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시대의 언어로 읽는 신약성서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 갈등하고, 분열하라!

희년행동 2022. 7. 14. 19:26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 갈등하고, 분열하라!

누가복음 12:49-53

 

읽기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미 불이 붙여졌다면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가 받도록 되어 진 세례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까지 내 답답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곁에 왔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도리어 분열을 주러 곁에 왔습니다.

참으로, 지금부터는 다섯 식구 한 가정 안에서 세 사람이 두 사람과, 두 사람이 세 사람과, 나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에 대하여, 딸이 어머니에 대하여,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하여,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대하여, 나뉘게 될 것입니다.

 

낱말풀이

 

* 에피 텐 겐 πί τν γν 세상에 : 문자적으로는 땅 위에

* 아네흐테 νήφθη = ἀνά 위로 + ἅπτω 불을 붙이다

* 디아메리스몬 διαμερισμόν 분열

* 디아메리스테손타이 διαμεριςθήσονται 나뉘게 될 것이다. διά 통하여 + μερίζω 나누다

 

 

말씀풀이 들어가는 말

 

예수는 무엇일까? 기독교 교리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예수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이시다. 이 땅의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 제물이시며 구세주이시다. 한마디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시다..

또 한편 예수의 말씀과 행동과 삶으로 보면, 예수는 지배체제 변혁적 혁명가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억압과 착취, 폭력과 전쟁, 죽음의 체제와 갈등하고 분열하다가 끝내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다. 로마제국 체제와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및 율법체제에 대한 대안세상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주창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 실천 운동가였다. 한마디로 예수는 지배체제 변혁적 하나님나라운동 안에서 민중들의 스승이고, 친구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런데 예수가 주창한 하나님나라는 예수시대의 로마제국 체제와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와 공존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예수는 어물쩍 서로의 지배체제를 인정하고 야합해서 그럭저럭 생존을 도모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로마제국의 억압과 폭력과 착취와 쌓음,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의 편 가름과 차별과 배제와 종교사회적 낙인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내어줌과 돌봄과 배려가 상호 순환하는 공동체 나라였다. 로마제국의 억압과 착취, 폭력과 전쟁 지배체제와는 전혀 어울릴 수 없었다. 로마제국에 기생해서 기득권과 특권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와는 결코 손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갈등하고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제국 지배체제의 억압과 폭력과 착취와 쌓음의 경제와 갈등하고 분열하지 않고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호의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 나아가 로마제국 체제에 기생하여 민중들을 편 가르고 차별하며 배제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와 갈등하고 분열하지 않고서는, 내어줌과 돌봄과 배려가 상호 순환하는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없다. 특별히 예수시대의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 세리와 죄인들, 심지어는 창녀들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나라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우리시대의 지배체제와 갈등하라! 분열하라! 라고 요청하신다.

 

이끄는 말

 

오늘 말씀에서 예수는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미 불이 붙여졌다면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불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본문말씀에서 에 대한 전승과 그 의미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구약성서의 그림 언어에서 불은, 종말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는 수단이다. 또한 구약성서의 상징어로써 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은, 불의한 시대를 향한 예언자들의 외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정화 능력을 표상한다. 그래서 구약성서는 엘리야 예언자, 예레미야 예언자 등 예언자들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라고 했다.

이처럼 예수께서도 자신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지금, 여기, 이 땅위에 도래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서 이 이 타오른다. 예수는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러 오셨고, 그 하나님 나라 선포가 이 땅위에서 불타오르기를 열망하셨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불붙기 위해서는 예수가 꼭 해야만 할 일 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짊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는 내가 받도록 되어 진 세례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까지 내 답답함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실토한다.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예감하고 이를 선언했다.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앞에 두고 매우 초조해 하셨다. 참으로,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이 완연하게 전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제자 된 이들도 예수의 십자가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문말씀에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예수를 따름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가 이 세상에 던지는 불, 곧 예수가 이 땅에 가져오는 하나님 나라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를 쫓아서, 예수의 고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기피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마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이렇다. “누구든지 내게 가까이 있는 자는 불에 가까이 있고, 내게서 멀리 있는 자는 그 나라로부터 멀리 있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닥치는 현실적인 고난의 세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시대의 지배체제와 겪는 갈등과 분열의 고난이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는 분명하게 밝힌다. “여러분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곁에 왔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도리어 분열을 주러 곁에 왔습니다.” 예수를 쫓아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로마제국의 억압과 착취, 폭력과 전쟁의 죽음의 체제와 평화로울 수 없다. 도리어 로마제국체제와 갈등하고 그 체제로부터 분열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대교회 예수의 제자들은 로마제국 체제와 갈등하며 분열했다. 초대교회 예수의 제자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말로 다 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다.

