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대상황 속에서 기독교신앙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제 21세기 지구촌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 국가들에서는 단 하나의 사회․경제모토(motto)만 있을 뿐이다.
“모든 이익을 사유화하고 모든 손해를 사회화하라.”
이러한 경제모토(motto)는 지금 한국사회가 생생하고 처절하게 겪고 있는 현실상황과 똑같다. IMF 외환위기 이전 한국사회는 가계저축이 많았고 기업들은 대부분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삼성 등 재벌기업이라도 부채가 많았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0.01%독점재벌․대기업들이 우리사회의 모든 부를 몰아서 쌓아놓았다. 독점재벌․대기업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많은 돈을 쌓아놓고도 이 돈들을 어찌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에 이 땅의 풀뿌리 사람들은 2천조 원을 넘겨 감당할 수없는 가계부채를 지고 너나없이 채무노예로 살아간다. 더해서 대한민국 정부조차도 가계부채에 못지않은 공공채무를 지고 허덕인다.
이제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해결해야만 하는 핵심과제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채무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이 땅 풀뿌리 사람들의 생활경제문제’다. 더해서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커지는 사회․경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다. 참으로 한국사회․경제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직업, 소득, 자산, 교육, 취업 등 양극화와 불평등이 지구촌최고 수준이다.
IMF 외환위기 이전 너도 나도 중산층이라고 뽐내온 그 많던 중산층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졌다. 이제 대다수 풀뿌리 사람들이 저소득층인 가운데 ‘중산층으로 오를 사다리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소수 대기업 정규직 등 ‘중산층이라고 말하기조차 멋쩍은 임금노예들’은 상류층으로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저 21세기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에서 자신들의 ‘한치 앞도 장담하지 못할 운 때’를 감지덕지 즐거워할 뿐이다.
참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21세기 이 땅 풀뿌리 사람들에게는 한숨과 눈물조차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다. 눈을 비벼 뜨고 있는 순간에는 단 일분일초도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 이 땅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무한경쟁․독점․쌓음․소비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 이데올로기를 학습’한다. 태어나서부터 자라고 성인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온 생(生)이 생존경쟁 전쟁터’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에서 단 한차례라도 실패하면 ‘평생을 가난과 채무노예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눈뜨면 일어나서 죽기 살기로 경쟁하고, 피투성이 되어서야 눕고, 피투성이로 일어나 또 싸워야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 땅에서 발 딛고 사는 모든 이들이 삶으로 학습하고 경험하는 생(生)의 현장’이다.
참으로 이제 어떤 정치지도자라도, 어떤 경우에라도 21세기 신자유주의 시장경쟁 체제로는 ‘한국사회․경제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 무한경쟁․독점․쌓음․소비욕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는 ‘오롯이 사회․경제 양극화와 불평등만을 키울 뿐’이다. 노령화와 노인빈곤 그리고 인구절벽 문제 등 ‘우리사회 미래의 절망들을 양산해 낼 뿐’이다. 더해서 ‘하나님과 하나로 창조생명생태계’를 말살할 뿐이다. 나아가 ‘21세기 지구촌 기후위기에 가속페달을 장착 할 뿐’이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기독교신앙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이어야 할까?
21세기 우리시대 상황에서 교회는 결코 긍정적인 답을 내지 못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교회는 지난 20세기 내내 친일․반공․군사독재체제의 내부자였다. 21세기 이르러서도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의 맨 앞장 길놀이 패’로 떨어지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의 ‘무한경쟁승리와 독점을 통한 부와 권력쟁취를 하나님의 복’이라고 선전하고 선동한다. 한국교회가 스스로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에 기생해서 대형화와 독점화’를 이뤘다. 그리고 마침내 21세기 한국교회는 독점종교로써 ‘부와 권력을 쟁취하며 이를 세습한 후 사유화’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 우리시대의 한국교회는 변혁해야만 한다. 기독교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맨 앞잡이 길놀이 패’ 이어야한다. 그것이 곧 ‘이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예수신앙 정신’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언제나 자기시대의 예수부활신앙 공동체로써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Ⅱ’을 여는 문(주체)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예수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의 재구성으로써 ‘시대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Ⅱ’을 위한 밑바탕을 튼튼하게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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