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맥(脈)

희년신앙 행동서사 17. 유다왕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빚 탕감과 노예해방 선포’

희년행동 2024. 8. 7. 10:27

희년신앙 행동서사

 

17. 유다왕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빚 탕감과 노예해방 선포

예레미야 34:8-22

 

본문읽기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그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을 맺은 후에 야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왔던 말씀이다. 그 언약은 사람마다 자기 히브리남종과 히브리여종을 해방하여 놓아 보내는 것이었다. 또 사람마다 그의 형제 예후다인을 그들의 종으로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언약에 동참하는 모든 귀족들과 모든 풀뿌리 사람들이 누구나 그의 남종과 여종들을 해방하여 내보내고 다시는 그들을 종으로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귀담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순종하고 내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한 후에, 그들이 그 일을 뒤집었다. 그들이 해방해서 내보냈던 남종들과 여종들을 도로 잡아와서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이 남종들과 여종들을 복종시켰다. 그때에 야훼의 말씀이 야훼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이르렀다.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조상들을 종살이 하던 집 곧 이집트 땅으로부터 나오게 하던 날에 나는 너희조상들과 함께 계약을 맺었다. 이르기를.

칠년 째에 너희는 각 사람마다 자기에게 팔려온 히브리형제를 놓아 보내야 한다. 육년 동안 너에게 종살이 했으니 너는 그를 너로부터 해방하여 내어보내야 한다.

그러나 너희 조상들이 내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이 그들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너희가 돌이켰다. 너희가 서로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여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했다. 내 이름이 높이 불리는 그 집 곧 내 앞에서 너희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너희가 돌이켜서 내 이름을 더럽혔다. 너희가 사람마다 그들의 바람대로 해방하여 내어 보냈던 자기남종과 여종들을 도로 잡아들였다. 너희가 남종들과 여종들을 너희에게 돌아오게 해서 그들을 짓밟았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자기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는 내말을 듣지 않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야훼의 말씀- 칼과 전염병과 굶주림의 자유를 선포한다.

내가 그 땅의 모든 왕국들에게 공포와 학대의 표적으로 너희를 내어줄 것이다.

내가 나의 계약을 어긴 자들을 내어주겠다.

그들이 계약의 의무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그 송아지 제물 앞에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곧 그 송아지의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유대의 귀족들과 예루살렘의 귀족들과 왕궁 벼슬아치들과 제사장들과 그 땅의 모든 풀뿌리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그들을 내어주겠다. 그들의 시체가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들에게 먹잇감이 될 것이다.

내가 유다왕 시드기야와 그의 귀족들을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과 너희를 떠나 올라간 바벨론왕 군대의 손에 내어주겠다.

보라, 내가 명령할 것이다 -야훼의 말씀- 내가 그들을 이 성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들이 이 성에 맞서서 전쟁을 벌이고 이성을 빼앗아 불로 이성을 태울 것이다. 내가 유다의 성들을 사는 사람이 없는 황무지로 만들겠다.”

 

 

본문이해하기

 

예레미야는 누구인가?

 

예레미야는 베냐민지파의 노느매기 땅 아나돗 제사장출신 예언자다. 예레미야의 옛 조상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성소였던 실로를 지키던 엘리제사장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제사장 가문은 야훼하나님과 히브리 지파동맹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 총칙 십계명언약궤를 지켜왔다. 희년신앙 행동계약 십계명언약궤는 히브리 지파동맹에게 야훼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사회종교정치경제 공동체규약을 무시하고 야훼하나님을 배신했다. 그럼으로써 십계명언약궤를 불레셋에게 빼앗겼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십계명언약궤는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이후 다윗왕조가 자리 잡은 이후 다윗왕은 다윗왕조신학의 정통성을 돋보이기 위해 십계명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왔다. 이때 다윗왕은 십계명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기 위해 히브리 지파동맹 민병대 3만 명을 소집했다. 다윗왕은 히브리 지파동맹 민병대 3만 명과 함께 장엄한 호위행렬을 만들어 십계명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들여왔다.

