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은 심판하고 처벌하기 위한 형법규정이 아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 부분은 생활윤리 계명들이다. 그러나 십계명의 생활윤리 계명들은 심판하고 처벌하기 위한 형법규정이 아니다. 십계명은 처벌로 위협하고 형량으로 위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십계명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 총칙으로써 히브리들이 따르고 배우고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다. 오롯이 십계명은 파라오 노예세상을 탈출한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삶의 의무와 책임의 크기를 증언할 뿐이다. 십계명은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희년신앙 행동계약 의무와 책임을 일깨우는 것’이 목표다.
이와 관련하여 십계명의 생활윤리로써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복종과 종속이 아니다.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만들어가야 할 해방과 구원세상에서 자연스러운 사람됨의 밑바탕이다. 히브리들은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살인은 해방과 구원 세상에서 또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범죄다. 히브리 해방공동체의 안녕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반드시 살인범죄를 막아야 한다. 도적질도 다른 사람의 쓰임과 필요를 훔치고 쌓는 행위다. 본문읽기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빚으로 후려서 노예로 팔아먹는 제국주의 노예세상의 사회악을 강조한다. 불의한 재판정에서 거짓증인을 내세워 풀뿌리 사람들을 억압하는 일도 크고 중한 사회․정치․경제 공동체 죄악이다. 나아가 아예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재판권리를 박탈하는 일은 용서받지 못할 사회악 가운데 하나다.
이렇듯이 십계명을 기독교회의 단순하고 편협한 종교윤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무지에 가깝다. 십계명은 21세기 성서독자들의 삶의 자리에서도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십계명의 첫 번째 부분은 ‘야훼 하나님만을 받들고 섬기라’는 종교교리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본문읽기 문맥 안에서 살피면 파라오 노예제국 만신전에 터 잡은 ‘부와 권력 그리고 폭력과 죽임의 전쟁(戰爭)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야훼하나님과 함께 ‘희년신앙 행동계약 당사자로서 히브리들’이 꼭 지켜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다. 왜냐하면, 야훼께서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으로서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을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파라오 노예제국 만신전에 가득 들어찬 억압과 폭력과 죽임의 허깨비 하나님들로부터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야훼하나님과 히브리 지파동맹사이에서 맺어진 희년신앙 행동계약 핵심의무와 책임에 대한 표지(標識)다. 히브리들이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세상을 세우고 누리며 지켜나가도록 이끄는 삶의 길잡이다. 십계명은 파라오 노예제국을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이 누려야 할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필수 삶의 조건이다.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의 사랑과 열정에 보답하는 히브리들의 삶의 응답이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십계명이야말로 히브리 지파동맹이 야훼하나님과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의 총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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