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칠천 명을 찾아서
열왕기상 1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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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왕이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벌인 모든 일들과 그가 칼로 (바알의) 모든 예언자들을 도살한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경고했다.
“신들이 이렇게 하시고, 또 더하여 이렇게 하시리라! 참으로 내일까지, 바알예언자들 중 한사람의 목숨처럼 네 목숨도 죄 값을 치르게 하리라!”
엘리야가 두려워서 일어나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쳤다. 엘리야는 유대(영토)에 속한 브엘세바로 들어가 거기에 자기 시종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광야로 도망쳐 하루 길을 달렸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주저 않아, 자신의 목숨 줄을 끊어달라고 간청하며, 외쳤다.
“야훼여! 이제 충분합니다. 내 목숨을 거둬주십시오! 참으로, 저는 제 선조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엘리야는 홀로 로템나무 아래 누어 잠이 들었다. 자! 그런데 보라!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속삭였다.
“일어나 먹어라!”
엘리야가 퍼뜩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보라! 그의 머리맡에 불에 달군 돌 위에서 구워낸 떡과 물이 있지 않은가! 엘리야는 (떡을)먹고 (물을)마셨다. 그리고 주저 않아 누웠다. 그러자 야훼의 사자가 다시 돌아와서 그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일어나 먹어라. 참으로 너의 (갈)길이 멀다.”
엘리야가 일어나 먹고 마셨다. 그리고 그 먹은 힘으로 밤낮 40일 동안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걸어갔다. 엘리야가 한 동굴에 들어가 거기서 밤을 샜다. 그런데 보라! 야훼의 음성(말씀)이 그에게 들려왔다.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엘리야가 말했다.
“나는 만군의 하나님 야훼를 열렬히 옹호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들이 내 생명마저 취하려 쫓아옵니다.”
다시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가서 야훼 앞, 산에 서라.”
그러자 보라! 야훼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일어나 야훼 앞에 있는 산들을 쪼개고 바위들을 부수었다. 그러나 바람 속에 야훼가 계시지 않았다. 또한 바람 후에 지진이 일어났으나, 지진 속에 야훼께서 계시지 않았다. 이어서 지진 후에 불이 일어났으나 불속에도 야훼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불 뒤에 잔잔하고 여린 소리가 있었다. 엘리야가 듣고 그의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말했다.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말했다.
“나는 만군의 하나님 야훼를 열렬이 옹호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신과 맺은 언약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들이 내 생명마저 취하려고 쫓아옵니다.”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길을 광야로 돌이켜 다메섹으로 가라! 너는 가서 하자엘을 기름을 부어 아람 위에 왕으로 세워라. 또한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 사파트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하자엘의 칼로부터 살아난 자는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로부터 살아난 자는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안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도 않았고, 입 맞추지도 않았던 칠천사람을 남겨 놓겠다.”
읽기 2
아직 그 땅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다 해도 도리어 그것이 돌이켜 불쏘시개기 될 것이다. 그러나 잘려 넘어진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처럼 나무들의 그루터기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땅의 그루터기가 거룩한 씨이다. 이사야 6:13
낱말풀이
* ‘마 레카 포 엘리야후’ <מה־לך פה אליהו>: 엘리야야! 왜, 네가 여기 있느냐?
* ‘이바테르 아니 레바디’<אותר אני לבדי>: 오직 나만 홀로 남겨졌습니다.
* ‘콜 데마마 다카’<קול דממה דקה> : 잔잔하고 여린 소리
* ‘에트 엘리사 벤 싸파트 메아벨므홀라’<את־אלישע בך־שפט מאבלמחולה> : 아벨므홀라출신 싸파트의 아들 엘리사
* ‘콜 하비르카임 아쉐르 로 카르우 라바알’<כל־הברכים אשר לא־כרעו לבעל> : 그 모든 무릎들이 바알을 향하여 꿇지 않은 무릎들이다.
* ‘콜 하폐 아쉐르 로 나싸크 로‘<כל־הפה אשר לא־נשק לו> : 그 모든 입술이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은 입술이다.
* ‘마체베트’(מצבת) :그루터기
* ‘제라아 코데쉬’(זרע קדש) : 거룩한 씨
시작하는 말
여러분! 토요일이었던 어제 18일은 5.18광주민중항쟁 33주년 기념일입니다. 오늘 일요일에는 전국에서 모인 교회들이 광주망월동 묘역에서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해마다 드려오던 예배인데, 저 혼자 몇 차례 기념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5.18광주민중항쟁을 모함하는 망동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의 반민주, 반 민중, 반 생명평화세력들을 대변하는 조․중․동 언론은 5.18광주민중항쟁에 북한특수부대원이 개입했다는 등, 대중선동과 여론조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정부도 국가주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모든 행태는 우연이 아닙니다. 이 땅의 반민주, 반 민중, 반 생명평화세력들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음모와 술수입니다.