다윗왕은 온 몸과 뜻을 다해 다윗성으로 모셔온 희년신앙 행동계약 십계명언약궤 관리책임자로 에비아달 제사장을 뽑았다. 에비아달은 히브리 지파동맹의 옛 성소였던 실로의 엘리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다. 에비아달은 옛 엘리제사장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제사장으로써 예레미야의 직계조상이었다.

한편 에비아달은 다윗왕의 아들들 곧 솔로몬과 아도니야 사이에서 왕권다툼이 벌어졌을 때 아도니야 편에 섰다. 그러나 솔로몬이 왕권투쟁에서 승자가 된 후 에비아달은 겨우 목숨만을 건져 아나돗으로 쫓겨났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실로성소에서 희년신앙 행동계약 십계명언약궤를 모시던 히브리 지파동맹 제사장세력은 완전히 패망했다. 옛 여부스족 출신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터줏대감 사독제사장세력이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사독제사장세력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전통의 제사장들을 철저하게 소외시켰다. 유다왕국과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제사종교체제에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전통의 제사장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오랜 세월이 흘러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쪽 유다왕국에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따르는 제사장그룹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였다. 바야흐로 옛 희년신앙 행동법규전통 지킴이로써 아나돗 제사장세력과 예루살렘성전 제사장들 사이에서 밋밋하지만 긴장관계가 일어나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대제사장 사독

 

사독은 다윗왕조신학의 핵심인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대제사장가문이다. 사독은 예루살렘 여부스족 제사장으로서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 왕에게 충성을 바쳤다. 그리고 마침내 사독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예루살렘 제사장으로서 에비아달 제사장 대신에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럼으로써 솔로몬 왕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에서 벗어나 소제국주의 왕권을 강화했다. 옛 여부스족의 성전제사종교체제를 본보기로 삼아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밑바탕을 튼튼하게 세웠다. 또한 솔로몬 왕국에서 수많은 외국인 관료들과 용병들도 자기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나아가 사독은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 대제사장으로서 예루살렘에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따르는 제사장들을 몽땅 몰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솔로몬 왕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나뉘었다. 유다왕국에서도 내내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사이에서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예레미야의 예언활동

 

히브리 성서에서 예레미야는 이르메야후 יִרְמְיָהוּ라고 표현된다. 이 이름의 뜻은 야훼께서 높이신다 또는 밑바탕을 놓으신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7년 경 유다왕국 요시야 왕 때에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다. 이후 예레미야는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등 다섯 왕들이 유다왕국을 다스리던 시절 약 40년 동안 예언활동을 했다. 그는 남유다왕국이 몰락하는 시대상황에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언자였다.

성서학자들은 대체로 예레미야서를 그의 저작물로 이해한다. 아마도 예레미야애가 역시 직접 저술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많은 성서학자들이 어린 시절 예레미야가 북이스라엘 예언자 호세아가 남긴 예언서들을 공부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예레미야의 예언들에는 호세아로부터 영향 받은 야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용서의 이미지가 드러나 있다.

성서학자들은 예레미야 예언서를 세 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부분은 예레미야가 직접 예언한 것들인데 3인칭의 산문체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부분은 예레미야의 친구이자 서기관이었던 바룩이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는 본문들이다.(예레미야 36:4) 세 번째 부분은 이방 민족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을 예언한다.

