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희년신앙 읽기

대자본가 주인의 독점과 쌓음을 향한 ‘욕망의 프락시스’

희년행동 2025. 8. 12. 17:39

대자본가 주인의 독점과 쌓음을 향한 욕망의 프락시스

 

예수의 비유이야기에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자기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리는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반체제 삶의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이렇듯이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대항행동은 주인의 독점과 쌓음의 욕망과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을 일으킨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한 달란트가 나타내는 주인의 독점과 쌓음의 욕망과 의지를 전혀 헤아리거나 고려하지 않는다. 도리어 주인의 독점과 쌓음의 욕망을 폐기처분하는 과격한 대항행동으로써 자기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땅을 파고 묻어버린다.

도대체 한 달란트 맡은 종의 이러한 삶의 행동양식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어지는 본문비유이야기를 자세히 읽어 보자.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나아와서 말했다.

주인님, 저는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모진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은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 추수하는 사람이고

키질도 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알곡을 모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워하면서 떠나와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것을 차지하셨습니다.’”

 

이제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비유이야기의 흐름과 사건전개를 통하여 한 달란트 맡은 종과 대자본가인 주인이 셈하는 장면을 드러내놓고 까발린다. 앞서서 본문비유는 멀리 여행을 떠나는 대자본가인 주인이 자기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는 상황을 이야기 했다. 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종들 그리고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대조되는 삶의 행동양식을 보고했다. 이어서 주인과 다섯두 달란트 맡은 종들의 셈하는 내용과 보상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대자본가인 주인과 한 달란트 맡은 종 사이에서 벌어지는 을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한 들러리 내용들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하여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알아차린 대자본가 주인의 삶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까발린다. 한마디로 본문비유에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알아차린 대자본가 주인의 숨겨진 삶의 실체는 모진 사람이다. 이때 본문이 사용하는 헬라어 낱말이 스클레로스 σκληρός이다. 차마 사람이 하지 못할 짓을 얼마든지 하고야 마는 독한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본문비유는 모진 사람으로서 대자본가인 주인의 삶의 프락시스(행동양식)이렇게표현한다.

 

당신은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 추수하는 사람이고 키질도 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알곡을 모으는 사람입니다.”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비유이야기 속 한 달란트 맡은 종의 입말을 빌어서 대자본가인 주인을 향해 거칠고 사나운 비판을 쏟아낸다.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을 통한 대자본가들의 약탈횡포와 착취와 축적욕망의 실체에 대해 매섭고 날카로운 평가를 쏟아놓는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반체제 대항행동의지와 뜻을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으로 다지고 새겨서비유 속에 은유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본문비유에서 대자본가인 주인은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날카롭고 거친 평가와 비판을 전혀 변명하지 않는다. 도리어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향해 이렇게호통을 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이미 알고 있었더란 말이냐?

내가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 추수하고

키질도 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알곡을 모은다는 것을?”

 

이때 본문은 에데이스 δες 너는 이미 알고 있었더란 말이냐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헬라어 동사는 에이돈 εδον 보다 + 오이다 οδα 알다로 이루어진 합성동사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맘몬자본권력의 속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인은 더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주인은 그랬더라면 내 돈을 은행가(또는 고리대금업자)에게라도 맡겼어야지, 그래야 내가 이자라도 챙기지 않았겠느냐, 이 종놈아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이때 본문비유에서 사용되는 트라페지테스 τραπεζίτης라는 헬라어 낱말은 테트라스 τετράς + 페자 πέζα 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문자의미는 네발탁자라는 뜻인데 은행의 계산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는 고리대금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여기서 대자본가인 주인의 입말에 오른 은행가 또는 고리대금업자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를 위반하는 금기어다. 유대인들은 옛 희년신앙 전통에 따라 이자를 사회경제 공동체 죄악으로 규정하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철저하게 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종교사회경제 공동체에서는 고리대금업자가 존재할 수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비유이야기에서 대놓고 은행가 또는 고리대금업자를 이야기 한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본문비유를 통해서 유대종교사회경제 공동체 안에 만연한 반 희년신앙 타락을 폭로하고 고발한다. 예루살렘성전에 자리 잡고 앉아서 풀뿌리 사람들을 착취하는 성전화폐 고리대금업을 날카롭고 거센 어조로 비난한다. 나아가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 속 맘몬자본권력에 기생하며 풀뿌리 사람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기득권체제의 타락을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