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못하는 종의 비유.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파멸을 기다리며,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위하여!
마태복음 18:23-34
읽기
이 때문에,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함께 셈을 정리하려고 작정한 어떤 왕과 같이 되고 말았다. 그 왕이 셈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만 달란트 빚진 종 한 명이 왕에게 끌려왔다. 그러나 그 종이 갚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주인이 그 종에게 그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모든 소유물들을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므로 그 종이 엎드려, 주인에게 절하며, 부르짖었다.
“저를 참아주소서! 그러면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갚겠습니다.”
그러자 그 종의 주인이 그 종을 불쌍히 여겨, 그를 풀어주고, 그에게서 빚을 미루어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그의 동료 종들 가운데서 그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한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그를 붙잡아 멱살을 움켜쥐고 윽박질렀다.
“무엇으로든, 네가 지은 빚을 갚아라!”
그러므로 그의 동료 종이 엎드려, 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었다.
“나를 참아주소서! 그러면 제가 당신께 갚겠습니다.”
그러나 그 종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도리어 그 종은 가서, 빚진 것을 갚을 때까지, 그의 동료 종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러므로 그 종의 동료 종들이 일어난 일들을 보고 알고난후에 몹시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들이 가서 자신들의 주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낱낱이 밝혔다. 그 때에, 그 종의 주인이 그를 불러들여 그에게 따졌다.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간청할 때에 나는 너에게서 그 모든 빚을 미루어 주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너도 너의 동료 종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겠느냐?”
그리고 그 종의 주인이 화가 나서, 그 종이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그 종을 전문추심원들에게 넘겼다.
낱말풀이
* 비유전체의 상황을 드러내는 삼음보 문장 : 이 때문에 하늘나라가 자기 종들과 함께 셈을 정리하려고(쉰나라이 συνᾶραι) → 작정한(에텔레센 ἠθέλησεν) → 어떤 왕과 같이 되고 말았다.(호모이오테 ὡμοιώθη)
* 만달란트 : 뮤리온 탈란톤 μυρίων ταλάτων.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인데 한 사람의 노동자의 20년 치 품삯과 같다. 만 달란트는 계산하기조차 벅차다.
* 왕의 채권추심을 강조하는 삼음보 문장 : 주인이 그 종에게 그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모든 소유물들을 팔아서(프라테나이 πραθῆναι) → 빚을 갚으라고(아포도테나이 ἀποδοθῆναι) → 명령했다.(엑켈류센 ἐκέλευσεν)
* 종의 채무상환 맹세를 강조하는 삼음보 동사 문장 : 그 종이 엎드려(페손 πεσών) → 주인에게 절하며(프로세퀴네이 προσεκύνει) → 부르짖었다(레곤 λέγων)
* 미루어(채무유예) 주었다 : 압페켄 ἀφῆκεν, ‘아포 ἀπό~부터 + 히에미 ἵημι 보내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인데, ‘보내다, 용서하다, 그대로 두다, 유예하다, 허락하다’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 되는 동사이다.
* 주인이 채무유예를 취소하는 삼음보 문장 : 그 종의 주인이 화가 나서(올기스테이스 ὀργισθεὶς) → 그 종이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헤오스 후 아포도 ἕως οὗ ἀποδῷ) → 그를 전문 추심원들에게 넘겼다(파레도켄 παρέδωκεν)
* 전문추심원들에게 (또는 고문하는 사람들에게) : 밧사니스타이스 βασανισταῖς
들어가는 말
21C 지구촌제국 미국에 대한 지구촌 민초들의 외침이 매섭고 날카롭다. 이제 지구촌은 미국의 지구촌 경찰 역할, 지구촌 골목대장 놀이에 지쳤다. 아마도, 21C 지구촌제국 미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모험적이고 자기망상적인 제국’일 것이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미국의 월가는 인류문명사에 그 유례가 없는 ‘투기․독점 금융자본의 온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구촌의 작은 나라들을 핵 안보로 위협하고 핵우산으로 줄을 세워서 돈을 챙긴다. 지구촌제국 미국이 인류역사 최초로 지구촌 핵전쟁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미국이 오래전부터 순항 미사일급 스마트 핵폭탄(B61-12)을 개발생산 해오고 있으며, 21C에 들어와서는 끊임없이 스마트 핵폭탄의 쓸모와 필요를 선전선동 강조해오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21C 지구촌제국 미국에서는 ‘참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구촌 나라들의 판단이다.(예를 들면, 미국 상․하의원 535명을 상대하는 로비스트만 5만여 명) 21C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제멋대로 전쟁(핵전쟁이라도)할 수 있는 국가는 아마도 미국뿐 일 것이다. 미국이 제멋대로 전쟁국가라는 명백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지구촌제국 미국 지배체제의 내부자 기득권세력들은 지구촌 어떤 전쟁에서도 직접 피를 흘리지 않는다. 