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히브리 성서 속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찾아서
『희년신앙』희년신앙의 태동
1. 꿈의 사람요셉,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를 완결(完結)하다.
본문읽기1.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 창세기 41:14-49
본문읽기2.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 완결 창세기 47:13-26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
본문읽기에서 파라오는 인류문명사에 흔치 않았던 ‘참으로 모질고 끔찍한 채무노예제국을 욕망’한다. 파라오는 ‘자기욕망을 이루는 도구’로써 파라오 지배체제 외부인 노예성공신화 ‘꿈의 사람 요셉’을 찾아낸다. 파라오는 채무노예제국 욕망의 완성을 위해 ‘요셉이 내어 놓는 음모와 술수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요셉의 음모와 술수들을 내세워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에 동의하지 않는 ‘박사들과 제사장들’을 설득한다. 그럼으로써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꿈은 ‘파라오 지배체제 내부자들의 꿈’으로 확대되었다. 파라오와 요셉 그리고 박사들과 제사장들이 함께 채무노예제국 꿈’을 꾸었다. 참으로 파라오와 요셉 그리고 박사들과 제사장들의 소통과 연대가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다. 이집트 땅 풀뿌리 사람들을 온통 채무노예화 하려는 ‘엄청난 음모와 술수의 실체’다.
이렇듯이 본문읽기는 ‘꿈의 사람 요셉과 파라오의 꿈이 만나고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풀어 놓는다. ‘꿈의 사람 요셉 이야기의 틀거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의 완결’을 위해 짜 맞춰진다. 요셉이야기는 본문읽기와 짜 맞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이어져 왔다. 맨 처음 요셉은 형들의 손에서 ‘파라오 지배체제의 노예’로 팔렸다. 그러나 요셉은 ‘노예위치에서 두 번씩이나 파라오 지배체제의 내부자 위치’로 삶의 자리를 이동한다. 꿈의 사람 ‘요셉의 성공신화 이미지를 꾸미고 든든하게 뒤받치는 사건들’이 잇달아 벌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을 만나고 그 꿈을 완성함으로써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를 완결’한다.
파라오가 채무노예제국을 꿈꾸다
본문읽기에서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욕망은 ‘파라오 지배체제 안에서조차 흔쾌한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다. 파라오 지배체제 안에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욕망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세력은 ‘고대 이집트 문명세계의 다양한 신전종교 체제에 뿌리 내린 지식인그룹’이었다. 본문읽기는 이들을 ‘박사들 또는 예언자들’이라고 보도한다. 두 번째 세력은 ‘고대 이집트 문명세계 곳곳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신전제사장 그룹’이었다.
그렇다면 왜 ‘파라오 지배체제의 박사들과 제사장들’은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에 흔쾌하게 동의하지 못했을까? 먼저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욕망이 ‘매우 독단적이고 무모’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욕망이 ‘기존의 파라오 지배체제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은 ‘지금까지 파라오를 높이 받들어 온 이집트제국 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파라오 지배체제 ‘내부자들의 권력과 이익배분체계’를 해체하고 모든 권력과 이익을 ‘파라오 황실로 몰수하는 것’이었다.
꿈의 사람 요셉,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을 만나다
그러나 파라오는 채무노예제국 욕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본문읽기는 ‘꿈의 사람 요셉이야기’ 속으로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을 가져온다. 본문읽기는 꿈의 사람 요셉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잇대어서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 꿈을 만나게 한다. 꼭 그렇게 되어져야 하는 것처럼, 파라오 지배체제 외부인 노예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꿈의 사람요셉’을 내세운다. 그리고 마침내 파라오는 히브리 노예 성공신화, ‘꿈의 사람 요셉’을 앞세워 지배체제 내부자들에게 ‘자신의 채무노예제국 꿈을 선동하고 설득’한다. 파라오는 ‘꿈의 사람 요셉을 중재자로 끌어들여’ 파라오 지배체제 안에서 ‘채무노예제국 욕망을 타협하고 연대와 참여’를 이끌어 낸다.
꿈의 사람 요셉,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를 완결하다
고대 이집트 땅에서는 나일 강의 범람으로 인한 풍년과 흉년이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제국 파라오들마다 흉년을 대비해 ‘나일 강 언저리 땅 곳곳에 곡물창고들’을 지어 왔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제국 봉건군주들이 다스리는 ‘가나안 땅 여기저기에도 파라오의 곡물창고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본문읽기에서 꿈의 사람 요셉은 ‘흉년을 기회로 삼아 이집트 온 땅으로 굶주림을 확대’하고 깊어지게 했다. 이집트 땅의 흉년은 ‘그 땅 풀뿌리 농부들의 삶의 마당에서 굶주림으로’ 나타났다. 그 굶주림은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커졌다. 요셉은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굶주림을 기회로 삼아 이집트제국 곳곳으로 가난을’ 퍼트렸다.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가난이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커지게’ 했다.
이집트 땅 풀뿌리 농부들은 흉년 굶주림 앞에서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찍소리조차도 못 내고 오롯이 백기 투항하였다. 본문읽기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그 땅 풀뿌리 농부들의 생의 저항’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속절없이 ‘그 땅과 풀뿌리 사람들이 다함께 파라오의 채무노예’로 떨어졌다.
“요셉이 이집트제국 경계 이 끝으로부터 저 끝으로까지 도시들로 그 땅 풀뿌리 농부들을 옮겼다.” 창세기 47:21
모르면 몰라도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전체가 ‘온통 생난리를 쳐야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땅 풀뿌리 농부들이 ‘그 땅에서 뿌리 뽑혀 자기 삶을 해체 당했기’ 때문이다. 이제 자기 땅에서 뿌리 뽑혀 쫓겨난 농투성이들에게 남은 것은 ‘떠돌이 농노 인생’뿐이다. 실제로 파라오의 채무노예제국에서 ‘요셉이 끝판까지 숨겨놓았다가 내어놓은 음모와 술수’가 바로 이것이다. 오롯이 ‘그 땅 풀뿌리 농부들을 떠돌이 농노로 만드는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또렷하게 이집트 땅 ‘풀뿌리 농부들의 끝판 생의 저항의지와 숨통을 끊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그 땅 풀뿌리 농부들을 ‘노동하는 노예인간’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성서독자들은 요셉이야기를 통해서 고대 이집트 문명의 ‘피라미드 불가사의(不可思議)’를 너끈히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땅으로부터 뿌리 뽑혀 나온 떠돌이 농노들’은 언제어디서든 ‘파라오의 욕망에 따라 쓰이는 노동기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원전 2천6백 년대 이집트 파라오 쿠푸(Khufu)는 ‘매일 2만5천명을 동원해서 20여 년 동안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본문읽기에서 ‘파라오 채무 노예제국은 인류종교․문명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노예세상’이었음이 틀림없다.
히브리 노예들의 ‘희년신앙 태동’을 위한 무대를 펼치다
본문읽기는 꿈의 사람 요셉이야기를 통해서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의 배경과 무대’를 펼쳐낸다. 무엇보다도 본문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의 나타나심’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의 나타나심과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이야말로 ‘히브리 성서의 핵심신앙 사건’이기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을 ‘파라오 노예제국로부터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히브리들의 하나님’이시다.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는 인류 종교․문명사에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해방과 구원세상의 하나님’이시다. 이제야말로 파라오 채무노예제국의 ‘히브리 노예들도 언감생심 자기 하나님을 찾고 깨닫고 신앙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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