의 자기사회정치경제 공동체 정체성을 분열시켰다. 이점에서 21세기의 임금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유사자본가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본으로부터 부림을 당하는 노동자이만 동시에 개인사업자 지위를 갖는다.

이러할 때, 21세기 금융화는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21세기 지구촌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모든 쓰임과 필요를 금융에 의지하거나 관리하도록내맡긴다. 지구촌 나라들마다 일상생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of daily life)가 터를 잡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21세기 금융화야말로 중세유럽의 고리대금업과 약탈경제로의 회귀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21세기 지구촌은 불로소득 자본주주의(Rentier Capitalism)체제에 완전히 종속되었다.(브렛 크리스토퍼스)

무엇보다도 전쟁의 금융화야말로 21세기 지구촌사회의 비극이다. 실제로 지중해동쪽 소제국주의 이스라엘군대는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하루27천만 달러정도의 전쟁비용을 소비했다.(이스라엘 1년 국방비 총액은 234억 달러) 이를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21세기 금융시스템을 통해서 천문학적 전쟁비용채권을 발행했다.(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 니달 아부줄루프 Nidal AbuZuluf’ 증언) 미국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비용으로 수백억 달러를 이스라엘에 지원했다. 또 한편 미국은 유럽본토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비용으로 13백억 달러이상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한편 21세기 지구촌 제국주의 전쟁의 금융화 상황 속에서 ‘K방산 주식이 활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방산의 지구촌 무기시장 점유율은 2.8%정도에 불과하다. 지구촌제국 미국의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가 지구촌 무기시장을 독점한다. 뒤이어 러시아의 몫이 쪼끔이고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로국가들의 몫은 찔끔 이다. 이처럼 21세기 전쟁의 금융화로 인해 지구촌 제국주의와 월가금융과 군산복합체로 짜여진 지구촌 불로소득 금융과두체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렇듯이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밑바탕위기 위에 지구촌 나라들마다 겪고 있는 사회정치경제 이데올로기혼돈(混沌)의 위기가 하나의 층위(層位)를 만들고 있다. 이 층위의 핵심은 그 땅 풀뿌리 사람들 사이에서 쌓여가는 적대와 증오심이다. 그 위의 층위로 21세기 과학기술 또는 산업기술발전 그리고 지구촌 기후위기대책에 따르는 산업전환의 위기가 덮쳐있다. 또 그 위의 층위로는 21세기 지구촌 민주주의의 퇴행의 위기가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경쟁에 따르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인해 누구에게나 지구촌위기의 실체와 핵심은 오리무중이다. 아마도 지구촌 제국주의 지배체제 내부자들조차 지구촌위기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20세기 지구촌에서 벌어졌던 1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후 21세기 유럽사회에서 다시 네오나치즘과 극우정당 살아나 세력을 얻고 있다. 유라시아 제국주의 지정학 전쟁으로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지중해동쪽 이스라엘과 하마스사이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 전쟁은 끝날 듯 말 듯 예측조차 어렵다. 더해서 21세기 지구촌제국 미국의 트럼프피즘(Trumpism)2.0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지구촌사회를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프럼프의 중국 때리기와 동아시아 지정학 갈등과 위기증폭은 불을 보듯 빤하다.

늘 그래왔듯이, 지구촌 약소국들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정치폭력은 그 나라 안에서 끝난다. 그러나 21세기 지구촌 제국주의 파시즘질병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실제로 21세기 지구촌 위기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법치는 윤석열 내란상황과 극우아스팔트 내란폭동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이제 이대로 21세기 지구촌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끝장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21세기 지구촌 민주주의위기는 21세기 지구촌 금융시스템의 폐해와 불로소득경제폐해 위에 터를 잡았다. 그로인해 지구촌 나라들마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위기가 분출한다. 21세기 지구촌 나라들마다에서 부와 자산을 매개로 새로운 계급화가 자리를 깔았다.

무엇보다도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또 지구촌 나라들마다의) 여러 다양한 위기의 층위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필자는 나름대로 21세기 지구촌사회의 여러 다양한 위기의 층위들은 나열했을 뿐이다. 이 모든 위기들이 위아래와 앞뒤로 회오리치면서 21세기 지구촌 풀뿌리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것이 빤하다.

 

21세기 지구촌위기 속에서 가 아니라 를 돌아보고 살펴야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또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를 돌아보고 살핌으로써 우리를 조직할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21세기 지구촌사회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무한경쟁독점축적소비라는 독점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사회전분야가 독점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에 종속되어 있다.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그렇다. 종교도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종교만이 부와 명예와 더불어 그 종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최고의 종교와 가장 인기 있는 신은 독점자본주의 시장경쟁종교의 하나님 맘몬자본이다. 불로소득자본주의 하나님이신 맘몬자본을 제쳐두고 해방과 자유와 구원의 야훼하나님을 찾는 행위는 바보 같은 짓이다. 왜냐하면 한순간이라도 독점자본주의 시장경쟁종교의 맘몬자본하나님을 외면한다면 곧바로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독점자본주의 맘몬자본하나님과 그 똘마니로써 독점재벌대기업정부고위관료수구언론들에게 밉보이는 순간 절망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옛 쌍용차 노동자, 콜텍 노동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자영업자와 저소득계층의 삶이 그 사실을 증언한다.

누구든지 독점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의 온갖 요구들에 재빨리 순응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죽어라고 점수를 따고, 스펙을 쌓고,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자본과 시장의 요구가 나의 삶의 길이고, 삶의 잣대이다. 맘몬자본의 요구는 곧 나의 삶의 목표다. 그러니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 맘몬자본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든지 독점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의 요구에 절대 순복해야 한다. 한 치라도 그 요구를 벗어난다면 나와 나의 가족의 미래는 없다.

따라서 이제 교회는 맘몬자본 빚세상경제 속에서 무엇이어야 할까? 21세기 예수신앙인이라면 를 돌아보고 살피는 거울로써 성서읽기가 필요하다.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 빚세상경제 속에서 새로운 성서읽기가 절절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만, 21세기 지구촌 예수신앙인들이 서구기독교 제국주의 번영신앙과 정복신앙을 벗어 던질 때다. 더 나아가 21세기 서구교회는 초대교회이후 로마제국의 종교로 전락한 중세 암흑기의 교권주의 종교로써 근대 제국주의 종교로써 지구촌 정복신앙의 폐해를을 철저히 성찰하고 통렬히 회개해야한다. 이제 지구촌 교회들은 본문읽기를 통하여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께서 히브리 지파동맹과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의 의미를 꼼꼼히 되새겨 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