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야기/아침에 온 한 뜻

본래, 생명과 평화는 삶의 언어입니다.(07.08.13)

희년행동 2022. 5. 20. 20:47

본래, 생명과 평화는 삶의 언어입니다.

 

 

이 시대의 화두가 ‘생명과 평화’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의 형편을 보아도 그렇고.

지구촌 곳곳에서 너나없이 ‘생명․평화’를 외쳐대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여기에 처질세라

이리저리 생명․평화를 외치는 모임에 발품을 팔아 왔습니다.

여러 가지 세미나와 토론과 행사들이 볼만했지요.

가끔 한 두 마디 거들어 보기도 했구요.

 

그렇더라도, 생명과 평화가 실현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래 생명과 평화는 삶의 언어입니다.

공동체의 언어이구요.

나와 너, 우리의 언어이지요.

 

그런데 이 시대의 생명․평화외침은 구호가 되고 말았습니다.

명망가들의 강연주제가 되었고 운동가들의 명함이 되었습니다.

끼리끼리의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심지어는 선진문화강국의 문화침탈로

이에 편승한 약삭빠른 먹물들의 호구지책으로 변질 된지 오래이구요.

따라서 하루살이 대중들에게 생명․평화는

그저 추상과 관념의 말장난일밖에 없습니다.

 

이제, 생명과 평화를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언어로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생명․평화는 이시대의 무조건적 삶의 가치로 치부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시장질서의 무한 경쟁 무한독점 무한소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남과 나눔을 통한 삶의 품앗이를 일상화 하는 것이지요.

 

나 혼자 잘하는 것을 뽐내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구요.

결과와 열매를 독차지하고픈 욕망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나누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구요.

혼자 먹고 배불러 남기는 호화로움보다는

여럿이 함께 먹는 기쁨을 감사하는 것이지요.

 

오늘 새벽

많이 거둔 사람, 적게 거둔 사람이 있으나

오멜로 되어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고 않는

만나의 기적을 묵상 합니다.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필요에 따라 꼭 알맞은 만큼

여럿이 함께 나누어 쓰던 ‘초대교회의 삶의 일상’이지요.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아니겠어요?

그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바로 우리의 생명․평화운동이지요.

 

살롬! 알라이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