또 한편 이것은 이 땅의 민중 스스로가 이 땅에서의 민중항쟁역사와 정신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민중들이 이 땅의 현실상황인 맘몬자본에 순응하여 조금이라도 더 사익을 취하고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려고 몸 부림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땅의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이 시대의 반민주 반민중 반 생명평화세력들의 위력 앞에서 저항과 봉기의 의지를 잃었습니다. 그들이 던져주는 고기 한 조각 떡 한 덩어리에 목을 매는 노예생활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스스로 자조 자립,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적 연대와 참여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자유와 저항의 정신과 의지마저 희미해졌습니다.
사실, 5.18광주민중항쟁은 시대적 폭풍이었습니다. 한번 떨쳐 일어나면 겉잡을 수 없는 민중의 한과 분노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포악무도한 반민주 반민중 반 평화세력들도 무서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5.18광주민중항쟁은 1987년 전국적인 6.10민중항쟁으로 이어져 전두환 살인정권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폭풍 같은 민중들의 저항과 봉기이었던 5.18광주민중항쟁도 세월이 가면서 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잊혀져갔습니다. 15.18광주민중항쟁의 지도자였네 하는 인물들이 저마다 권력의 단맛을 쫓았습니다. 마침내 2000년대에 이르러 민중의 저항과 봉기와 항쟁은 구태의연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몇 뜻있는 사람들마저도 5.18광주민중항쟁을 구호와 선전으로 사용하는 것에 만족할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시나브로 이 땅의 반민주 반민중 반 생명평화 세력들의 보이지 않는 주인이었던 맘몬자본이 그 사악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맘몬자본은 그 하수인인 이 땅의 정치경제종교사회 기득권자들을 앞세워 무소불위를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오늘 여기, 나의 삶의 자리에서 이 맘몬자본에 저항하는 실천행동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땅의 민중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이들마저도 맘몬자본 세상에 낙망하고 절망하며 떨고만 있습니다. 자포자기 하거나 고독하게 옛일을 되씹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 시대의 이러한 사회현실을 잘 드러내고 반영할 뿐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 말씀을 잘 읽고 살피고 새겨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끄는 말
여러분! 구약성서의 고대 히브리사회는 야훼 하나님의 정의와 평등신앙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야훼의 정의평등신앙정신은 훼손되었고,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왕정국가가 탄생되었습니다. 나아가 그 이스라엘 왕정국마저도 둘로 쪼개져 하나는 남 유대왕국으로 또 하나는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남 유대왕국은 다윗세습왕조를 굳히면서 명목으로나마 야훼의 정의평등신앙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야훼의 정의평등신앙정신을 배반했습니다. 야훼신앙을 버리고 사적인 풍요다산과 권력쟁취를 축복하는 바알종교로 사회정체성이 전환되는 위기상황이 몰아 닥쳤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사회정체성 위기를 몰고 온 직접적 계기는 북이스라엘 장군이었던 오므리가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사람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오므리는 직업군인으로 북이스라엘 군대에 들어가 세력을 확장한 후, 국가정변사태를 기회로 군인들의 추대를 받아 북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으로써 북이스라엘 왕이 된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에서 야훼의 정의평등신앙을 몰아내는데 앞장섰습니다. 히브리해방공동체의 야훼신앙 대신에 바알신앙으로 국가정체성을 전환하는데 온힘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오므리왕은 ‘디르사’라는 북이스라엘의 전통수도를 버리고, 개인적으로 사마리아라는 산을 사들여 산위에 성을 건축하고 수도를 이전했습니다.
이후, 오므리의 아들 아합왕은 아예 북쪽 바알종교국가이었던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합왕은 수도 사마리아와 북이스라엘 온 땅에 바알신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처갓집 시돈으로부터 수많은 바알종교사제들을 초청해 왔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아합왕은 대놓고 야훼신앙의 핵심법률인 토지법을 무시했습니다. 아합왕은 나봇이라는 사람에게 그의 포도원을 자신에게 팔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아무도 땅을 완전히 팔아넘길 수 없다”는 야훼신앙의 토지법을 들이대며 아합왕에게 저항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왕의 아내이며 바알신앙의 수호자인 이세벨이 나섰습니다. 이세벨은 왕의 권력을 동원하여 음모를 꾸며 나봇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봇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북이스라엘에서는 야훼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신앙이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민중예언자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신양성서에서는 이 민중예언자 엘리야의 모습을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허리띠를 띠고 광야에서 살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아주 전형적인 이스라엘 민중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민중예언자 엘리야의 행적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강렬하고 힘찼습니다. 말 한마디로 3년 동안 북이스라엘 전역에서 비를 그치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시냇가에 신비롭게 혼자 숨어 살면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기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 내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아합왕의 신하에게 “내가 여기 있으니 아합왕에게 나를 찾아오라고 해라”라고 당당하게 외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바알신앙과 야훼신앙 중 어떤 신앙이 참 신앙인지 목숨을 건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엘리야는 이 시대의 대결을 보려고 갈멜산으로 모여든 수많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야훼신앙을 따를 것인지, 바알신앙을 받아들일 것인지 결단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마침내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 민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알종교 사제 450명과 홀로 맞서서 야훼신앙의 위해한 승리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갈멜산의 절체절명의 승리는 잠시뿐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야훼신앙에서 바알신앙으로 돌아선 이스라엘 민중들의 마음을 야훼신앙으로 돌이키는 것에서 실패했습니다. 