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 풀뿌리사람들의 해방투쟁으로써 ‘풀뿌리 정의 또는 民衆正義’
그런데 바울이 강조한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빚지지 말라’는 제안은 고대 그리스 풀뿌리사람들의 해방투쟁전통 안에서 아주 오래 된 ‘풀뿌리 정의 또는 民衆正義'다. 그것은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채무노예 없는 세상’ 투쟁으로써 ‘옛 히브리들이 희년신앙 행동계약으로 꿈꾸던 해방과 구원세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21세기 성서독자들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역사인식’ 가운데 하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등 지중해세계야말로 전통적인 노예사회였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노예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노예제도는 고대 지중해세계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모든 사회에 다 있었던 제도’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등 지중해세계 노예제도에서 핵심문제는 ‘채무노예제도’였다. 이 채무노예제도가 고대 그리스 풀뿌리 사람들의 해방투쟁의 원인이었고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핵심내용’이었다.
이렇듯이 고대 지중해세계의 채무노예제도의 핵심요소는 ‘옾페일레마 ὀφείλημα 빚’이다. 옾페일레마(빚)은 ‘의무, 가치, 얽맴, 구속’ 등 그 시대의 사회․종교․정치․경제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등 지중해세계에서 ‘빚은 죄와 동의어’였다. 따라서 고대 지중해세계에서는 ‘옾페일레마 = 옾페일레테스 ὀφειλέτης 죄 또는 죄인’이라는 사회․종교․정치․경제 이데올로기가 거셌다.
이처럼 채무노예제도는 그리스와 로마제국 등 지중해세계에서 ‘사회․종교․정치․경제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채무노예제도가 사회․종교․정치․경제 정당성 이데올로기를 획득함으로써 ‘그 땅 풀뿌리사람들은 채무노예제도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고대 지중해세계에서는 ‘채무노예야말로 약탈노예나 전쟁노예와 다르게 저항과 반란의 염려’ 없었다. 채무노예는 ‘평생을 주인의 땅에 매여 살면서 대대로 주인에게 충성해야하는 소작농노’로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등 지중해세계에서는 ‘그 땅 풀뿌리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워 채무노예로 삼는 것’자체가 아주 훌륭한 경제활동이며 부의 축적수단이었다.
그런데 ‘채무노예 또는 그 땅에 매여 사는 소작농노’라고해서 사람이 아닐 수 있을까? 참으로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해방투쟁’이 고대 그리스 소작농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오롯이 주인의 땅에 매여서 살 수밖에 없었던 소작농들과 소작농노들이 함께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해방투쟁을 일으켰다. 인류역사학자들은 이들을 ‘데모스 δῆμος’라고 부른다.
실제로 데모스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 또는 소작농노 등 농투성이들만의 마을’이었다. 이렇게 기원전 6세기 고대 아테네의 ‘데모스 해방투쟁’을 통하여 그 유명한 솔론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소작농노 등 풀뿌리 사람들의 해방투쟁을 등에 업은 솔론개혁의 핵심내용은 ‘세이샄테이아 σεισάχθεια 빚더미 둘러메치기’였다. 솔론은 ‘채무노예해방과 빚 탕감 그리고 채무노예제도 폐지’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처럼 고대 아테네 데모스의 풀뿌리 해방투쟁은 21세기 민주주의의 핵심권리인 직접민주주의의 꽃 ‘데모 demo 집회와 시위’가 되었다. 데모는 ‘데모크라티아 δημοκρατία 시민권력 또는 국민주권’의 핵심내용이다. 따라서 21세기 민주주의 핵심은 ‘데모크라시 = 데모 demo 풀뿌리사람들 + 크라시 cracy 정치’다. 곧 ‘시민정치 또는 풀뿌리정치’다. 그러므로 풀뿌리정치에 더해서 ‘+a 대의정치’가 이루어 져야만 ‘21세기에 걸맞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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