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 이야기/희년경제연구소

인류 문명사에 맨 처음 ‘돈’이란, 무엇이었을까?

희년행동 2023. 5. 31. 08:33

인류 문명사에 맨 처음 이란, 무엇이었을까?

 

인류 문명사에 맨 처음 이란, 무엇이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고고학자들은 지구촌 고대문명지역 여러 곳에서 조개껍데기가 돈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기원전 2천 년 무렵 중국 황화문명지역에 조개껍데기 화폐가 사용 되었다고 한다. 이 조개껍데기 화폐는 일본의 화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는 묶은 보릿단으로 사용했다. 이후에는 묶은 보릿단을 의미하는 쉐켈이라는 이름의 화폐를 사용했다. 쉐켈은 히브리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도 사용되었다. 한편 고대 유럽문명에서는 소와 양등 가축을 으로 사용했다. 실제로, 21세기 금융경제에서 자본을 뜻하는 캐피탈 capital’이라는 용어는 라틴어 카푸트 caput 황소의 머릿수에서 유래한다. ‘인도네팔스리랑카파키스탄등에서도 루피 rupee’라는 화폐를 사용했다. 이 용어 역시 황소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루피아 rupya’에서 가져왔다. 그밖에도 고대 아메리카 문명지역에서는 콩이나 코코아, 동물가죽등이 돈으로 사용했다. 한 때는 지구촌 전 지역에서 소금을 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맨 처음, 돈은 생겨났을까? ‘어떻게사용되었을까? 주류경제에서는 돈이 생겨나는 과정과 역할잉여생산물의 교환으로부터라고 이해한다. 사람마다 자기 생산물의 잉여를 다른 사람들의 생산물 가운데서 자기 쓰임과 필요에 맞는 것으로 교환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산물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산물로부터 나의 필요와 쓰임을 찾아내지 못했을 때잉여생산물의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교환의 매개체로서 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돈이 생산물을 교환하는 매개체로 나타나면서 시장경제가 생겨났다. 생산과정이 분업화문화 되어 생산 또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류역사의 맨 처음, 수렵채취 공동체에서 또는 원시농업체제에서 서로의 쓰임과 필요를 교환하기 위한 시장이 존재했을까? 서로의 필요와 쓰임에 대한 교환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단순한 물물교환으로써 나눔그 이상이었을까?

아마도 원시수렵채취 공동체에서는 쓰임과 필요에 대한 나눔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축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시수렵채취 공동체는 모계중심의 평등사회로써 서로의 쓰임과 필요에 대한 나눔교환으로 이해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원시농업체제에서조차도 쓰임과 필요에 대한 나눔은 서로 의지하고 돕는 공동체생활경제 활동이었을 것이다. 원시농업 자체가 공유경제 공동체노동을 밑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잉여생산물에 대한 교환경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지구촌문명 속에서 수많은 종족 공동체들의 상부상조 곧 서로의 쓰임과 필요에 대한 나눔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실하게 살아남아 있다.

