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뒤집다.
그러나 이후 얼마못가서 유다왕국 시드기야왕은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곧바로 무효화했다. 왜냐하면 바벨론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쌌을 때 반 바벨론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제국 파라오군대가 출정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제국의 파라오 ‘호브라’는 가나안땅 해변 길을 따라 출정하면서 반 바벨론군사동맹군과 합류하려고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 남서쪽으로부터 바벨론제국 군대를 쳐부수려고 계획했다.(예레미야 37:5). 따라서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있던 바벨론제국 군대는 배후에서 공격해오는 이집트 파라오제국 군대와 싸우기 위해 예루살렘 성 포위를 풀어야만 했다.(예레미야 37:11)
바벨론제국 군대가 예루살렘 성 포위를 풀고 물러나자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의 마음이 돌아섰다. 유대 땅 군사요충지 라기스성과 아세가성도 잘 버텨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반 바벨론군사동맹의 맹주인 이집트제국 파라오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구하려고 출정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는 해소되었고 살길이 열렸으니 ‘빛탕감과 노예해방의 큰 손해’를 되돌려야만 했다.
실제로 다윗왕조 유다왕국에서 히브리 지파동맹의 희년신앙 행동계약전통은 까마득히 잊혀 진 구시대 신앙유물일 뿐이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예루살렘성이 ‘희년신앙 행동법규에 따른 빚탕감과 채무노예 해방구’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드기야왕과 유대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빚탕감과 노예해방선포 언약’을 말끔하게 취소시켰다. 빚을 탕감하고 해방하여 내어보낸 히브리형제 남종과 여종을 다시 잡아들여 그들을 짓밟아 복종시켰다.
그렇다면 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풀뿌리 사람들은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했을까? 무엇 때문에, 다윗왕조 유다왕국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선포되지 않았던 ‘예루살렘성 빚탕감과 채무노예 해방구 선포’를 해야만 했을까?
참으로,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고관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히브리 노예들의 반란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들은 ‘히브리 노예들이 바벨론제국 군대를 편들어서 노예반란을 일으키고 해방과 자유를 얻으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예루살렘성의 모든 노예들에게 빚탕감과 노예해방을 선포했을 것이다.
또 한편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여 전쟁방패막이로 동원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제국 군대가 예루살렘 성 포위를 풀자마자 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고관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이 빚탕감과 채무노예해방 선포를 완전히 되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일을 뒤집었다. 그들이 해방해서 내보냈던 남종들과 여종들을 도로 잡아와서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이 남종들과 여종들을 복종시켰다.”
이때 본문은 ‘야크비슘 יַּכְבִּישׁוּם 유다왕국의 귀족들이 그들을 짓밟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한다. 본문읽기는 ‘짓밟다 또는 복종시키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카바쉬’를 두 번 연거푸 사용했다. 그러면서 매우 거칠고 철저하고 사나운 폭력상황을 강조해서 표현하고 증언했다. 유다왕국 시드기야왕과 귀족들과 예루살렘 부자들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상황을 모면하려고 해방하여 내어보냈던 노예들을 다시 잡아들였다. 그들을 다시 노예로 부리기 위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했다. 한번 해방했던 노예들을 다시 잡아들여 노예로 삼으면서 철저하게 짓밟아서 복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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