이렇듯이 예레미야는 아나돗제사장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했으나 다윗왕조 궁정예언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자기시대의 국제정세와 유다왕실의 사회종교정치경제 상황에 밝았고 또한 예민했다. 실제로 예레미야 시대는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 등 비옥한 초승달지대 전체가 격동하는 시기였다.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한때 메소포타미아와 초승달지대를 제패했던 아시리아제국이 몰락했다. 그러면서 기원전 621년경 바벨론제국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무렵 유다왕국은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에서 레위인 등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지킴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동안 유다왕국은 다윗왕조신학과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에 매몰되어 왔다. 그러면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신명기학파라고 불리는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지킴이들의 영향아래 종교개혁이 불붙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름 받을 무렵에 유다왕국에서는 요시야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의 북방원정길을 막아서려고 나섰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허망하게 전사했다. 그러면서 유다왕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에 따른 종교개혁도 끝장나고 말았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유다왕국역사의 마지막 40년 동안 예언활동을 하면서 온갖 험한 예언들을 쏟아내야만 했다. 또한 자신도 야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결혼을 하지 못하는 등 매우 비인간적인 삶을 요구받았다. 예레미야 예언은 대부분 험한 말로 유다왕국의 죄악들을 지적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것들이었다. 예레미야의 험한 예언들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들에게 비난과 배척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풀뿌리 사람들에게도 달갑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왕과 귀족 등 권력자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을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예레미야 예언의 내용들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이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나님과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지키도록 외치라고 명령받았다.(예레미야 11:1-5) 아마도 예레미야는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새롭게 가르쳤을 것이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예언들의 대부분은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지키라는 요청이었다. 만약 유대 풀뿌리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옛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야훼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곧 바벨론제국이 쳐들어와서 패망의 아픔과 참극을 겪게 되리라는 예언이었다.

이렇듯이 예레미야는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마저 자기 삶의 마당에서 히브리 조상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런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의 겉모양만을 바꾸려는 요시야 왕과 신명기학파 개혁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요시야왕과 신명기학파의 종교개혁이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전통을 크게 벗어났다고 여겼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은 겉으로 드러나 보여 지는 것들만 쫓아서 개혁할 뿐이었다. 도리어 예레미야는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전통이 종교율법화로 퇴행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했다.(예레미야 2-7, 열왕기하 23장 참조)

실제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를 비판하는 유명한 성전설교를 했다.(예레미야 7:1-15, 26:1-24)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 체제에만 의지해서 안녕을 얻으려는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의 신앙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압제하고 착취하는 죄악을 고발했다. 유대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따라 정의와 평등을 실행하라고 경고했다. 만약 정의와 평등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야훼 하나님께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실로성소를 무너뜨렸듯이 예루살렘성전도 무너뜨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야훼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자기사람들과 더불어 새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맺으실 거라고 예언했다. 또 돌 판에 새긴 희년신앙 행동계명이 아니라 마음에 새긴 새 희년신앙 행동계명을 주실 거라고 선언했다.(예레미야 31:31-3)

 

시대에 부는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

 

고대 성서주변세계에는 시대마다 끊이지 않고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이 몰아쳤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은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로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지구촌제국주의 패권경쟁 광풍도 예사롭지 않다. 또한 지구촌 소제국주의 국가들인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과 인도 등 지정학 독점이익까지 얽혀져 소제국주의 갈등구조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본문 시대상황에서는 기원전 664년 예레미야 예언자 때에 이르러 이집트 땅에 파라오제국 제26왕조가 들어섰다. 그러나 파라오제국은 이집트 땅을 넘어 비옥한 초승달지역에서 제국의 위상을 펼치지 못했다. 도리어 아시리아제국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르는 세력은 바벨론제국이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유다왕국은 북이스라엘 멸망 전부터 아시리아 제국의 속국이었으나 아시리아제국이 쇠퇴하면서 잠시잠간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다시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른 바벨론과 이집트제국 사이에서 왔다갔다 의지하다가 바벨론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그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는 이참에 이집트 땅을 넘어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제국주의패권을 쟁취하려고 노력했다. 파라오 느고2세는 기원전 69년 아시리아잔당들을 도와서 바벨론제국과 한판 제국주의 패권전쟁을 벌이려고 출병했다. 파라오 느고2세는 가나안땅 해변 길을 따라 올라와서 메소포타미아 하란 땅으로 출정했다.

