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교회의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 읽기와 해석’을 위한 제언
이천년 기독교회역사 속에서 교회들은 본문비유를 읽고 해석하면서 ‘맘몬․자본권력 독점과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의 톱니바퀴에 끼인 노예인생들’을 축복해왔다. 참으로 처참하게도 맘몬․자본권력 독점과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의 톱니바퀴를 향한 대항행동으로써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신앙진실’을 숨기고 훼손하며 짓밟아왔다.
그러면서 도리어 맘몬․자본권력의 무한증식과 축적욕망을 우러러 떠받드는 가운데 ‘자본주의 노예인생 윤리를 두둔하고 편드는 해석’을 바꾸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본문비유저자는 ‘자신의 신학사상과 로마제국의 맘몬․자본세상 노예인생 윤리’에 맞추어 본문비유의 내용을 크게 손질했다. 그로 인해 비유이야기꾼 예수가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려고 했던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신앙은유를 쫓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따라서 초대교회에 이어 제국주의 서구교회는 본문비유를 ‘종말에 대한 경고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알레고리 해석으로 얼버무렸다. 또 한편 ‘본문비유의 문맥을 비틀어서 기독교윤리 관념과 상징’으로 연계했다. 그러면서 비유이야기꾼 예수가 본문비유 안에 드리워놓은 신앙은유들을 ‘맘몬자본주의 세상에서 기독교사회․경제 윤리로 오독’(誤讀)해왔다.
참으로 이천년 서구교회는 본문비유를 읽고 해석하면서 교우들에게 ‘세상의 종말 때까지의 남은 시간을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살라’고 요청한다. 서구교회의 비유읽기와 해석만을 이어 받은 외눈박이 한국교회들도 교우들에게 ‘지금 당장 다섯 달란트 또는 두 달란트 맡은 종들의 자본주의 실천행동을 본받으라’고 떠들어 댄다.
그러나 이제 어처구니없이 맘몬․자본권력의 약탈횡포와 착취와 쌓음의 거대기계 욕망구조를 ‘우러러 받드는 자본주의 윤리행동으로써 비유읽기와 해석’을 끝내야 한다. 이제야말로 이천년 서구교회의 본문비유읽기와 해석퇴행을 걷어치워야만 할 때다. 그럼으로써 21세기 비유독자들은 한 달란트 맡은 종 비유를 통해서 ‘예수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철저하게 질문해야 한다. 그러할 때 본문비유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예수의 육성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삶의 행동양식을 따르라’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삶의 행동양식을 쫓아서 네가 맡은 맘몬․자본 달란트를 땅에 묻어라. 그래서 지구촌 제국주의 맘몬․자본권력의 약탈횡포와 착취와 축적욕망의 맥(脈)을 끊어라.”
이러한 본문비유 읽기와 해석이야말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에 걸맞은 당당하고 마땅한 예수신앙인들의 삶의 행동양식’이다. 나아가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잇는 신앙결단이며 신앙행동’이다.

'『희년신앙』 > 희년신앙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큰 잔치비유 풀이, 고대 제국주의 만찬 (5) | 2025.08.14 |
|---|---|
| 『희년신앙』 15. 큰잔치 비유 -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무지렁이들의 큰잔치 - 본문읽기 (4) | 2025.08.13 |
| 휘황찬란한 자본권력의 바깥, 그 어둠속으로 쫓겨나라. (5) | 2025.08.12 |
|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대항행동양식, 자본주의 바깥으로 여행하라. (1) | 2025.08.12 |
| 대자본가 주인의 독점과 쌓음을 향한 ‘욕망의 프락시스’ (3) | 2025.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