도리어 엘리야의 갈멜산승리로 인해 더 악독하고 험악한 탄압이 북이스라엘 전국에서 몰아쳤습니다. 북이스라엘 영토 전역에서 정의와 평등 야훼신앙을 말살정책이 수행되었습니다. 바알신앙의 열렬한 수호자인 이세벨의 죽음의 탄압이 엘리야를 쫓았습니다. 북 이스라엘 민중들마저 엘리야를 배척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과 절망에 휩싸인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땅에서 도망쳐 남 유대 땅 브엘세바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러고도 엘리야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시종을 브엘세바에 남겨 북이스라엘 상황을 살피게 한 후 다시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엘리야는 하루 온종일 광야 길을 내달아 어떤 외진 곳의 로템나무 아래서 지쳐 쓰러졌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지친 엘리야는 야훼 하나님께 죽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야훼 하나님! 이제 나는 할만 큼 했고, 살만큼 살았으니, 내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다른 누구보다도 잘난 것 없는 무지렁이입니다. 이제 저는 지쳤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그러한 엘리야를 향하여 당신의 천사를 보내서 어루만지며 힘을 내게 하십니다. 엘리야는 그 두려움과 절망의 자리에서 야훼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의 손길을 통하여 새 힘을 얻고 야훼하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옛날 자신의 선조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야훼신앙발상지인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여시고 지키시는 야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야훼하나님께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는 폭풍 속에서 크고 강한 힘으로 나타나시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또한 땅을 가르고 지진처럼,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불길처럼 강렬하고 힘차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더 더욱 놀라운 것은 야훼 하나님께서 잔잔하고 여린 소리로 엘리야를 찾아 오셨다는 점입니다.
폭풍 같은 열정과 카리스마로 바알신앙에 맞서서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야훼신앙을 지켜온 엘리야에게는 그런 하나님이 너무도 낮 설었습니다. 엘리야는 너무도 낮 설고 이외의 상황에 깜짝 놀라 자신의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야훼 하나님 앞에 나섭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부드럽고 연한 소리로 말씀 하십니다. 엘리야야! 너는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자신의 낙심과 절망을 고백합니다. “야훼 하나님! 나는 열렬히 야훼신앙을 옹호하며 바알신앙과 싸워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민중들은 야훼 하나님 당신과 맺은 정의 평등사회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그들은 야훼신앙의 제단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칼로 야훼신앙예언자들을 모두 쳐 죽였습니다. 이제 야훼신앙예언자들은 모두 죽고 저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나마저 죽이려고 나를 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훼하나님은 두려움과 절망에 쌓여 있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돌아가라! 시리아 다메섹으로 가라!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새로운 아람으로 세워라. 또한 북이스라엘로 가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새로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후계자로 세워라!
너는 너만 홀로 남은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안에 칠천사람을 남겨 놓았다.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 꿇은 적이 없다. 바알에게 입 맞추고 바알과 놀아난 적도 없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몰아치는 폭풍과 같이 영웅적이고 성공적인 야훼신앙의 수호자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야훼신앙실천운동은 한 순간에 폭발하는 봉기와 투쟁으로는 부족합니다. 한 개인의 놀라운 카리스마와 영웅적인 행동으로는 영구히 견인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얼마 못가 지치고 낙망하여 두려움과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기 십상입니다.
시대의 영웅과 카리스마에 박수치고 환호하는 시대의 민중들은 곧바로 시대의 영웅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올바른 야훼신앙실천운동은 시대의 깨어있는 야훼신앙인들의 네트워크입니다. 공동체적 연대와 참여와 협력입니다. 설사, 오늘 나는 시대적 상황에 낙망하고 절망할 지라도 오늘 다시 동지들의 격려와 성원으로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결코, 시대적 고난과 억압 때문에 낙망하고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바알종교에 무릎 꿇지 않은, 이 시대의 바알종교에 빌어먹지 않은 칠천 명이나 되는 정의평등 야훼신앙의 동지들을 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의 야훼신앙을 실천하는 칠천 명이나 되는 신앙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라도 오늘 우리의 정의평등 신앙실천운동이 나 혼자 영웅행세하고, 나 혼자 잘난 척 나대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고만 상태가 아닌지 성찰해 봅시다. 그렇게 나 홀로 낙망하고 절망하여 자포자기 함으로써 오늘 우리 시대의 이 땅의 하나님나라운동의 걸림돌이 되어 있다면 이제라도 돌이켜 야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소명을 구합시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제, 야훼 하나님께서 지치고 절망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소명은 나 홀로의 영웅적인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필경 우리시대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깨어있는 민중들과의 연대와 참여와 협동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깨어 있는 칠천 명의 야훼 신앙인을 찾아서 모두 함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우리 마당교회와 새벽이 이러한 야훼신앙실천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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