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신앙』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8.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 철폐사건
마가복음 11: 15-19
본문읽기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리고 예수가 성전으로 들어가서 성전 안에서 팔고 사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예수는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성전을 가로질러(통하여) 물품을 나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예수가 (그들을)가르치며 그들에게 말했다.
“옛 부터, ‘내 집은 모든 민족들에게 기도의 집으로 불려 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들, 너희들은 일찍이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구나.”
그때 마침, 대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야 예수를 죽여 없앴을 수 있을까’ 꾀했다. 사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모든 군중들이 예수의 가르침으로 인해 크게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이해하기
예루살렘 성전 이야기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는 두 번에 걸쳐 새로운 ‘베트 카데쉬 בֵּית קָדֵשׁ 성전’이 지어졌다. 첫 번째 성전은 다윗왕조 솔로몬 왕국시절에 건설 되었고 두 번째 성전은 바벨론포로 귀환시절 스룹바벨이 건설했다. 그런데 두 번째 성전은 헤롯대왕 시절에 새롭게 재건축되었다. 첫 번째 예루살렘성전은 다윗왕조신학을 튼튼하게 세우는 밑바탕으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베트 예흐바 בֵּית יְהוָה 야훼의 집 회막(會幕)’을 본떠서 지었다. 실제로 다윗왕조신학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 야훼의 집에서 자유롭게 머무시던 야훼하나님을 억지를 부려 모셔왔다.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지성소에 유폐시켰다. 그러나 마침내 본문읽기에서 하나님 영의 사람, 참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철폐시켰다.
솔로몬 성전
다윗 왕은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 그리고 에돔과 시리아 지역까지 정복해서 소제국주의 다윗왕조를 튼튼하게 세웠다. 이후 다윗 왕이 죽고 나서 다윗왕조 솔로몬왕국이 들어섰다. 그러면서 첫 번째 예루살렘성전이 지어졌다. 첫 번째 예루살렘성전은 기원전 9백67년 솔로몬왕국 4년에 건축을 시작해 7년 후 기원전 9백6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번째 예루살렘성전은 솔로몬성전이라고 불린다. 예루살렘성전 건축은 다윗왕조의 정통성을 튼튼하게 세우려고 노력했던 다윗왕의 평생 숙원사업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야말로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 정통성을 다윗왕조신학으로 몰수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이제 후로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에서만 야훼하나님을 뵙고 예배할 수 있었다.
이렇듯이 첫 번째 예루살렘 솔로몬성전은 4백 여 년 동안 예루살렘 다윗성에서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기원전 5백87년 바벨론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남유다왕국이 멸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도 함께 멸망했다. 바벨론제국은 예루살렘성전의 모든 종교상징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다윗왕조 남유다왕국의 엘리트계층도 바벨론포로로 잡아갔다.
스룹바벨 성전
세월이 흘러 페르시아가 바벨론제국을 무너트리고 비옥한 초승달지역의 새로운 제국으로 탄생했다. 페르시아제국은 바벨론제국과 달리 제국 안에 여러 민족들의 종교문화를 되살리라고 명령했다. 제국 안에 여러 종교들의 신전들이 세워지고 다양한 신들에게 제국의 부와 권력과 번영을 빌었다. 기원전 5백37년 스룹바벨이 이끄는 바벨론제국 유대인포로들의 1차 예루살렘 귀환이 이뤄졌다. 이후로 오랜 세월에 거쳐 2차 3차 바벨론포로들의 예루살렘 귀환이 이루어졌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스룹바벨은 페르시아제국의 지원을 받아서 제2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윗왕조가 망한 이후 예루살렘에서 거주해온 이방사람들의 온갖 방해공작으로 인해 성전건축이 늦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원전 5백15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이 완공되었다. 예루살렘 제2성전은 성전건축을 주도한 스룹바벨의 이름을 따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불린다.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성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지어졌으나 그때만큼 화려했던 것 같지 않다. 다만 바벨론제국이 빼앗아 같던 종교물품들은 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성서학자들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총칙으로써 십계명법궤는 예루살렘 성전파괴 때에 사라졌을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예루살렘 제2성전 제사의식은 솔로몬성전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해져서 세세하고 교묘하게 집행되었던 것 같다.
