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맥(脈)

희년신앙의 태동 3.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 히브리 노예들의 고난서사를 쓰다.

희년행동 2022. 8. 21. 14:54

희년신앙의 태동

 

3.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 히브리 노예들의 고난서사를 쓰다.

출애굽기 2:1-10, 2:11-15, 2: 23-25

 

본문읽기1. 나일강가의 세 여인 출애굽기 2:1-10

 

레위가문의 한 남자가 가서 레위가문의 한 딸을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엄마가 아기를 보니 참 아기가 사랑스러웠다. 아기엄마는 석 달 동안이나 아기를 숨겨서 길렀다. 그러나 아기엄마는 더 이상 아기를 숨길수가 없었다. 아기엄마는 갈대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었다. 그리고 나일강 둔치 갈대 사이에 두었다.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그 아기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가알아보려고 멀찍이 서있었다. 그 때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가로 내려왔다. 그런데 공주의 시녀들이 강가를 경계하며 (갈대숲을) 살피고 있을 때 공주는 갈대숲 가운데 있는 상자를 보았다. 공주가 시녀 하나를 보내서 상자를 가져왔다. 공주가 상자를 열고 한 아기를 보았다.

 

보라, 한 사내아이가 울고 있지 않은가.”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겨 중얼거렸다.

 

이 아이는 히브리 아기들 가운데 한 아이로구나.”

 

그 순간, 아기의 누이가 파라오의 딸에게 소리쳤다.

 

제가 가서 당신을 위해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그 아기에게 젖을 먹일 여자를 부를까요?”

 

파라오의 딸이 그 아기의 누이에게 대답했다.

 

너는 가서 젊은 아기엄마를 데려 오너라

 

아기의 누이가 가서 아기의 엄마를 불러왔다. 파라오이 딸이 아기엄마에게 부탁했다.

 

이 아기를 데려가서 나를 위해 젖을 먹여다오. 내가 삯을 주겠다.”

 

그리하여 그 아기엄마가 아기를 데려와 젖을 먹여 키웠다. 아기가 자라자 아기엄마는 그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공주의 아들이 되었다. 공주는 그를 모세라고 부르며 말했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기 때문이다.”

 

본문읽기2. 실패한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출애굽기 11-15

 

세월이 흘러, 모세가 장성했다. 모세는 그의 형제들에게 나아갔다. 모세는 형제들의 노역(奴役)을 보았다. 그런데 모세가 어떤 이집트 사내가 그의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을 때려눕히는 것을 목격했다. 모세가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 사내를 쳐 죽였다. 그리고는 그 시체를 모래 속에 숨겼다. 이튿날 모세가 다시 (형제들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이것 좀 봐. 히브리 남자 두 사람이 싸우고 있지 않은가.”

 

모세가 잘못한 사람을 나무랐다.

 

당신은 왜 동무를 때리오?”

 

그러자 그 사내가 (모세에게) 대들었다.

 

누가, 우리위에 우두머리와 재판관으로 당신의 이름을 세웠소?

당신이 이집트사람을 살육했던 것처럼 나도 쳐 죽일 셈이오?”

 

모세가 두려워 떨며 탄식했다.

 

아하, 그 일이 탄로 났구나.”

 

파라오가 그 일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파라오는 모세를 잡아 죽이기 위하여 모세를 찾았다.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 땅에 웅크렸다. 모세는 (그곳) 한 우물가에 주물러 않았다.

 

본문읽기3. 히브리 노예들의 신음과 절규 출애굽기 2: 23-25

 

그 많은 날들이 지나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노역으로 인해 신음하며 아우성쳤다. 그들은 하나님께 도움과 구원을 빌며 울부짖었다. 마침내, 도움과 구원을 비는 그들의 절규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절규를 들으셨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후손을 굽어보시고 (그들의 형편을) 아시게 되었다.

