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때 본문읽기1. 끝머리에서 율법사는 예수에게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실제로 교회와 교우들이 섬기고 사랑을 나누어야 할 이웃이 누구일까? 사람들이 참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는 늙으신 부모인가?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부모보다는 자식들을 더 사랑하지 않을까?
아무랬거나 풀뿌리 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한다. 또한 친족들이나 친척들을 사랑한다. 만약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교우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그분들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마을 사람, 같은 직장 동료, 같은 학교 동창 등 자주 만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을 좋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율법사는 스스로 의로운 체 하고 싶어서 이 질문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예수시대의 율법사들은 대부분 바리새파 출신으로써 유대인들 가운데서 뛰어나게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율법대로 살았다. 매일 세 차례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다.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키고 온갖 절기를 지켰다. 십일조와 또 매 삼 년마다 구제의 십일조를 드렸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도 의롭다고 생각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의롭다고 구별되어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처럼 죄인이나 세리나 창녀 또는 이방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상종하지도 않고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칭 타 칭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율법사와 그 율법사의 이웃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웃들이 많았기에 율법사는 ‘죄인과 세리와 창녀와 가난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친구임’을 내세우는 예수에게 으스대며 질문한다.
“그러면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누가복음 저자는 이 율법사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가 선한 사마리아사람 예화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본문읽기2.를 꾸며놓았다.
이제 여기서 필자는 ‘본문저자가 꾸며놓은 이웃사랑 본보기 예화’에서처럼 비유독자들이 자기시대의 비유읽기를 위해 던져볼만한 ‘세 번째 질문’을 본문풀이 끝부분에서 다시 이야기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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