헤롯대왕 성전
헤롯대왕은 이방인과 다름없는 에돔사람으로서 로마제국 군대의 지원을 받아 기원전 37년 유대인들의 왕이 되었다. 헤롯대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성전을 새롭게 재건축했다. 헤롯대왕은 기원전 20년 예루살렘성전 재건축을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다. 헤롯대왕은 성전전체를 높은 돌담으로 외워 싸서 성전의 위용을 한껏 드높였다. 성전 본채도 벽과 난간으로 둘러싸서 거룩한 성전공간과 이방인의 뜰을 나누었다. 성전 본채를 둘러싸서 이방인의 뜰과 나누는 벽에는 ‘이방인들이 침범 시 사형’이라는 경고문을 붙였다고 한다.
한편 이방인의 뜰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그 이방인의 뜰 안쪽으로 성전 안뜰이 있었는데 이 뜰은 거룩한 장소로서 경건한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성전 안뜰도 바깥쪽으로부터 안쪽으로 여인들의 뜰과 남성들의 뜰(또는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사제들의 뜰로 나뉘었다. 여인들의 뜰과 남성들의 뜰은 별도의 벽으로 구분했다. 사제들의 뜰에는 현관과 성소로 구별된 성전 본체건물이 있었고 현관 앞뜰에 번제단과 대야가 놓였다.
성소 안에는 떡 놓은 상과 등잔대와 향 제단이 있었다. 성소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휘장을 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다. 지성소에 무엇이 있었을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제들의 뜰 안으로는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지성소에는 오롯이 속죄의 날에 대제사장만 출입할 수 있었다. 성전제사 의식이 벌어질 때는 남자들의 뜰 또는 이스라엘의 뜰에서 유대인 남자들이 희생제물을 바치기도 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했다.
예루살렘성전을 둘러싼 높은 담장 쪽으로 주랑이 늘어서 있었다. 예수도 이곳에서 유대인들을 만나고 토론하고 하나님나라 복음을 설교했을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성전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성전으로 통하는 문들은 북문하나, 예루살렘 시가지를 향해 서쪽으로 네 개, 남쪽으로 2개, 동쪽으로 하나 등 모두 여덟 개라고 알려져 있다. 헤롯대왕성전은 서기 70년 유대전쟁 때에 로마제국 군대에 의해 완전하게 파괴당했다.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 철폐사건
예수가 유대사람으로서 예루살렘성전에 대해 어떤 정서를 가졌는지는 역사실증주의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기득권세력을 향해 끊임없는 대항행동을 펼쳤다. 예수는 예루살렘성전을 향해 ‘강도의 소굴’이라고 거칠고 사납게 비판했다. 예수는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에 따라 성전을 ‘야훼하나님의 집, 내 아버지의 집, 기도의 집’으로 불렀다. 사실 성전을 향한 예수의 이러한 표현은 매우 어색하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에서 성전의 핵심가치는 거룩한 희생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렇듯이 예수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에 걸맞게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는 야훼하나님의 집 또는 내 아버지의 집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예루살렘 헤롯성전 멸망을 선포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삼일 안에 그것을 일으킬 것이다.”
요한복음 2:19
본문풀이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 철폐사건
비폭력 대항행동(對抗行動)
이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자리매김 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맞는 말이다. 예수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다. 예수는 로마제국 지배체제의 폭력과 죽임의 실체인 십자가처형을 당했다. 예수는 로마제국 폭력과 죽임의 지배체제에 기생해서 기득권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를 거칠게 비난했다. 예루살렘성전 기득권세력들의 반생명․반인권․반평화 종교행태를 온 세상에 낱낱이 폭로했다. 예수는 로마제국 황제권력과 거기에 기생해 온 예루살렘 성전기득권을 향해 철저한 대항행동(對抗行動)을 펼쳤다. 그러나 한편 예수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로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 대안세상(alternative society)을 꿈꿨다.
그렇다면 ‘예수의 비폭력 대항행동’(對抗行動)은 전혀 물리력을 배제하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는 로마제국과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 기득권세력에 대하여 온몸으로 저항하는 물리력을 행사했다. 욕설도 마구 퍼부었다. 예수는 로마제국 황제권력의 폭력과 죽임의 실체인 십자가처형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예수의 십자가행동이야말로 로마제국의 폭력과 죽임의 지배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물리력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억압과 폭력과 죽임에 대항하여 십자가처형을 당함으로써 대항혁명 물리력행동을 증언했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21세기 예수 신앙인들에게도 철저한 비폭력 대항행동 물리력을 전수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라고 요청한다.
