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 행동서사, 그러나 너희가 돌이켜서 내 이름을 더럽혔다.
그러나 너희가 돌이켜서 내 이름을 더럽혔다.
“너희가 ‘서로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여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했다. 내 이름이 높이 불리는 그 집 곧 내 앞에서 너희가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너희가 돌이켜서 내 이름을 더럽혔다. 너희가 사람마다 ‘그들의 바람대로 해방하여 내어 보냈던 자기남종과 여종들’을 도로 잡아들였다. 너희가 ‘남종들과 여종들을 너희에게 돌아오게 해서’ 그들을 짓밟았다.”
야훼 하나님은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에게 예레미야 예언자를 보냈다.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를 따라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하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드기야왕과 귀족들이 예레미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모든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을 맺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선포되지 않았던 ‘빚탕감과 노예해방’이 선포되었다.
본문읽기에서 야훼 하나님은 너희가 내 눈에 ‘에트-하야솨르 אֶת־הַיָּשָׁר 올바른 일’을 했다며 기뻐하셨다.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이 ‘희년신앙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에 따라 마땅한 신앙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유다왕국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도 옛 히브리 조상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에 따라 히브리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었다. 노예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의 예루살렘성 노예해방구 선포는 하룻밤의 꿈으로 끝났다. 매우 안타깝게도 그것은 풍전등화와 같은 다윗왕조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의 멸망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이제 반 바벨론 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제국 파라오 호브라가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 출정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왕은 급하게 예루살렘성 포위를 풀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집트제국 파라오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남쪽전쟁터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과 더불어 해방을 맞이한 히브리 노예들까지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전투에 대비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도리어,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해방하여 내어보낸 히브리 남종과 여종들을 다시 잡아들였다. 그리고 처절하게 짓밟아서 복종시켰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이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으로 인한 당장의 손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지배체제가 맘몬․바알 노예세상 불로소득 탐욕으로 철저하게 찌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 속에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은 이미 다 무효화되었다. 오롯이 고리대금업과 채무노예제도를 통한 이자와 이윤 등 불로소득만이 현실세계였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다시 회복할 뜻이 전혀 없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예루살렘성을 ‘빚탕감과 노예해방구로 지켜나갈 뜻’이 전혀 없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스스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지킴이로 나설 뜻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