둘째, 지구촌제국 미국의 지배체제는 지구촌 모든 전쟁에서 예외 없이 천문학적인 사익을 챙긴다. 셋째, 미국의 시민들은 오래전에 이미 전쟁을 거부할 만큼의 민주주의 주권정치행동 의지와 힘을 잃었다. 넷째, 미국의 시민들은 기독교 메시아 제국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언제든지 지구촌전쟁에 줏대 없이 휘둘릴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의 국가주의와 기독교 메시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진보와 보수,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나들며 미국시민들 사이에서 전쟁을 부추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지구촌제국 미국의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는 지구촌 전쟁과 죽임의 폭력을 통하여 제국의 권력을 누려왔다. 미국의 월가는 지구촌 가난한 이들의 삶을 착취하여 부와 권력을 축적해왔다. 하지만 지구촌제국 미국 군산복합체와 월가 카지노금융자본 지배체제는 끝판 쇠락의 길을 밟아가고 있다. 지금 미국은 지구촌 곳곳에서 매일매일 전쟁을 도발하며 지구촌 파멸의 핵전쟁이라도 마다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자기 나라에서조차 중무장 경찰국가를 완성해가고 있다. 지구촌의 첫째가는 기업국가로써 맘몬숭배 바벨탑을 하늘 끝까지 쌓아 올렸다. 미국의 모든 국민주권선거들은 절차 민주주의 통과의례로써 우민화(愚民化) 축제로 전락했다. 미국의 모든 선거정치 캠페인에서 시민주권실현 가능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런 현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옛날 옛적부터 로마제국 등, 손꼽을 만한 제국들이 모두 그렇게 인류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비유에는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patron-client relations) 지배체제의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로마제국 지배체제는 황제로부터 식민지 하층 민중들까지 피라미드 채무노예 위계질서로 꽁꽁 묶여 있다. 로마제국의 피라미드 먹이사슬 지배체제 내부에서는 하층 채무노예에 대한 무자비한 채권추심이 매일매일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그로 인한 정치․사회공동체 위기가 로마제국 지배체제를 뿌리로부터 뒤흔들게 될 것이 빤한 일이다.
따라서 본문비유는 로마제국 지배체제의 대안세상(alternative society)으로써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은유를 깨닫게 한다.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과 평화세상으로써,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에 대한 반란이다.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하는 유대종교․사회 기득권체제에 대한 거부이다. 왜냐하면,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에서는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평등세상 ․ 섬김의 네트워크로써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비유에서처럼,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 안에서 ‘너그러움과 착한행실로 뒤바꾸려는 신앙행태’는 하나님나라의 철저한 실패와 좌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렇듯이, 본문비유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 안정을 위한 선심성 채무유예’로 대체함으로써 발생하는 하나님나라의 처절한 실패와 좌절을 경고한다. 한마디로, 예수의 하나님나라야말로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과 단절로써 ‘온전한 빚 탕감’이 이루어지는 대안세상이다.
이점에서 예수는 용서하지 못하는 종 비유를 통하여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의 필연적 파멸’을 예고하고 증언한다. 그럼으로써 ‘대안 세상,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추긴다. 이렇듯이, 본문 비유의 숨겨진 은유는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파멸을 기다리며, 대안세상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이다. 그러므로 비유의 숨겨진 은유는 비유 청중들로부터 21C 독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맘몬․자본 지배체제에 맞서는 대안세상,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길‘을 안내 한다.
이끄는 말
이천년 기독교 역사전통 속에서 본문비유를 읽고 해석하는 주제는 늘, ‘만달란트 빚을 탕감 받고도 동료 종의 작은 빚을 용서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종’에 빗대어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는 이미 고대 유대사회의 지혜문학과 후대의 랍비문학의 비유들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주제이다. 이들 비유에서는 으레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으로 은유되는 왕이 등장한다. 물론, 본문비유에서도 여타 다른 예수의 비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왕‘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어려운 엄청난 빚에 대한 탕감 이야기로 비유의 말문을 연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본문비유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이웃의 작은 허물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할 줄 모르는 무자비한 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가 그 빛을 바랬다.
