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몬․자본숭배세상에서 복과 액땜을 빌며 제물과 헌금을 바치다.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지구촌 종교들에서 복과 액땜을 빌며 신들에게 바쳐지는 간절한 기도들과 헌금들’이 넘쳐난다. 복과 액땜을 빌기 위해 ‘서로 다른 신들을 모시는 성전을 찾아가서 서로 다른 종교언어로 서로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른다. 지구촌 어느 종교에서나 복과 액땜을 비는 ‘사사롭고, 주술적이며, 무속적인 신앙 관념과 의도’는 똑같다.
이렇듯이 복과 액땜을 비는 수많은 헌금과 기도들 가운데서 ‘기독교회가 드리는 기도와 헌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기독교회의 헌금과 기도역시 ‘다른 종교와 신앙들의 주술적이고 미신적인 소원성취 제물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21세기 한국대형교회와 목회자들과 교우들 사이에 널리 퍼져 터 잡은 ‘기복과 액땜의 헌금신앙 행태’로 보아 더욱 더 그렇다.
참으로 21세기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너와 우리와 마찬가지 ‘부의 쌓음과 풍요로운 삶을 비는 소원성취 헌금’을 드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간절한 소원성취 소망을 ‘부동산, 주식, 펀드, 코인, 채권투자 등에 쏟아 붇는 것’이 훨씬 낫다. 아니라면 이자가 높은 적금을 찾아서 ‘거기에 헌금할 돈을 넣어두는 것’이 좋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면서 언제 닥칠지 가늠해 볼 수조차 없는 재난에 졸아서 ‘하나님께 일천번제 액땜헌금을 바칠 필요’는 없다. 차라리 괜찮은 보험을 몇 개 들어두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더 큰 위안도 되고 현실적인 대처방법’이다.
이제 21세기 한국교회 상황에서는 ‘교우들의 기복과 액땜신앙으로 바쳐진 고액헌금들’이 갈 곳을 잃었다. 엄청난 헌금이 ‘교회건축과 교회세력 불리기에 투자’된다. 그런 가운데 ‘이 땅에는 여전히 가난의 고통과 절망’이 존재한다. 우리이웃들 가운데에는 ‘근근이 끼니를 연명하는 것도 힘에 겨워 교회의 도움을 바라는 이들’로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들은 반 예수신앙 또는 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신앙행태로써 ‘교회건축과 교회몸집 키우는 일에 교우들의 헌금을 탕진’한다. 쥐꼬리보다 작은 구제헌금으로 생색내기에 급급하다. 한국교회와 교우들의 ‘기복과 액땜헌금 신앙행태’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희년신앙』 > 희년신앙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세기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잇다. (1) | 2025.08.30 |
|---|---|
| 연보는 서로를 공평하게 하는 것이다. (1) | 2025.08.30 |
| 초대교회의 연보 (1) | 2025.08.30 |
| 헌금(獻金)인가, 연보(捐補)인가? (1) | 2025.08.30 |
| 21세기 시대상황 속에서 기독교신앙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이어야 할까? (2) | 2025.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