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맥(脈)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거친 숨결 19. 심판과 징벌의 공포, 그 악마성에 저항하라.

희년행동 2024. 8. 7. 17:04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거친 숨결

 

19. 심판과 징벌의 공포, 그 악마성에 저항하라.

호세아 111-11, 갈라디아서 4:6

 

본문읽기 1. 호세아 111-11,

 

참으로,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그를 사랑하여

내가 이집트로부터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그러나 (예언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멀어져 갔다

예언자들의 얼굴들로부터.

바알들에게

그들은 제물을 바쳤다.

우상들에게

그들은 향을 피워 올렸다.

나는 걸음마를 가르쳤다

에브라임에게.

내 팔들로 그들을 안았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참으로, 내가 그들을 치료한다는 것을.

사람의 끈들로

나는 그들을 이끌었다

사랑의 밧줄들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부리망을 벗기는 사람처럼 되리라

그들의 턱에서.

그에게 허리를 굽혀

나는 그를 먹이리라.

그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아슈르가 그의 임금이다.

왜냐하면, 나로부터 돌아서려하기 때문이다.

칼이 그의 성들을 칠 것이다.

칼이 그의 성문빗장들을 깨트릴 것이다.

칼이 그들의 모든 계획들을 삼킬 것이다.

내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

나를 배신하려고.

바알을 향하여

그들이 바알을 불러보지만

바알이 한패 되어 그들을 높여주지 않는다.

어찌, 내가 너를 버리겠느냐?

에브라임아.

어찌, 내가 너를 넘겨주겠느냐?

이스라엘아.

어찌, 내가 너를 아드마처럼 내어주겠느냐?

어찌, 내가 너를 스보임처럼 방치하겠느냐?

내 마음이 거꾸로(위로) 뒤집혀 졌구나

그들 모두 너무 사랑스러워

내가 불타오르게 되었구나.

나는 분노로 불태우지 않겠다

내 콧구멍을.

나는 함정으로 몰아넣지 않겠다

에브라임을.

왜냐하면(참으로)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의 가운데 있는 거룩이다.

나는 성안으로 짓 쳐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야훼의 뒤를 따를 것이다.

사자처럼

야훼가 포효할 것이다.

참으로 야훼가 포효할 것이다.

그러면 자손들이 뉘우치며 떨쳐 나올 것이다

서쪽으로부터.

그들이 떨쳐 나올 것이다

이집트로부터 새처럼

아슈르 땅으로부터 비둘기처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서 살게 할 것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본문읽기 2. 갈라디아서 4: 6

 

여러분은 아들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안으로 보내셨습니다.

아빠아버지라고 부르도록.

 

 

본문이해기

 

호세아는 누구인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기원전745년 여로보암2세 때부터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제국에 멸망당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예언활동을 했다. 참으로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조차 희미해진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지킴이로써 예언자의 삶을 살았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나라밖에서 아시리아제국의 억압을 받으면서 안으로는 권력다툼이 치열했다. 짧은 기간에 여러 명이 번갈아 왕좌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은 너도나도 풍요다산 바알신앙에 몰두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호세아는 옛 희년신앙 행동계약조건으로써 행동법규들에 따르도록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설득했다.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의 바알숭배회개와 희년신앙부흥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호세아는 야훼하나님의 명령으로 비인간적인 고통과 고뇌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호세아의 인생자체가 야훼하나님의 예언내용을 상징으로 표현하는 삶이었다. 이렇듯이 호세아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난 이후에야 야훼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 호세아는 자기 삶을 거울삼아 죄악의 나락에서 헤매는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을 향하여 야훼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를 전달했다.

 

 

본문풀이

 

심판과 징벌의 공포, 그 악마성에 저항하라.

