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읽기

희년신앙 행동서사, 시대에 부는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

희년행동 2025. 2. 24. 11:56

시대에 부는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

 

고대 성서주변세계에는 시대마다 끊이지 않고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이 몰아쳤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은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로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지구촌제국주의 패권경쟁 광풍도 예사롭지 않다. 또한 지구촌 소제국주의 국가들인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과 인도 등 지정학 독점이익까지 얽혀져 소제국주의 갈등구조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본문 시대상황에서는 기원전 664년 예레미야 예언자 때에 이르러 이집트 땅에 파라오제국 제26왕조가 들어섰다. 그러나 파라오제국은 이집트 땅을 넘어 비옥한 초승달지역에서 제국의 위상을 펼치지 못했다. 도리어 아시리아제국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르는 세력은 바벨론제국이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유다왕국은 북이스라엘 멸망 전부터 아시리아 제국의 속국이었으나 아시리아제국이 쇠퇴하면서 잠시잠간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다시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른 바벨론과 이집트제국 사이에서 왔다갔다 의지하다가 바벨론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그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는 이참에 이집트 땅을 넘어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제국주의패권을 쟁취하려고 노력했다. 파라오 느고2세는 기원전 69년 아시리아잔당들을 도와서 바벨론제국과 한판 제국주의 패권전쟁을 벌이려고 출병했다. 파라오 느고2세는 가나안땅 해변 길을 따라 올라와서 메소포타미아 하란 땅으로 출정했다.

이 때 유다왕국은 아시리아제국의 쇠퇴와 함께 잠시잠간의 독립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요시야왕은 아시리아잔당들의 부흥과 더불어 이집트 파라오제국의 힘이 커지는 상황을 마음에 두었을 것이다. 요시야왕은 무모하게 이스라엘 땅 므깃도로 올라가서 파라오 느고2세의 제국주의 패권전쟁 출정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와의 무깃도전투에서 허망하게 전사했다. 그 이후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하스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한편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의 원정은 실패로 끝났고 아시리아제국은 완전히 멸망했다.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는 바벨론과 제국주의 패권전쟁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 느고2세는 이번 제국주의 패권전쟁 출정으로 가나안 땅과 시리아지역의 지배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유다왕국 여호야하스는 파라오 느고2세에게 왕위를 승인받으려고 그가 머물던 하맛 땅 리볼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파라오 느고2세는 여호야하스를 삼 개월 만에 폐위시키고 그의 형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다.

이 때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왕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일어나는 온갖 사회 불의와 죄악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러는 사이 기원전 65년 유프라테스 강 언저리 갈그미스와 하맛에서 바벨론과 파라오제국의 두 번째 제국주의 패권전쟁이 벌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이 두 번째 바벨론과 이집트파라오의 제국주의 패권전쟁을 카르케미시전투라고 부른다. 예레미야는 이 카르케미시전투결과를 자세하게 분석했다. 그런 후에 유다왕국이 이집트 파라오제국에 기대는 것을 절대 반대했다.

그러나 기원전 61년 여호야김왕은 이집트 파라오제국에 기대서 바벨론제국에 바치던 조공을 중단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제국의 침략을 경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597년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왕이 여호야김의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그 무렵 바벨론제국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도 전에 여호야김은 원인모를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서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제국 군대에게 성문을 열어주었으나 만 여 명의 예루살렘 상류층사람들과 함께 바벨론포로로 잡혀갔다. 바벨론제국은 요시야 왕의 셋째아들로서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유다왕으로 앉혔다.

그러나 시드기야왕은 정치판단이 서투르고 줏대도 없는 사람이었다. 시드기야왕의 궁정은 친 바벨론세력과 친 이집트세력들로 인해 늘 시끄러웠다. 시드기야왕은 여러 해 동안 바벨론제국에 조공을 바치며 평온을 유지했다.

그러는 사이 기원전 594년에 가나안 땅 주변 작은 왕국들이 시드기야왕에게 밀사를 보내 바벨론제국에 대항하는 반 바벨론군사동맹을 제안했다. 이때 예레미야는 자신의 목에 멍에를 메는 상징행위를 통해서 유다왕국과 주변왕국들은 반드시 바벨론제국의 멍에를 메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마침내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제국을 배반하고 이집트 파라오제국을 중심으로 주변 왕국들과 반 바벨론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러자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왕은 기원전 588년 두 번째로 예루살렘출정을 벌였다. 이번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직접 예루살렘출정에 참여했다. 바벨론제국 군대는 유다왕국 온 땅을 초토화시켰다.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을 완전히 파괴했다.

유다왕국은 바벨론제국 군대에게 완전히 파멸당하기 전까지 온갖 혼란과 피흘림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유다왕국 지배계층은 살길을 찾아서 친 이집트세력과 친 바벨론세력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힘 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이 바벨론제국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시드기야왕과 귀족들과 수많은 상류계층 사람들이 함께 바벨론포로로 끌려갔다.

그런 와중에도 예레미야는 유대 땅에 그대로 남았다. 그 후 예레미야는 바빌론제국이 유대와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한 그달야가 과격파들에게 암살당했을 때과격파들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 파라오제국으로 갔다. 예레미야는 이집트 파라오제국에서도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에 따라 행동하라는 예언을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이집트 파라오제국에서 남은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예레미야는 남쪽 유다왕국의 멸망을 막으려고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소리 높여 외쳤다.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예레미야 시대상황은 안타깝게도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경쟁 상황과 똑 닮았다. 주변나라들의 소제국주의 지정학 독점이익과 탐욕의 상황도 빼다 박은 듯 똑같다. 이제 21세기 한국교회와 교우들은 우리시대 한반도 지정학 위기상황 속에서 무엇을 외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