 

 

본문 이해하기

 

모세는 누구인가?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민족영웅이다. 히브리 성서 신앙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다. 히브리 성서에서 모세는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 일꾼으로써 온갖 고난을 겪는다. 그리고 모세는 마침내 히브리 노예들을 파라오 노예제국으로부터 탈출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밑바탕을 이루는 야훼하나님의 모든 말씀들 곧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도 모세로부터 유래한다. 물론 유대교와 유대인들은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이라고 하지 않고 야훼 하나님의 토라’(또는 율법, 교훈)이라고 한다. 따라서 기독교회도 히브리 성서의 첫머리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또는 모세의 율법)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모세는 유대교와 유대인들에게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에게까지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신앙과 종교성(religiousity)’의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히브리 성서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이스라엘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해서 그는 야훼께서 얼굴과 얼굴로 아는 사람이었다라고 증언한다.(신명기 34:10) 히브리 성서에 나타나는 수많은 예언자들과 신앙영웅들 가운데 그 누구도 모세와 비교될 수 없다. 한마디로 모세를 향한 히브리 성서의 총평은 그 사람 모세는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도 매우 겸손하였다이다.(민수기 12:3)

그렇더라도 히브리 성서 출애굽기는 결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해방지도자 모세의 업적을 기리는 영웅서사가 아니다. 모름지기 출애굽기는 파라오 노예제국으로부터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신 야훼하나님의 출애굽 신앙사건을 기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점에서 출애굽기의 핵심내용은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이다.

따라서 출애굽기 저자는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태동과 출발을 꼼꼼하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왜냐하면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이야말로 히브리들에게 야훼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신앙체험이며 증언이기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을 통해서 히브리 노예들을 자기사람들로 세우시겠다는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들은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 체험과 신앙고백을 통해서 스스로를 야훼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 성서 출애굽기의 첫 단락은 1장에서 15장까지다. 이 단락은 야훼 하나님께서 파라오 채무노예제국으로부터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시는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출애굽기1장은 야곱의 아들들 곧 히브리들이 어떻게 이집트제국 파라오의 노예로 떨어지게 되었는지를 보고한다. 2장에서 15장까지는 히브리 노예들이 어떻게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탈출해 나아오게 되었는지를 보고한다.

그 과정에서 모세이야기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모세가 히브리노예들의 사회·종교·정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모세는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제 본문읽기1.2.에서 모세 탄생설화와 모세의 투쟁이야기는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 대장정의 서막이다. 파라오 채무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시는 야훼하나님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의 출발점이다.

모세는 죽는 그날까지 야훼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 일꾼으로써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광야40년 희년신앙 행동훈련을 이끌었다. 히브리들과 야훼하나님 사이에서 맺어지는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중재했다.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내려 받아서 히브리들에게 선포했다. 히브리들과 함께 광야에서 40년을 살면서 온갖 고초를 함께 겪었다. 그러나 모세는 끝끝내 야훼 하나님께서 선물하신 가나안땅 노느매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밟아보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참으로 모세의 죽음은 그 때와 장소와 상황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모세는, 자신의 죽음조차 알려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채 히브리노예 공동체로부터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이제 필자는 제시한 출애굽기 본문들을 자세히 읽고 문장과 문장사이 행간을 살펴서 히브리 성서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진실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러할 때 본문들에 앞선 출애굽기1장은 파라오 채무노예제국 지배체제에서 종살이 하는 히브리들의 처참한 삶의 상황을 그려낸다. 이어서 본문읽기1.은 이스라엘 종교역사에서가장 중요한 사람 모세의 탄생설화를 이야기한다. 본문읽기2.는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지도자 모세의 인간적인 투쟁과 실패를 소개한다. 본문읽기3.은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절망적인 삶의 상황과 모세의 인간적인 투쟁실패 사이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에 개입 하시는가를 보여준다. 이제 본문들을 살펴서 읽고 풀이하며 야훼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자.

 

 

본문풀이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 히브리노예들의 고난서사를 쓰다.

