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지지 않는 삶이란 곧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온 ‘빚’(쓰임과 필요)을 되돌려주는 삶이다.
이렇듯이 ‘빚지지 않는 삶 곧 빚을 되돌려 주는 삶’이야말로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정의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밑바탕’이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도 언제 어디서든 ‘자기의 빚 곧 자기 쓰임과 필요’을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기노동을 통해서 그리고 자기직업과 자기재능과 달란트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의 빚을 다른 사람들에게 되갚아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빚 곧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나의 쓰임과 필요’를 되돌려주지 않고 쌓아놓았을 때 ‘그것이 바로 자산, 재물, 자본’이다. 한마디로 모든 ‘자산=재물=자본’의 실체는 ‘다른 사람들의 쓰임과 필요를 착취하고 독점하여 쌓아 놓은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 나의 쓰임과 필요를 되돌려주지 않고 쌓아놓은 것을 ‘사유재산’이라고 한다.
또한 사유재산을 많이 쌓아놓은 사람을 ‘플루시오스 πλούσιος 부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부자란 ‘플레토 πλήθω 넘치도록 쌓은’자 일뿐이다. 그래서 신약성서는 그 부자들의 사유재산을 또 다른 말로 ‘휘파르콘타 ὑπάρχοντα 독점사유재산’이라고 부른다. 이때 ‘휘파르콘타’라는 헬라어 낱말은 ‘휘포 ὑπό ~아래로 + 아르코 ἄρχω 지배하다 또는 움켜쥐다’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21세기 독점자산가(또는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쓰임과 필요를 끌어 모아 내 손안에 움켜쥐고 되돌려주지 않는 ‘스크루우지’들이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데모스 풀뿌리 해방투쟁’을 통해서 ‘빚’(다른 사람의 쓰임과 필요)을 되돌려주지 않고 쌓아놓는 것을 ‘불의 또는 죄악’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고대 ‘데모스 풀뿌리 해방투쟁’의 이러한 사회․종교․정치․경제 공동체 깨달음은 ‘고스란히 초대교회의 공유생활경제’로 전이(轉移)되었다. 실제로 신약성서에서 ‘죄 사함’이라는 헬라어 용어는 ‘빚 탕감’ 용어와 동의어다. 주기도문은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이 사실을 증언’한다.
“당신은 우리에게서 우리의 빚들을 탕감하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들에게 빚 탕감을 해준 것처럼.”
이제 주기도문에서 더욱더 또렷해지는 예수신앙진실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쓰임을 끌어 모아 쌓아둔 우리의 불의한 빚’(독점사유재산)을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워 그들을 채무노예로 만들었던 우리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 그것이 곧 21세기 지구촌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예수신앙 핵심이며 참이며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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