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의 태동, 유대인들의 유월절
희년신앙의 태동, 유대인들의 유월절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 만찬을 벌인다. 유월절 만찬은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매우 소중하고 뜻 깊은 명절행사다. 왜냐하면 유월절 만찬은 야훼 하나님께서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신 출애굽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 축제의 핵심의식이기 때문이다.
옛 히브리 노예들은 파라오 노예제국을 탈출하던 날 밤 미리 준비 해둔 어린 양 또는 염소를 잡았다. 그리고 그 피를 자기 집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랐다. 히브리 노예들은 그 양 또는 염소의 피 때문에 ‘파라오 노예제국의 모든 맏이들에게 내려진 죽음의 재앙’을 피해서 구원을 얻었다.
이후 대대로 유대인들은 옛 히브리들의 유월절 해방과 구원의 날을 기념하며 유월절 밤 만찬축제를 벌여왔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유월절 축제의식은 유월절 양을 잡는 행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을 위해 니산월 열 번째 날에 흠 없는 1년생 숫양 또는 숫염소를 미리 정해놓는다. 이렇게 정해 놓은 유월절 양을 니산월 열네 번째 날, 유월절 밤에 잡아서 그 피를 자기 집 문설주와 상인방(上引枋)에 발랐다. 유월절 만찬 고기는 모두 불에 구워서 먹는데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고추냉이)과 함께 먹는다. 만약 남은 고기가 있다면 반드시 불에 태워야한다.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는 유대인들은 허리띠를 매고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곧 먼 길을 떠나는 옷차림으로 만찬을 먹어야한다. 유월절 만찬을 진행하면서 그 집안의 가장은 식구들에게 옛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한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축제의식은 유월절 만찬을 거행한 그날 밤부터 칠일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무교절행사로 이어진다. 또 유월절 축제기간에는 첫째 날과 마지막에 공적행사와 희생제사 의식을 거행하고 거룩한 집회를 연다. 모든 노동은 금지된다.
이렇듯이 유대인들은 옛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께서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셨다는 출애굽신앙 전통을 이어왔다. 유대인들은 출애굽신앙 전통 속에서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았다. 야훼 하나님은 언제든 자기 사람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행동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앙(또는 신뢰)을 확인했다. 유월절 축제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억압과 고통 속에서 항상 변함없는 희망의 끈이었다. 모든 유대인들이 유월절 축제에 참여함으로써 시대와 시대를 넘어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연결하는 해방과 구원의 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편, 옛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시기가 봄이었기에 유대인들의 유월절 축제도 항상 봄에 열린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축제의 시작은 항상 유대달력으로 니산(Nisan)월 15일이다. 유대달력 니산월은 태양력으로 3/4월에 걸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성서학자들은 유대인들의 유월절 축제를 고대 유목민들의 목축문화와 관련지어 이해하려고 한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목민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목초지를 이동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지중해성기후로 인해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우기가 시작된다. 유목민들은 이시기에 광야로 나가 가축을 기른다. 그러나 4월을 깃 점으로 건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가축들을 몰고 초승달 지역 농경지로 침투한다. 해마다 봄철에 반복되는 목초지 이동시즌에 이르러 유목민들은 신의 보호와 자비를 구하는 희생제사 의식을 거행했다. 또 유목민들은 이 봄철에 가축들이 새끼를 쳐서 계속불어나기를 바라며 가축의 첫배를 바치는 희생제사 의식을 거행했다.
실제로 성서학자들은 고대 팔레스타인 유목민들의 목축문화에 따른 희생제의 요소들이 유대인들의 유월절축제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이스라엘역사 초기부터 옛 히브리들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 의식과 팔레스타인 목축문화가 서로 섞이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