그러나 마침내 고대 모계중심 씨족공동체는 대부분 남성중심의 부족사회로 확대되고, 굳어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여성중심 씨족공동체의 공유경제 곧 쓰임과 필요의 나눔은 남성중심 부족사회에서 잉여생산물 처분을 위한 물물교환 경제로 바뀌었다. 이렇듯이 남성중심의 부족사회를 통하여 토테미즘, 영혼숭배, 조상숭배등 정치종교 권력구조가 나타났다. 잉여생산물에 대한 물물교환 경제를 통하여 빈부의 격차가 생겨났다. 그러면서 점차 남성중심 부족사회 권력이 확대되고 강화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고대 부족사회에서의 쓰임과 필요의 교환은 부족사회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했다. 만약 부족사회 바깥으로의 잉여 생산물에 대한 교환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서로 이웃한 부족사이에서 친선을 꾀하는 선물외교 정도 이었다. 그 외에 것들은 오롯이 서로 다른 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탈 전쟁뿐이었다. 실제로 고대 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선물외교 또는 약탈전쟁은 하나같이 이 아니라 물품중심이었다. 소와 양 등 가축, 보리와 밀 등 곡물, 포도주와 기름 등이 주요 선물외교 물품이거나 약탈물품이었다. 심지어는 건강하게 자란 소년소녀 등 사람들까지도 아주 주요한 약탈물품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고대 부족사회 현실상황은 인류문명사 속에서 또는 히브리 성서 속에서 여실히 증언되어 온 역사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문명사 속에서 돈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빚의 역사이다. 인류 문명사 속에서 은 오롯이 으로 인해 생겨났다. 돈은 고대 사회로부터 빚을 셈하고, 기록하며, 축적하기 위해생겨났다. 돈은 고대로부터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에 이르기까지 그 주어진 역할들을 아주 쉽게, 전혀 빈틈없이 충실 하게 감당해 왔다. 물론, 고대사회에서도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환 매개체로써 신전화폐가 존재했다. 나아가 고대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에 이르기까지 이 명목상 교환의 주체적 수단으로써 교환가치의 척도이며 지불수단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돈의 실체적 진실은 고대사회에서부터 21세기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 빚을 셈하고, 기록하며,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만약, 인류 문명사에서 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부자도 없고 자본도 없고 권력도 없었을 것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빚을 지워 셈하고, 기록하며, 축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유구한 인류 문명사 속에서 빚의 역사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사라고 할 수 있는 수메르문명사에서는 빚의 역사에 대한 증언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는 교환 매개체로서의 -화폐와 관계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지워진 빚을 셈하고, 기록하며, 축적하는 수단으로서의 돈에 대한 역사가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수메르 문명에서는 대지주들이 파종기에 그들의 토지에 매인 소작농들에게 종자를 빌려주고 수확기에 이자를 붙여서 거두어들이는 채무제도가 성행했다. 대지주들이 수확기에 소작농들에게 거두어들이는 이자는 대략 생산물의 삼분의 일이었다. 그 외에도 소작농들은 정치종교 엘리트 권력자들로부터 이런 저런 명목의 착취와 약탈을 당해야 했고, 감당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소작농들의 빚으로 넘겨졌다.

그밖에도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는 여러 가지 물품을 대상으로 빚과 이자에 대한 세세한 규정들을 마련해 두었다. 양과 염소 등 가축을 대상으로 하는 이자는 자연증가율에 따라 20-25%의 이자율이 정해졌다. 보리밀 등 보관하기 쉬운 곡물에 대한 이자는 20%정도이었다. 반면에 변질되기 쉬운 포도주와 기름 등에 대한 이자율은 50%에 이르렀다. 이후에 수메르 문명에서 을 사용하는 쉐켈이라는 화폐가 나타났는데, 이 돈에 대한 이자율은 20~25%였다. 이러한 고대 수메르 문명사 속에서 빚의 역사를 증언하는 채권증서, 채권양도 증서, 약속어음등 기원전 3천 년대 무렵의 쐐기문자 토판문서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문서들 가운데에는 이 문서의 소지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내용을 기록한 문서도 있다. 이렇듯이 고대 수메르 문명 속에서는 교환 매개체로서의 화폐가 나타나기 오래전부터 빚을 셈하고 기록하고 축적하기 위한 돈이 생겨났고, 돈은 그 역할들을 빈틈없이 해냈다.

 

채무노예의 역사

 

이렇듯이 고대사회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돈의 역사는 곧 빚의 역사였고 또한 필연적으로 채무노예의 역사였다. 이러한 돈의 실체적 진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그리스, 고대 지중해세계 전체가 채무노예 세상이었다. 실제로, 구약성서 요셉이야기가 증언하는 이집트 파라오제국의 채무노예제도는 지배체제 내부자 바깥의 모든 사람을 채무노예화 하는 것이었다. 이집트 본토와 가나안지역까지 제국 안에 있는 모든 돈과 토지가 파라오의 손에 독점됨으로써, 수많은 소작농들과 소규모 자영농들이 시나브로 파라오의 채무노예로 전락했다.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는 채무노예들을 자기 땅으로부터 뿌리 뽑아 제국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강제 이주시킴으로써 가족을 해체하고, 떠돌이 농노로 만들었다. 이 떠돌이 농노들의 노동력이야말로 고대 이집트제국의 기념비적이고 불가사이 한 건축물들의 비밀이다.