 

꽤 오래전에 방영했던 TV프로그램 일밤, 아빠 어디가라는 동영상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어린자녀들과 아빠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 봐도 정말 재미있다. 꼬맹이들과 아빠들이 함께 어울려 스스럼없이 잘도 놀았다. 그렇게 꼬맹이들은 아빠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제작진들이 요청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참으로 이제 21세기에 이르러 대한민국사회에는 양극화와 불평등 그리고 가족공동체 해체와 개인주의가 널리 퍼져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어린 꼬맹이들이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무한경쟁독점쌓음 그리고 무한소비사회에서 아빠엄마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실제로 21세기 불로소득 자본주의체제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 부부들은 자식 키우는 즐거움과 행복을 잠시잠깐 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21세기 이 땅에서 살아가는 풀뿌리 사람들이 가족 울타리바깥으로 눈길을 옮겨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한마디로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정치경제는 파시즘무법천지에 다름 아니다. 국가국정의 사유화와 사법파시즘에 더해서 사적폭력과 사회종교정치경제 과두집단횡포가 한데 뒤엉켜 난장판이 따로 없다. 국가 권력기관들의 공권력은 마치 마피아시스템처럼 작동한다. 21세기 대한민국사회는 그 혹독했던 군사독재폭력을 아득한 옛일처럼 여겨왔다. 또 다시 국가 권력기관들의 공권력이 사유화되어 마구잡이로 휘둘러 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되짚어보면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사회는 검사와 판사 등 사법공권력의 협업을 통한 사법파시즘 권력남용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 모든 국가공권력이 풀뿌리 시민주권을 대놓고 깡그리 무시했다.

사이비민주정부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폭력 그리고 수구언론들의 그 사악함이 한낮 대명천지를 깜깜한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파시즘 사적국가의 법과 제도를 동원한 심판과 징벌의 공포가 막바지에 이르러 있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21세기 최고의 시민주권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시대상황과 원인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분단 상황 속에서 평화체제 만들기 실패, 일제 식민지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잘못, 독점재벌대기업마름관료들의 사적국가농단 청산실패, 사이비종교와 극우보수들이 스피커볼륨을 키워온 유튜브 등 언론환경, 기득권 수구세력들의 끈질기고 집요한 사익추구, 진보세력의 이전투구와 윤리상실 등.

하나같이 21세기 대한민국사회가 타파해야할 악습들이다. 필자는 이러한 악습타파에 더해서 본문이 증언하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새롭게 되새겨보려고 한다. ‘심판과 징벌이라는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와 공포조장 그 악마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실제로 인류종교문명 속에서 세력을 떨쳤던 종교들은 하나같이 심판과 징벌의 공포라는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권력을 누려 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종교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직접적으로 세속정치를 주도하거나 사회정치 지배체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한 사회정치 지배체제의 권력과 사익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사회종교정치 음모와 술수의 하수구역할을 감당해 왔다.

실제로 성서는 이러한 사회종교정치 음모와 술수의 실체들을 때로는 자세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기록해 왔다. 물론 이것은, 성서의 역사가 다른 종교들보다 더욱 타락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인류종교문명사 속에서 세력을 떨쳤던 종교들이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공포의 악마성을 숨기고 감추어 왔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21세기 성서독자들은 시대의 언어로 읽는 성서읽기와 해석을 통하여 21세기 새로운 희년신앙 행동서사 잇기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본문읽기를 심판과 징벌의 공포 그 악마성에 대한 저항의 길을 찾아보도록 하자.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서사의 거친 숨결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고대 이집트 노예제국에서 종노릇하던 히브리들의 후손들이다. 그 옛날 야훼 하나님은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을 해방하시고 구원하셔서 새로운 해방세상대동세상을 건설하시려고 하셨다.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 세상이야말로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 지파동맹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의 핵심내용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히브리 지파동맹은 주변세계의 왕정체제를 받아들였고 결국은 다윗왕조라는 소제국주의 왕정체제를 갖게 되었다. 이후 다윗왕조의 폭압과 횡포 속에서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계승하려는 북이스라엘이 떨어져 나왔다. 한마디로 남북분단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북이스라엘마저 정치권력 투쟁과 주변 소제국주의 왕국들과의 분쟁으로 인해 히브리 지파동맹의 평등사회 이념을 계승하는 일에 실패했다. 도리어 호세아 예언자 시대에 이르러 북이스라엘은 25년여 사이에 여섯 명의 왕이 옹립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네 왕은 정치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원전 722년 수도 사마리아가 아시리아제국에게 정복되었고 북이스라엘왕정이 끝장났다.

