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읽기

희년신앙 행동서사, 솔로몬 왕과 사독은 어떤 관계였을까?

희년행동 2025. 2. 8. 13:49

솔로몬 왕과 사독은 어떤 관계였을까?

 

사독(차도크 צָדֹוק)이라는 이름은 히브리 성서에서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사독이라는 이름이 히브리어 낱말 차디크 צַדִּיק 정의와 동음어처럼 들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독은 다윗왕조신학과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에서 핵심위치를 차지한 제사장가문이다. 그런데 사독은 다윗이 자기 용병부대를 동원해서 정복한 예루살렘 여부스족 제사장이었다. 사독은 여부스족 성전제사종교체제의 제사장으로써 예루살렘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 다윗을 만났다. 사독은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제사장직을 허락받았다.

사독은 다윗왕조신화에 딱 들어맞는 옛 여브스족의 성전제사종교제도를 통해 다윗왕의 환심을 샀다. 이후 세월이 흘러 다윗 왕이 죽은 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사독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의 제사장으로써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의 에비아달 제사장은 다윗왕조의 종교권력으로부터 멀찌감치 밀려났다. 그럼으로써 다윗왕조신학과 예루살렘 성전제자종교체제 속에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과 여브스족의 성전제사의식 혼합주의가 터를 잡았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 성서 역대기는 예루살렘성전 찬양대가 3천여 명이었다고 증언한다. 21세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원인은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따르는 지역 성소들이 모두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옛 야훼성소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수많은 레위사람들이 밥벌이를 위해 예루살렘성전으로 몰려들었다. 레위사람들에게는 사회정치경제자립을 위한 노느매기 땅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예루살렘성전 일반 제사장직은 레위사람들로 차고 넘쳤다. 그래서 예루살렘성전 찬양대원으로 수많은 레위사람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현상과 상황들은 히브리 성서 본문들 곳곳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역대기상25, 역대기하5)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솔로몬왕은 다윗의 용병부대장교 히타이트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다가 다윗왕의 왕비가 된 밧세바에게서 태어났다. 용병부대 장교의 아내였다가 다윗의 왕비로 위치가 바뀐 밧세바는 야심가였다. 다윗 왕이 늙어 퇴위하기 전에 이미 유대지파 노느매기 땅 헤브론에서 태어난 왕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제 다윗 왕이 늙어 숨을 거둘 무렵에 이르러 다윗왕조 유다왕국에서 적법한 왕위계승자는 아도니야 뿐이었다. 밧세바는 다윗왕궁예언자 나단과 손을 잡고 다윗 왕을 설득해서 아도니야 대신 예루살렘출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 그 공덕으로 나단의 아들들은 솔로몬왕국에서 고위직에 발탁되었다.

이렇듯이 밧세바는 권력의지가 강하고 정치야망과 담력도 매우 컸다. 밧세바는 솔로몬왕의 어머니로써 모든 권력을 맘껏 누렸다. 솔로몬 왕이 옛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벗어나 온갖 종교타락과 부패에 빠지도록 부추겼다.

한편 수많은 외국인 관료들과 용병들도 솔로몬왕국에서 세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나아가 솔로몬왕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사독제사장에게 종교권력을 몰아주었다. 사독제사장에게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잇는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에서 몽땅 쫓아낼 수는 힘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 사후 다윗왕국은 필연코 남북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본문읽기에서 솔로몬왕국이 남북으로 쪼개진 것은 야훼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후 남북왕국사이에서는 다윗왕조신학 또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와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으로 인한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