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희년신앙 읽기

사마리아 사람

희년행동 2025. 8. 23. 20:48

사마리아 사람

 

그렇다면 예수의 비유이야기의 유대청중들은 세 번째 강도만난 사람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으로 누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어떤 착한 유대인이다.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있던 유대청중들은 다음 등장인물이야말로 마땅히 어떤 착한 유대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세 번째 등장인물이 어떤 착한 유대인이라면 비유의 강도만난 사람의 흐리멍덩한 정체성과 더불어 거반 죽어가는 그의 생존문제 마저도 그리 큰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착한 유대인이 와서 강도만난 사람을 돌보고 치료해 준다면 율법사와 유대청중들은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될터였다.

그러나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유대청중들의 이러한 열망을 철저하게 짓밟는다. 그러면서 예수는 놀랍게도 세 번째 등장인물로 사마리아사람을 내세운다. 어떤 착한 유대인 대신에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또 짐승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사마리아사람을 등장시킨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율법사와 유대청중들은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사마리아사람은 앞서 등장한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강도만난 사람을 못 본체 지나치지 않는다. 도리어 사마리아사람은 그 강도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 와서상처에 포도주를 붓고 올리브기름을 바른 후에 그 상처를 싸맸다. 그리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주었다.

이튿날 사마리아사람은 주막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강도만난 사람을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경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이때 예수의 비유이야기에서 강도만난 사람의 처참한 상황에 반응하는 사마리아사람의 착한행동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에 대한 현실은유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비유는 불쌍히 여기다라는 표현으로 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헬라어동사를 우리말로 실감나게 옮기면 애간장이 타다 또는 애간장이 녹다라는 뜻이다. 신약성서에서 이 헬라어동사는 의례적으로 삶의 고난과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는 동사다.

이처럼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강도만난 사람의 처참한 삶의 상황을 향한 사마리아사람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에 스스로를 동화시킨다. 그럼으로써 유대사회종교정치 공동체관계의 차별적이고 배타적이며 퇴행적인 규범에 맞선다. 이렇듯이 예수의 사랑의 이중계명 앞에서는 율법도, 예루살렘 성전제사도, 어떤 종교규범도, 권위도, 체면도 다 쓸데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