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희년신앙 읽기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세 종이야기

희년행동 2025. 8. 11. 21:55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세 종이야기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자기능력에 맞춰서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

곧바로,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 나가서 그것으로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그 종이 이익을 얻어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 맡은 종도 이익을 얻어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떠나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은화를 묻었다.”

 

여기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은 세 명의 종들이 차례로 언급된다. 이렇게 예수의 비유이야기에서 차례로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이때 앞선 두 명의 등장인물은 잇달아서 서로 비슷한 또는 연계된 사건을 일으키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반면에 세 번째 등장인물은 앞의 두 명의 등장인물과는 전혀 다른 사건을 일으키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이 경우 예수의 비유는 마지막 등장인물이 일으키는 사건과 행동을 통하여 억세고 힘차게 비유의 은유들을 쏟아낸다.

이점에서 21세기 성서독자들은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일으키는 사건과 행동을 쫓아서 비유읽기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성서독자들은 본문 비유이야기에 숨겨진 예수의 절절한 육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독자들은 본문비유읽기에서 한 달란트 맡은 종과 관련한 사건과 행동을 통해 어떻게, 어떤 은유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지금까지 서구교회가 본문비유를 읽고 해석해온 내용들을 정리하면 대체로 이렇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달란트(재능)을 크다 작다 불평하지 마라. 다만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서 성공해라.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크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벌이는 사건과 행동을 쫒아서 본문비유를 읽다보면 이제껏 서구교회들이 반복해온 해석들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비유풀이는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이야기의 실제 내용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한 해석은 서구전통주의 교회들의 메시아 종말론신앙 또는 그리스도 재림신앙에 따른 알레고리 상상일 뿐이다. 나아가 그것은 서구 제국주의 기독교회들의 자본주의 윤리지침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를 통해서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의 착취와 독점과 쌓음의 폐해를 폭로한다. 나아가 로마제국 지배체제 맘몬자본 권력욕망의 실체를 까발린다. 그럼으로써 로마제국 맘몬자본지배체제를 향한 대항행동으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대안세상’(alternative society)을 제안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비유읽기에서 주인이 자기 종들에게 맡기는 돈의 크기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등어마어마하다. 그러면서도 주인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제국의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또 로마제국의 유명한 정치가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도 북아프리카에 많은 자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노예대리인들에게 자산관리와 투자를 맡겨두고 로마에서 여유로운 활동을 했다.

또 한편 본문비유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돈놀이 하는 은행가가 등장한다. 따라서 본문비유의 내용과 상황으로 보아 본문비유읽기에서 주인은 예수시대의 대상인이거나 대자본가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에도 대상인 또는 대자본가들이 있었을까? 대다수의 성서학자들은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에 크고 작은 상인들과 자본가들이 존재했다고 이해한다. 실제로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은 로마제국 동방식민지의 핵심이었던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 로마제국의 대상인 또는 대자본가들에게도 예루살렘에 자기사업장을 두어야 할 필요성이 존재했다. 이렇듯이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에는 대상인 대토지주 세금청부업자 은행가 등 큰 손 자본가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자기사업체의 국제 업무와 사회정치적인 이유로 로마제국 여러 식민지역들을 여행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 사업장을 둔 대상인과 대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소유 자산들을 맡아서 관리해 줄 노예대리인들을 거느려야만 했다. 이때 주인은 자기 종들의 사업재능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능력에 따라 지분을 나누어 맡겼을 것이다.

실제로 본문비유는 카타 텐 이디온 뒤나민 καττν δίον δύναμιν 한 사람 한 사람 자기능력에 맞춰서라는 문구를 통하여 이러한 상황을 증언한다. 이로써 대자본가인 주인은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 속에서 노예대리투자 유한책임제도의 특혜를 누렸다. 노예유한책임 투자제도야말로 대자본가들이 노예대리 투자자들을 앞세워 무한불로소득 투자에 나설 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이렇듯이 본문비유에서 노예대리 투자자들을 다루는 주인의 자본투자행태는 21세기 독점투기자본들의 무한불로소득 자본투자행태와 판박이다.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 독점자본들은 무한경쟁과 차별대우를 통하여 임금노예들의 잠재능력을 밑바닥까지 쥐어짤 수 있다.

참으로 예수의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에서처럼로마제국으로부터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 이르기까지 맘몬자본권력은 무한착취와 독점과 쌓음을 추구해왔다. 그것은 언제나 쉽고 가능한 일이었다.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에서 대상인과 자본가들은 로마제국체제와 야합하여 얼마든지 식민지주민들을 약탈하고 착취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체제에 빌붙어 사익을 추구하는 예루살렘 소규모 자본가들에게도 무한불로소득 창출이 식은 죽 먹기였다.

실제로 고대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예루살렘성전에 바쳐질 희생동물들을 거래하는 일은 대제사장가문의 독점사업이었다. 또한 성전세를 내기 위한 성전화폐 교환사업도 그들의 독점사업이었다. 나아가 유대식민지 주민들에게 걷어야 하는 인두세 청부업도 예루살렘 자본가들의 독점사업이었다.

그러므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종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 큰돈을 밑천삼아 사업(또는 사업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 종들이 저마다 1%라는 엄청난 자본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때 본문비유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은 종들의 삶의 행동양식을 표현하기 위해 활발하고 거침없는 3음보 동사문장을 사용한다.

 

곧바로,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 포류테이스 πορευθείς 나가서 그것으로 에르가사토 ργσατο 사업을 벌이고 이익을 얻어 다섯 달란트를 에케르데센 κέρδησεν 더 벌었다.”

 

그렇다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은 종들은 평소에 주인을 가까이 따르고 주인의 사업 활동을 도우면서 사업능력을 키웠을까? 아니면 지중해세계 로마제국 식민지역에서 주인의 사업네트워크가 매우 튼튼하고 촘촘하며 독점적이라서 종들의 돈벌이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을까?

예수는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읽기에서 청중과 독자들에게 그러한 의문의 실체를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본문비유의 청중들과 독자들은 비유문맥 안에서 두 종들의 터무니없는 성공의 밑바탕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종의 맘몬자본성공신화는 로마제국체제 안에 독점자본권력의 약탈횡포와 착취와 축적욕망의 거대기계구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종들의 어마어마한 맘몬자본성공신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예수시대의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 속에서 헤아린다면 두 종들은 지중해 해상무역사업에 투자했을 수 있다. 또 로마제국 식민지역에서 세금징수사업을 하는 금융조합회사에 투자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로마제국역사에서 키케로는 세금징수사업(노예대리인 투자라고 여겨지는) 비위사실 때문에 정적에 의해 로마당국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본문비유이야기 속 두 종들의 불로소득 성공신화는 맘몬자본권력의 착취와 독점과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구조 톱니바퀴에 끼인 노예인간군상의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