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지지 않는 삶
이제 본문읽기1.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말성서는 본문읽기1.첫 문장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라고 두루뭉술하게 번역을 해놓았다. 그래서일까 ‘어떤 목회자가 본문구절을 가지고 설교한 내용’을 필자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교우여러분, 결코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빚을 지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진리는 ‘빚 없이 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 빚지게 하지 말라’는 것인데 ‘보증서거나 세우지 말라’것입니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교우들은 탐욕적이고 착취적인 투기금융자본경제 속에서 ‘빚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경험한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가족이 해체되어 노숙자,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정으로 떨어지는 등’ 빚으로 인한 수많은 고난들을 직접보고 듣고 경험한다.
특별히 한국사회․경제에서는 ‘채무자의 온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엮어서 다함께 빚더미에 나앉게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투기금융자본들의 영업행태가 ‘다른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끌어 들일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빈곤운동 단체들이 ‘투기금융자본들의 보증인제도 철폐운동’을 해왔다. 이제는 대부분의 시중은행에서 보증인제도를 폐지한 상황이다.
그러나 어째든 본문읽기에 대한 ‘어떤 목회자의 설교는 참으로 엉터리 같은 일’이다. 본문내용과 신앙의미를 ‘빚지지 말고 살아라 또는 서로 빚보증서지 말라’라고 이해하는 설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나아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결코 서로에게 빚이 되거나 빚을 지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 합시다’라는 설교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다. 참으로 한국교회는 본문을 읽고 해석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운운하지만 행동하지도 못할 사랑타령만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본문읽기를 통해서 로마제국체제의 착취와 독점과 쌓음의 욕망을 향한 대항세상으로써 ‘빚지지 않는 삶’을 강조한다. 또 그 실천행동으로써 ‘서로사랑의 빚’을 제안한다. 바울은 빚지지 않는 삶을 통해서 ‘서로사랑의 빚 곧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의존하는 공동체경제’ 실천행동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본문에 앞선 로마서 13:1-7 본문에서 로마제국체제의 터무니없이 폭력과 죽임의 권력 앞에서 ‘웅크려 있으라’고 권유한다. 왜냐하면 로마제국 지배체제는 ‘나의 선한 행동에 있어서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적대행위를 자제하라고 권고한다. 참으로 바울은 로마제국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체제를 향한 대항세상으로써 ‘빚지지 않는 삶 곧 서로 사랑의 빚’을 강조한다.
그래서 21세기 성서독자들은 본문의 첫 문장을 제대로 읽기위해 ‘바르게 번역’해야 한다. 실제로 본문전체는 산문으로 읽히지만 문장 하나하나는 시(時)처럼 쓰여 졌다. 첫 문장은 가정법 문장인데 ‘조건절과 주절의 순서가 뒤바뀌어서 강조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우리말성서는 ‘본문읽기 가정법문장의 도치(倒置)를 편한 문장으로 바꾸어 번역’하면서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당신들은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빚지지 마십시오. 만약,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때 본문은 ‘메데니 메덴 Μεδενὶ μεδένʹ 아무에게도, 아무것도’라는 헬라어 낱말을 사용한다. ‘메데이스’라는 접속사를 ‘여격으로 또 목적격’으로 겹쳐서 사용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 헬라어 낱말의 격변화를 살려서 ‘아무에게도, 아무것도’라고 번역했다. 참으로 바울은 진심으로 ‘빚지지 않는 삶’을 강조한다.
그런데 본문의 첫 문장은 ‘만약, 서로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면’이라는 가정법문장이다. 따라서 성서 헬라어문법에 맞게 ‘에이 메 εἰ μηʹ 만일 ~가 아니라면’이라는 가정법 조건 절이 문장의 맨 앞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조건절과 주절을 뒤바꾼 이유는 ‘문장내용과 의미를 강조’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바울은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우거나 빚을 져야한다면 오롯이 서로사랑의 빚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에게 ‘사랑의 빚은 오롯이 선물이고 은혜’다. 그것은 곧 ‘나에게 넘치는 쓰임과 필요를 헐어서 다른 사람의 모자라는 쓰임과 필요를 채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빚은 빚이 아니다. 빚지지 않는 삶 또는 빚 없는 세상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또 한편 본문 첫 문장은 ‘바울이 유대인 바리새파였다’는 점에서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율법)의 새로운 재해석’이다. 참으로 바울의 사랑의 빚은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의 이자금지와 사회경제 돌봄 그리고 약자보호와 쉼이 있는 노동세상 등’ 야훼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한통으로 묶어서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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