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대박 신화는 사기일 뿐이다.

저는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일용노동을 하시며 어렵게 가정경제를 꾸리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는 여러 가지 질환들을 앓고 계셔서 가족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머니가 일용노동을 하시며 홀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다시피 하셨습니다.
저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방송통신학교를 통하여 고등학교과정을 이수했습니다. 방통고를 졸업한 이후에는 경기지역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이런 저런 분야의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결혼도 못하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나름 인생의 고됨과 돈벌이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검약의 성품을 이루게 되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이 장년에 이르러, 돈 놓고 돈 먹기 부동사기 유혹에 넘어가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그저 통탄할 뿐입니다.
돈 놓고 돈 먹기의 유혹
2002년 무렵, 저는 그동안 해오던 직장생활을 접고 대도시로 나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동업으로 식당을 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돈과 몇몇 친지들로부터 다소간의 돈을 빌려 식당 창업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식당은 그런대로 잘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조금씩 여유 돈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2006년 경, 예전 직장동료였던 장길수(가명)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몇몇 친지들과 함께 부동산업을 한다고 했는데 벌이가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그 무렵은 부동산대박신화로 온통 난리가 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장길수는 몇 차례 더 저를 찾아왔고, 올 때마다 부동산대박신화를 들먹이며 지금이야말로 부동산투자를 할 적기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경기도 수도권지역에 짓고 있는 상가를 소개하면서 지금한창 분양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저에게 여유자금 2,000만 원정도 만 있으면 감정가 3억 원이 넘는 상가를 2억 7천만 원에 분양받을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습니다. 분양자금조달도 중도금과 잔금 모두를 은행에서 융자 받을 수 있고, 나중에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저에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투자를 하라고 적극적으로 부추겼습니다.
저 역시도 힘든 식당일을 하면서 생각만큼 소득이 오르지 않았던 터라, 부동산에 여유 돈을 투자해서 큰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났습니다. 또한 그 무렵에는 전국 어디에서나 부동산개발이 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모든 언론들도 부동산대박광고로 넘쳐 났습니다. 나아가 주변에서도 온통 부동산투자로 대박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오랜 직장동료였던 장길수의 부추김을 받게 되다보니,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옛 직장동료였던 장길수의 말을 믿고 두 차례에 거쳐 그에게 2,000만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06년 5월,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중도금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저를 인천에 있는 한 새마을금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새마을금고 대출과장이라는 사람을 만나 시키는 대로 대출서류 이곳저곳에 서명날인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새마을금고에서 저에게 상가 분양계약서와 대출금통장을 등기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상가분양가격은 1억4천 만원인데, 대출금은 2억1천800만원이나 되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옛 직장동료이었던 장길수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장에라도 초과대출금을 돌려주든지, 상가분양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장길수는 아무 염려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장길수는 첫 번째 대출금이자를 자신이 대납해가면서까지 계속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화도 나고 매우 불안해서 새마을금고 측과 대출과장에게 항의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새마을금고와 대출과장은 모든 책임을 장길수에게 떠밀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장길수는 저에게 대출금 이자를 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제명의의 상가가 경매처분 될 터이니, 일이 잘 해결 될 때까지 이자를 내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제명의의 상가가 경매처분 되고 저 자신도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자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3년여 동안, 저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매월150만원씩 5000만원 넘게 이자를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저는 부동산투자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식당일을 제쳐두고 밖으로만 나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식당영업마저 부실해 졌습니다. 나아가 저는 그동안의 부동산대출금이자 대부분을 식당매출금에서 충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식당에 대한 저의 동업지분출자금도 대부분을 까먹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2010년 봄, 저의 식당동업자는 저로 인해 식당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니, 저에게 식당운영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습니다. 저 역시도 더 이상은 동업자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0년 여름 식당명의며 식당운영일체를 동업자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식당에서 손을 털고 나니, 저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동산투자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에 장길수 외 일당 4인을 사기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고 달려든 사기꾼들 앞에서 저의 억울함과 하소연은 아무런 힘도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저의 고소에도 불구하고 사기꾼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고소한 새마을금고 대출관계자들만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유야무야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길수 일당에게 부동산투자사기를 당하는 과정에서 저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든든한 밥줄이 되어 왔던 식당도 잃었습니다. 또한 2010년 10월, 제 명의의 상가도 경매로 처분되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에 이르러서도 저는 저의 부동산투자대출금에서 그 많은 초과대출금을 누가 착복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저 자신의 탐욕을 탓할 수 있을 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풀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새마을금고와 관련된 부동산분양사기대출에 얽히면서 모든 것을 잃고 살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저는 3년여 동안 사기피해에 시달리면서 변변한 소득도 없는 가운데 이자만 50,000여만 원이 넘게 물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주변 친지들에게 빚을 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지들로부터 채무변제독촉이 심했고 저는 이를 변제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용만큼은 그 어느 자리에 가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저는 허탈함과 무기력과 절망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빚은 가장 낮은 자리의 삶마저도 파괴하는 폭군
현재, 저는 신용불량자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저는 경기도지역 오일장을 다니며 잡화노점을 하는 지인의 장사를 돕는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끔씩 불러주는 지인들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한 달에 약 8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득으로는 저와 딸네 집이 편하다고 와 계시는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두 식구 한 달 생활비에도 모자랍니다. 물론 어머니는 형제들에게 얼마간 용돈을 받으시겠지만, 그것마저 제가 채트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재, 저와 늙으신 어머님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주공임대아파트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주공임대아파트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주거공간을 옮겨와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저는 오십이 넘는 나이에 이르렀지만 아직 더 오래도록 경제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채무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에도 힘든 소득으로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친지의 안내로 새벽의 무료상담을 통하여 법원에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부디, 저에게 다시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리기를 고대합니다. 저에게 파산면책이라는 법원의 관대한 처분이 내려진다면 저는 저의 모든 억울함과 분함도 잊겠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빚 없는 세상을 살면서 제가 할 수 있고, 저에게 알맞은 경제활동을 찾아 새 출발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물정도 모르시면서 시집도 못간 채 혼자 살고 있는 저에게 노후를 의탁하신 늙으신 어머니를 성심껏 봉양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의 상황을 헤아리셔서 저에게 파산면책이라는 관대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빌며, 이상 저의 진술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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