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처연한 슬픔과 회한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개꿈.
누구든 어렸을 때에는
종종 개꿈을 꾸게 되지요.
오십 줄에 든 지금도
나는 가끔씩 개꿈을 꾸곤 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개꿈을 꾸었는데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들과 함께 울다가 지쳐 꿈에서 깨었지요.
깨고 나니 역시 개꿈이라 내용은 가물가물 한데
여느 때와 달리 그 처연한 슬픔과 회한의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침 묵상이 깊어지면서
그 처연한 슬픔과 회한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살아온 날들 동안
나름대로 이 땅의 하나님 나라운동에 헌신 하며
살아왔노라고 자위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웃들의 고통과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것으로
때로는 벗들의 문제를 부여잡고 함께 씨름하는 것으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이 아니겠는가?” 흥분하면서.
그러나 가만히 톱아 보면 볼수록
울컥 울컥 맺힌 회한들이 꾸역꾸역 솟아오릅니다.
그에 따라 하나하나 떠오르는 이웃과 벗들의 빛바랜 얼굴들.
화난 얼굴, 슬픈 얼굴, 고통과 절망의 표정들이 가슴을 찌릅니다.
나에게 있어, 그 이웃과 벗들은 언제나 ‘그들’이었습니다.
함께 거리에 섰을 때에도
함께 일을 도모 할 때에도
함께 공동체를 꾸렸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오늘도 나는 ‘이웃과 벗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이 천연스레 오가고 있습니다.
이아침
나는 아직 꿈속에서 못다 흘린
슬픔과 회한의 눈물을 한참이나 더 흘려야 했지요.
그리고는 오늘의 나에게 묻습니다.
언제쯤이나 ‘나’와 ‘그들’이 속절없는 ‘하나’가 될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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