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신앙의 사람이 되라.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읽기2.에서 도마에게 나타난 부활예수사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부활예수가 도마에게 나타난 사건이야말로 ‘부활예수를 직접 목격하지 않은 인류에게 예수부활신앙 진실의 최대․최고의 증언이며 결정판’이다. 본문읽기2.에서 살펴보면 예수부활사건 여드레 후에 예수의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모였다. 그리고 도마도 그들과 함께 했다. 문이 잠겨져있었는데도 예수가 와서 한 가운데 섰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에게 평화.”
그런 후에 부활예수가 도마를 불렀다.
“그대의 손가락을 이리로 내밀어서 내 손들을 살펴보라. 또 그대의 손을 내밀어서 나의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러니 그대는 신앙 없는 이가 되지 말라. 오직 신앙의 사람이 되라.”
부활예수는 도마에게 신앙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직 신앙의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앙 없는 사람은 무엇이고? 신앙의 사람은 무엇일까?
실제로 예수의 부활교리만 있고 예수의 십자가행동이 없는 신앙인들에게는 ‘부활교리신화와 종교 관념으로써 금관의 예수’만 있을 뿐이다. 또한 자기 삶의 마당에 예수의 십자가행동만 있고 ‘부활예수를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부활신앙’이 없다. 따라서 21세기 예수부활교리 신화만을 떠들어대는 사이비 종교장사꾼들의 삶의 마당을 들여다보면 ‘종교 관념으로써 금관의 예수 곧 부활예수신화만’이 또렷하다. 나아가 예수의 십자가행동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의 삶의 마당에서도 예수부활신앙은 외피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읽기2.에서 뚜렷한 강조점은 ‘신앙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 때 사용된 헬라어 문장은 ‘기누 피스토스 γίνου πιστός’다. 그런데 ‘기누’의 원형동사는 ‘기노마이’라는 ‘재귀형수동태 동사’다. 따라서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부활이야기를 듣고 ‘그저 고개한번 끄덕이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은 ‘단 한순간의 황홀한 깨달음’으로 이룰 수 없다.
참으로 신앙의 사람은 ‘스스로 시대의 폭력과 불의와 죄악에 대항하는 자기 십자가행동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이다. 스스로 자기 십자가행동의 터널을 지나서 새로운 대항행동으로써 대안세상인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통해서 생명 삶으로 부활’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도마는 로마제국 폭력과 죽임의 권력을 향한 십자가행동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부활예수의 실체’를 확인했다. 그런 후에 이렇게 예수 부활예수신앙을 고백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본문읽기2.에서 도마의 부활예수 신앙고백은 다른 제자들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실존신앙고백’이다. 그럼으로써 시대의 불의와 죄악으로부터 십자가처형을 당한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부활은 도마의 부활’이 되었다. 이때 본문은 ‘아페크리테 ἀπεκρίθη 응답했다’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아포 ἀπό ~부터 + 크리노 κρίνω 선택하다’로 이루어진 합성동사다.
이렇듯이 도마는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부활에 응답했다. 갈릴리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펼치던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십자가행동과 부활’에 응답했다. 도마의 부활신앙은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십자가행동’으로부터 온다. 그 예수는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성전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십자가처형을 당했다.
따라서 시대의 불의와 죄악으로부터 십자가처형을 당한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십자가행동을 통하지 않은 부활신화는 거짓’이다. 그러한 부활신화는 ‘시대의 불의와 죄악들을 은폐하는 종교장식물’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세상을 속이고 현혹하는 금관의 예수 부활신화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는 도마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그대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를 신앙하였는가?
복되어라.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이들, 그러면서 신앙하는 이들이여.”
이제 ‘십자가에 처형당한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부활이라는 도마의 실존부활신앙’은 이후로 ‘모든 예수신앙들의 부활예수 신앙고백으로 전수’되었다. 예수시대 이후에 예수를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모든 예수신앙인들도 ‘도마의 실존부활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21세기 한국기독교인들도 도마처럼’ 십자가에 처형당한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에 대한 실존부활신앙을 고백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시대의 불의와 죄악에 맞서서 십자가에 처형된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부활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하늘은총’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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