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풀이
예수부활신앙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시즌Ⅱ이다.
예수부활신앙, 갈릴리 풀뿌리 사람들의 유언비어 신앙
매년 부활절이 되면 기독교회들은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노래한다. 교회마다 이웃들에게 부활절 달걀을 돌리는 등 기꺼이 온 사회가 부활의 기쁨과 소망으로 넘쳐나기를 기도한다. 특별히 21세기에는 ‘하나님과 하나로 창조생명생태계의 파괴’와 관련하여 부활신앙을 강조한다. 부활의 예수를 본받아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박힌 탐욕과 교만을 몰아내자고 호소한다. 나아가 언제나 그랬듯이 ‘부활의 기쁨과 소망과 능력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돌봄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자’고 외친다.
그런데 본문읽기1.에서는 21세기 기독교회들이 그토록 기뻐하고 소망하는 예수의 부활이 ‘공포와 전율과 두려움’으로 묘사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본문읽기1.에서는 부활의 첫 새벽에 몇몇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찾았다. 여인들은 예수의 무덤 문이 열려져있는 것을 보았다. 여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들은 ‘예수의 시신이 온데간데없는 가운데 흰옷을 입은 청년이 무덤 오른 편에 않아 있는 것’을 보았다. 여인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고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청년이 두려워 떠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여러분은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군요.
그분은 부활하셨어요.”
“그러나 그 여자들은 무덤으로부터 뛰쳐나온 후 도망쳐버렸다.
왜냐하면 두려움과 공포심이 그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들은 무서워 떨며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여인들은 예수의 무덤을 빠져나온 후 아예 도망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앞에 벌어진 일들이 너무도 놀랍고 두려운 일이라서 얼이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이때 본문은 ‘에크탐베오 ἐκθαμβέω’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에크탐보스 ἔκθαμβος 경악 또는 공포’라는 낱말에서 유래되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놀랍고 두려워서 넋이 나갔다’는 표현이다. 또 본문은 ‘트로모스 τρόμος 공포 또는 전율’이라는 헬라어 낱말을 사용한다. 이 낱말은 ‘엑스타시스 ἔκστασις 무아경 또는 활홀경’이라는 낱말과 동의어다. 풀어서 새기면 ‘무시무시한 공포와 전율로 인해 얼이 빠져 있는 상태’다.
더해서 본문은 ‘에포분토 ἐφοβοῦντο 무서워 떨며’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헬라어 문법에서 ‘미완료중간태’라고 하는데 ‘과거의 사건이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표현한다. 따라서 여인들은 ‘부활의 첫 새벽사건으로 인한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힌 채’ 거기서 스스로 헤어나지 못한다. 도대체 여인들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두려워했을까?
이와 관련하여 예수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예루살렘성전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신성 모독죄로 죽음의 고발’을 당했다. 또 로마제국의 총독으로부터 ‘반역죄로 몰려서 사형언도’를 받았다. 예수는 ‘그 죗값에 걸맞게 십자가처형’을 당했다. 실제로 예수는 살아생전에도 유대사회․종교․정치 공동체의 불온세력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로부터 경계대상’이었다. 서기관과 율법사와 랍비 등 예루살렘 종교 엘리트․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갈릴리 나사렛사람’이라는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예수는 예루살렘입성 때에 ‘자기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대던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가 아니라 ‘위대한 다윗후손 메시아 예수’를 절절하고 간절하게 열망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조차도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를 미워하며 업신여겼다. 더 나아가 ‘십자가에 처형된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부활’도 전혀 바라지 않았다. 실제로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다시 부활한다 해도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부활’이라면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는 ‘죽었다가 부활하는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보다 죽지 않고도 승리하는 다윗후손 메시아 예수’가 더욱 더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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