이 때 유다왕국은 아시리아제국의 쇠퇴와 함께 잠시잠간의 독립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요시야왕은 아시리아잔당들의 부흥과 더불어 이집트 파라오제국의 힘이 커지는 상황을 마음에 두었을 것이다. 요시야왕은 무모하게 이스라엘 땅 므깃도로 올라가서 파라오 느고2세의 제국주의 패권전쟁 출정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와의 무깃도전투에서 허망하게 전사했다. 그 이후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하스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한편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의 원정은 실패로 끝났고 아시리아제국은 완전히 멸망했다. 이집트제국 파라오 느고2세는 바벨론과 제국주의 패권전쟁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 느고2세는 이번 제국주의 패권전쟁 출정으로 가나안 땅과 시리아지역의 지배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유다왕국 여호야하스는 파라오 느고2세에게 왕위를 승인받으려고 그가 머물던 하맛 땅 리볼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파라오 느고2세는 여호야하스를 삼 개월 만에 폐위시키고 그의 형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다.

이 때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왕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일어나는 온갖 사회 불의와 죄악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러는 사이 기원전 65년 유프라테스 강 언저리 갈그미스와 하맛에서 바벨론과 파라오제국의 두 번째 제국주의 패권전쟁이 벌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이 두 번째 바벨론과 이집트파라오의 제국주의 패권전쟁을 카르케미시전투라고 부른다. 예레미야는 이 카르케미시전투결과를 자세하게 분석했다. 그런 후에 유다왕국이 이집트 파라오제국에 기대는 것을 절대 반대했다.

그러나 기원전 61년 여호야김왕은 이집트 파라오제국에 기대서 바벨론제국에 바치던 조공을 중단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제국의 침략을 경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597년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왕이 여호야김의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그 무렵 바벨론제국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도 전에 여호야김은 원인모를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서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제국 군대에게 성문을 열어주었으나 만 여 명의 예루살렘 상류층사람들과 함께 바벨론포로로 잡혀갔다. 바벨론제국은 요시야 왕의 셋째아들로서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유다왕으로 앉혔다.

그러나 시드기야왕은 정치판단이 서투르고 줏대도 없는 사람이었다. 시드기야왕의 궁정은 친 바벨론세력과 친 이집트세력들로 인해 늘 시끄러웠다. 시드기야왕은 여러 해 동안 바벨론제국에 조공을 바치며 평온을 유지했다.

그러는 사이 기원전 594년에 가나안 땅 주변 작은 왕국들이 시드기야왕에게 밀사를 보내 바벨론제국에 대항하는 반 바벨론군사동맹을 제안했다. 이때 예레미야는 자신의 목에 멍에를 메는 상징행위를 통해서 유다왕국과 주변왕국들은 반드시 바벨론제국의 멍에를 메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마침내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제국을 배반하고 이집트 파라오제국을 중심으로 주변 왕국들과 반 바벨론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러자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왕은 기원전 588년 두 번째로 예루살렘출정을 벌였다. 이번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직접 예루살렘출정에 참여했다. 바벨론제국 군대는 유다왕국 온 땅을 초토화시켰다.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을 완전히 파괴했다.

유다왕국은 바벨론제국 군대에게 완전히 파멸당하기 전까지 온갖 혼란과 피흘림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유다왕국 지배계층은 살길을 찾아서 친 이집트세력과 친 바벨론세력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힘 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이 바벨론제국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시드기야왕과 귀족들과 수많은 상류계층 사람들이 함께 바벨론포로로 끌려갔다.