마태복음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신앙해석에 따라 저자의 고유자료인 비유의 원래 내용들을 초대교회 윤리와 착한행동으로 꾸미고 다듬었다.
“하나님의 가늠할 수 없는 무한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무자비한 종처럼 사납고 탐욕스런 인간 군상들을 보라!”
마태복음 저자는 사람들의 천박하고 무자비한 삶의 행태를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에 맞세워 막다른 대비를 이루도록 본문비유를 재구성했다. 마태복음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신앙의지를 강조하기위해 본문비유 앞에 ‘용서에 대한 예수와 베드로의 대화’를 벌려 놓았다.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 라도 용서하라!”
그러고도 모자라서 마태복음 저자는 본문비유의 끝자락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넣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각자 자기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에게 이와 같이 행하실 것입니다.”
본문비유에 대한 마태복음 저자의 이러한 해석은 지금 막 새로 태어난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의 착하고 너그러운 이방인들에게 잘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회가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결코 적대적이지 않음을 변명하며 감싸고 싶었을 것이다. 나아가 새로 태어난 기독교회가 로마제국 안에서 손꼽을 만큼 이름난 종교들과 비교되었을 때, 건전한 윤리와 착한행동으로 두드러지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본문비유를 기독교회의 너그러움과 착한행동에 대한 선전선동으로 꾸며서 자기 복음서에 기록했다. 그렇게, 이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본문비유에 대한 교회들의 한결같은 해석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에 대한 막다른 대비로써, 용서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종‘이다.
그러나 21C 우리 시대 신앙인들과 독자들은 본문비유에 대한 이러한 해석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비유에 대한 교회들의 이러한 해석이 본문비유의 문맥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이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에 저항하는 대안세상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은 시대의 지배체제를 거슬러 시대의 민초들의 고난과 절망을 해소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다. 로마제국 지배체제 안에서 건전한 윤리와 착한행동을 강조하는 종교구호가 아니라,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에 대한 저항과 단절로써 새로운 대안세상이다. 이점에서, 복음서들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에서 탈출한 예수 신앙인들이 하나님나라 복음 안에서 누리게 될 온갖 삶의 기쁨과 행복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다.
이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지는 신앙과 삶을 거부한다. 로마제국 지배체제의 억압과 폭력, 전쟁과 죽임, 약탈과 착취에 바탕을 둔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를 쳐부순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에 기생하는 유대 종교․사회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 종교․사회의 기득권의 차별과 억압에 대해 철저하게 저항한다. 이점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로마제국 지배체제와 거기에 기생하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적 깨달음이고, 신앙회심이며, 신앙실천 행동이다. 나아가 21C 우리시대의 맘몬(자본)세상에 저항하는 대안세상 신앙의지이고, 결단이며, 실천행동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은 시대의 고난을 온몸으로 지고 가야만 하는 민초들의 삶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는 용서하지 못하는 종 비유에서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의 꼭 그렇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결말을 있는 그대로 까발린다. 본문비유는 로마제국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가 덧없이 무너져 내리는 결말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삼음보 문장을 사용한다. 비유 처음부터 끝까지 삼음보 문장을 바꾸지 않고 밀고 나감으로써, 비유의 사실감과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예수는 이러한 비유의 상황설정과 이야기의 흐름을 통하여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모순과 그 무너짐의 결말을 거침없이 까발린다.
“그 왕이 셈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 만 달란트 빚진 종 한 명이 → 왕에게 끌려왔다 / 주인이 그 종에게 그 자신과 아내, 자녀와 그가 가진 모든 소유물들을 팔아서 → 빚을 갚으라고 → 명령했다 / 그 종이 엎드려 → 왕에게 절하며 → 부르짖었다 / 그 종의 주인이 그 종을 불쌍히 여겨 → 그를 풀어주고 → 그 빚도 그에게서 미루어(유예) 주었다 / 그러나 도리어 그 종은 가서 → 빚진 것을 갚을 때까지 → 그의 동료 종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 그리고 그 종의 주인(왕)이 화가 나서 → 빚진 모든 것을 갚을 때까지 → 만달란트 채무유예 받았던 종을 전문추심원에게 넘겼다.”