이러한 본문의 시대상황 속에서 여러 예언자들이 나타나 야훼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했다. 예언자들은 정치와 사회종교정치경제에 만연한 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죄악들을 폭로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의 사회종교공동체 안에서 야훼하나님의 해방과 구원세상 가르침이 무시되고 배반당하는 사정을 가차 없이 들쑤셔댔다. 실제로 호세아 시대의 북이스라엘에서는 옛 히브리들의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 염원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해서 소수 지배계층과 사회종교정치 기득권자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 지배계층의 권력과 부의 독점 그로인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피지배계층의 굴종과 노예화를 부추기는 바알종교가 판치게 되었다.

그러한 시대상황에서 예언자들은 더욱 더 하나님의 심판과 공동체징벌예언을 남발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공포가 예언자들에게 익숙한 예언의 주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물론,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공동체재난을 선포하는 것은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결단과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공포는 심각한 오해와 부작용을 불러왔다. 시나브로 성서 안에서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향한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정신이 흐트러졌다. 이에 반하여 풍요다산과 액땜을 비는 바알종교 성전희생제사제도가 활성화 되었다. 성전회생제사를 위한 제사종교법과 그를 통한 의인과 죄인 편 가르기와 심판과 징벌로써 공포의 하나님 이미지가 강화 되었다. 이렇게,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공포는 성전제사종교체제에서 기득권자들의 권력과 사익을 보장하는 사회종교정치경제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야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증언하는 희년신앙예언자 호세아

 

마침내 히브리들의 하나님 야훼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희년신앙 예언자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에 나타났다. 호세아는 시대의 지배계층과 기득권자들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고난 받는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사랑을 선포했다. 호세아는 본문에서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조장하는 것에 대항하여 강력하게 야훼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했다. 호세아는 야훼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을 통하여 북이스라엘 풀뿌리 사람들에게 회개와 결단 그리고 희년신앙 행동을 촉구했다.

호세아는 본문에서 야훼 하나님의 히브리들을 향한 사랑이야기를 어린 아이와 아버지의 관계로 비유한다. 먼 옛날에 야훼 하나님은 언감생심 자신들의 하나님을 찾을 수조차 없었던 파라오 노예제국의 히브리 노예들을 사랑하셨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다. 야훼 하나님은 이집트제국 파라오를 찾아가 히브리 노예들은 내 아들이다, 내놓아라라고 요구하셨다.(출애굽기 4:22-23)

그렇게, 야훼 하나님은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 해방하시고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신명기 역사가들은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다.

 

무지몽매한 자손들아. 야훼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신명기 32:6

 

본문에서 야훼 하나님은 어린 아들과 같은 히브리들에게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을 향한 걸음마를 가르치셨다. 야훼 하나님은 자신의 팔로 연약한 히브리 지파동맹 평등공동체를 끌어안으시고 보호하시며 지켜 내셨다.

또한 본문은 히브리 지파동맹 평등공동체의 성장과정을 를 기르는 농부에 비유한다. 농부이신 야훼 하나님은 소를 마치 사람처럼 다루고 사랑하신다. 이제, 처음 밭을 가는 젊은 소의 코뚜레에 사랑의 줄을 매어 조심조심 앞에서 이끌며 밭을 갈게 하신다. 결단코 야훼하나님은 성깔머리 고약한 농부가 채찍으로 사정없이 소를 부리는 것처럼 하시지 않는다. 도리어 소의 멍에를 풀고, 소의 입과 턱을 감싼 부리망을 벗기며, 편히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보살핀다. 심지어는 몸을 굽혀 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소의 입에 맛있는 꼴을 가져다주신다.

