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는 ‘이웃사랑 본보기 예화’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는 누가복음저자에 의해 아주 자연스러운 ‘이웃사랑 본보기 예화’로 꾸며지고 쓰여 졌다. 성서학자들은 본문비유를 ‘누가 자신만의 특수 문서자료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누가복음저자는 자신의 신앙의지에 따라 본문비유를 ‘예수의 사랑의 이중계명 가르침 단락 안에서 이웃사랑 본보기 예화’로 사용했다. 더 나아가 초대교회와 서구교회는 본문비유를 ‘메시아 종말론 재림신앙 알레고리’로 읽고 확대해석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따라서 이제 21세기 독자들로서는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이야기를 예수의 입말 그대로 되살려 내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유독자들은 누가복음저자의 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를 ‘있는 그대로 읽고 해석하며 비유의 참 뜻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할 때 착한 사마리아사람 비유의 독자들도 ‘누가복음 신앙공동체와 초대교회의 이웃사랑 본보기 예화’에서 율법사처럼 ‘자기시대의 비유읽기를 위한 세 가지 질문들’을 던져 볼 수 있다.
제가 무엇을 행해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읽기1.에서 율법사는 예수에게 ‘선생님, 제가 무엇을 행해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때 누가복음 저자는 ‘어떤 율법사가 자신의 율법지식과 신학사상으로 예수를 시험하면서 자신을 뽐내려고 이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물론 율법사 내심으로는 ‘이 질문의 정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으로써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따르며 언제나 정결하고 의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가 이 땅에 올 ‘종말론적 하나님의 날에 또는 메시아의 날’에 모든 죄인들이 심판받고 멸망 받는 가운데 스스로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영접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율법사로 대표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정통신앙이고 무한한 자부심이며 자랑이었다.
따라서 도리어 예수는 율법사의 첫 번째 질문을 통하여 율법사와 비유의 청중들에게 ‘사랑의 이중계명’을 가르쳐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누구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기의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한 하나님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추상적이며 개인적인 신앙독백’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반드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실천되고 증명’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때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이중계명은 ‘교회의 겉모습을 꾸미거나 바깥세상에 교회의 행태를 자랑하는 수단’이 아니다. 또한 교회가 갖추어야 할 ‘사회정의와 윤리도덕의 문제’만도 아니다.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이중계명은 ‘교회가 바깥세상을 향해 몸으로 봉사하고 물질을 나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교회와 교우들과 모든 이웃들에게 ‘삶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의 문제’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본문읽기1.에서 사랑의 이중계명을 입으로만 외워대는 율법사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이 옳게 답했소. 그것을 행하시오. 그러면 당신이 살 것이오.”
예수의 이 선언을 표현한 헬라어 문장은 ‘이중 명령형 혹은 조건 명령형’이라고 한다.
“~ 해라, 그래야만 ~ 할 것이다”
이렇듯이 교회와 교우들이 이웃사랑을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이유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향한 교회와 교우들의 사랑 증거’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예수신앙인으로써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예수신앙인들의 신앙체험’이 먼저다. 그래야만 온전한 하나님사랑과 참된 이웃사랑을 행동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이중계명 안에 교회와 교우들 그리고 모든 예수신앙인들의 생명길이 있다. 나와 너와 우리 이웃들의 생명길이 있다. 참으로 예수의 사랑의 이중계명 안에 ‘온 인류의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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