실제로 예수신앙인들은 로마제국 폭력과 죽임의 지배체제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에 대한 대항혁명운동가 예수를 신앙한다. 열혈분노 예수의 비폭력 대항운동 물리력을 예수신앙 가치와 질서로 이해하고 깨달으며 받든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신앙과 삶으로 행동하고 기억한다.
그러나 오롯이 예수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모든 폭력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실제로 예수의 제자그룹에도 피를 부르는 혁명을 마다하지 않는 열혈당원들이 있었다. 예수는 이들의 담대하고 또한 무모한 폭력 대항행동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예수의 그 유명한 비폭력 일화를 상기하자.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참으로 칼을 잡은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이렇듯이 21세기 예수신앙인들은 하나님과 하나로 창조생명생태계 안에서 모든 생명말살 폭력을 철저하게 배격해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써 예수의 비폭력 대항행동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예수의 비폭력 대항행동은 생명을 말살하는 모든 폭력을 향한 대항행동 물리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명을 말살하려는 폭력 앞에서 얼굴을 돌리거나 굴종하는 행위를 비폭력 절대평화라고 거짓선동해서는 안 된다. 생명말살 폭력과 죽임 앞에서 비폭력 절대평화 거짓선동을 위해서 예수의 비폭력 대항행동을 끌어다 댈 수 없다. 이러한 비폭력 절대평화 거짓선동이야말로 예수의 비폭력 대항행동에 대한 불신앙 퇴행일 뿐이다. 이 불신앙 퇴행이야말로 가장 참혹한 폭력과 죽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거기에 기생해서 기득권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향해 거침없는 대항행동 물리력을 행사했다. 예수의 대항행동 물리력은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성전 기득권세력이 행사하는 모든 위해와 폭력 그리고 십자가고난마저도 기꺼이 감수한다.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성전 기득권세력이 예수에게 행한 십자가처형이 바로 그 증거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가장 혹독한 생명말살 십자가폭력과 죽임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었다.
그럼으로써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성전 기득권세력을 향한 대항행동 물리력을 행사했다. 예수는 시대의 풀뿌리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노예화하는 로마제국 지배체제를 향해 한껏 분노했다. 그 거룩한 분노가 일으키는 대항행동 물리력을 아낌없이 없이 행사했다. 본문읽기에서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이 예수의 비폭력 대항행동 물리력의 실체와 진실을 여실히 증언한다.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
예수시대의 유대와 갈릴리 풀뿌리 사람들은 3중 또는 5중 지배체제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먼저는 착취와 폭력과 죽임의 로마제국 황제권력 지배체제다. 두 번째는 로마제국에 기생해서 종교사익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다. 세 번째는 헤롯왕조의 억압과 약탈 지배체제다. 네 번째는 대 토지주의 독점과 착취 지배체제다. 다섯 번째는 유대교 613개 생활율법주의 지배체제다. 유대 풀뿌리 사람들은 유대교 생활율법체제로부터 생활권리와 종교사회 공동체권리를 억압당했다. 무엇보다도 로마제국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는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생명권․생존권․생활권리를 크고 깊고 넓게 짓밟았다.
이렇듯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야말로 오랫동안 유대 풀뿌리 사람들의 삶을 옥조여 온 생활밀착형 지배체제다. 실제로 히브리 성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풀뿌리 사람들의 생활을 억압하고 착취해온 온갖 제사들을 설명한다. 신약성서 시대에 이르러는 속죄제, 속건제(贖愆祭)기타 성전세금과 헌금이 강요되었다. 유대교는 성전제사들의 권위와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생활율법을 세세하게 나누고 강화했다. 더해서 새로운 규정들을 만들어 생활밀착형 율법으로 꾸몄다. 예수시대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는 613개에 이르는 생활율법 규정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유대 사회경제․종교․정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 정결례다. 이 정결례는 유대 풀뿌리 사람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몹시 괴롭게 했다. 씻는 것, 사체를 만지는 것, 분뇨처리, 온갖 먹지 못할 것들, 접촉해서는 안 되는 온갖 인간관계들을 세세하게 규칙으로 정했다. 유대 풀뿌리 사람들은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규칙들이었다. 또 정결례 문헌들마다 ‘마부, 목동, 푸주간주인, 분뇨수거, 무두장이’ 등 온갖 부정한 직업들을 나열했다.
