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읽기

희년신앙 행동서사, 히브리 지파동맹전통 안에서 스스로 왕을 뽑을 권리

희년행동 2025. 2. 11. 14:22

히브리 지파동맹전통 안에서 스스로 왕을 뽑을 권리

 

다윗왕조 솔로몬왕국은 유대와 히브리 지파동맹과 예루살렘 세 왕국을 함께 통치했다. 일찍이 다윗은 유대 땅 변두리 아둘람 굴에서 온갖 도망자와 떠돌이들을 모아 세력을 결집했다. 이후 블레셋지역을 약탈하고 그 전리품으로 유대주민들의 환심을 샀다. 또한 유대지역 마을들을 약탈자들로부터 보호했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이후 유대 땅 헤브론에서 유다왕국의 왕위에 올랐다. 또 한편 사울의 후손 못난이 왕들과 전쟁을 통해서 히브리 지파동맹 왕이 되었다. 나아가 다윗은 자신의 용병부대를 동원해 예루살렘 성을 빼앗고 예루살렘 왕이 되었다.

이로써 다윗왕은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훼방하고 배신하는 다윗왕조신화를 완성했다. 다윗 왕이 죽은 이후 솔로몬왕국은 예루살렘성전을 건설하고 성전제사종교체제를 확립했다. 이후로는 다윗왕조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가 히브리 지파동맹의 야훼하나님을 탈취하고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 솔로몬 왕이 죽고 나서 다윗왕조 솔로몬왕국은 분열의 길로 내달렸다. 솔로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레흐브암은 부랴부랴 세겜으로 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히브리 지파동맹이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을 세겜으로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 풀뿌리사람들이 세겜에서 레흐브암을 왕으로 세우는 조건을 내걸고 협약을 맺으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겜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주요도시로써 이스라엘 땅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또 세겜은 희년신앙 행동법규총칙인 십계명언약궤를 모셨던 히브리들의 옛 야훼 회막성소였다.

이때, 본문읽기는 -카할 이스라엘 כָל־קְהַל יִשְׂרָאֵל 온 이스라엘 총회라는 히브리어 문구를 사용한다. 히브리 지파동맹이 총회를 열고 희년신앙 행동법규에 따라 해방과 정의와 평등 실행약속을 받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사건 이후에 히브리 지파동맹은 사울 왕 때처럼 북이스라엘 풀뿌리 총회를 열어 다윗왕조신화 대항자 야로브암을 북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

이와 관련하여 유다지파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윗왕조신화 이데올로기에 따라 아무런 조건 없이 레흐브암을 왕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옛 히브리 지파동맹은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밑바탕으로 다윗과 협약을 맺고 다윗을 히브리 지파동맹 왕으로 세웠다. 그 협약의 핵심 내용은 왕은 이스라엘의 목자다라는 희년신앙 행동계약 공동체위탁이었다. 그 위탁의 핵심은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에게 왕의 올바르고 따뜻한 통치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희년신앙 행동계약 공동체 위탁과 왕의 약속이야말로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이 스스로 왕을 뽑을 권리의 근거였다.(사무엘하 5)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은 솔로몬 왕이 죽은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행동했다.

사실, 다윗 왕이 죽은 이후 솔로몬왕의 즉위는 다윗왕가의 살벌한 왕위쟁탈 쿠데타 속에서 다윗왕조신화 이데올로기에 따른 통과의례였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은 히브리 지파동맹 전통 안에서 스스로 왕을 뽑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은 솔로몬왕국의 포학한 소제국주의 지배체제에 매여 억압과 착취와 노예 삶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미 다윗왕조신화 대항자 야로브암이 솔로몬왕국의 폭정을 향한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의 대항봉기 물꼬를 텄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히브리 지파동맹 풀뿌리 사람들의 대항봉기는 분명하게 야훼하나님의 뜻이었고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본문읽기는 북이스라엘 히브리 지파동맹이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다시 새롭게 고쳐 세우는 길잡이와 같다. 옛 히브리들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향한 회복탄력성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 잇기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