그런 와중에도 예레미야는 유대 땅에 그대로 남았다. 그 후 예레미야는 바빌론제국이 유대와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한 그달야가 과격파들에게 암살당했을 때과격파들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 파라오제국으로 갔다. 예레미야는 이집트 파라오제국에서도 옛 히브리들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에 따라 행동하라는 예언을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이집트 파라오제국에서 남은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예레미야는 남쪽 유다왕국의 멸망을 막으려고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들을 소리 높여 외쳤다.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예레미야 시대상황은 안타깝게도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경쟁 상황과 똑 닮았다. 주변나라들의 소제국주의 지정학 독점이익과 탐욕의 상황도 빼다 박은 듯 똑같다. 이제 21세기 한국교회와 교우들은 우리시대 한반도 지정학 위기상황 속에서 무엇을 외치려나?

 

 

본문풀이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

 

예레미야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역사 속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유다왕국 권력자들과 고관들과 부자들이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 등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해서 채무노예로 삼았다고 고발한다. 실제로 유다왕국의 권력자들과 고관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해서 부와 권력을 늘려왔다. 물론 유다왕국 예루살렘에는 여러 인종들이 오고갔지만 같은 히브리 사람이라면 말도 잘 통하고 노예로 부리기에 참 좋았다. 본문상황에서라면 유다왕국 예루살렘에서 히브리 사람들이 히브리노예를 부리는 일이 아주 흔했음을 드러내놓고 확인한다.

그러나 이제 위기의 때가 닥쳐왔다. 시대에 부는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 그 한가운데서 유다왕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을 맞이했다. 시드기야왕이 왕좌에 올라 10년째 되는 해, 기원전 588년에 또 다시 바벨론제국 군대가 유다왕국을 쳐들어 왔다.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왕은 두 번째 유다왕국 침략전쟁에서 자기군대를 둘로 나누었다. 첫 번째 군대는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빠르게 진군해서 예루살렘 성을 외워쌓다. 두 번째 군대는 지중해 해변 길을 따라 내려와 유대 땅으로 진군해서 군사요충지 라기스성과 아세가성을 공격했다. 그럼으로써 반 바벨론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 파라오제국 군대의 출정통로를 봉쇄했다.

바벨론제국 군대는 온 유대 땅을 초토화하고 예루살렘 성마저 에워싸서 공격을 퍼부었다. 다행히 유대 땅 군사요충지 라기스성과 아세가성이 끝까지 항전하며 버텨주는 덕에 예루살렘성도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의 때에 이르러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은 예루살렘에서 빚 탕감과 노예해방선포를 논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드기야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맺었다. 시대에 부는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 한가운데서 풍전등화 위기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예루살렘을 빚탕감과 채무노예 해방구(解放區)’로 선포했다.

 

시드기야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그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을 맺은 후에 야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왔던 말씀이다.

그 언약은 사람마다 자기 히브리 남종과 히브리 여종을 해방하여 놓아 보내는 것이었다. 또 사람마다 그의 형제 예후다인을 그들의 종으로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언약에 동참하는 모든 고관들과 모든 풀뿌리 사람들이 자기의 남종과 여종들을 해방하여 내보내고 다시는 그들을 종으로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귀담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순종하고 내보냈다.”

 

본문읽기는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성전이 멸망하기 딱 1년 전인 기원전 588년 예루살렘에서 선포된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을 증언한다. 본문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노예로 삼은 히브리남종과 여종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을 기록으로 남겼다. 유다왕국 시드기야왕이 예루살렘성의 모든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을 맺었다고 보도한다.

아마도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에서 이러한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는 애당초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데로르 דְרֹור 해방 또는 자유라는 히브리어 낱말을 사용한다. 베리트 בְּרִית 언약 또는 계약이라는 낱말을 함께 사용한다.

이렇듯이 시드기야왕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과 맺은 언약은 사람마다 히브리남종과 여종을 해방하여 놓아 보내는 것이었다. 또 사람마다 자기형제 유대인들을 종으로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해방하여 내어보낸 후 다시는 그들을 종으로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유다왕국의 모든 고관들과 풀뿌리 사람들이 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에 동참했다. 예루살렘의 모든 풀뿌리 사람들이 히브리 형제자매 남종과 여종을 해방하는 언약선포를 마음에 새겼다. 그래서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함께 결의하고 순종하며 채무노예들을 해방하여 내보냈다.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모든 풀뿌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빚탕감과 노예해방구로 선포했다. 이 선포는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를 다시 되살리는 언약이었다. 그럼으로써 야훼 하나님께서도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을 바벨론제국 침략으로부터 꼭 지켜 달라는 절절하고 강력한 요청이었다. 유다왕국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이 바벨론제국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야훼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스러운 기도였다.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뒤집다.