 

모세의 탄생설화, 나일강가의 세 여인

 

본문읽기에서 레위가문은 아직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읽기1.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탄생설화. 그리고 이후 유대교 안에서 레위가문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본문읽기1.에서 모세의 탄생이야기는 위기와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증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 가운데서는 여성들의 역할과 행동만 드러날 뿐이다. 단 한명의 남성도 등장하지 않고 아무런 역할도 없다. 나아가 하나님의 직접개입도 없다.

왜 그럴까? 본문읽기1.에서 모세의 탄생설화는 히브리 노예들의 성공신화로써 모세의 영웅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본문은 모세의 탄생설화를 통하여 히브리 노예들의 고난의 현장을 기록하려고 한다. 앞선 출애굽기1장에서 히브리 노예들이 처한 참혹한 상황이 모세의 탄생설화를 통하여 낱낱이 까발려 진다. 곧 히브리 노예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히브리노예 사내아기 살해정책 실제상황이 생생하게 다 드러난다.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 안에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따위는 아예 발붙일 여지가 전혀 없다. 따라서 히브리 노예들이 겪어야만 하는 참혹한 고난의 현장이 여자들만의 삶의 현실상황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점에서 모세의 탄생설화는 하이쏴 הָאִשָּׁה 그 여자라는 주어로 출발하고 그 아기엄마라는 주어로 끝을 맺는다.

 

그 여자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엄마가 아기를 보니 참 아기가 사랑스러웠다. 아기엄마는 석 달 동안이나 아이를 숨겨서 길렀다

 

우리말 성서는 본문에서 사용된 키 토브 כִּי־טֹוב라는 히브리어 문구를 준수하다 또는 잘생겼다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히브리어 낱말 토브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형용사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실 보도에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형용사이다. 따라서 본문읽기에서 토브는 아기를 낳은 엄마가 아기를 바라보는 절절하고 속절없는 사랑스러움이다. 히브리노예 사내아기 살해라는 참혹하고 무지막지한 파라오 지배체제의 폭력통치 아래서 아기엄마의 고통과 절망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문구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명의 출생은 기쁘고 귀한 일이다. 그러나 모세탄생 설화에서 아기엄마는 아기의 출생을 숨기고 감추어야만 했다. 이러한 현실상황은 아기엄마의 고통과 절망을 히브리 노예공동체의 일상적 삶의 고통과 절망으로 확장한다.

그러나 이제 아기엄마는 더 이상 아기를 숨길 수가 없었다. 아기엄마는 갈대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었다. 그리고 나일강 둔치 갈대 사이에 두었다. 이때 본문이 사용한 히브리어 낱말 예오르 יְאֹֽר는 보통 나일강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본문에서 나일강은 농사를 짓기 위해 나일강물을 끌어오는 큰 수로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수프 סּוּף라는 히브리어 낱말은 보통 갈대바다라고 번역하는데 여기서는 나일강 수로에서 자라는 갈대밭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프라는 히브리어 낱말이 끝장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라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아기엄마의 포기 또는 내버림의 고통과 절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고통과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반전은 있게 마련이다. 아기의 누이가 그 아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알아보려고 멀찍이 서있었다.

아기의 누이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희망은 누군가가 개입하고 수고함으로써 일어나게 되는 결과가 아닐까?

아기누이의 한갓되고 부질없어 보이는 행동이 기적을 가져왔다. 그 때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가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공주의 시녀들이 강가를 경계하면서 갈대밭을 휘젓고 헤쳐서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공주는 갈대숲 가운데 있는 상자를 보았다. 공주가 시녀 하나를 보내서 상자를 가져왔다. 공주가 상자를 열고 한 아기를 보았다.

 

보라, 한 사내아이가 울고 있지 않은가.”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겨 중얼거렸다.