그러나 히브리들을 향한 야훼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은총과 사랑은 배신으로 야훼 하나님께 되돌아왔다. 본문은 이러한 야훼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배신의 역설을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이제 결코, 히브리 해방노예들은 또 다시 옛 파라오 노예제국의 종살이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성서학자들은 이 문장을 이렇게번역하기도 한다.

그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한마디로, 본문문장은 노예의 딜레마를 이야기 한다. 타고난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해방을 맞아도 옛 노예주인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옛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기억하라.

 

실제로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은 걸핏하면 파라오의 떡 광주리와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다. 늘 그랬듯이 어느 때든 시대의 제국주의 지배체제는 떡 한 덩어리와 고기 한 조각으로 시대의 풀뿌리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들을 노예로 삼아 피와 땀을 착취한다. 한편 시대의 제국주의 지배체제는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의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를 선동함으로써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충성과 헌신을 강요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야훼는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공포를 조장하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야훼 하나님은 옛 히브리에게 그러셨듯이 지금 여기에서도 사랑으로 불타신다. 지금까지 예언자의 탈을 쓰고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하나님의 본성으로 호도한 이들은 참 예언자가 아니다. 굳이 성서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이야기한다라고 해석하더라도 야훼 하나님은 당신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하신 사랑으로 심판과 징벌의 분노를 억누르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야훼 하나님은 본문에서 새삼스럽게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신다. 명토 박아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신다. 실제로 시대의 지배체제는 풀뿌리 사람들에게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선동함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정죄하게하고 증오하게한다.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켜서 그 땅 풀뿌리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하거나 죽음의 길로 내몬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사랑으로 뒤집으신다. 오롯이 사랑으로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를 잠재우신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야훼 하나님은 나는 너의 가운데 있는 거룩함 이다라고 선언한다. 야훼 하나님은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를 선동하는 사회종교정치 체제의 음모와 술수 한가운데서 거룩한 사랑의 불꽃으로 활동하신다. 그럼으로써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선동하며 시대의 지배체제와 뒷배를 맞추려는 종교 기득권세력들의 불신앙을 낱낱이 들춰내신다.

실제로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의 사회종교정치 광기에 매몰된 세상은 스스로를 심판하고 스스로를 징벌하는 악순환 속에서 스스로 망하게 마련이다. 오랜 인류종교문명사 속에서 수많은 제국주의 사회종교정치 지배체제가 그렇게망했다. 현대사 속에서도 히틀러, 일본제국, 스탈린 등 파시즘제국주의 국가종교사회 체제가 그렇게종말을 맞이했다. 이제 21세기에 이르러는 대한민국의 마피아 국가시스템과 사회종교정치경제 체제도 그렇게파국을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이르러는 마피아시스템 사회종교정치경제체제의 종말과 파국의 메아리 속에서 소용돌이쳐 오는 야훼하나님의 포효를 듣게 될 것이다. 사자처럼 부르짖는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외침을 듣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 21세기 시대상황 안에서 야훼하나님의 사랑의 포효를 듣는 신앙인들이라면 마땅히 야훼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의 사회종교정치경제 이데올로기를 벗어 던지고 야훼하나님의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은 이렇게증언한다.

 

그가 포효할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뉘우치며 떨쳐 나올 것이다. 서쪽으로부터. 그들이 떨며 나올 것이다. 이집트로부터 새처럼, 아슈르 땅으로부터 비둘기처럼.”

 

이때 본문은 예헤레두 יֶחֶרְדוּ 그들이 뉘우치며 떨쳐 나올 것이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심판과 징벌의 공포라는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통당하고 억압당하는 그 땅 풀뿌리 사람들의 회심을 표현하는 동사다. 시대마다 고통당하는 풀뿌리 사람들이 시대의 거짓종교 아래서 심판과 징벌의 공포로 세뇌된 자기 신앙과 삶을 향한 철저한 성찰이다. 나아가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의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를 떨쳐내고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에 대한 떨림과 감격이다.