 

그러나 이후 얼마못가서 유다왕국 시드기야왕은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곧바로 무효화했다. 왜냐하면 바벨론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쌌을 때 반 바벨론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제국 파라오군대가 출정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제국의 파라오 호브라는 가나안땅 해변 길을 따라 출정하면서 반 바벨론군사동맹군과 합류하려고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 남서쪽으로부터 바벨론제국 군대를 쳐부수려고 계획했다.(예레미야 37:5). 따라서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있던 바벨론제국 군대는 배후에서 공격해오는 이집트 파라오제국 군대와 싸우기 위해 예루살렘 성 포위를 풀어야만 했다.(예레미야 37:11)

바벨론제국 군대가 예루살렘 성 포위를 풀고 물러나자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의 마음이 돌아섰다. 유대 땅 군사요충지 라기스성과 아세가성도 잘 버텨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반 바벨론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제국 파라오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구하려고 출정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는 해소되었고 살길이 열렸으니 빛탕감과 노예해방의 큰 손해를 되돌려야만 했다.

실제로 다윗왕조 유다왕국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은 까마득히 잊혀 진 구시대 신앙유물일 뿐이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예루살렘성이 희년신앙 행동법규에 따른 빚탕감과 채무노예 해방구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드기야왕과 유대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말끔하게 취소시켰다. 빚을 탕감하고 해방하여 내어보낸 히브리형제 남종과 여종을 다시 잡아들여 그들을 짓밟아 복종시켰다.

그렇다면 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은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했을까? 무엇 때문에,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선포되지 않았던 예루살렘성 빚탕감과 채무노예 해방구 선포를 해야만 했을까?

참으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고관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히브리 노예들의 반란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들은 히브리 노예들이 바벨론제국 군대를 편들어서 노예반란을 일으키고 해방과 자유를 얻으려고 하지 않을까걱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예루살렘성의 모든 노예들에게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했을 것이다.

또 한편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여 전쟁방패막이로 동원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제국 군대가 예루살렘 성 포위를 풀자마자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고관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이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선포를 완전히 되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일을 뒤집었다. 그들이 해방해서 내보냈던 남종들과 여종들을 도로 잡아와서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이 남종들과 여종들을 복종시켰다.”

 

이때 본문은 야크비슘 יַּכְבִּישׁוּם 유다왕국의 귀족들이 그들을 짓밟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한다. 본문읽기는 짓밟다 또는 복종시키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카바쉬를 두 번 연거푸 사용했다. 그러면서 매우 거칠고 철저하고 사나운 폭력상황을 강조해서 표현하고 증언했다. 유다왕국 시드기야왕과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상황을 모면하려고 해방하여 내어보냈던 노예들을 다시 잡아들였다. 그들을 다시 노예로 부리기 위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했다. 한번 해방했던 노예들을 다시 잡아들여 노예로 삼으면서 철저하게 짓밟아서 복종시켰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

 

참으로 다윗왕조 유다왕국에서는 예루살렘성전에서 맺어진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조차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지기 십상이었다.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는 오래전에 이미 무효화되었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 성전제사종교체제마저 깡그리 망해서 무너질 날이 눈앞으로 들이닥쳤다. 그래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예레미야에게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을 향한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조상들을 종살이 하던 집 곧 이집트 땅으로부터 나오게 하던 날에 나는 너희 조상들과 함께 계약을 맺었다.