 

이 아이는 히브리 아기들 가운데 한 아이로구나

 

파라오의 딸이 상자 속에서 발견한 히브리 사내아이를 보고 나타내는 태도는 모두 감탄문으로 표현된다. 우리말 성서는 이 감탄문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번역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감탄문들은 독립적이다. 또한 이 감탄문들은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히브리노예 사내아기 살해상황 속에서 쓰여 진 모세 탄생설화의 극적인 반전을 표현한다. 나아가 본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기의 누이가 파라오의 딸에게 소리쳤다.

 

제가 가서, 당신을 위해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그 아기에게 젖을 먹일 여자를 부를까요?”

 

이 외침은 아기누이에게 솟구치는 용기였을까? 아니다. 절절한 고통이고 절망이며 가없는 두려움의 외침이다.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공주가 히브리노예 사내아기살해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아기누이의 이 외침이 하나님의 개입과 구원을 불러 온 것일까? 히브리노예 아기누이가 외치는 절절한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의 외침이 희망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파라오의 딸이 그 아기누이에게 대답했다.

 

너는 가서, 젊은 아기엄마를 데려 오너라

 

공주의 허락을 받은 아기의 누이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아기의 친엄마를 불러왔다. 파라오의 딸이 아기엄마에게 부탁했다.

 

이 아기를 데려가서 나를 위해 젖을 먹여다오. 내가 삯을 주겠다.”

 

고통과 절망 끝에서 모든 것을 포기했던 아기 엄마에게 도리어 공주가 부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아기 엄마가 아기를 데려와 젖을 먹여 키웠다. 아기가 자라자, 아기 엄마는 그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리고 갔다.

 

그의 이름은 모세

 

그는 공주의 아들이 되었다. 공주는 그를 모세라고 부르며 말했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세 משׁה라는 이름의 뜻은 이집트어로 물에서 건지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모세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마솨 מָשַׁה 이끌어내다라는 동사와 발음이 같다. 나아가 마쉬아흐, 메시아 또는 구원자라는 히브리어 낱말과도 발음이 비슷하다. 어째든 그는 모세라는 이집트 이름을 가졌다. 그럼으로써 그가 이집트제국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레위가문의 사람들 가운데 무라리 또는 비느하스등 이집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 나아가 아론도 이집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이 모세의 입양절차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에서 잘 알려진 법조문과 비슷하다. 메소포타미아 법 문서에는 입양할 아기를 젖먹이는 유모에게 비용을 주고 맡기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3년간 후견인의 보호아래 두었다가 입양하는 절차를 밟는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아카드시대의 전설에서도 모세의 탄생설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아카드 사르곤 왕의 비문(기원전 23백 년경)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가 그를 몰래 낳았다고 한다. 그녀는 역청을 바른 골풀바구니에 아기를 담아서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러자 물의 신 아키가 그 아기를 건져내어 아들로 삼았다. 사르곤은 이렇게 비천한 신분을 넘어 신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카드의 왕이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문명을 이어서 나타난 아카드 문명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실패한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

모세의 투쟁

 

이어지는 본문읽기2.는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지도자 모세의 인간적인 투쟁과 실패를 증언한다. 이 이야기 역시 모세탄생설화 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럽다.

 

세월이 흘러 모세가 장성했다. 모세는 그의 형제들에게 나아갔다. 모세는 형제들의 노역(奴役)을 보았다.”

 

여기서 장성했다라는 의미는 신체가 자라고 용모도 특별히 뛰어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불어 지혜와 능력과 함께 부와 힘이 커졌음말한다. 이어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예체 יֵצֵא 나아갔다라는 의미도 그렇다. 모세는 파라오 궁궐 바깥나들이를 하다가 우연히 형제들과 만나게 된 것이 아니다. 이제 모세는 힘차고 씩씩하게 그리고 은밀하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자기형제들 앞에 나선 것이다. 본문에서 모세의 투쟁내용을 보더라도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에게 강한 형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모세가 파라오의 궁전에서 양육되고 교육받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한편 이 무렵 모세의 형제 히브리 노예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이집트 18왕조시대의 무덤벽화에서 출애굽기1장 히브리 노예들의 강제노동과 똑 같은 내용을 그린 그림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형제들의 이익과 권리를 확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권리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세가 할 수 있는 권리투쟁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세가 히브리 형제들의 노역을 보고 느끼는 부끄러움과 무력감은 이어지는 모세의 돌발 살인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모세가 어떤 이집트 사내가 그의 형제들 중 한 사람을 때려눕히는 것을 목격했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이집트 사내를 쳐 죽였다. 그리고는 그 시체를 모래 속에 숨겼다.”

