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서읽기/희년신앙 읽기

희년신앙의 태동, 모세의 투쟁-실패한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

희년행동 2025. 1. 12. 10:30

희년신앙의 태동, 모세의 투쟁-실패한 히브리노예 성공신화 모세이야기

 

이어지는 본문읽기2.(11-15)는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지도자 모세의 인간적인 투쟁과 실패를 증언한다. 이 이야기 역시 모세탄생설화 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럽다.

 

세월이 흘러 모세가 장성했다. 모세는 그의 형제들에게 나아갔다. 모세는 형제들의 노역(奴役)을 보았다.”

 

여기서 장성했다라는 의미는 신체가 자라고 용모도 특별히 뛰어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불어 지혜와 능력과 함께 부와 힘이 커졌음말한다. 이어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예체 יֵצֵא 나아갔다라는 의미도 그렇다. 모세는 파라오 궁궐 바깥나들이를 하다가 우연히 형제들과 만나게 된 것이 아니다. 이제 모세는 힘차고 씩씩하게 그리고 은밀하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자기형제들 앞에 나선 것이다. 본문에서 모세의 투쟁내용을 보더라도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에게 강한 형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모세가 파라오의 궁전에서 양육되고 교육받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한편 이 무렵 모세의 형제 히브리 노예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이집트 18왕조시대의 무덤벽화에서 출애굽기1장 히브리 노예들의 강제노동과 똑 같은 내용을 그린 그림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형제들의 이익과 권리를 확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권리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세가 할 수 있는 권리투쟁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세가 히브리 형제들의 노역을 보고 느끼는 부끄러움과 무력감은 이어지는 모세의 돌발 살인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모세가 어떤 이집트 사내가 그의 형제들 중 한 사람을 때려눕히는 것을 목격했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이집트 사내를 쳐 죽였다. 그리고는 그 시체를 모래 속에 숨겼다.”

 

이때 어떤 이집트사내(아마도 노예감독관)가 히브리 노예를 마케 מַכֶּה 때려눕히는현장은 친구사이에서의 가벼운 다툼이 아니다. 주인으로써 노예를 향한 일방폭력이다. 이 경우 주인은 노예를 때려서 큰 상처를 입히거나 혹 죽이거나 할 만큼의 무거운 폭력을 사용하기 일쑤다. 실제로 이 폭력은 고대 노예사회에서 주인이 노예에게 가할 수 있는 사회구조폭력이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방폭력이며 무한폭력이다.

따라서 이제, 히브리 노예들의 지도자로 나설 만큼 장성한 모세로서는 도저히 이 폭력사태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모세는 처절한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히브리 형제들을 향한 부끄러움과 무력감 속에서 돌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튿날 모세가 다시 형제들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이것 좀 봐, 히브리 남자 두 사람이 싸우고 있지 않은가.”

 

모세가 잘못한 사람을 나무랐다.

 

당신은 왜 동무를 때리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니침 נִצִּים 은 다투다 또는 싸우다라는 뜻이다. 주인으로써 이집트사람이 히브리노예를 때려죽이는 무한폭력이 아니다. 그저 형제끼리 서로 멱살을 잡거나 부둥켜안고 얼러대는 정도의 다툼이다. 그러나 히브리들은 다 같은 노예의 처지였지만 사람마다 능력과 직책이 달랐다. 히브리노예들 사이에서 작은 이익과 권리들을 쟁취하려는 삶의 투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그 작은 이익들과 권리들조차 히브리 노예들의 주인인 파라오로부터 던져지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작은 이익과 권리를 위한 경쟁 때문에 히브리노예들 사이에서는 잦은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노예들 사이에서 주인인 파라오가 던져주는 떡 한 덩이 고기 한 조각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모세는 뜻하지 않게 히브리 형제들의 다툼을 말리고 잘잘못을 따지며 판단하는 자리에 나서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실제로 쳐 죽이든 아니면 다투든아무리 작은 이익과 권리다툼일지라도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상대로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이익과 권리를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본문상황에서나 21세기 맘몬자본세상에서나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의 삶의 투쟁은 너나없이 죽기 살기 일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의 삶의 투쟁은 정당한 중재가가 없다. 따라서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의 작은 이익과 권리다툼에 개입하는 순간 모두에게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 없는 노예세상에서 히브리노예 성공신화로써 모델이며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탈이 났다. 그 히브리 사내가 모세에게 대들었다.

 

누가, 우리위에 우두머리와 재판관으로 당신의 이름을 세웠소?

당신이 이집트인을 살육했던 것처럼 나도 쳐 죽일 셈이오?”

 

모세가 두려워 떨며 탄식했다.

 

아하, 그 일이 탄로 났구나.”

 

파라오가 이일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파라오는 모세를 잡아 죽이려고 모세를 찾았다.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 땅에 웅크렸다. 모세는 그곳 한 우물가에 주물러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