이렇듯이, 비유의 왕 또는 주인이 만 달란트 빚진 종에 대한 채무유예를 단 칼에 없었던 일로 선언해 버림으로써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해체와 파멸의 위기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비유의 청중들과 독자들은 비유의 사건상황과 비유이야기의 흐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냥,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와 은총을 무산시킨 무자비한 종’이라는 해석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예수의 비유는 고대 유대사회의 지혜문학과 후대의 랍비문학, 또는 기독교 묵시문학과 메시아 제국주의에 이끌려 읽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비유의 사건상황과 이야기의 흐름이 비유의 청중들과 독자들에게 비유의 현실과 더불어 자신들의 실체적 삶의 마당에서 비유를 읽고 해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본문비유의 사건상황과 이야기의 흐름은 비유의 청중과 독자들에게 ‘로마제국 황제가 맨 꼭대기에 군림하는 피라미드형 거대 사회기계구조’를 입체화처럼 보여준다. 그 거대사회기계구조의 톱니바퀴로 전락한 인간들에게는 그 어떤 변혁도, 자율도, 선행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나아가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속절없는 해체와 파멸을 예고한다. 실제로,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맨 꼭대기로부터의 질서정연한 채무유예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 거대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한 지배체제 내부자들은 가혹한 피라미드 채권추심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중해세계의 제국주의 역사 속에서 본문비유 상황에 대한 실체와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서는 세금징수권 경매제도가 있었다. 인두세, 토지세 등 각종 세금에 대한 징수권이 매년 최고가로 입찰하는 정치․경제 기득권세력에게 경매되었다. 이러한 세금징수권 경매는 헬라시대에 이어 로마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이렇게 세금징수권을 경매받기 위해서는 계약자와 보증인과 징수원 등, 거대한 자본과 세밀하게 짜여 진 지역조직이 필수였다. 따라서 제국주의 세금징수권 경매를 위해서는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로 조직된 거대 사회기계구조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더 자세하게는 지중해세계를 정복했던 헬라제국들의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다. BC 334년, 알렉산더는 코린토스 동맹군을 이끌고 마케도니아를 떠나 지중해세계 정복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BC 323년 알렉산더는 최초로 지중해세계를 정복하고 헬라제국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제국의 수도 바벨론에서 열병으로 급사했다. 알렉산더 사후 헬라제국은 네 개의 속주로 쪼개졌다가 세 개의 소 제국으로 정리 되었다. 그 가운데 먼저 머리를 든 왕조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팔레스타인 유대지역과 사마리아와 레바논을 거쳐 시리아 일부지역까지 세금징수권을 경매했다. 그 ‘금액이 팔천 달란트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예루살렘에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제거상(巨商)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지주들도 국제거상들과 거래를 트고, 국제무역에 참여해서, 자본을 축적했다. 또한 세금징수권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헬라시대와 로마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 기득권계층들에게는 제국주의 종교·정치·경제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져 있었다.
한편 지중해무역을 통한 제국 내 국제 상거래의 활성화로 인해 거래장부, 거래계약서, 물품관리장부 등, 기록문화도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국제 상거래로 인한 여러 가지 다툼과 소송도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한 기록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종교에 대한 문서화 작업도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때마침, 이집트 산 파피루스가 대량 수입되어 기록을 위한 비용도 크게 감소되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성서문서들과 외경, 묵시문학 문서들이 쓰여 지거나 책으로 엮어졌다.
로마제국 시대에도 만 달란트는 역사적 실체가 있는 금액이다. 유대 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기원전 63년 경 로마제국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유대인들에게 매긴 배상금이 만달란트였다고 한다. 또한 유대지역에 부과 된 일 년 세금만 해도 육백달란트를 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비유의 청중들에게 만달란트는 상상을 초월한 어마어마한 돈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시대의 한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으로 평가 되었는데, 노동자 한사람의 이십년 치 품삯과 맞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문비유의 만달란트는 21C 우리시대의 민초들에게도 믿을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본문비유에서 만달란트 빚진 종에 대한 채권자로써, 왕 또는 주인의 채권추심은 그 금액에 비교될 만큼 무자비하고 혹독하기 짝이 없다. 본문비유를 살펴보자.