 

이때 어떤 이집트사내(아마도 노예감독관)가 히브리 노예를 마케 מַכֶּה 때려눕히는현장은 친구사이에서의 가벼운 다툼이 아니다. 주인으로써 노예를 향한 일방폭력이다. 이 경우 주인은 노예를 때려서 큰 상처를 입히거나 혹 죽이거나 할 만큼의 무거운 폭력을 사용하기 일쑤다. 실제로 이 폭력은 고대 노예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게 가할 수 있는 사회구조폭력이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방폭력이며 무한폭력이다.

따라서 이제, 히브리 노예들의 지도자로 나설 만큼 장성한 모세로서는 도저히 이 폭력사태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모세는 처절한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히브리 형제들을 향한 부끄러움과 무력감 속에서 돌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튿날 모세가 다시 형제들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이것 좀 봐, 히브리 남자 두 사람이 싸우고 있지 않은가.”

 

모세가 잘못한 사람을 나무랐다.

 

당신은 왜 동무를 때리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니침 נִצִּים 은 다투다 또는 싸우다라는 뜻이다. 주인으로써 이집트사람이 히브리노예를 때려죽이는 무한폭력이 아니다. 그저 형제끼리 서로 멱살을 잡거나 부둥켜안고 얼러대는 정도의 다툼이다. 그러나 히브리들은 다 같은 노예의 처지였지만 사람마다 능력과 직책이 달랐다. 히브리노예들 사이에서 작은 이익과 권리들을 쟁취하려는 삶의 투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그 작은 이익들과 권리들조차 히브리 노예들의 주인인 파라오로부터 던져지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작은 이익과 권리를 위한 경쟁 때문에 히브리노예들 사이에서는 잦은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노예들 사이에서 주인인 파라오가 던져주는 떡 한 덩이 고기 한 조각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모세는 뜻하지 않게 히브리 형제들의 다툼을 말리고 잘잘못을 따지며 판단하는 자리에 나서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실제로 쳐 죽이든 아니면 다투든아무리 작은 이익과 권리다툼일지라도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상대로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이익과 권리를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본문상황에서나 21세기 맘몬자본세상에서나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의 삶의 투쟁은 너나없이 죽기 살기 일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의 삶의 투쟁은 정당한 중재가가 없다. 따라서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의 작은 이익과 권리다툼에 개입하는 순간 모두에게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히브리노예 성공신화로써 모델이며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탈이 났다. 그 히브리 사내가 모세에게 대들었다.

 

누가, 우리위에 우두머리와 재판관으로 당신의 이름을 세웠소?

당신이 이집트인을 살육했던 것처럼 나도 쳐 죽일 셈이오?”

 

모세가 두려워 떨며 탄식했다.

 

아하, 그 일이 탄로 났구나.”

 

파라오가 이일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파라오는 모세를 잡아 죽이려고 모세를 찾았다.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 땅에 웅크렸다. 모세는 그곳 한 우물가에 주물러 앉았다.

 

모세의 투쟁이 갖는 위험성

 

여기서 히브리 형제가 모세를 고발할 때 사용한 동사 하라그타 הָרַגְתָּ 쳐 죽이다라는 표현은 매우 엄중하다. 그렇다면, 모세의 투쟁은 히브리 노예들의 권리투쟁이 아닌 해방투쟁이었을까?