로마제국의 초대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는 1C 네로황제로 시작해서 3C 갈레리우스 황제 때까지 10여 차례 이상 이어졌다. 로마제국은 초대교회를 반 제국 이적 집단으로 여겼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초대교회에 조직적이며 무자비한 박해를 퍼부었다. 예수의 제자들 중 어떤 이들은 사자와 맹견, 맹수들의 먹이가 되었다. 온갖 고문을 당한 후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기를 자청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채찍에 맞아 죽는 이도 있었다. 화형을 당하거나 톱에 켜서 죽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 이들은 예루살렘성전 제사종교와 율법체제와 평화로울 수 없었다. 도리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와 율법체제에 저항하고 갈등하며 분열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수자신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나라 운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와 율법체제와 갈등하고 분열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유대 제사장들과 유대종교 엘리트들의 음모로 인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예수제자들도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와 유대 율법체제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예루살렘성전으로부터, 유대회당으로부터 쫓겨나야 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떠밀려 땅바닥으로 떨어져 온 몸이 상한 후에, 제사장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스데반 집사는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예수의 제자들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며, 고문을 당하기고 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의 예수의 제자 된 이들도 우리시대의 맘몬(자본)지배체제와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맘몬(자본)에 사로잡힌 오늘 우리시대의 사회구조와 체제들과 갈등하고 분열할 수밖에 없다. 오늘 예수 신앙인들이라면, 맘몬(자본)에 점령당한 우리시대의 정치권력, 국가, 정부, 문화, 교육, 종교 등등 모든 사회부분과 갈등하고 분열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결단코 우리시대의 맘몬(자본)지배체제와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억압 폭력과 착취와 쌓음의 맘몬(자본)지배체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내어줌과 돌봄과 배려가 상호 순환하는 공동체나라와 공존할 수 없다. 맘몬(자본)지배체제의 억압과 폭력과 착취와 쌓음의 경제와 갈등하고 분열하며 싸우지 않고서는, 예수의 하나님나라의 호의경제를 누릴 수 없다. 나아가 맘몬(자본)지배체제에 기생하여 민중들을 편 가르고 차별하며 배제하는 모든 자본주의 종교체제와 갈등하고 분열하며 저항하지 않고서는, 내어줌과 돌봄과 배려가 상호 순환하는 하나님나라의 은총을 모두 함께 누릴 수 없다. 특별히 우리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노동자, 정리해고자, 무직자, 과중채무자, 하우스푸어 등등,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나라를 이룰 수가 없다.

이제,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헤아려야 한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맘몬(자본)지배체제와 갈등하라! 분열하라!”라고 외치는 예수의 육성을 겸허히 경청해야 한다.

 

맺는 말

 

우리는 우리시대의 맘몬(자본)지배체제와 갈등하고 분열하며 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서 맘몬(자본)지배체제와 가장 신랄하고 격렬하게 갈등하고 분열하며 싸우는 이들은 세월호참사 유가족이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은 세월호참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국가사회변혁을 바라고 있다. 세월호참사 사건 이전의 우리 국가. 사회와 세월호참사 사건 이후의 우리 국가사회가 분명하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보다 이윤을 추구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삶 보다 경쟁과 차별과 배제를 앞세우는 우리국가사회경제 체제의 변혁이야말로, 우리 미래세대에 대한 오늘 우리의 마땅한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흘러 올해는 세월호참사 3주기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아무런 변혁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맘몬(자본)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정치와 정권과 언론과 문화와 종교계 등등 엘리트 기득권층들은 유가족의 바람과 외침을 모욕하고 조롱한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가 자신들의 불법과 불의를 절박해내고 치부를 들춰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떨고 있다. 자신들만이 독점하고 누려오던 불법 불의한 특권과 기득권을 빼앗길까 노심초사 한다.

이제 지금, 교회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고통과 절망에 참여하고, 그들의 절박한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맘몬(자본)권력과 갈등하고 분열하며 싸우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환경파괴, 공동체파괴, 생명평화 말살 정책을 남발하여 맘몬(자본)과 뒷배를 맞춰온 정치권력, 사법권력, 종교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 등 기득권(특권)계층과 자신의 삶을 걸고 싸운다. 교회는 마땅히 이런 이들과 연대하고 연합해야 한다.

나아가 어떤 이들은 독점재벌들의 사회경제적 폐해를 고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운다.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 부당해고노동자와 산재 피해노동자 등 노동약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장애인과 노인, 한 부모가족과 고아 등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한다. 이제 교회는 마땅히 이런 이들과 연대하고 연합하여 함께 싸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시대 교회들의 바르고 참된 연합이며 하나님나라 진리를 실천하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