예수시대의 가난하고 힘없는 풀뿌리 사람들은 정결례 생활율법들을 결코 지켜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정결례 생활율법들을 지켜내지 못했을 때는 어김없이 예루살렘 성전제사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아야만 했다. 그러하지 못할 때에는 유대 사회경제․종교․정치 공동체와 예루살렘 성전공동체에서 배제되어야만 했다. 실제로 예수시대의 유대 사회경제․종교․정치 공동체 또는 예루살렘 성전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은 곧 신앙과 삶의 죽음이었다. 따라서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는 유대 사회경제․종교․정치 공동체의 모든 특권․기득권의 총체였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의 모든 권력은 대제사장 그룹에게 귀속되었다. 모든 희생 제물들에 대한 제사장들의 독점권리, 제물용 동식물거래의 독점권, 성전화폐 발행권 등이 바로 대제사장 그룹의 특권이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 안에는 오래된 일반 가축시장이 있었다. 이 가축시장에서는 이방지역을 통과해서 수입되는 온갖 가축들과 고기들이 거래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전 안 이방인들의 뜰에서는 흠 없고 정결한 제물거래를 위해서 ‘제사용 가축시장’이 열렸다. 기원전 2세기 무렵 외경들도 예루살렘성전 이방인들의 뜰에서 열리는 종교시장을 소개한다. 환전상과 여러 상점들에 대해서도 세세히 묘사한다.
실제로 고대 유대사회에서 상인들은 꽤 존경받는 직업인들이었다. 일반 제사장이나 대제사장 가문에서도 많은 상인들이 나왔다. 따라서 성전 안 이방인들의 뜰 상권은 대제사장 가문들의 독점개입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고대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프스’는 유대고대사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교활한 상인’으로 묘사한다. 이렇듯이 거룩한 성전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의 뜰에서 활발한 종교시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읽기에서 이러한 거래를 보장하는 배경은 그 시대의 유력한 ‘대제사장 안나스 가문’이었다.
예루살렘 성전화폐 발행권리
예수시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는 로마제국 지배체제의 내부자로써 성전 안에서 통용되는 ‘거룩한 돈’을 발행했다. 성전제사용 ‘희생제물’을 거래하려는 사람이나 성전세금을 바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세속의 돈을 거룩한 돈으로 환전’해야만 했다. 이렇게 성전화폐 발행특권이 부여되고 정착되는 과정과 배경에는 로마제국과 헤롯왕조 사이의 특별한 사건관계가 연루되어 있다.
신약성서에서 헤롯왕조 시대를 연 헤롯대왕의 아버지는 ‘안티파트로스’(Antipatros)라는 사람이다. 그는 유대 하스몬 왕조(마카비 왕조)말기의 정치혼란과 로마제국의 팽창에 힙 입어 이두매(에돔)와 유대에서 막강한 세력가로 등장했다. 안티파트로스는 처음에 시리아에서 군사성공을 거둔 로마제국 폼페이우스장군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싸울 때에는 폼페이우스를 배신하고 카이사르에게 줄을 섰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대패해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쳤으나 그곳에서 암살당했다. 카이사르는 곧바로 군대도 거느리지 않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건너와서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그의 연인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미13세가 지휘하는 이집트군대에게 포위되었다. 기원전 48년에서 47년까지 벌어진 이 카이사르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알렉산드리아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때 헤롯대왕의 아버지 안티파트로스는 발 빠르게 카이사르를 구원했다. 안티파트로스는 이두매인과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용병부대를 이끌고 카이사르를 지원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한 이집트인들을 성 바깥에서부터 쳐부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 카이사르를 구원했다. 이로써 카이사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 로마제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때 카이사르는 안티파트로스에게 유대왕권을 약속했다. 더해서 예루살렘 성전면세와 성전화폐 발행권리 등 종교특권을 약속했다.
