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 행동계약,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게,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게
희년신앙 행동계약,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게,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게
21세기 성서독자들은 히브리노예들의 일용할 양식으로써 만나사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받아들여야할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말 성서는 만나사건 본문의 의미와 실체로써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훈련 진실을 덮어서 숨기는 번역을 했다.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우리말 성서번역은 만나사건 본문의 상황을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 일용할 양식이 되는 놀라운 종교은혜신화’로 포장한다. 대다수의 설교자들도 위 본문을 ‘아 기적 같이 놀라운 하늘양식의 신비’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말 성서번역과 해석은 만나사건 본문의 실제상황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며 엉뚱한 알레고리다. 그것은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맞이한 ‘하늘양식 만나사건의 실제상황’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양식 만나사건의 ‘신앙의미와 실체와 그 진실’을 외면하고 멀리 달아나려는 불신앙이다. 본문읽기의 실제상황은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하늘양식 만나를 거두고 보니 많이 거둔 자가 있고 적게 거둔 자가 있었다’이다.
만나사건 본문은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저마다 능력에 따라 많이 거두고 적게 거두는 불평등을 만들어 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혀 모자람이 없도록 ‘일용할 양식 분배정의’를 실행했다고 증언한다. 한마디로 히브리 해방노예들은 야훼 하나님이 주신 하늘양식 만나를 자기 먹을 식구수대로 평등하고 정의롭게 분배했다. 사람마다 자기가 거두어 모은 것들을 오멜로 되어서 많이 거둔 사람도 남을 만큼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적게 거둔 사람에게도 모자라지 않게 했다.
여기서 만나사건 본문은 ‘로 헤에디프 함마르베 לֹא הֶעְדִּיף הַמַּרְבֶּה’라는 ‘사역형 히브리어 동사문장’을 사용한다. ‘로’는 ‘아니다’라는 부정어이고 ‘헤에디프’는 ‘넘치도록 가지다’라는 사역형자동사이다. 이 문장을 히브리어 문법과 문맥에 따라 번역하면 ‘많이 거두어 모은 사람도 남을 만큼 가지지 않았다’이다.
이어서 만나사건 본문은 ‘함마메이트 로 헤흐시르 הַמַּמְעִיט לֹא הֶחְסִיר’라는 ‘사역형 동사문장’을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로’는 ‘아니다’라는 부정어이고 ‘헤흐시르’는 ‘모자라게 하다’라는 사역형 타동사다. 이 문장을 히브리어 문맥과 문법에 따라 번역하면 ‘적게 거두어 모은 사람도 모자라게 하지 않았다’이다.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만나사건 메시지 ‘하늘에 내린 일용할 양식’
만나사건 본문읽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많이 거두기도 하고, 적게 거두기도 하는 불평등의 상황’을 보고한다. 그러나 히브리 해방노예들은 하늘양식으로써 일용할 양식에 대한 정의(正義) 곧 ‘서로생명살림으로써 일용할 양식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저마다 자기에게 딸린 먹을 식구수대로 거두어들이게 되는 ‘하늘양식으로써 일용할 양식의 실체 곧 희년신앙 밑바탕 행동’을 훈련했다.
따라서 야훼 하나님께서 히브리 해방노예들에게 주신 만나사건에서 벌어진 본문상황들은 종교기적 또는 종교은총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위한 희년신앙 행동 훈련이다.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희년신앙 밑바탕 행동에 대한 깨달음이고 의지이며 실천이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 해방노예들에게 하늘양식으로써 만나를 주셨다. 하늘양식으로써 일용할 양식훈련을 통해서 히브리 노예들의 삶 속에 찌들어 있었던 노예정체성을 말끔히 씻어내게 하셨다.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 주역으로 거듭나게 하셨다.
그럼으로써 야훼 하나님은 머잖아 히브리 지파동맹과 함께 맺게 될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준비하셨다. 하늘양식으로써 일용할 양식훈련을 통하여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밑바탕을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