어찌되었든 히브리형제 고발인이 사용하는 동사로 보아 모세의 투쟁은 처음부터 과격하고 폭력적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주인으로써 이집트 사람들이 히브리 노예들에게 막무가내로 죽임의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본문읽기 안에서 모세의 투쟁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위험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작은 이익과 권리쟁취에서 파생되는 모든 투쟁들은 하나같이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히브리 형제들을 위한 모세의 권리투쟁 가운데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우발적이고 비밀스러운 사건이었다. 반면에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보복은 공개적이고 체제구조적이며 집단적인 무한폭력이었다. 결국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모세의 권리투쟁은 피의 보복을 부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모세는 자신의 비밀투쟁이 발각되고 보복이 두려워 미디안광야로 도망쳤다. 그 후 모세는 자기시대의 파라오가 죽고 새로운 파라오가 집권하기까지 이집트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출애굽기 2:23; 4:18-20)

그러므로 파라오 노예제국 히브리노예 성공신화로써 이집트제국의 왕자 지위에까지 올랐던 모세의 성공신화는 모세의 투쟁실패와 함께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제 모세의 성공신화는 전설이 되고 말았다. 이로써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모세의 투쟁실패는 모세뿐만 아니라 모든 히브리 노예들의 실패이며 절망이었다.

 

히브리 노예들의 신음과 절규, 하나님께서 그들의 형편을 아시다.

 

모세는 파라오 노예제국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해방투쟁 영웅이 아니다. 모세이야기는 앞선 꿈의 사람 요셉이야기와 전혀 다르다.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 외부인 성공신화로 보기도 어렵다. 실제로 히브리 성서에서 모세의 인생 대부분은 실패와 도망자 신세였다. 모세의 120여년 인생 속에서 80여년 세월은 실패와 고난과 나약함의 세월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본문읽기3.야훼 하나님께서 <어떻게> 히브리 노예들의 역사에 개입 하시는가를 보여준다. 실제로 그것은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모세의 인간적인 투쟁실패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본문읽기3.의 핵심내용은 어떻게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를 히브리 노예들의 삶의 현장으로 불러낼 수 있는가이다.

 

그 많은 날들이 지나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역으로 인해 신음하며 아우성쳤다.

그들은 하나님께 도움과 구원을 빌며 울부짖었다.

마침내, 도움과 구원을 비는 그들의 절규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절규를 들으셨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보시고 그들의 형편을 아시게 되었다.”

 

여기서 본문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동사 예아후 יֵּאָנְחו 는 신음과 탄식으로 아우성치는 모습 나타내는 상태 동사이다.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작은 이익과 권리다툼에 몰두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다툼은 허망할 뿐이었다. 모세의 비밀스런 권리투쟁도 실패로 끝났다. 모든 히브리들의 발버둥이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히브리 노예들은 자신들의 삶의 상황에 절망하고 탄식하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본문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동사 이즈아쿠 יִזְעָקוּ역시 도움과 구원을 요청하는 히브리들의 울부짖음이다.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은 어떻게일어나는가?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이야말로 신령(神靈)스럽고 비밀스러우며 확신에 찬 기도로부터 오는가?

아니다.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모든 희망이 사라진 삶의 고통과 절망가운데서 터져 나오는 절규로부터 야훼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사건이 일어난다. 고통과 절망의 탄식과 신음 그로 인한 울부짖음이야말로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이 시작되는 통로다. 한마디로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모든 자기능력을 상실한 때이다. 그래서 오직 야훼 하나님만 바랄 수밖에 없는 절망자의 삶속으로 야훼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의 능력이 침투한다.

이때 본문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동사가 솨베아탐 שַׁוְעָתָם인데 도움과 구원을 요청하는 절규다. 이 절규야말로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모든 삶의 투쟁이 다한 자리.

