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봐! 참 아름답구나!
창세기 1장 ~2장 3절

사역
한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땅은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으며, 깊음의 바다 위에 짙은 깜깜만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 물위에서 휘돌았다. 하나님이 소리치셨다.
“빛이 있어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그 빛을 보셨다.
“참 아름답구나!”
하나님이 그 빛과 어둠사이를 나누셨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셨다.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첫째 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소리치셨다.
“물 가운데 둥근 천장(天障)이 생겨서 물과 물이 갈라져라!”
하나님이 얇게 편 둥근 천장을 만드시고 천장 아래 있는 물과 천장위에 있는 물을 나누셨다. 그래서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그 둥근 천장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다.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이튿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소리치셨다.
“하늘 아래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라! 마른 뭍이 나타나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마른 뭍을 ‘땅’이라고 부르고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보셨다.
“참 아름답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셨다.
“땅은 푸른 새싹이 돋아나게 하라! 풀과 씨 맺는 채소(또는 곡식)와 ‘그 안에 제 씨가 있어서 그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는 나무(또는 과일나무)’가 땅위에 자라나게 하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땅이 풀과 그 종류에 따라 씨 맺는 채소를 내어 놓았다. 또 그 종류에 따라 그 안에 제 씨가 있어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내어 놓았다. 하나님이 보셨다.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셋째 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소리치셨다.
“빛나는 것들이 하늘 천장에 있어서 낮과 밤을 나누게 하라! 그것들이 절기들과 나날과 해(年)를 나타내는 표가 되게 하라! 그들 빛나는 것들이 하늘 천장에서 땅위를 비추게 하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크게 빛나는 것들 두 개를 만드셔서 더 크게 빛나는 것으로 낮을 책임지게 하시고 작게 빛나는 것으로 밤을 책임지게 하셨다. 또한 별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땅위를 비추게 하려고 그것들을 하늘 천장에 늘어놓으셨다. ‘낮과 밤’을 책임지게 하시고 ‘빛과 어둠’사이를 나누게 하셨다. 하나님이 보셨다.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넷째 날이 지나갔다.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물들은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체를 우글거리게 하라! 새는 땅위에서 하늘 천장 가장자리에 까지 날아라!”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그들 종류에 따라 물속에서 꿈틀대며 우글거리는 온갖 살아 있는 생명체(또는 물고기)와 그들 종류에 따라 날개달린 온갖 새를 만드셨다. 하나님이 보셨다.
“참 아름답구나!”
하나님이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명령하셨다.
“새끼를 많이 쳐서 번성하라! 물과 바다를 가득 채워라! 새도 땅위에서 번성하라!”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다섯째 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땅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내어라! 그 종류에 따라 집짐승과 길짐승과 들짐승을 내어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그 종류에 따라 그 땅의 야생동물’과 그 종류에 따라 집짐승과 그 종류에 따라 땅에 기어 다니는 온갖 길짐승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보셨다.
“참 아름답구나!”
그런 다음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따라 우리의 닮은꼴로 사람을 짓자! 그러면 사람들이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보살피겠지!”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자기 모습을 따라 지으셨는데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 그 사람을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해라!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밟아라(또는 디뎌라).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보살펴라!”
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온 땅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또는 곡식)와 그 안에 씨가 있어 나무의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또는 과일나무)를 주겠다. 그것이 너희를 위한 먹을거리이다. 또한 땅에 모든 들짐승과 하늘의 새와 땅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주겠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을 바라보셨다.
“이것 좀 봐!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여섯째 날이 지났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하시던 당신의 노동(또는 일)을 일곱째 날에 다 끝내셨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에 하시던 당신의 모든 노동으로부터 쉬셨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으시고 만드시던 당신의 모든 노동으로부터 그날 푹 쉬셨기 때문이다.
