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Enûma Eliš)
성서주변세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21세기 자연환경과는 다르게 ‘물도 많고 나무와 숲도 우거진 비옥한 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기원전 3천5백년 무렵부터 어디서 왔는지 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수메르 사람들의 문명이 꽃을 피웠다. 이어서 수메르문명을 밑바탕으로 셈족계 아카드문명이 뒤를 따랐다. 나아가 수메르와 아카드문명을 이어받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맨 처음 제국은 바로 ‘고대 바빌로니아’였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1천8백95년부터 기원전 1천5백95년까지 약 3백년간 지속되었다.
이렇듯이 고대인류문명사 속에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유목민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뀌었다. 다양한 민족들 또는 종족사회에서 신전제사장 지배체제가 튼튼하게 뿌리내렸다. 또 힘 있는 민족들이 정복전쟁을 통해서 강력한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세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메소포타미아 고대종교‧문명사 속에서 ‘신전제사장체제 또는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튼튼하게 세우기 위한 창조신화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창조신화는 성서주변세계에 널리 알려져 뿌리내렸다. 그러면서 창조신화의 내용들이 더 풍성해지기도 하고 새로워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성서학자들은 히브리 성서 천지창조 이야기줄거리의 밑바탕을 바빌로니아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찾는다. 에누마 엘리쉬는 메소포타미아 고대도시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기원전7세기 점토판 문서로 발견되었다. 이 토판문서는 고대 바빌로니아제국 수호신이었던 마르둑의 창조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토판문서는 셈족계 아카드어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고대 수메르문명 창조신화로부터 이어져왔다. 그리고 그 핵심 내용은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다. 필자는 여기서 거칠게나마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맨 처음부터 있었던 신 ‘압수(민물)와 티아마트(바닷물)’ 사이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신들이 생겨났다. 그들로 인해 신들의 세계가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신들의 세계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신들의 전쟁은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다. 첫 번째 전쟁에서 모든 신들의 아버지 ‘압수’가 살해되었다. 두 번째 전쟁에서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티아마트’마저 죽임을 당했다.
이렇듯이 신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의 마지막 승자는 바빌론제국 수호신 ‘마르둑’이었다.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시체를 갈라서 반쪽으로 하늘을 만들고 하늘 위의 물과 하늘아래의 물을 나누었다. 다른 반쪽으로는 바다와 강과 지하수를 나누었다. 또 두개골을 빻아서 하늘의 별들을 만들었다. 머리카락으로 대지를 만들고 유방으로 높은 산들을 만들었다. 그 일들을 마친 후에 마르둑은 ‘지혜의 신 에아’에게 ‘노동하는 노예인간 창조’를 지시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맨 처음 인간을 만들어 그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사람을 만들어 그에게 하급 신들의 모든 강제노동을 떠넘기고 하급 신들이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도록 하겠다.”
지혜의 신 에아는 티아마트의 군대사령관 ‘킹구’를 죽여서 그 피로 살덩이를 반죽했다. 그리고 그 반죽으로 ‘노동하는 노예인간’을 만들었다. 또한 온갖 동물들을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이제껏 고급 신들을 위해서 온갖 강제노동에 허덕이던 하급 신들을 강제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실제로 하급 신들은 산과 들과 광산에서 온갖 험한 노동을 도맡음으로써 고급 신들의 평온한 삶을 떠받들어야만 했다. 하급 신들은 힘겨운 강제노동의 짐을 지고 진흙이 섟인 밥을 먹으며 먼지로 더러워진 물을 마셨다. 이렇듯이 고통스러운 강제노동에 지친 하급 신들은 때때로 폭동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강제노동은 오롯이 ‘노동하는 인간노예들의 몫’으로 넘겨졌다. 노동하는 노예인간들이 하급 신들을 대신하여 산과 들과 광산에서 험한 강제노동을 도맡아야만 했다. 이제 노동하는 노예인간들이 하급 신들을 대신해서 어둠 속에서 일하고 진흙 섟인 밥을 먹으며 먼지로 더러워진 물을 마셨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이 소멸된 이후 기원전 6백12년부터 기원전 5백39년까지 메소포타미아와 비옥한 초승달지대를 지배한 제국은 신 바벨론제국이었다. 바벨론제국은 히브리 성서의 성장과 편집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히브리 성서가 그려내는 바벨론제국은 그 시대의 최고 최대문명을 이룩한 위대한 제국이었다.
실제로 ‘비옥한 초승달지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이 지중해세계로 뻗어 나가는 군사 또는 상업의 밑바탕이었다. 그래서 비옥한 초승달지대 한쪽 끝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은 늘 다양한 민족들의 제국주의 성장의 터전이었다. 바벨론제국은 타민족들의 침략전쟁을 압도하는 제국주의 정복전쟁을 스스로 앞장서서 벌여나갔다. 잘 훈련된 제국의 군대를 앞세워서 ‘비옥한 초승달지대’는 물론이고 고대 지중해세계 전체로까지 위대한 제국의 위상을 맘껏 떨쳤다.
그럼으로써 바벨론제국의 왕들은 ‘하늘 신들의 세계를 정복한 으뜸 하나님 마르둑(Marduk)의 아들’로서 제국의 종교와 정치와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바벨론제국의 왕들은 자신들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국의 행정․관료체제를 중앙집권적으로 가다듬는 일에 힘을 쏟았다. 제국의 수도 바벨론은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사회․종교․정치․경제를 독점함으로써 ‘거룩한 도성’으로써의 위상을 겹겹이 쌓아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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