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을 ‘자기 큰잔치’에 초대할 수 있을까?
이제 예수의 큰잔치 비유에서처럼 시대의 지배체제 내부자계층 가운데 누가 밑바닥 풀뿌리 사람들을 자신의 큰잔치에 초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곧 자신이 속한 지배체제와 기득권계층에 대한 모욕이며 조롱이다. 그것은 곧 ‘자기 스스로 지배체제 내부자 계층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모험이며 자기변혁의 길’이다.
이렇듯이 예수의 큰잔치비유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비유의 독자들은 비유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야말로 ‘시대의 지배체제와 기득권계층의 만찬을 모욕하고 뒤집어엎는 혁명’이라는 신앙은유이다.
큰잔치비유에서 예수가 명백히 밝히려 하는 것은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야말로 로마제국체제와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기득권세력의 끼리끼리 만찬을 모욕하고 뒤집어엎는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에서는 ‘초대받은 사람들의 잔치참여거부와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의 큰잔치참여’가 뒤바뀌어 일어난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는 가난뱅이들과 지체장애인들과 시각장애인들과 못난이들 등 사회․종교․정치적으로 ‘무의미하고 성가시며 소외된 자들의 공동체잔치’이다.
따라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예수의 밥상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역설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종교․사회․정치 엘리트계층인 제사장, 율법학자, 바리새파사람들은 예수의 밥상공동체를 통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에 응할 뜻이 전혀 없다. 물론 그들도 ‘유대종교․사회 전통으로부터 다윗후손 정치메시아 큰잔치’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유대사회․종교․정치전통 속에서 ‘메시아 종말론적 하나님나라 큰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고대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비유에서는 ‘지금 여기 예수와 가난한 풀뿌리 사람들의 밥상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가 그 실체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들은 이기적이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지금 여기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 참여’를 거절한다.
그러므로 이제 오롯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는 ‘로마제국체제와 거기에 기생하는 유대사회․종교․정치에서 무의미하고 성가시며 소외된 자들의 큰잔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큰잔치비유의 주인은 종들에게 ‘너는 빨리 큰 길들과 동네 작은 길들로 나가서 가난뱅이들과 지체장애인들과 시각장애인들과 못난이들을 이리로 인도해 오라’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본문비유의 독자들은 ‘맨 처음 예수신앙동아리가 유대와 예루살렘의 가난한 풀뿌리 사람들에게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전파하며 많은 결실을 맺는 필연성’을 되새기게 된다. 또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음운동이 ‘유대사회․종교를 지나 널리 로마제국 풀뿌리 사람들에게까지 전파된 것’을 떠올리게 된다. 참으로 비유이야기꾼 예수는 큰잔치비유를 통해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를 ‘이 땅의 모든 소외계층들을 향해 널리 열려진 한판 대동잔치로 확대’한다.
“‘주인님, 당신이 분부하신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향해 말했다.
‘너는 큰 길들은 물론 울타리 골목길들로 나가라. 그래서 내 집이 가득 채워지도록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라.’”
이제 큰잔치비유의 주인은 자기 종에게 ‘큰 길들뿐만 아니라 울타리를 끼고 비좁은 골목길들을 따라 집집마다 찾아가서’ 소외된 사람들을 이끌어 내오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가 유대 경건한 남자들의 경계를 지나, 유대사회․종교․정치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떠돌이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와 부녀자들을 넘어,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세리와 창녀들에게까지 전파되는 상황을 ‘또렷하게 지시하고 보여’준다. 참으로 크고 작은 길들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울타리 비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서 이웃의 눈길에 뜨일세라 숨겨진 사람들까지 ‘세상의 모든 못난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큰잔치이다.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라면 사회․정치․경제 모든 생활영역에서 시나브로 삭제된 존재들을 공동체 삶의 마당으로 ‘불러오기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예수의 큰잔치비유 안에는 ‘21세기 한국교회를 향하여 외치는 뚜렷한 신앙진실’이 있다. 참으로 큰 잔치 비유는 21세기 한국교회에 대한 신앙경고이며 신앙 심판이다.
“참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오. 초대받았던 저 남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내 잔치에 참여하지(맛보지) 못할 것이오.”
이처럼 예수의 큰잔치비유의 신앙은유는 ‘한국교회의 반인권, 반생명, 반평화 반신앙행태를 향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신앙심판철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4.16세월호참사 또는 10.29이태원참사 등 ‘사회적 참사 유가족의 고통’을 외면해 왔다. 사회적 참사의 진실 찾기 외침을 헐뜯고 조롱해 왔다. 또한 장애인의 인격과 생존권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신용불량자 등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삶의 고통을 외면하는 불신앙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성폭력피해자 또는 동성애자 등 ‘소외계층 소수자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고 억압하며 차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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