세월이 흘러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헤롯대왕’은 천신만고 끝에 유대 땅에서 왕이 되었다. 그는 이두매인으로서 유대인의 호의를 얻기 위해 새롭게 예루살렘 성전을 확장 재건축했다. 이 성전 재건축은 기원전 20년에서 서기 19년까지 계속되었다. 성전 내부공사는 예수살렘성전이 로마제국 군대에 멸망당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헤롯대왕은 약 20m 높이로 성전 외벽을 둘러쌓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그리스 식 회랑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 일부가 남아있는데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유적이다. 특별히 성전 출입문은 로마식 아치를 본 따서 지어진 거대한 대리석 건축물이었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문을 ‘호라이오스 ᾩραῖος 미문(美門)’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낱말 호라이오스는 ‘아름다움 또는 때에 알맞음’이라는 뜻이다.(사도행전 3:2)
이렇듯이 헤롯성전은 비록 이방인 통치자가 세웠지만 모든 공사에 훈련된 제사장들이 투입 되었다.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1천명의 제사장들이 성전건축공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옛 성전을 해체하고 새롭게 복원하는 본채 공사만 10여 년에 걸쳐서 완공을 보았다. 하지만 성전구역 전체 공사는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이 언급한 서기 46년을 훨씬 지나서 서기 63년에서야 완성 되었다. 이 때 비로써 성전구역 전체에 대한 봉헌식이 있었다. 이처럼 예루살렘 헤롯성전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큰 자랑이었고 경이로움이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폐쇄하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에 대한 열혈분노를 드러냈다. 본문읽기에서 예수는 예루살렘성전폐쇄 대항물리력을 행사했다. 예수의 성전폐쇄사건보고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 본문(2:13-22) 두 가지 전승이 전해진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성전폐쇄사건을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폐해를 향한 대항행동으로 증언한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폐쇄사건은 마가복음 말미에서 예수의 십자가처형의 원인으로 드러난다.
한편 요한복음은 예수의 성전폐쇄사건을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출발점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폐쇄사건을 예수의 신성(神性)에 대한 증언으로 편집했다. 이제 필자는 두 복음서 본문들을 서로 비교해서 읽으며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라는 주제로 본문풀이를 하려고 한다.
“내 아버지의 집을 시장 저자거리로 만들지 마라. 너희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삼일 안에 그것을 일으킬 것이다.” 요한복음 2장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의 발언들은 예수의 십자가처형과 삼일만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두 복음서의 본문들을 비교하며 읽어보자. 예수의 열혈분노와 거침없는 대항행동과 대항물리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실제로 예수는 성전폐쇄를 목적으로 예루살렘성전을 사전답사 했다.
“예수가 예루살렘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둘러보았으나 이미 날이 저물었다. 예수는 열두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나갔다.” 마가복음 11:11
이튿날 예수는 크게 마음먹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섰다. 요한복음 2장 본문에 따르면 예수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며 소와 양과 염소 등 제물용 가축들을 몰아냈다. 또한 환전상의 탁자와 비둘기파는 사람의 의자를 둘러메쳤다. 이때 마가복음 11장 본문은 ‘카테스트레퓌센 κατέστρεψεν 둘러엎다’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카타 κατά 아래로 + 스트레포 στρέφω 비틀다 또는 돌이키다’로 이루어진 합성동사다. 이 동사 하나로써 예루살렘성전 이방인들의 뜰에서 펼쳐진 상황들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시장 풍경과 예수의 몸짓 발짓 나대는 모양을 그림처럼 펼쳐낼 수 있다. 실제로 예수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성전 안으로 들여오는 모든 제사용 물품들을 막아섰다.(마가복음 11:16) 당황해서 우왕좌왕 어쩔 줄 모르는 장사꾼들에게도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내 아버지 집을 시장 저자거리로 만들지 마라.” 요한복음 2:16b
“성서에 기록되어 있기를 ‘내 집은 모든 민족들에게 기도의 집으로 불려 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들, 너희들은 일찍이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구나.” 마가복음 11:17
왜, 예수는 이토록 분노해야만 했을까? 감히 맞대응하기조차 무서우리만큼 물샐틈없는 대항행동 물리력을 몸짓 발짓으로 내두르는 예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예수에게, 무엇보다도 가난한 풀뿌리 사람들에게 ‘야훼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었다. 모든 민족들에게 기도의 집으로 불려 져야만 하는 거룩한 곳이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야훼하나님의 집에서 기도를 통해 야훼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다. 기도로 자기 삶의 고통과 절망을 고백하고 야훼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을 누릴 수밖에 없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소굴로 전락했다.