이르기를. ‘칠년 째에, 너희는 각 사람마다 너에게 팔려온 히브리형제를 놓아 보내야 한다. 육년 동안 너에게 종살이 했으니, 너는 그를 너로부터 해방하여 내어보내야 한다.’

그러나 너희 조상들이 내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이 그들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레미야 34:12-14

 

예레미야는 본문읽기에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를 소환한다.(출애굽기21) 야훼 하나님은 유다왕국과 예루살렘 풀뿌리사람들의 조상 히브리 노예들을 종살이 하던 집 곧 이집트 땅으로부터 해방하고 구원하셨다고 증언한다. 또 옛 히브리들 곧 히브리 지파동맹과 함께 희년신앙 행동계약을 맺으셨다고 증언한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핵심은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희년신앙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는 히브리형제를 종으로 부리는 경우, 동거인처럼 또는 형제처럼 대하라고 명령한다. 또한 칠년 째에는 무조건 값없이 해방하여 내어 보내라고 명령한다. 이때 값없이라는 조건은 곧 고엘, 무르는 값조차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 성서에서 유대교와 유대인들이 토라 또는 율법이라고 부르는 출애굽기21장에서 23장까지의 핵심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신명기15장은 칠년 째 해를 쉐밑타 라예흐바 שְׁמִטָּה לַֽיהוָֽה 야훼의 빚탕감 해라고 못 박았다.

 

칠년 째에 너희는 각 사람마다 너에게 팔려온 히브리형제를 놓아 보내야 한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는 쉐봐 솨나임 שֶׁבַע שָׁנִים 칠년 째에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그 종이 육년 동안 주인을 위해 종노릇했기 때문이다.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에서 채무노예해방은 칠년이 최대한도(最大限度). 칠년 째에는 값없이(무르지도 말고) 해방하고 놓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본문읽기에서 유다왕국역사 속에서 희년신앙 행동법규로써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선포가 전혀 없었다고 질책한다. 유다왕국은 수많은 야훼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귀에 못박이도록 떠들어 댔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옛 히브리 지파동맹과 야훼 하나님이 함께 맺은 희년신앙 행동계약 전통에서는 애당초 노예제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히브리 지파동맹은 야훼 하나님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을 함께 체험한 히브리해방노예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브리 지파동맹은 파라오 노예제국을 탈출한 히브리들이거나 가나안땅 봉건왕국에서 해방투쟁을 벌여온 소작농노 또는 하비루들이었다.

그러나 히브리 지파동맹이 가나안 노느매기 땅에서 오래도록 터 잡고 살면서 시나브로 주변왕국들의 노예제도에 휩쓸리게 되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삶의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사회경제 불평등과 양극화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들키면 갑절의 배상금을 무는 대신 채무노예가 되었다. 또 과부와 고아와 떠돌이들이 자기 노느매기 땅을 잃고 생계수단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빚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 다른 사람의 채무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흉년이나 전쟁 등 사회경제정치위기 속에서 부자에게 제 몸뚱어리를 채무노예로 팔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다윗왕조 유다왕국에서는 다윗왕조신학에 따라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그러면서 더욱더 채무노예제도가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너희가 돌이켜서 내 이름을 더럽혔다.

 

너희가 서로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여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했다. 내 이름이 높이 불리는 그 집 곧 내 앞에서 너희가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너희가 돌이켜서 내 이름을 더럽혔다. 너희가 사람마다 그들의 바람대로 해방하여 내어 보냈던 자기남종과 여종들을 도로 잡아들였다. 너희가 남종들과 여종들을 너희에게 돌아오게 해서그들을 짓밟았다.”

 

야훼 하나님은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에게 예레미야 예언자를 보냈다.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 행동법규를 따라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하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드기야왕과 귀족들이 예레미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모든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과 함께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하는 언약을 맺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선포되지 않았던 빚탕감과 노예해방이 선포되었다.

