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모든 풀뿌리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예루살렘 예수부활신앙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유재산들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롯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공유물들이었다. 모든 필요와 쓰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필요와 쓰임을 끌어 모아 사유재산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지우는 행위야말로 모든 죄악가운데 가장 큰 죄악’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예수부활신앙공동체 공유경제는 매우 현실적이었다. 소유물의 명의를 옮기지 않고 서로 공유했다. 그러다가 밭들이나 집들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팔아서 판값을 가져와 사도들의 발치에 놓아두곤 했다.
예를 들면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레위사람으로서 사도들로부터 ‘바르나바스 Βαρναβᾶς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요셉의 경우이다. 그는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치에 놓았다. 그렇게 사도들의 발치에 놓인 돈들은 ‘누구에게나 필요와 쓰임을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졌다. 따라서 예루살렘 예수부활신앙 공동체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루살렘공동체에 대한 ‘바깥의 반응’은 어땠을까?
“모든 사람에게 경외심이 일었다. 많은 기적들과 표징들이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든 풀뿌리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주님이 그 예수부활신앙 공동체에게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셨다.”
‘엨콘테스 카린 ἔχοντες χάριν 그들이 (모든 풀뿌리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얼마나 멋있는 칭찬인가? 이와 관련하여 예루살렘 예수부활신앙 공동체와 예루살렘 바깥 초대교회 예수부활신앙 공동체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실제로 예수부활신앙 공동체들은 로마제국체제를 향한 대항행동 결사체로써 로마제국 안에서 새로운 대안세상(alternative society)이었다. 로마제국 지배체제 안에서 그들의 관계는 ‘사회․종교․정치․경제 공동체 네트워크’였다. 예루살렘공동체와 로마제국 안에서 예수부활신앙 공동체 사이에는 끊임없는 ‘코이노니아 κοινωία 친교와 나눔’이 이루어졌다. 또 ‘디아코니아 διακονία 섬김과 봉사 및 카리스 χάρις 선행과 은총’의 표상(表象)으로써 ‘거룩한 모금’이 이루어졌다. 옛 우리말 성서는 예루살렘공동체와 초대교회 공동체들의 거룩한 모금을 한자말로 연보(捐補)라고 번역했다. 이때 연(捐)은 ‘버릴 捐인데 버리다 또는 주다’라는 뜻이다. 또 보(補)는 ‘도울 補인데 돕다 또는 보태다’라는 뜻이다.
참으로 연보는 21세기 지구촌교회들 안에서도 매우 소중한 ‘예수부활신앙 공동체행동’으로 되살아나야만 한다. 연보야말로 ‘자기 사유재산들을 내놓아서 다른 사람의 모자라는 필요와 쓰임을 채우는 교회의 이웃사랑 신앙행동의 핵심내용’이다. 21세기 한국교회와 교우들이 마땅히 행동해야만 하는 ‘예수부활신앙의 핵심 신앙행동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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