천지창조 본문 이해하기
21세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지구촌 나라들마다 부끄러운 민낯을 속속들이 들춰내고 있다. 특별히 지구촌제국 미국의 사회경제 상황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는 나라꼴이 볼만하다. 실제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은 21년 1월말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를 49만8천3명, 누적 확진자 수를 2천809만2천318명으로 집계했다. 미국사회의 빈부격차는 끝도 없이 벌어지고 있고, 트럼프 정권아래서 실체를 드러낸 ‘제국주의 친절한 파시즘의 뿌리’는 깊고 넓다. 미국은 자기 나라에서조차 일상화 되어가는 인종차별과 증오폭력을 다스리지 못한다. 더불어 유럽경제공동체 국가들조차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사회경제 의료시스템의 취약성’을 더하거나 덜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나아가 21세기 미래의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현재의 지구촌 제국 미국사이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패권경쟁이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물론 유럽경제공동체와 인도 등 지구촌 덩치 큰 나라 또는 국가동맹세력들도 21세기 제국주의 패권경쟁에 발을 담그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 바야흐로 지구촌 사회는 21세기 제국주의 패권경쟁의 어둠속 음모와 투쟁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부디 ‘전쟁과 죽임의 21세기 지구촌 역사’가 새로 쓰여 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시대의 기독교 신앙인들은 이러한 21세기 지구촌 상황과 시대의 언어로 성서를 읽을 수밖에 없다. 성서를 문자대로만 읽고 해석하며 신앙할 때 오는 폐해는 이천년 지구촌 역사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제 21세기 성서독자들과 신앙인들이 기독교 경전인 성서를 읽으려 할 때, 성서의 모든 내용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고대 지중해세계 ‘제국주의 죽임과 전쟁과 폭력의 종교․문명․사회․경제맥락 속에서 경험되고 쓰여 지며 편집되어 성장’해 왔음을 이해야만 한다. 실제로 서구교회는 수백 년에 거친 성서연구를 통하여 성서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사건들에 대한 ‘전승↔문서↔양식↔편집’ 등 ‘더 이상 새로운 학설이 나올까’싶을 만큼 자세히 밝혀냈다. 또한 성서의 모든 내용들에 대한 ‘시대와 종교․문화․사회․경제의 진실 그리고 역사적 상황과 배경’도 더 이상 밝혀낼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필자는 현대 성서학자들의 구약성서 형성배경과 관련한 서기관들의 역할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구약성서 형성과정에서 야훼신앙 전승을 수집하여 문서로 만들고, 시대상황에 맞게 편집하거나 수정하는 일을 감당한 이들은 오롯이 소수의 지식인 그룹이었던 서기관들이었을 수밖에 없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서기관들의 활동은 BC 950년경 솔로몬 궁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솔로몬 궁정의 서기관들은 ‘다윗왕조 신앙 이데올로기를 새로 만들어 세우기 위해’ 히브리들의 야훼신앙 전승을 모으고 문서로 만들면서 새롭게 편집하거나 고쳐 쓰기도 했다. 솔로몬 궁정 서기관들의 이러한 신학 작업 흔적들은 구약성서 주요본문들 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한 유대왕국 요시야 왕 종교개혁 때 ‘구약성서에 대한 신명기적 편집과 저술활동’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한 이들도 서기관들이었다. 나아가 바벨론 포로기 시절 구약성서 편집․성장 과정에서 서기관들의 역할도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기 시절 유대 서기관들은 바벨론 제국의 압도적인 폭력과 거대한 문명 앞에서 자기 뜻을 굽혀야만했다. 나아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제국주의 종교문명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이렇듯이 유대 서기관들은 제국주의 종교와 문명을 배우고 따르며 제국의 관료로 봉사했다. 이러한 성서시대 유대 서기관들의 삶의 상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체제 권력에 기대어 생존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들의 정해진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서기관들은 유대왕국시대에서나 바벨론 포로기 때에도 야훼신앙 전통에 대한 수호자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유대 서기관들은 야훼신앙 전통에 따라 눈에 띄지 않게 제국주의 종교문명에 저항하며 제국의 전쟁과 폭력과 죽임 그리고 반인륜적 문명을 비판했다. 그러한 유대 서기관들의 제국주의 종교문명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흔적들은 구약성서에 주요 본문들의 문맥 속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구약성서 천지창조 이야기 안에 숨겨놓은 유대 서기관들의 반제국주의 저항과 투쟁과 비판의 주요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구약성서 천지창조 이야기가 ‘히브리 해방노예 공동체 하나님을 향한 창조신앙 고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천지창조 이야기’는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출애굽 신앙고백’에 더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밑바탕’이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런 질문과 ‘그 질문의 실체에 대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유대인들의 신앙 관념과 삶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체계가 세워지고 자리 잡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구약성서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맨 처음 신앙고백은 ‘출애굽 해방과 자유 그리고 정의와 평등의 야훼신앙’이었다. 그러나 이제 히브리 해방노예 후손인 유대인들의 독립왕국시대가 끝장나고 유대인들은 또 다시 바벨론 제국의 노예가 되었다. 이렇듯이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에 이르러 마침내 출애굽 해방과 구원의 야훼신앙에 더해서 ‘하나님의 하나로 창조생명공동체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창조생명공동체 신앙고백은 자신들의 야훼신앙 삶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바벨론제국의 창조설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여기서 실제로 바벨론의 창조설화조차도 아주 더 오래전 수메르문명으로부터 이어왔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시절 야훼신앙 전통 수호자로써 유대 서기관들은 바벨론제국의 창조설화를 그냥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도리어 히브리들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의 야훼신앙전통 속에서 바벨론제국 창조설화를 자세히 읽고 철저하게 재해석했다. 그럼으로써 유대 서기관들은 히브리 야훼 하나님을 향한 ‘창조생명공동체 신앙고백’으로써 새로운 천지창조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러므로 이제, 필자는 21세기 독자로써 우리시대의 삶의 마당에서 구약성서의 창조생명공동체 신앙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그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21세기 독자들은 누구나 구약성서 창조생명공동체 신앙고백 속에서 21세기의 다양한 신앙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사람↔사람과 사람↔사람과 동물↔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창조생명공동체’라는 주제를 길라잡이 삼아 구약성서 천지창조 이야기가 21세기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신앙은유와 의미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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