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희년신앙 읽기

어떤 농부가 겨자씨앗을 받아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희년행동 2025. 8. 17. 16:16

어떤 농부가 겨자씨앗을 받아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예수는 본문비유에서 어떤 농부가 겨자씨앗을 라본 λαβν(분사) 받아다가자기 밭에 뿌렸다고 한다. 이때 본문비유가 사용한 헬라어동사 람바노의 어근이 라브 λαβ인데 조심스레 씨앗을 받아내는 것을 말한다. 또 본문비유는 엔 토 아그로 아우투 ν τῷ ἀγρατ자기 밭에라는 헬라어 문구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비유의 농부는 유대인으로써 무엇 때문에유대생활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온갖 해악뿐인 잡초씨앗을 조심스레 받아낸단 말인가? 더구나 그 잡초씨앗을 몰래 자기 밭에 뿌려서 조심스럽게 기른단 말인가?

여기서 예수의 비유이야기의 청중들과 독자들은 예수의 겨자씨앗 비유와 관련해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에 대한 세 가지 신앙은유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잡초인생들의 나라.

둘째, 머잖아 겨자잡초가 자라듯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 온 세상을 점령하고야 말 것이다.

셋째,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야말로 겨자잡초 같은 인생들의 새로운 삶의 가치가 실현되는 나라.

 

이점에서 만약 예수가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유대 다윗왕조신앙 전통을 따라 의롭고 잘난 사람들만의 나라라고 이해했다면 예수는 전혀 다른 비유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또 로마제국체제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엘리트기득권계층의 나라라고 생각했다면 현실세계에서 수많은 비유거리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더해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라고 이해했다면 예수는 마땅히 하나님나라는 레바논 백향목과 같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수도 없이 말해지는 것처럼 레바논 백향목이야말로 곧고 굵고 높게 하늘로 뻗은 아름답고 귀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서에는 하나님의 성전과 솔로몬 왕궁을 건설하고 꾸미는데 쓰였던 레바논 백향목에 대한 찬사로 넘쳐난다. 그러니 감히 어떻게 해악뿐인 잡초 겨자씨앗이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하나님나라는 겨자씨앗과 같다라고 외친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주체가 잡초 인생들이라는 신앙은유다. 이처럼 예수가 겨자씨앗 비유이야기 속에 드리워놓은 은유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 가난한 사람, 고난 받는 사람, 억압당하는 사람,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나라라는 신앙진실이다. 나아가 이 겨자씨앗비유 은유의 핵심내용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 싹트고 뿌리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한다면 머잖아 온 세상을 뒤덮게 되리라는 신앙의지다.

 

참으로 겨자씨앗은 모든 씨앗들 가운데 가장 작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자라나게 될 때에는 여느 푸성귀들 보다 더 크게 자라서 나무가 된다.”

 

여기서 예수는 유대 땅 농경지에서 지독한 잡초겨자로써 가장 작은 씨앗이미지와 농경지의 소중한 작물로써 푸성귀와 그것보다 더 크게 자라나는 나무의 이미지를 맞대어 비교한다. 이로써 예수는 겨자씨앗 비유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야말로 쓸모없고 해악뿐이라고 여겨지는 잡초인생들의 나라라고 증언한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 온 세상을 점령함으로써 온 세상이 잡초인생들의 삶의 터전이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참으로 예수는 겨자씨앗비유의 핵심 신앙은유를 통해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잡초인생들의 삶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삶의 가치들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본문비유이야기 속 농부는 일부러 조심스럽게 겨자씨앗을 받아낸다. 그리고 몰래 자기 밭에(마태복음), 땅에(마가복음), 정원에(누가복음)’ 애써서 받아 낸 겨자씨앗을 심는다. 비유이야기 속 농부는 우연히 자기 밭에 자라난 겨자잡초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농부는 유대생활율법에 따라 얼른 겨자를 뽑아서 불태워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비유이야기 속 농부는 왜, 마땅히 박멸해야할 잡초인 겨자씨앗을 일부러 받아다가 자기 밭에 몰래 심어야 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토록 정성을 다해서 잡초겨자를 겨자나무로길러내야 했을까?

이와 관련하여 60-7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한 두포기의 양귀비를 몰래 재배하곤 했다. 양귀비가 마약으로써 해롭고 불법이었지만 위급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만큼 효용성 있는 구급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양귀비는 오랜 세월동안 전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농촌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가정비상약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