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란트 맡은 종의 대항행동양식, 자본주의 바깥으로 여행하라.
이제 본문비유이야기 끝에서 대자본가인 주인이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내리는 처벌내용을 읽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라.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아라테 ἄρατε 너희는 빼앗아라, 도테 δότε 너희는 주어라” 우리말 성서는 이 문장에서 ‘너희는’이라는 주어를 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너희는’이라는 주어를 살려서 번역하면 ‘예수의 비유이야기 안에 숨겨진 청중과 비유를 듣고 있는 청중’사이에서 혼돈과 겹침의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너희는 그 자로부터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그것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라는 외침은 비유이야기꾼 예수의 언어놀이(言語遊戱)다.
그러나 한편 예수의 이 외침은 ‘비유이야기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숨겨진 청중’과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있는 청중 나아가 21세기 비유독자들을 향한 ‘예수의 선동언어’이기도 하다. 그러할 때, 예수의 비유이야기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숨겨진 청중’은 누구일까?
예수의 비유이야기 속에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21세기 예수의 비유독자들은 ‘비유이야기 속에 숨겨진 무수한 청중들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예수의 비유를 읽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무수한 독자들’이 예수의 비유이야기 속 숨겨진 청중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본문비유에서 듣게 되는 예수의 이 외침은 예루살렘 청중들과 ‘예수의 비유이야기의 무수한 독자들’을 향한 선전선동이다. 시대마다 대자본가의 독점자본을 맡아서 노예대리 투자자로 살아가는 ‘시대의 풀뿌리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게릴라식 선전선동’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비유의 청중과 무수한 독자들에게 ‘무엇을’ 선동할까? 그것은 바로 ‘맘몬․자본권력의 약탈횡포와 독점과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의 톱니바퀴 노예인생에서 탈출하라’는 선동이다. 이제 끝판에 이르러, 맘몬․자본권력이 ‘비유의 청중과 무수한 독자들에게 맡긴 모든 달란트들을 다 빼앗아서 또 다른 노예대리 투자자들에게 맡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에서 노예대리 투자자에게는 ‘대자본가들의 불로소득으로부터 아무런 몫’도 없다. 노예대리 투자자들은 맘몬․자본권력의 독점과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의 톱니바퀴에 끼인 노예군상(群像) 일뿐이다. 로마제국 금융(화폐)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노예대리 투자자에게 ‘아무것도 보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 지배체제는 ‘노예대리 투자자 유한책임을 제도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다섯․두 달란트 맡은 종들이 ‘주인의 불로소득 기쁨 안에서 얻는 허망한 보상’을 통해 ‘이렇게’ 선동한다.
“잘했다, 착한 종아. 내가 너에게 더 큰 자본을 맡기겠다. 더 많은 불로소득을 맘껏 만들어 내거라.”
그러므로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이야기 속에 숨겨진 신앙은유는 ‘대자본가인 주인의 독점과 쌓음의 욕망을 향한 대항행동’이다.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한 달란트 맡은 종의 삶의 행동양식’을 통하여 비유청중과 무수한 독자들에게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반체제 게릴라 대항행동’을 선동한다. 비유이야기 속에 숨겨진 청중으로서 21세기 비유독자들에게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대항행동양식을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행동양식’으로 제안한다.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반체제 ‘유언비어 게릴라 대항행동양식’으로 제안한다. 참으로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한 달란트 맡은 종을 향한 비유 속 주인의 혹독한 앙갚음의 처벌언어’를 맘몬․자본권력을 향한 ‘유언비어 게릴라 행동양식’으로 뒤집는다. 그럼으로써 비유청중들과 무수한 독자들을 선동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라.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맘몬․자본권력의 독점과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의 톱니바퀴에 끼인 노예대리 투자자들이여. 이제 너희가 잘 듣고 자세히 보았는가? 이제 끝판에 왔다. 맘몬․자본권력은 너희 노예대리 투자자들에게 맡긴 모든 것들을 빼앗을 것이다. 너희는 맘몬․자본권력 지배체제에 종속된 노예대리 투자자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금 맘몬․자본권력의 약탈횡포와 착취와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의 톱니바퀴에 끼인 노예의 생(生)으로부터 탈출하라. 맘몬․자본권력의 약탈과 독점 그리고 쌓음의 욕망에 대항하라. 맘몬․자본권력으로부터 맡겨진 한 달란트를 땅을 파고 묻어버려라. 그럼으로써 휘황찬란한 자본주의 바깥, 그 어둠속으로 쫓겨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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