“그 왕이 정산하기를 시작하자 만 달란트 빚진 종 한명이 왕에게 끌려왔다. 그러나 그 종은 갚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인은 그 종에게 그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모든 소유물들을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이처럼, 왕의 무자비하고 혹독한 채권 추심과정에서 채무자인 종의 처절한 채무상환 맹세와 더불어 종의 채무상환 의지와 결의가 밝혀진다. 그런 이후에야 왕은 마지못해 선심성 채무유예를 선포한다. 다시 본문비유를 살펴보자.
“그러므로 그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부르짖었다. ‘저를 참아주소서! 그러면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갚겠습니다.’ 그러자 그 종의 주인이 그 종을 불쌍히 여겨, 그를 풀어주고, 그 빚도 그에게서 유예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비유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 ‘아페켄’(aphēkev ἀφῆκεν)은 ‘~부터 + 보내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이 헬라어 동사의 뜻은 ‘보내다, 용서하다, 그대로 두다, 유예하다, 허락하다’ 등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점에서, 우리말 성서가 번역한 ‘탕감’이라는 말은 비유의 문맥을 쫓아 ‘채무유예’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말 성서가 번역한 ‘탕감’이라는 말을 ‘채무유예’로 고쳐 읽어야만, 로마제국의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실패와 파멸의 위기를 증언해 낼 수 있다.
실제로, 채무유예를 통한 채권추심 이야말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가장 실제적이고, 기술적이며, 효과적인 채권추심 기법이다. 21C 수많은 채권추심 기관들도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채권을 추심한다. 21C 지구촌의 부유하고 힘센 채권 국가들이 힘없는 채무 국가들을 추심할 때 역시도 똑같은 채권추심 행태를 보여준다. 가까운 예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로체제의 채권 국가들이 주요 채무국가인 그리스와 벌였던 채무상환협상 과정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되돌려서 기억해보라.
그런데 본문비유에서 특이한 것은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이 곧장 밑바닥 동료 종들 가운데서 백 데나리온 빚진 종 한명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만달란트에 대한 백 데나리온의 비율은 최소한 육십 만분의 일이다.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은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바로 아래에 위치한 내부자 동료 종들을 적당히 닦달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야만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내부자 계층 간의 채권․채무관계의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다. 그것이 곧 피라미드 빨대착취 거대 사회기계구조의 맨 꼭대기에 군림하는 왕 또는 주인의 ‘참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은 왜, 주인의 참 뜻을 몸과 마음에 새기지 못하는가? 그 종은 왜, 동료 종의 백 데나리온 빚에 대한 채무유예를 거부하는가? 도대체,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이 바로 아래 내부자 동료 종들이 아니라,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맨 밑바닥 백 데나리온 빚진 종을 찾아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채권추심을 실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달란트 빚진 종의 이런 채권추심 행태의 비밀은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로마제국 지배체제의 피라미드 빨대 착취구조 속에서 혹독한 채권추심을 경험하고 가까스로 채무유예를 받은 종은 언제든지, 자신과 종속관계에 있는 또 다른 동료 종들을 더욱 혹독하게 추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만달란트 빚진 종은 자기 주인(왕)의 채무유예를 통한 채권추심 기법을 본받아야 마땅하다.
“그 때에 그 종의 주인이 그를 불러들여 그에게 따졌다.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간청할 때에 나는 너에게서 그 모든 빚을 미루어 주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너도 너의 동료 종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겠느냐?”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은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황제로부터 맨 밑바닥 민초들에게까지 모두가 마땅히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은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 안에서 주인의 참뜻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자신의 다른 동료 종들에 대해서도 ‘채무유예를 통한 채권추심’에 나서야만 한다. 그래야만,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 구조가 무너지지 않고 안전하고, 튼튼하며, 굳세게 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 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은 왕(또는 주인)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도리어 만달란트 채무유예 받은 종은 밑바닥 백 데나리온 빚진 종 하나를 찾아가서, 가장 혹독한 추심의 본때를 보여 주었다.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종이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동료 종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러한 본문비유 사건상황과 이야기의 흐름은 로마제국 황제로부터 맨 밑바닥 식민지 민초들에게 이르기까지, 피라미드 먹이사슬구조 속에서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위기상황이다. 본문비유의 첫 문장이 이를 여실히 증언한다.