본문은 또렷하게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의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의 악마성에 대한 풀뿌리 사람들의 저항을 촉구한다. 그 저항행동의 결단은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을 해방하시고 구원하신 야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히브리 지파동맹과 야훼하나님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북이스라엘 히브리 지파동맹에게 부와 권력의 욕망을 쫓아 바알신앙과 황소귀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 뜻을 받드는 희년신앙 행동서사를 이어가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복음서에서 예수는 본문읽기의 모든 요청들을 구체화하고 실체화함으로써 한꺼번에 완결했다. 예수는 야훼 하나님을 아빠 ββᾶ’라고 부름으로써 옛 희년신앙 예언자 호세아의 절절한 신앙요청에 응답했다. 예수는 야훼하나님을 아빠로 부르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도록 가르쳤다.(갈라디아서 4:6) 히브리 성서 속 수천여년 희년신앙 행동서사 속에서 빛나왔던 옛 히브리들의 신앙과 삶의 요청들을 단 한 번에 응답했다. 예수는 히브리 성서 속 수많은 예언자들의 심판과 징벌 그로인한 증오와 공포의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를 하나님 아빠의 불타는 사랑으로 사그라트렸다. 심판과 징벌의 공포를 사랑의 거룩함으로 뒤집어엎었다.

참으로 예수는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을 펼침으로써 옛 히브리 지파동맹과 야훼하나님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온전히 이루었다. 야훼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의 꿈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완결했다.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의 모든 요청들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으로 모아져 완결되었다.

이제 누구라도 시대의 고난 받는 풀뿌리 사람들은 예수를 따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심판과 징벌의 공포로 이어진 시대마다의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야훼 하나님의 사랑의 포효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뉘우침과 깨달음과 떨림으로 야훼하나님의 사랑의 포효에 응답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의 아빠 하나님나라를 배우라.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마피아시스템 국가권력기관들의 폭력과 억압이 일상화 된 가운데 막무가내 종북좌파 반국가세력사냥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마피아시스템 국가권력기관과 수구정치언론과 종교기득권세력이 협업하여 선동하는 심판과 징벌의 공포라는 사회종교정치 이데올로기에 속절없이 휘둘린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 땅의 풀뿌리 사람들에게는 함께 편먹어 줄 하나님 아빠가 절실하다. 이제 시대의 풀뿌리 사람들은 함께 편먹어 줄 하나님 아빠를 함께 찾아나서야 하고, 함께 만나야 한다. 21세기 이 땅의 풀뿌리 사람들의 고단하고 억울한 삶의 마당을 쓸어서 정돈 해주고, 거들어주며, 편들어줄 야훼하나님 아빠을 만나야 한다.

 

아주 먼 옛날 파라오 노예제국 지배체제의 노예였던 히브리들을 편드셨던 야훼하나님.

그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셨던 야훼하나님.

그 히브리들과 함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맺으셨던 야훼하나님.

희년신앙 행동법규를 통하여 히브리들의 해방과 구원, 정의와 평등, 생명평화세상 건설에 물신양면 힘을 보태셨던 야훼하나님.

그 히브리들이 스스로의 교만과 아집으로 다시 망해서 아시리아, 바벨론, 헬라, 로마제국의 식민지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도리어 다시 더 세게 그들과 한편이 되어주셨던 야훼하나님. 우리는 의인이고 너희는 죄인이라며 갈릴리 풀뿌리 사람들을 등쳐먹던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에 종언을 고한 갈릴리 민중의 아들 나사렛사람 예수의 아빠가 되신 야훼하나님.”

 

21세기에 이르러 지금도 늘 아빠 하나님거기계시죠?

21세기 성서독자들 모두가 두 손을 뻗어서, 한껏 팔을 벌려서 야훼하나님 아빠를 맞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