이때 마가복음 본문은 ‘스펠라이온 레스톤 σπήλαιον λῃστῶν’이라는 헬라어 문구를 사용한다. ‘약탈자들이 모여드는 근거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는 폭력과 죽임의 로마제국 황제권력 지배체제에 기생해서 세력을 키웠다. 로마제국 황제권력으로부터 위임받은 종교특권을 내세워 유대 풀뿌리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예루살렘성전은 이윤과 사익을 쫓아 몰려드는 종교권력자들과 종교약탈자들과 종교사기꾼들의 근거지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듯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는 가난하고 힘없는 풀뿌리 사람들에게 생활율법 굴레를 씌워 억압하고 착취하는 종교약탈자였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열혈분노 대항행동 물리력을 폭발시킨 원인들이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 저자들은 자기신앙 관점에 따라 본문전승을 편집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향한 열혈예수의 대항행동 물리력의 진실을 덮을 수 없었을 것이다.
히브리 지파동맹 야훼의 집 회막(會幕)
예부터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는 다윗왕조 솔로몬왕국의 사독제사장 가문을 통해서 여부스족의 성전제사종교와 혼합되었다. 그러나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은 ‘미쉬칸 예흐바 מִשִׁכַּן יְהוָה 야훼 하나님의 회막(會幕)’전승이었다. ‘회막’은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를 만나는 곳이었다. 아직 노예정체성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한 히브리들의 고단한 광야생활 가운데서 회막은 ‘야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나타냈다. 회막은 ‘야훼 하나님께서 늘 히브리 해방노예들과 함께 하신다’라는 광야신앙의 표상이었다.
이렇듯이 회막전승은 히브리 해방노예 공동체의 희년신앙 고백과 실천행동 그리고 기도와 삶을 증언했다. ‘회막(會幕)전승’이야말로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주변 노예왕국들을 향해 갖게 되는 신앙과 삶의 자부심이고 자랑이었다. 그러나 예수시대에 이르러 야훼하나님의 집 회막전승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종교약탈자들의 소굴로 퇴행했다. 예루살렘성전 기득권세력이 가난하고 힘없는 풀뿌리 사람들을 착취하고 사익을 챙기는 독점 종교시장이 되었다. 이제 예수에게 예루살렘성전은 유대 풀뿌리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약탈하는 종교 떼강도들의 근거지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21세기 한국교회와 교우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예수의 열정’이라는 서구교회의 본문읽기를 답습할 필요가 없다. 본문을 읽고 해석하면서 ‘예수의 성전정화 사건’이라고 막연하게 풀이해서는 안 된다. 본문읽기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내용들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향한 열혈분노 예수의 대항행동 물리력이다. 예수는 누구도 말려볼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거세고 사나운 대항행동 물리력을 몸짓 발짓 온몸으로 내둘렀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휘두르며 소와 양과 염소 등 희생 제사용 동물들을 성전바깥으로 몰아냈다. 어떤 제사용 물품들도 예루살렘성전 안으로 들여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았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멀거니 바라볼 뿐 감히 예수의 대항행동 물리력을 막아서지 못했다.
참으로 예수는 본문읽기에서 너무도 놀랍고 두려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을 일으켰다. 예수는 야훼하나님을 내세워서 가난하고 힘없는 풀뿌리 사람들을 억압하고 옭아매어 착취하는 종교행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종교는 그저 사이비종교일 뿐이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제사 종교체제의 종말을 선포하다.
이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를 철폐함으로써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야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증언하려고 한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삼일 안에 그것을 일으킬 것이다.” 요한복음 2:19
위 예수의 선언은 수수께끼처럼 어렵다. 초대교회는 이 선언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해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서는 이 선언을 ‘예수의 십자가처형과 관련된 성전모독죄 증거’로 거론한다.(마태복음 26:61, 마가복음 14:58, 15:29)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의 이 선언을 어떻게 이해하고 읽어야할까?
필자는 예수의 이 선언을 비유로 읽고 숨겨진 신앙은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 비유선언은 어떤 신앙은유를 가지고 있을까?