“하늘나라가 자기 종들과 함께 셈을 정리하려고 작정한 어떤 왕과 같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틀림없이 꼭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뒤늦게 주인은 이 사건사실에 대한 고발을 접수하고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위기’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주인은 부랴부랴 만달란트 채무유예 받은 종을 다시 불러들여서 처벌한다.
“그 종의 주인이 화가 나서, 빚진 모든 것을 갚을 때까지, 만달란트 채무유예 받은 종을 전문추심원들에게 넘겼다.”
여기서, 기독교회의 오래된 본문비유 읽기와 해석으로써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대 탕감의 신화’는 설자리를 잃는다. 성서 안과 밖의 지혜문학과 묵시문학, 또한 기독교 메시아 제국주의에 이끌린 본문비유 읽기와 해석도 아무런 쓸데가 없다. 마태복음 저자가 자기 신앙해석에 따라 초대교회 윤리와 착한행동으로 본문비유 내용을 꾸미고 다듬어 자기 해석까지 덧붙였으나, 모두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본문비유의 주인(또는 왕)이 ’처음 대 탕감의 감격을 마지막에 이르러 처절하게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기독교 메시아 제국주의 신앙 이데올로기로써 ’하나님의 대신방망이인 자비로운 왕의 빚 탕감’이 취소되었다. 그로 인해, 본문비유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와 사랑‘이라는 주제도 사라졌다.
이렇듯이, 예수는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의 무자비한 채권추심 행태를 통하여,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폐해를 매섭고 세차게 비판한다. 만달란트 빚을 채무유예 받은 종은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 밑바닥 동료 종의 백 데나리온 빚을 결코 채무유예하지 못한다. 사실, 본문비유에서 만달란트 채무유예 받은 종은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에 철저하게 자신을 순복시켰을 뿐이다. 그 종은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상위 내부자로써, 지배체제에 대한 아낌없는 충성을 다했다. 그러므로 예수가 비유 속에 숨겨놓은 핵심 은유는 ‘용서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종으로 인한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파멸을 기다리며’이다.
그러면 이제, 본문비유의 ‘용서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종으로 인한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파멸을 기다리며’라는 은유로 21C 우리의 현실세계를 살펴보자. 본문비유와 똑같은 상황에서, 21C 대한민국의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는 ‘삼성재벌, 롯데재벌’ 등 지배체제 내부자 몇몇을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심판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땅의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의 안정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본문비유는 21C 우리시대의 독점자본경제․시장경쟁체제 안에서 되풀이 되어 벌어지는 사회․경제 위기상황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의 억압과 착취를 당하며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장․노년층 세대는 스스로를 ‘산업사회의 역군’ 또는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 자랑스러워하며 현실 삶의 고단함을 위로한다. 밑바닥 민초들마저도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에 대한 혁신적인 개혁과 올바른 변화들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노년층 세대의 자의식과 이 땅의 민초들의 하염없는 기대는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그러한 자의식과 기대는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가 세뇌시킨 더럽고 사악한 거짓진실이다. 이러한 거짓진실을 쫓아 민초들은 지배체제의 노동기계가 되고, 엘리트들은 관료기계가 되고, 공권력은 폭력기계가 되어 자기착취와 자기 학대에 몰입해 왔다.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의 말도 안 되는 외부인 성공신화로 스스로를 얽매어 왔다.