실제로 솨바아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때로는 크고 요란스럽게 때로는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삶의 고통과 절망을 부르짖는 모습을 묘사하는 동사다. 그것은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의 작은 이익과 권리다툼에서조차 소외된 무지렁이 노예들의 삶의 자리에서 솟구쳐 나오는 울부짖음이다. 노예세상 이외는 다른 어떤 새로운 세상도 꿈꾸지 못하는 타고난 노예들의 삶의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울분이다. 노예주인을 향한 권리투쟁에서 처참하게 패배당하고 도망치는 노예들에게서 속절없이 솟구치는 절망과 절규를 표현하는 동사다.

그러므로 마침내 야훼 하나님께서 히브리 노예들의 신음과 절규를 들으셨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야훼 하나님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야훼 하나님의 계약이란 무엇일까? 원래 계약이란, 대등한 당사자들 사이에서 맺는 법률관계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계약은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주도하시는 계약이다.

그러나 실제로 야훼 하나님의 계약의 상대방으로써 사람이 감히 야훼 하나님의 계약의 요구들을 제대로 감당하고 수용할 능력이 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야훼 하나님과의 계약의무를 마땅히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어지간히 교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야훼 하나님께서 스스로 사람이 야훼 하나님과 계약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이끄신다. 야훼 하나님이 스스로 직접행동을 위한 밑바탕을 놓으신다.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인류종교문명사에서 그 유래가 없는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하신다. 히브리 노예들의 삶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들의 신음과 절규에 연대하고 참여하시려고 하신다. 따라서 야훼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계약은 하나님의 생명사랑 은총일 수밖에 없다.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후손을 굽어보시고 (그들의 형편을) 아시게 되었다.”

 

본문은 이 문장에서 예다 יֵּדַע라는 히브리어 미완료동사를 사용한다. 이 히브리어 동사는 알다 또는 알아채다, 깨닫다라는 뜻이다. 우리말 성서는 본문의 이 문장을 권념(眷念)하셨다라는 어려운 한자말로 번역했다. 우리말로 풀어서 새기면 야훼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그들의 형편을 아시게 되었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은 이제야 비로써 히브리 노예들을 형편을 살펴보시고 그들의 고통과 절망의 상황을 알게 되셨을까?

아니다. 야훼 하나님은 끊임없이 파라오 채무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눈여겨 살피시며 그들의 상황을 안타까워 하셨다. 그런 까닭에 야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계약을 들먹이며 장황하게 당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신다. 문제는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히브리 노예들이 파라오가 던져주는 떡 한 덩어리와 고기 한 조각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롯이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종살이만을 생각하고 파라오가 던져주는 떡과 고기조각만을 갈망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21세기 교회들도 감히 이 땅에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열망하거나 참여하지 못한다. 맘몬자본세상에서 불로소득 대박 돈 귀신 하나님만을 사모하며 예수의 하나님나라를 저세상나라로 밀어붙인다. 이제 그 모든 이유가 명백해 졌다. 바로 21세기 교회와 교우들이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돈 귀신과 황소귀신 섬기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성서 속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가 꿈꾸던 임마누엘 하나님나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다.

 

히브리 성서 출애굽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의 나타심을 계시한다. 또 야훼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증언한다. 히브리 해방노예들과 야훼 하나님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조건들로써 행동법규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증언한다. 히브리 노예들의 희년신앙 체험과 깨달음 그리고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출발을 기록하고 보고한다.

따라서 히브리 성서 모든 책들의 밑바탕은 야훼 하나님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이다. 나아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따르고 행동하는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 히브리들이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에 따라 살고 누려온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역사다. 히브리 성서 전체가 히브리 노예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이며 증언록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읽기에서 모세 탄생설화와 모세의 투쟁실패 이야기는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는 히브리 노예들을 향한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사건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모세 탄생설화와 모세의 투쟁실패 이야기가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처참한 삶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 노예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모세의 투쟁실패 사이에서 야훼 하나님이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과 구원역사에 개입하시게 되는 상황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없는 파라오 노예세상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신음과 절규를 향한 야훼 하나님의 소통과 연대와 참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