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은 갈릴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예수의 참된 부활은 어디에서 일어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의 부활은 갈릴리에서 일어난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게 될 거다.
그러나 나는 삼일 만에 부활할거야.
그리고 나는 너희들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
거기서 너희를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런데 왜 갈릴리일까? 예수야말로 ‘예수스 호 나자레노스 Ἰησοῦς ὁ Ναζαρηνός 나사렛사람 예수’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 전승에서 이 이름은 예수의 독특한 별명이다. 유대인들은 같은 이름을 가진 형제들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하여 아버지이름 또는 출신지역을 앞세워 별명을 짓는 관습을 따랐다. 이 경우 출신지역에 대한 언급은 일종의 성(姓)과 같은 역할을 했다. 따라서 마가복음저자는 ‘나사렛사람’이라는 예수의 별명을 ‘나사렛 풀뿌리 사람 또는 나사렛 출신’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갈릴리는 옛날부터 ‘유대인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서로 섞여 살던 이스라엘의 변방’이었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제국에 멸망당한 이후에 여러 이방민족들이 갈릴리로 들어와 살았다. 뿐만 아니라 갈릴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를 거쳐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목이었다. 또 메소포타미아에서 페니키아의 항구도시들을 거쳐 지중해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떠돌이 유랑민들이 갈릴리지역으로 몰려들어 왔다. 따라서 갈릴리는 예루살렘 사회․종교․정치 공동체 기득권세력들에게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렸다. 한마디로 ‘흑암과 멸시의 땅’으로 치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리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하며 기후가 온화’했다. 따라서 다른 어떤 유대지역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풍성한 농산물이 생산 되었다. 갈릴리의 비옥한 평지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등 곡물과 채소들이 재배’되었다. 구릉지와 산지에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이 재배되었다. 고대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 3권’에서 ‘갈릴리는 초목이 울창하고 무성하며 모든 종류의 나무들이 잘 자란다’고 기록했다. 또 풀뿌리 농부들이 온 땅을 경작함으로써 ‘노는 땅이 없다’고 전했다.
한편 요세푸스는 ‘갈릴리호수에 모든 종류의 물고기들이 풍성하다’고 기록했다. 요세푸스는 ‘잉어, 돌잉어, 청어’ 등 20여종의 물고기를 열거하면서 ‘맛과 생김새에 있어서 다른 지역의 물고기들과 다르다’고 전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물고기는 ‘베드로 물고기’라고 알려졌다. 베드로 물고기는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알과 새끼를 입안에 넣어서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드로 물고기는 새끼를 입에서 내보냈다가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다시 입안으로 받아들여서 새끼를 보호한다.
이렇듯이 갈릴리 땅은 유대지역 다른 어는 곳보다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런 만큼 고대 파라오 노예제국은 물론 파라오의 봉건군주들로부터 혹독한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실제로 옛 히브리들의 가나안 땅 노느매기 동맹 이전의 갈릴리 땅은 ‘파라오제국 봉건군주들의 영지’였다. 파라오제국의 갈릴리 땅 봉건영주들은 풀뿌리 사람들을 소작농노로 삼아 봉건영토를 경작했다. 실제로 갈릴리 땅에는 파라오 노예제국의 포도주와 곡물창고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시대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갈릴리 땅은 다른 유대지역과 달리 소수의 부재지주들이 풀뿌리 소작농들을 거느리면서 대토지를 경작했다. 또 헤롯왕가도 갈릴리에서 대규모 토지를 차지했다. 헤롯왕가는 풀뿌리 소작농은 물론이고 농노들과 날품팔이들을 고용하여 대토지를 경작했다.
이렇듯이 갈릴리 땅 풀뿌리 소작농들은 지주들에게 생산물의 30-40%를 지대로 바쳐야만 했다. 그러고도 로마제국과 헤롯왕가에게 세금으로 40%정도를 더 뜯겼다. 그러고 나서 겨우 남겨진 20-30%의 생산물로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따라서 풀뿌리 소작농들은 밀린 지대와 세금채무로 인해 소작농노로 팔리거나 하루살이 품꾼농부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온갖 물고기가 풍성했던 갈릴리호수는 토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그나마 어부들이 농부들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부들 가운데 일부 여유 있는 사람들은 어업조합을 만들었다. 어업조합을 내세워서 여러 척의 배를 공동구입하고 공동으로 고기잡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어부들에게서 물고기를 받아다가 소규모 염장업을 했다. 실제로 갈릴리호수 주변의 마을에서는 물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소규모 염장업이 발달했다. 물론 ‘막달라’에서 제법 큰 규모의 염장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소금에 절인 물고기들은 지중해를 건너 멀리 로마와 이베리아(스페인지역)에까지 수출되었다. 따라서 지중해세계 사람들은 갈릴리호수를 헬라어로 ‘타리코스 τάριχος 소금에 절인 생선’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갈릴리호수는 이방인들에게 ‘타리체아’라는 별명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갈릴리호수의 이러한 여유로움도 곧 끝장을 맞이하고 말았다. 갈릴리 봉건왕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 호숫가에 ‘티베리우스’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를 옮겨왔기 때문이다. 티베리우스는 로마황제를 기념하는 도시로써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후 헤롯안티파스는 막달라에 대규모 물고기 염장시설을 설치하고 갈릴리호수 염장업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갈릴리호수의 어부들은 어업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애써 잡은 물고기를 헐값으로 강제수매 당했다. 따라서 갈릴리호수의 물고기를 통해서 생계를 꾸리던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생계의 터전을 빼앗겨 버렸다. 그들은 하릴없이 하루살이 날품팔이로 떨어지거나 떠돌이 유랑민이 되어야만했다.
바야흐로 이러한 갈릴리 땅 풀뿌리 사람들의 고난과 절망 속에서 ‘헬라제국 이후 유대의 모든 대항봉기는 갈릴리에서 시작’되었다. 또 유대인들의 ‘메시아운동 또는 메시아전쟁’ 역시 그 진원지(震源地)는 대부분 갈릴리였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결사단체가 열심당(熱心黨) 또는 젤롯당(Zealot)이다. 이들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나타나 ‘위대한 다윗왕국을 회복하게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한 갈망을 통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로마제국과 투쟁을 벌였다.
실제로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시몬과 유다 등 몇몇 사람은 젤롯당원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젤롯당원들 가운데는 ‘시카리우스 σικάριους 단도를 품은 사람들’이라는 결사체가 있었다. 그들은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며 로마제국 당국자들이나 로마제국에 기생하는 기득권계층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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