예수는 이 비유선언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의 종말’을 선포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임마누엘)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야말로 로마제국 황제권력 지배체제를 향한 대항행동으로써 대안세상(alternative society)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해서 기득권을 누려온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는 종언(終焉)을 고해야 한다. 이제 예수와 함께 이 땅에 도래하는 ‘야훼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국교회와 교우들에게 본문사건에 대한 해석은 한결같이 ‘예수의 성전정화 사건’이다. 이러한 해석의 밑바탕은 21세기 한국교회가 예수시대의 성전제사종교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대형교회들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답습행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무슨 ‘일천번제니, 향기 나는 제물이니’ 따위는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본문읽기에서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은 주도면밀하다. 예수일행은 유대교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미리 예루살렘성전 답사를 했다. 이튿날 예수일행은 예루살렘성전으로 다시 들어가서 풀뿌리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을 일으켰다. 갈릴리 나사렛사람 예수의 열혈분노 대항행동 물리력이 거리낌 없이 행사되었다. 예수는 노끈채찍을 만들어 휘둘렀다. 성전화폐 환전상과 장사꾼들을 몽땅 쫓아냈다. 예루살렘 성전제사용 모든 물품반입과 운반자체를 철저하게 막았다.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를 잠시 동안이나마 완전하게 철폐시켰다.
성전 경비대
예루살렘성전에는 성전경비대가 있었다. 그것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결탁한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의 특권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로마제국 지배체제에서 예루살렘성전 경비대원의 숫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를 철폐하려는 예수일행과 성전수비대의 대치는 살벌했을 것이다. 본문은 그러한 상황들을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증언한다.
“그때 마침, 대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야 예수를 죽여 없앴을 수 있을까’ 꾀하였다” 마가복음 11:18a
그렇다면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 대항행동 물리력행사에 따르는 위험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예수는 그러한 모든 위험성을 감수했다. 도리어 예수는 그러한 위험성을 불러일으켜서 크게 확대시키려고 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와 함께하는 예루살렘상경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요한복음서에서 도마는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상경을 결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
파스카 πάσχα 유월절
본문읽기에서 예수는 유대교 최대명절인 ‘파스카 πάσχα 유월절’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공생애 삼년 동안 예수가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기록했다. 이에 반해 다른 세 복음서에는 예수가 단 한번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기록했다. 어찌 되었든 이 날 유월절은 이집트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과 구원을 기념하는 날이다. 지중해세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해마다 이 날을 기념해서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오른다.
또한 이날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기득권세력이 대목을 보는 날이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멸망당한 이후 예루살렘 성전제사 의식은 더 다양하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예루살렘성전은 한껏 높아진 제사의식을 통하여 유대와 지중해세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신앙정체성을 표상해왔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따르면 예루살렘성전 유월절제사용 희생동물의 수는 약1만8천 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지중해세계로부터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 객 숫자도 약 12만 명에서 18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듯이 예수시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는 종교엘리트 기득권들이 독점하는 거대한 ‘종교시장 또는 종교 산업’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은 대제사장 등 종교엘리트 기득권세력의 돈줄을 끊는 행동이었다.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이야말로 예수의 십자가처형의 핵심원인이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그리고 성전기득권세력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철폐사건으로 크게 이익을 침해당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예수를 죽여 없앨 수 있을까’ 모의했다.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기득권자들은 예수를 정치범으로 로마제국에 팔아넘겨서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협력해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뿌리 뽑으려고 했다.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기득권체제를 향한 유대 풀뿌리 사람들의 대항행동을 무마하려고 했다.
사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했다.
이렇듯이 대제사장과 사두개파와 율법사들이 예수를 향해 드러내는 적대감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야훼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기득권을 해체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 풀뿌리 사람들에게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무엇보다도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크게 깨우치고 있었다. 이때 본문읽기에서 사용된 ‘에크플렛소 ἐκπλήσσω 크게 깨우치다’라는 헬라어 동사의 문자의미는 ‘깜짝 놀라게 하다’이다. 실제로 이 헬라어 동사는 ‘에크 ἐκ ~으로부터 + 플렛소 πλήσσω 놀라다’로 이루어진 합성동사다.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은 예수의 성전폐쇄사건 대항행동을 보고 또 예수의 가르침을 들으며 깜짝 놀라서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이해하고 크게 깨닫기 시작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통하여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를 열망하게 되었다. 참으로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이 ‘예수의 임마누엘 하나님나라 신앙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해방과 구원의 빛이었다. 유대 풀뿌리 사람들의 신앙정서 안에 숨겨진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전통과 열정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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