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란트 맡은 종의 ‘삶의 행동양식’
그러나 놀랍게도 ‘본문비유의 현실세계로 드러난 로마제국의 금융(화폐)경제 시스템과 시대상황’에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앞선 두 종과 전혀 다른 ‘삶의 행동양식’을 드러낸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대자본가인 주인이 여행을 떠난 후 ‘자기에게 맡겨진 은화 한 달란트를 땅을 파고 묻어’버린다. 본문비유는 ‘한 달란트 맡은 종의 이러한 삶의 행동양식’을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어투의 3음보 동사문장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종은 ①아펠톤 ἀπελθών 떠나와서 ②오뤼크센 ὤρυξεν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은화를 ③에크뤼퓌센 ἔκρυψεν 묻었다.”
이때 본문비유는 ‘아페르코마이’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하는데 ‘아포 ἀπό ~로부터 + 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 떠나다’로 이루어진 합성동사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여행을 떠나자마자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떠나서’ 주인의 돈을 땅을 파고 묻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아예 ‘주인소유 독점자본으로 하여금 착취와 독점과 쌓음의 가능성’을 아예 무력화시킨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의 이러한 ‘반 불로소득 또는 반자본주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의 태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자본가인 주인은 ‘왜 자기 돈을 은행가에게 맡겨서 이자라도 받게 하지 않았느냐’마며 한 달란트 맡은 종을 나무라고 욕한다.
참으로 놀랍게도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대자본가인 주인의 독점과 쌓음의 욕망을 향해 대항행동(對抗行動)에 나선 것’이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땅을 파고 달란트를 묻어버리는 행동양식은 ‘철저한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반체제 대항행동’이다. 돈을 땅에 묻는 행위야말로 ‘독점자본권력의 무한증식과 쌓음의 욕망을 폐기처분하는 가장 강력한 대항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주인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리는 대항행동의 발단은 ‘모질고 탐욕스러운 대자본가인 주인의 부재’ 곧 주인의 여행이다. 주인은 먼 여행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에게 자신의 자산들을 나누어 맡긴다. 주인이 없는 동안에도 ‘자산들이 묶이는 일없이 계속해서 이익을 내고 쌓음이 일어나도록 계획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림으로써 주인의 이러한 의도를 묵살해 버린다. 실제로 한 달란트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한 달란트는 로마화폐로 6천 데나리온인데 예수시대에 숙련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δηνάριιον)이었다. 한 노동자가 ‘이십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벌어 모아야 만져 볼 수 있는 금액’이다.
따라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리는 대목’에서 비유의 청중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청중들은 ‘예수의 비유이야기의 엄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듯 느꼈을 것이다. 무자비하고 탐욕스러운 주인이 ‘그 큰돈을 종들에게 맡겨서 많은 이익을 만들어내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본문비유에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대자본가인 주인의 독점과 쌓음의 욕망을 짓뭉개버리는 삶의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이로써 비유이야기꾼 예수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긴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어지는 비유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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