일례로, 고대사회에서 신전을 중심으로 사용되던 교환매개체로써 전화폐는 사회전체에 미치는 큰 폐해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오롯이 온 가족이 대지주의 땅에 매여서 목숨 줄을 이어가야 만하는 소작농 채무제도는 수많은 채무노예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고대사회의 소작농 채무제도는 이율이 높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빚을 다 갚을 길이 없었다. 소작농들이 채무노예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롯이 지배자 또는 대지주가 채무상환을 유예하거나 일부 이자를 탕감하는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는 삼년동안 노예로 살다가 삼년이 지난 후 해방을 맞이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것은 고대 수메르문명의 소작농 채무제도 삼분의 일이자율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삼년이면 원금과 이자가 같아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수메르 문명의 채무노예 해방제도는 바벨론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으로 전해져 로마제국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었다.

그렇더라도 고대 사회에서 이 채무노예 해방제도는 오롯이 대지주의 땅에 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작농들을 대대로 대지주의 땅에 묶어놓기 위한 제도로써 매우 실제적인 지배술수였을 뿐이다. 대지주들은 소작농들의 과도한 채무를 일부 탕감하거나 유예함으로써, 대지주의 땅에 매여 사는 소작농들이 속절없이 채무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다. 또한 채무노예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도록 채무노예 해방제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들은 대지주의 땅에 매여 살아가는 소작농들이 대지주의 땅으로부터 벗어나 떠돌이 농노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다. 이 제도들은 고대사회 소작농 채무제도의 밑바탕을 튼튼하게 하고, 농업생산성을 높이며, 사회적 안정을 꾀하는 필요불가분한 사회정치경제 지배기술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제도에 대한 역사적 상황들은 예수의 용서하지 못하는 종의 비유 또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왜 고대사회에서 채무노예 제도가 성행하였을까? 실제로, 고대사회에서 가장 흔하고 손쉬운 노예획득 방법은 채무노예가 아니라 약탈노예 또는 전쟁노예였을 것이다. 특별히,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등 지중해 세계는 노예제 사회였다. 지중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정복전쟁을 통해 수많은 전쟁노예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도, 아주 오랜 시대로부터 지중해 해상무역을 통해 끊임없이 약탈노예들이 공급되었다. 지중해 세계의 약탈노예 무역은 고대로부터 중세 이슬람제국 노예무역으로 이어졌고, 마침내는 근대 서구 제국주의 노예무역으로 이어져 전 지구촌적인 노예약탈이 성행했다.

그러나 전쟁노예와 약탈노예는 대지주들이 좋아하는 노예가 아니었다. 전쟁노예와 약탈노예는 언제 어디서든 호시탐탐 노예주들에게 저항하고 반란을 꾀했다. 실제로, 지중해 세계의 대표적인 노예반란이었던 스파르타쿠스 노예전쟁은 매우 유명하다. 그래서 전쟁노예 또는 약탈노예들은 폭력적 통제가 가능한 대규모 건설현장과 광산노동에 동원되었다. 나아가 거친 지중해 바다를 항해하는 갤리선의 노잡이 노예로 투입되었다. 이에 반해서 고대로부터 채무노예들은 빚진 죄인이라는 사회정치경제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그러므로 지중해 세계의 열악한 농경지를 대규모로 소유한 대지주들은 자신에게 닥친 형편과 상황에 순응하는 채무노예들을 좋아했다. 지중해 세계의 대지주들에게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빚을 지워 채무노예로 삼는 것이 가장 좋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이렇듯이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에서도 거대 독점자본들은 대중들을 채무노예화 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실제로,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체제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시나브로 21세기 형 채무노예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우리시대의 대중들은 금융자본경제 체제에서 자신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신용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신용이 우리시대의 삶의 미래이고 욕망이며 밑바탕이다. 여러 장의 골드신용카드, 날마다 늘어나는 마이너스통장 한도액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면서 어느덧 가계부채 1,800조원 시대, 신용()없는 사람이 더 못난이다. 신용은 오늘 나와 나의 가족의 필요와 쓰임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미래의 희망과 꿈을 선물한다. 신용은 나의 미래에 대한 보장이고 지금 손에 넣은 나의 꿈이다. 내 신용으로 장만한 내 아파트, 크고 멋진 나의 승용차는 나와 가족의 부의 표상이고, 자부심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시나브로 돈의 지시를 따라 살게 되었다. 우리의 필요와 쓰임, 행동과 노동과 생활을 우리의 생각과 의지대로 끌어 나가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채무노예로 전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