또 이러한 거짓진실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녀세대와 미래세대의 삶을 판단하고 재단하며 이끌어 왔다. 그럼으로써 우리사회의 장․노년층 세대는 온갖 사회적 불의와 모순, 억압과 고통을 생산․재생산하며 미래세대로 확대하는 크나큰 죄악을 저질러 왔다. 이러한 역사와 과정 속에서 우리사회에 널리 오르내리는 ‘헬조선, 청년실신, 달관세대, 20대 괴물세대 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21C 우리 시대에서 이 땅의 민초들의 실체적인 삶의 여정 하나하나는 가난과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한마디로 21C 이 땅에서 생존의 터를 잡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푸어족’으로 살아야만 하는 팔자이다. 청소년기에는 ‘에듀푸어’인 부모와 함께 가난과 고통을 겪다가 대학생이 되어서 ‘학자금푸어’가 되어야 한다. 청년이 되어서는 ‘청년실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곧이어 ‘허니문푸어’가 될 것이다. 결혼생활 중에는 부모세대의 가난을 이어받아 ‘베이비푸어’, ‘하우스푸어’, ‘에듀푸어’를 대물림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평생을 ‘워킹푸어’로 살게 될 것이고, 늙어서는 ‘실버푸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21C 이 풍요롭고 다채로운 과학․물질문명시대에 이 무슨 더러운 팔자소관(八字所關)인가? 이 팔자소관의 수레바퀴에서 탈출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제, 예수는 본문비유에 숨겨놓은 또 다른 핵심은유로 비유의 청중과 독자들을 이끌어 들인다. 그것은 바로, 이제 곧 허물어 질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의 ‘대안 세상,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하여‘이다. 예수는 비유의 끝판 이야기에서 고대 유대사회의 지혜문학과 묵시문학, 그리고 마태복음 저자의 기독교 메시아 제국주의 비유 읽기와 해석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이제, 21C 예수의 비유의 독자들은 새로운 대안세상,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에 대한 창조적인 은유의 상상력을 억눌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와 관련하여 21C 독점금융자본․시장경쟁체제에서 실체적 빚 탕감제도로써 개인파산․면책제도는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를 허무는 작은 뾰족 망치와 같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저소득․취약계층 과중채무자들은 우리시대의 강도만난 사람과 다름없다. 이들 과중채무자들에 대한 실체적 빚 탕감을 위한 화해의 손길은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 안에서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는 반역행위로써, 새로운 대안세상으로 나가는 문(門)이다. 이 문을 박차고 여는 이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독점자본경제의 무한경쟁, 무한독점, 무한 쌓음, 무한소비라는 맘몬․자본 이데올로기에 세뇌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다. 21C 맘몬․자본 지배체제에 대한 이단아(異端兒)로써, 새로운 대안세상의 길잡이들 이다.
이렇듯이, 자기 삶의 모든 주권을 독점자본경제․시장경쟁체제에 넘기지 않는 사람은 피라미드 빨대착취 거대 사회기계구조를 해체하는 펜치이고 스패너이다.
맺는 말
본문비유가 예수의 다른 비유들에 비해 도드라진 점은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내부 모순과 폐해를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는 ’정삼각형 사면체‘이다. 이 ’정삼각형 사면체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는 매우 안정적이며 견고하다. 이 견고함과 안정성은 고대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에 빗대어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시대 로마제국이나, 21C 맘몬․자본세상에서 ‘정삼각형 사면체 피라미드식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를 1% 대99%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는 10% 대 90%, 20% 대 80% 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수직구조이다.
우리는 이 피라미드 빨대착취 거대 기계구조의 실체를 통하여, 21C 우리 시대의 민초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독점재벌․독점관료 지배체제를 지지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21C 맘몬․자본 지배체제 속에서 이 땅의 민초들이 떠안고 사는 하루하루의 삶의 불안과 고통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이 땅의 지배체제가 민초들의 하루하루의 삶의 불안과 고통을 지렛대 삼아 맘몬․자본에 대한 숭배와 순응의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세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비유는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안정성의 핵심을 ‘채무유예’라고 증언한다. 채무유예야 말로 옛날 옛적부터 21C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 속에서 채무노예 세상을 구조화하고 영속화해 온 핵심조건이다. 21C 독점자본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맘몬․자본 권력의 채무유예를 갈망하고, 환호하며, 감격해 하는 가운데 하루하루의 삶의 불안과 고통을 견뎌낸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지배체제의 내부자들 가운데 누구라도 독점자본경제체제의 채무유예를 거부하고 무자비한 채권추심에 나선다면, 이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빨대 착취구조는 곧바로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새로운 대안세상,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본문비유는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채무유예를 쫓아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기독교 자본주의 윤리관행과 착한행동으로 바꾸어 놓았을 때에 일어나게 될,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처절한 실패와 좌절을 경고한다. 나아가, 본문비유는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실패와 좌절에 대한 경고를 통하여, 새삼스럽게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계시한다. 그 희망은 곧, 맘몬․자본 지배체제의 윤리관행에 따른 채무유예에 맞서서 ‘온전한 채무탕감’을 실천행동 하는 예수신앙 공동체이다.
이렇듯이, 예수는 비유이야기를 통하여 로마제국 피라미드 후원자-종속관계 채무유예를 갈망하고, 환호하며, 감격해하는 채무노예들에게 온전한 빚 탕감 세상을 선전선동 한다. 그럼으로써 21C 우리시대의 비유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대안세상,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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