본문읽기에서 야훼 하나님은 너희가 내 눈에 에트-하야솨르 אֶת־הַיָּשָׁר 올바른 일을 했다며 기뻐하셨다.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이 희년신앙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행동법규에 따라 마땅한 신앙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유다왕국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도 옛 히브리 조상들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에 따라 히브리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었다. 노예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의 예루살렘성 노예해방구 선포는 하룻밤의 꿈으로 끝났다. 매우 안타깝게도 그것은 풍전등화와 같은 다윗왕조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의 멸망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이제 반 바벨론 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제국 파라오 호브라가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 출정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왕은 급하게 예루살렘성 포위를 풀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집트제국 파라오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남쪽전쟁터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과 더불어 해방을 맞이한 히브리 노예들까지 모두 함께힘을 모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전투에 대비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도리어,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해방하여 내어보낸 히브리 남종과 여종들을 다시 잡아들였다. 그리고 처절하게 짓밟아서 복종시켰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이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으로 인한 당장의 손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지배체제가 맘몬바알 노예세상 불로소득 탐욕으로 철저하게 찌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 속에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은 이미 다 무효화되었다. 오롯이 고리대금업과 채무노예제도를 통한 이자와 이윤 등 불로소득만이 현실세계였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법규들을 다시 회복할 뜻이 전혀 없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 예루살렘성을 빚탕감과 노예해방구로 지켜나갈 뜻이 전혀 없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스스로 옛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 지킴이로 나설 뜻이 전혀 없었다.

 

내가 너희에게 칼과 전염병과 굶주림의 자유를 선포한다.

 

너희가 서로 자기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는 내말을 듣지 않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야훼의 말씀- 칼과 전염병과 굶주림의 자유를 선포한다.

내가 그 땅의 모든 왕국들에게 공포와 학대의 표적으로 너희를 내어줄 것이다.

내가 나의 계약을 어긴 자들을 내어주겠다.

그들이 계약의 의무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그 송아지제물 앞에서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곧 그 송아지의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유대의 귀족들과 예루살렘의 귀족들과 왕궁 벼슬아치들과 제사장들과 그 땅의 모든 풀뿌리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그들을 내어주겠다. 그들의 시체가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들에게 먹잇감이 될 것이다.

내가 유다왕 시드기야와 그의 귀족들을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과 너희를 떠나 올라간 바벨론왕 군대의 손에 내어주겠다.

보라, 내가 명령할 것이다 -야훼의 말씀- 내가 그들을 이 성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들이 이 성에 맞서서 전쟁을 벌이고 이성을 빼앗아 불로 이성을 태울 것이다.

내가 유대의 성들을 사는 사람이 없는 황무지로 만들겠다.”

 

본문은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에게 참으로 무서운 경고를 보낸다. 실제로 이런 모든 일들은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 성 포위망을 풀고 물러 난지 만 일 년 만에 실제와 똑 같이 벌어졌다.

칼과 전염병과 굶주림의 자유, 이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에 부는 모든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의 실체다. 실제로 21세기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전쟁으로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뚜렷하게 증명한다. 모든 시대마다 모든 곳에서 빚꾸러기들에게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머잖아 시대의 칼과 전염병과 굶주림의 자유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지구촌 제국주의 패권경쟁 판 한가운데 위치한 한반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마지막 임금 시드기야왕과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잠시잠간 야훼 하나님의 눈과 귀를 속였다. 제국주의 패권전쟁 광풍 속에서 야훼하나님의 눈에 올바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술수를 부렸다. 예루살렘성을 빚탕감과 노예해방구로 선포하는 사기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물러가자마자 예루살렘성전 야훼하나님 앞에서 맺었던 빚 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그런 후에 얼마못가서 다윗왕조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이 다함께 바벨론제국 군대에게 멸망당했다.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 귀족들과 수많은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야훼 하나님께서 빚 탕감과 노예해방선포를 뒤집어버린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성에서 전쟁과 전염병과 굶주림이 맘껏 자유를 누리도록풀어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